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제17편
“그러니까…… 아이템을 사러 동묘에 간다는 거지?”
“응.”
나는 다시 한번 허리를 늘리며 스트레칭을 한 다음 신발을 챙겨 신었다.
“굳이 동묘까지 갈 필요가 있나? 어제 서울역에서 괜찮은 아이템을 얻었다며. 공중 이동 능력이 있는 아이템이랬지?”
한결이의 눈이 내 신발에 가 닿았다. 집요한 시선에 머쓱해진다. 자식이, 저는 이미 스킬로 이동기 있으면서 이 정도로 질투하는 거냐?!
하긴, 나는 며칠 사이에 펫도 생기고 그럴듯한 아이템도 생겼는데 결이 녀석은 얻은 게 없긴 하지.
결이가 평소에 뭘 탐내는 성격이 아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부러워할 만하긴 하다.
“그렇긴 한데, 그걸로는 부족하지. 우리끼리 던전에 가려면 좀 더 준비해 둬야 한다고. 포션 같은 일회용품도 마련해야 하고.”
“그건 근처 각성자 센터에서도 구할 수 있잖아. 굳이 동묘까지.”
“에헤이. 너 그 이야기 몰라? 동묘 시장의 전설이 각성자가 되어 돌아온 거.”
“그런 거 몰라. 그게 뭐야.”
“참 나, 넌 정말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른다.”
“…….”
킬킬거리는 동안 결이는 내 뒤로 바짝 다가와 무릎으로 등을 찍어 눌렀다.
“아야야! S급이 사람 잡네!! 힘 조절 안 하냐 인마?! 너 인마, 그러다가 사람 죽인다고! 아이고! 나 죽네! 알겠어! 이 형님이 잘 설명해 줄게. 바야흐로…… 바야흐로 몇 년인지는 모르겠네.”
“뭐야, 너도 잘 모르면서.”
한결이가 무릎에 힘을 좀 더 줬다.
이제는 엄살이 아니라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버둥거리며 한결이의 무릎을 피해 빠져나왔다.
눈물이 핑 도는 걸 억지로 참으며 쓰라린 등을 문질렀다.
“아야야야, 진짜. 너. 그리고 난 그저 숫자에 좀 약할 뿐이라고. 어쨌든.”
동묘의 전설.
차원의 상인이라고도 불리는 남자. 안사홍.
수완이 좋아 혼자서 대형 길드와 거래를 턱턱 진행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던전 관련 아이템을 손안에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다.
각성하기 이전에는 그저 평범한 구제 옷 판매장의 관리자였을 뿐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장사가 안되기로 유명해서 전설로 불렸다. 그런 그가 각성 후 정말로 동묘의 위대한 전설이 된 거다.
그를 필두로 동묘 전체에 던전 부산물이나 아이템 거래를 하는 상권이 형성되었고 각성자들에게도 동묘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알지? 각성자라는 게, 그저 몬스터를 사냥하는 부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알지. 아이템을 제작하는 부류도 있고.”
“맞았어. 아마 안사홍은 그쪽 부류겠지.”
“……겠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거네.”
“응, 안사홍은 이상하리만치 알려진 정보가 없는 사람이거든.”
한결이의 입술이 삐죽 나온다.
“그래도 그 사람 역시 각성자 등록을 하고 생체 칩을 박았을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사실 불법 미등록 각성자들이 판을 치거덩.”
“뭐? 불법?”
나중에는 생체 칩도 없어지고 말이야. 말해 줄 순 없지만.
“안사홍이 불법 각성자라는 건 확실하지 않은데. 뭐 여하튼 정보가 너무 안 풀려서 그렇다고들 하더라고.”
“그냥 우리도 등록하지 말 걸 그랬어.”
“뭐? 아니, 절대로 안 되지.”
“양심 때문에?”
“양심도 양심이지만, 불법 각성자가 되면 후폭풍이 장난 아냐. 이미 알려진 던전은 국가에서 관리하니까 습격해서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 누가 그런 짓을 하겠냐? 운 좋게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던전을 먼저 발견해서 괴물 특수부대가 눈치채기 전까지 이용하며 연명하거나 그저 문제만 일으키는 거리의 초능력 깡패가 되는 거라고.”
“…….”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바닥까진 가지 말자고 약속했잖아.”
결이는 잠자코 나를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나 대단하다고? 우린 그 사람한테서 아이템을 살 거고?”
“응. 그 사람은 누구도 유통하지 못하는 대단한 물건들을 다루거든.”
“누구도 유통하지 못한다니. 믿을 만하긴 한 거야? 직접 거래한 적도 없으면서.”
“내 정보는 확실하니까 걱정하지 마셔. 너무 위험한 상급 던전에서 클리어 후 겨우 하나를 얻을까 말까 한 아이템도 안사홍에게 가면 구할 수 있지.”
“그게 가능해?”
“놀랍게도.”
안사홍이 대한민국의 상권을 모두 쥐게 된 이유는 이것이었다.
거래가 진행되기로 약속만 되면, 그는 지구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할 희귀한 아이템을 반드시 마련해 왔다.
그의 상단에는 던전 사냥 전문 팀이 없었고, 대체 누구와 거래해 그 아이템을 마련했는지 알아낼 수 없는데도.
그렇다면 가짜를 파는 게 아닐까.
하여 얄팍한 제작 스킬을 이용해서 짝퉁을 찍어낸다거나 어떤 속임수를 쓰는 게 아니냐는 구설이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물건이란 사용해 보면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법. 그의 물건은 언제나 확실했다.
몇 유명 각성자들이 그의 물건을 애용하면서 보증이 됨과 동시에 입소문이 더욱 퍼져 나갔다. 블랙 컨슈머들의 장난질을 빼면 그의 물건에서 하자가 발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야말로 미스터리한 거상의 출현.
‘우스갯소리로 다른 차원의 누군가와 물건을 거래하는 것 아니냐던 말이 그의 별명이 되었지.’
동묘의 전설이자, 차원의 거래자.
회귀할 때까지도 아무도 그가 어떻게 물건을 구해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식이라면 그가 지구 최강의 각성자가 되는 것 아닌가 싶을 거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직접 전투에 나서는 일이 없었다.
상단 전속 공격대도 없는 마당에 안사홍은 어디서 물건을 공수해 오는 것일까.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평범한 아이템들과는 달리 그만의 희귀하고 값비싼 아이템은 사고 싶어도 마음대로 살 수가 없었다.
그는 그 누구의 돈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얼마나 많은 돈을 제시하든지, 그 어떤 대단한 사람이 와서 얼마나 큰 명예와 보상을 지불하든지는 거래 성사와 상관이 없었다는 말이다.
물건을 팔지 말지, 살지 말지는 그날의 안사홍의 결정대로였다.
안사홍만의 기준이 있었다.
그것 역시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기준이었다. 그러니 적이 많아질 수밖에.
‘뭐 우린 지금 그렇게 대단한 아이템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거절당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이제 현관문만 나서면 됐다. 뒤를 돌아보자 결이가 외투를 그저 들고만 있었다.
‘안사홍의 그런 방식 때문에 수많은 러브 콜과 수많은 목숨의 위협을 받았지.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모습을 감춰, 그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 거의 남지 않게 됐고.’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직 그가 모습을 감추기 전일 거다. 적당히 괜찮은 아이템을 마련하고, 혹시 가능하다면 그와 친분을 만들어 놓으면 좋겠지.
그렇게 된다면 나중에 그가 모습을 감추더라도 혹시나 연락이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이건 너무 낙관적인 계획이긴 하지만.
그리고 또, 영혼석에 관한 걸 물어볼 수 있을 거다.
그 누구도 구하지 못하는 아이템을 구하는 상인이니까.
영혼석이라는 아이템이 정말로 나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아이템일 리가 없다. 그러니 안사홍은 영혼석에 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몬스터를 잡으면 영혼석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혹시 제작할 수 있거나 아이스크림처럼 살 수 있는 거라면 더 편할 테니까.
“잘 알아들었어? 정말 미스터리한 상인이라고. 얼른 입고 나가자. 그리고 좀 더 두꺼운 걸 입지 그랬어. 춥겠다.”
“흐음…….”
“응? 왜, 뭐가 또 이해가 안 가? 그냥 대단한 사람이구나, 해. 몰라도 돼.”
“아니, 네가 마치 아주 오랜 시간 그 사람을 알아 온 것처럼 말해서.”
“어? 엉?”
“혹시 아는 사이야?”
“그, 그럴 리가 있겠냐.”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말실수했나? 아니, 딱히 막 그랬던 것 같지는 않은데?
“……흠.”
“……이 정도는 상식이야, 인마.”
“…….”
“으흠! 야! 얼른 신발이나 신어. 지금 늦었어.”
나는 억지로 한결이를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 * *
동묘까지 가는 내내 한결이의 묘한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그래도 별다른 추궁이 더 들어오지는 않았다.
“일단 우리가 얻은 에테르석을 팔고 그 돈으로 아이템을 마련할 거야.”
“……네 말대로라면 엄청난 돈을 갖게 되겠네.”
첫 전투로 얻은 에테르석만 나와 결이 것을 합치면 17개. 한데, 서울역 전투에서 얻은 에테르석의 양이 또 어마어마했다.
회귀 전의 아이템 가격을 떠올리며 오늘 수입을 대충 예상할 때.
퍼억.
강하게 어깨가 부딪치고 몸이 확 밀려났다.
“하준아!”
결이가 잡아 주지 않았다면 바닥에 구를 만큼 심하게 튕겨 나갔다.
“에이씨.”
돌아보니 나를 친 놈은 벌써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백발?”
“저 자식이.”
“아냐, 한결아. 됐어.”
백발의 사내에게 달려가려는 한결이를 잡아끌었다. S급인 한결이가 잘못 싸움에 말려들게 되면 얼마나 일이 커질지 모른다.
게다가 이곳은 이미 동묘. 저 남자 역시 각성자일 터. 각성자랑은 어지간하면 마찰을 안 빚는 게 좋지.
오히려 별 대꾸 없이 지나가 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는 불량 각성자일지 모른다.
‘그나저나 키 겁나 크네.’
팔 한쪽이 완전히 아릴 정도로 강한 몸이었다. 상당히 높은 랭크이거나, 레벨이 높은 거겠지. 애써 발끈하는 기분을 누르며 결이를 도닥였다.
“넌 엄~청 세니까. 함부로 시비 붙고 그럼 안 돼. 알겠냐.”
“뭐…….”
“게다가 앞으로 엄청 대단해질 거거든? 지금부터 몸을 사려야지. 원래 귀한 사람은 깨끗해야 하는 거야.”
“뭐, 뭔 소리야.”
한결이가 황당하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그래, 한결이한테는 각성 초기에 붙은 미친개라는 별명도 거의 평생을 따라다녔으니까. 이번에는 한결이의 명성도 신경을 쓸 생각이다.
그래야 큰일을 하는 데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겠어?
“뭘 혼자서 끄덕거리고 난리야.”
“인마, 이 형님이 널 얼마나 생각하는지 모르지? 참 나, 두고두고 형님한테 감사하란 말이야.”
“뭐?”
“아이구,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귀여워 죽겠다니까.”
낄낄거리는 사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물이 눈앞에 보였다.
단홍 상사. 입구에 명패가 걸려 있다.
음? 그런데 내 기억보다 훨씬 건물이 작고 허름하다. 원래 이랬었나?
회귀 전에는 몇 번 가 본 뒤엔 길드를 통해서 거래했으니 기억이 어렴풋하다.
“뭐, 하긴. 10년은 더 전이니까.”
“응?”
“아냐, 아무것도 아냐. 들어가자.”
단홍 상사에 들어서자, 문에서는 딸랑. 하고 예스러운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내부는 바깥에서 본 것보다 훨씬 낡고 작았다.
게다가 엄청나게 썰렁했다.
썰렁이 문제가 아닌가. 얼핏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고, 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텅 빈 곳에 100년은 됐을 거 같은 가구가 한두 점.
분명히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데…….
“아무도 안 계세요?”
텅 빈 내부 때문에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뭐야? 이곳, 장사하는 곳이 맞기는 해?”
“분명한데.”
“그런데 이상했어. 아까 네가 말한 것보다 훨씬……. 뭐랄까 거리 자체가 죽은 느낌이던데?”
결이의 말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나도 느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안사홍에 의해 왕성한 상권이 형성되었어야 할 동묘가 너무나 한산했기 때문이다.
‘시간대를 착각했나.’
그러니까 아직 안사홍이 각성을 하지 않았거나, 각성했더라도 유명해지기 전의 시기인 것 같았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유명해지기 전이라면 대충 얼버무릴 수 있지만…… 아직 각성 전이라면.
‘젠장, 언제쯤 유명해졌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저 유명하다는 것만 알고 있기도 했고. 제기랄!’
내내 걱정하던 회귀 전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덕분에 일어난 참사다. 아는 척하지 말걸. 이놈의 입이 방정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손님이신가요.”
정적을 뚫고 잔잔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디서 들리는 거지?’
작은 건물인데도 사방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 네. 손님입니다!”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 또다. 건물 내부에 장치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스킬? 그래, 안사홍의 스킬일 수도 있다.
따각, 따각.
정면에 있는 조그만 문 안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