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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8화 (18/250)
  • 제18화

    제18편

    딸랑.

    순식간에 인기척이 뒤에서 느껴졌다. 나와 한결이는 동시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저희 가게를 찾아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의 문이 천천히 닫히고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관리가 잘된 검고 곧은 머리카락 아래로 얇게 휘어진 눈이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겉보기에 서른 중후반 같아 보였고 차이나 칼라 셔츠에 단정한 차림이 이 공간과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홍 상사의 주인 안사홍입니다.”

    그는 마치 아주 오래된 장인의 가게나 백화점 직원처럼 반듯하고, 수려하게 인사했다. 춤을 추듯 부드러운 동작이랄까.

    “아, 안녕하세요.”

    “…….”

    나는 그의 태도에 감탄하며 인사를 건넸지만, 한결이는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불쾌감을 느낀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며칠째 계속 전투에 노출됐으니, 경계심이 높을 만하다. 뒤에서 나타나는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고. 그래도 아까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둬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으니 무례하게 굴지는 않을 터.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면 한결이 녀석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는 게 더 무례하지.’라며 소리를 빽 질렀을 게 뻔하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아무리 우리가 아직 높은 수준의 헌터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순식간에 위치를 바꿀 수가 있나?

    어쨌든 나도 S급의 민첩성을 갖고 있는데 말이다.

    ‘순간 이동? 아니면 애초에 뒤에 있었지만, 앞쪽에 있다고 느끼도록 환각을 사용했나? S급의 감각을 완전히 속이려면 대체 얼마나 높은 레벨의 헌터인 거야? 안사홍 역시 S급이라는 건가?’

    그의 대단한 업적에 관한 것은 잔뜩이었지만, 개인적인 정보는 아는 게 없으니 머리를 굴려 봐도 딱히 나오는 건 없었다.

    ‘혹시…….’

    그러다가 언뜻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이 스킬을 사용하면 그 누구도 모르는 안사홍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영혼 분별사.’

    츠츠츳.

    전신을 타고 오르는 마나를 느낌과 동시에 안사홍 얼굴 옆으로 시스템 창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안사홍]

    영혼 등급: 아직 알 수 없음

    영혼 상태: 불안정

    싱크로율: 0%

    ‘엥?’

    하마터면 입 밖으로 소리를 낼 뻔했다. 영혼 등급 아직 알 수 없음에 싱크로율이 0%.

    ‘말이 돼? 싱크로율이 0%일 수가 있다고? 회귀 전에도 이런 수치는 본 적이 없어.’

    황당한 정보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이 자식이 미쳤나?

    애초에 싱크로율이라는 건 사람의 성격이나 신뢰도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순 있지만.

    소울메이트를 할 수 있을 싱크로율은 좀 더 깊고 원초적인 의미였다. 그러니까 뭐랄까. 영혼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영혼의 공명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싱크로율 0%라는 건 사람이 아닌가? 아니,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적이다.

    하지만 눈앞에는 안사홍이 멀쩡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의 정보가, 일부분이고 기괴하기는 하지만 스킬로 분석도 되고 있다.

    ‘혹시 외계인 같은 건…….’

    초능력자가 있고 포털이 열려 던전 속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세상이니……. 결정적으로 나처럼 과거에서 회귀를 한 사람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니 눈앞의 정보 창이 그다지 심각해 보이진 않는 경지에 이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 등급을 알 수 없다는 건 볼 수 있게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조건을 달성하면 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완전히 막힌 게 아니라는 거다. 물론 어떤 조건인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안사홍을 상대하려면 앞으로도 아주 조심스러워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심기를 거스른다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게다가 내 예상이 맞는다면 나는 정말 그 누구도 몰랐던 안사홍의 비밀에 접근한 게 되는 거지! 이 상황에서 그러면 안 되지만, 어쩐지 약간 들뜬 기분이 되는걸.’

    그와 한결이 사이에 불편한 정적이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어느새 안사홍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묘했다.

    음. 다시 보니 이 사람 눈동자가 되게 작구나. 미소로 가리지 않으면 굉장히 차가운……. 아니, 이게 아니라.

    ‘설마 스킬을 사용한 걸 들킨 건 아니겠지.’

    땀이 삐질 흘렀다. 대체 정체가 뭔지 모를 사람에게 하나라도 흠을 잡혀서는 안 되니까.

    그래, 내 필살기. 무해한 미소다.

    “하하하, 잘 찾아왔네요. 저희가.”

    “손님이 맞으시는군요.”

    안사홍은 한결이의 날 선 반응에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내게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저 낯선 가게에 흘러들어 온 어수룩한 각성자처럼 보이는 우릴 향해 미지근한 미소를 지을 뿐.

    역시 내 필살기가 통한 거겠지. 후후후.

    “물론이에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게다가 타이밍도 좋았네요. 조금 전까지는 제가 다른 손님을 상대하느라 좀 바빴거든요. 안쪽으로 따라오세요. 가게가 좀 지저분해서요.”

    그는 먼저 오른쪽 벽에 쳐진 폭이 좁은 커튼 앞으로 걸어갔다.

    ‘다른 손님? 누구지? 아까 길거리에서 본 사람이라고는 그 백발의…….’

    차르륵.

    안사홍이 커튼을 열자, 막힌 줄 알았던 벽에서 생각지도 못한 통로가 나왔다.

    ‘저기에 공간이?’

    놀라웠다.

    안사홍을 따라 통로로 들어서자 공간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통로의 끝에 다다라 펼쳐지는 새로운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건물의 겉을 봤을 때는 이런 공간이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커다란 방이 보였다.

    높은 천장과 넓은 벽으로는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진열장이 전부 채우고 있었다. 심지어 그 진열장에는 최상층까지 모두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갖가지 몬스터의 부산물과 보석들, 무엇인지 모를 생물체의 표본과 비싸 보이는 온갖 것들이 있었다.

    바닥도 다르지 않았다. 무거운 궤짝이 쌓여 있고 그 앞에는 S급들이나 쓸 법한 훌륭한 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아이템을 막 꺼내 놔도 되나? 도둑이라도 맞으면 어떡하려고.’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한결이에게 했던 내 설명이 완전히 틀려먹은 게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 시간대에서도 안사홍은 엄청난 상인이 틀림없었다.

    흘긋 한결이를 넘겨보자 눈이 마주쳤다.

    “네 말이 맞았네.”

    “아무렴.”

    “찾으시는 물건이 따로 있으신가요?”

    안사홍이 속삭이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쪽으로 엄청나게 화려한 가게의 전경이 보여서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비밀 상점의 기묘한 주인을 만난 듯한 느낌.

    “아, 일단 던전 부산물을 좀 팔 수 있을까요? 그 돈으로 무기를 매입하고 싶어서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판매가 먼저라면, 이쪽으로 오시죠.”

    안사홍은 복층 계단을 올라갔다. 마치 사무실처럼 보이는 그곳에는 넓은 책상 위로 필기구, 서류 따위가 잔뜩 있었다.

    위이잉.

    그가 책상의 잡다한 물건을 한쪽으로 쓸어 놓고 빈 곳 위로 손을 뻗자 위로 시스템 창처럼 빛나는 사각형이 생겨났다.

    “이 위에 파실 물건을 올려 주세요. 인벤토리에서 바로 꺼내셔도 무관합니다.”

    나는 인벤토리를 조작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거래 방식이 비밀스럽진 않은데? 이건 그냥 거래 사기를 막는 스킬이잖아.’

    지이이잉.

    후두두둑. 책상 위로 에테르석이 수북이 쌓였다.

    “판매하실 물건은 이게 전부인가요?”

    “일단 이것부터 계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안사홍은 쌓여 있는 에테르석 위로 손을 뻗었다. 그의 눈이 노랗게 빛나고 그와 같은 색의 빛이 에테르석을 감쌌다.

    ‘감정 스킬이군. 예상대로 거래 특화 기능을 가진 각성자인 것 같군.’

    슷.

    그가 곧 손을 거둬들이고 입을 열었다.

    “확실히 에테르석이군요. 등급은 하급. 개수는 총 25개. 제가 매입할 수 있는 가격은 1천 8백만 원입니다.”

    “응? 1천 8백이요?”

    내가 깜짝 놀라자 안사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든 던전 부산물과 아이템의 가격은 항상 유동적입니다. 그건 알고 계시겠지요?”

    “아, 물론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적은 금액 같아서요.”

    아무리 하급이라고는 하지만 무기를 강화하는 데 필수 재료인 에테르석이 100만 원도 채 안 된다니.

    하나, 뒤따르는 안사홍의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너무 적다……. 혹시 다른 곳에서 가격을 알아보고 오셨을까요? 제가 아는 한, 이 동묘 거리에서 저만큼 에테르석을 잘 쳐주는 상인은 없습니다. 솔직히 아무런 기능이 없는, 약간의 마력을 지닌 돌조각일 뿐이잖습니까?”

    뭐. 아무런 기능이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이게 무슨…….

    “다른 가게도 둘러보시면 좋겠지만, 아시다시피 지금 모든 각성자가 던전 재난 사태에 지원을 나가서요. 이곳에 남아 있는 상인은 저뿐입니다. 거래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다음에 다른 가게를…….”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잠시만요. 잠시만요! 생각을 좀 하고요!”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그래, 그렇구나. 아직 아이템 강화에 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거구나. 이럴 수가. 아직 아이템 강화에 관해 아무도 모른다고? 그랬던가?! 하아, 대박인데.’

    이 에테르석으로 아이템을 강화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니. 물론 아이템 강화는 관련 스킬이 있어야 하니 내가 혼자서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인즉, 지금까지 강화 관련 각성자가 없다.

    세컨드 오픈을 기점으로 강화 관련 각성자가 새로이 나타난다는 거란 말이 된다. 그렇군, 그렇게 된 거구나!

    ‘대박이지만, 아직 에테르석으로 돈을 벌 수가 없잖아. 아깝지만, 25개 정도는 다시 금방 모을 수 있어. 헤르메스의 신발도 당장 강화를 할 순 없겠지만…….’

    헐값이라도 지금 가진 걸 모두 팔아 장비를 맞춰야 한다.

    그걸로 던전을 돌고 다시 에테르석을 팔면 된다.

    나는 의미심장하게 다시 안사홍의 책상 앞으로 갔다.

    “일단 몽땅 팔게요. 잠깐. 다른 던전 부산물들도 있어요.”

    지이잉. 후두둑.

    책상 위에 새로운 아이템들이 쭉 깔린다. 놀과 고블린을 사냥한 뒤 얻은 것들이다.

    인벤토리 밖으로 꺼내 놓으니 생각보다 아이템이 많았다.

    안사홍은 수북하게 쌓인 아이템을 하나하나 감정하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합계를 내자면 7천 2백 35만 원입니다.”

    “좋아요.”

    확실히 시기와 물가를 계산했을 때, 지금 안사홍은 후하게 값을 쳐주는 게 맞았다.

    이걸로 대단한 아이템을 마련하기는 어렵겠지만, 괜찮은 가격이다.

    “결아, 너도.”

    “응.”

    한결이까지 거래를 마치고 나니, 우리 두 사람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자, 그럼 이제 어떤 물건을 매입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이다.

    생각보다 수입이 줄어들어서 처음 생각한 아이템을 모두 마련할 순 없지만, 반드시 이것만은 사야 한다. 그리고 딱 그걸 살 만큼이 모였다.

    “금룡의 힘줄이 필요합니다.”

    내 말에 안사홍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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