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16화 (16/250)
  • 제16화

    제16편

    “그게 무슨…….”

    “은하준 님은 친구분보다 훨씬 똑똑하시니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실 것 같습니다만.”

    물론 알아들었죠. 하지만 입대라니. 말도 안 되지!

    회귀 전에도 가 본 적이 없건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라고! 게다가 당신들은 몇 년만 지나면 무진장 힘을 잃어서 쓸모도 없단 말이다!

    물론 회귀자인 내가 간다면 상황이 많이 바뀌겠지만, 군인 신분은 운신이 너무 제한되기에 절대 사절이다.

    바른길을 놔두고 일부러 자갈밭으로 갈 생각은 없어!

    성 대위는 아무런 행동이나 말없이 반쯤 감긴 눈으로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건 일종의 무언의 압박이랄까.

    칫…… 애초에 서울역 크랙 사건 때문에 이렇게 강압적인 분위기가 되어 버린 건가. 그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성 대위 말대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입대 권유가 있었을 거고, 그러면 거절하기도 훨씬 편했을 텐데.

    ……아마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물론이고 상부에서도 은하준 님과 한결 님이 괴물 특수부대에 자원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국가를 위해 헌신해 주신다면 많은 민간인에게는 희망이, 각성자에게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실 겁니다.”

    성 대위의 목소리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입대를 밀어붙일 생각인 것 같았다.

    “게다가 적어 주신 서류를 보면, 레벨 2가 되시면서 펫 스킬도 얻으셨습니다. 그런 귀중한 인재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힘을 보태 주시기를 정중하게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괴물 특수부대는 징병제가 아니니까 거절할 수 있겠죠.”

    내 말에 성 대위의 반쯤 감겨 있던 눈이 바로 떠졌다.

    “예.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설득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설득이 아니고 협박 같아 보이는데요.”

    “……오.”

    나는 최대한 떨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아무리 성 대위라지만, 이 재앙 속에서 우릴 죽이기야 하겠어. 죽일 리가 없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아까 성 대위의 기세에 당해 이성이 흐려진 거니까.

    게다가 난 눈앞의 성 대위에게 지지 않을 경험과 노하우가 있단 말이다. 마찰을 빚는 방식은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지만, 또 하염없이 져 줄 수만은 없다.

    입대는, 입대만은……! 그것만은 안 된다!

    “민간인을 상대로 이런 식으로 협박하시면 안 되죠. 안 그래도 아까부터 무고한 시민을 의심하셨잖아요? 무서운 분위기를 만드시면서요.”

    “지금은 비상시니까요. 만에 하나를 조심했던 겁니다.”

    “아무리 비상시라도. 대한민국에서 군대가 힘으로 민간인을 짓밟을 권리는 언제라도 없었잖습니까. 게다가 새로 만들어진 각성자 법에도 명시되어 있을 텐데요?”

    성 대위는 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손이 달달 떨리기 시작하는 게 분명 각성자의 기세를 흘려보내고 있는 거다. 나를 주눅 들게 하고 거스르지 못하게 할 정도로. 하지만 질까 보냐!

    “……그렇습니다. 각성자 법 제1조 2항. 모든 각성자는 각성자와 민간인의 차이를 인지하고 초능력으로 민간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한다.”

    성 대위는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는가 싶더니, 곧장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당신들이 이제 민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십니까?”

    “…….”

    묘한 정적이 흘렀다.

    성 대위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어 나는 초조할 뿐이었다. 그래도 성 대위와의 눈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다.

    한참 시선을 거두지 않던 성 대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위협을 느끼게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거짓말.

    방금까지도 기세로 은근히 눌러 놓고선!

    “제안이 무례하게 느껴졌다면 죄송합니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원래 제 스타일도 아닙니다만, 상부에서 부대 충원이 시급하다고 안달을 하지 뭡니까. 저도 압박을 받는 처지입니다. 게다가 의도를 솔직히 말했잖습니까? 꿍꿍이는 없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의자 등받이에 편하게 기댔다.

    어쩐지 맥이 빠지는 목소리에 긴장이 조금이나마 누그러든다.

    솔직히 말해서 꿍꿍이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지만.

    “……저희 쪽에서도 실수했으니까 사과는 받아들이죠.”

    다시 강조하지만, 난 정말 괴물 특수부대랑 싸울 마음이 없다고!

    한결이 쪽을 슬쩍 봤더니, 우리 이야기를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아직 테이블만 노려보는 결이가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녀석. 지금 우리 둘이 군대에서 썩을 뻔했는데. 조금 열받는다. 하지만 참아야지. 한결이는 완전히 애니까.

    “정말로 입대하실 생각이 없는 겁니까? 얼마든지 원하는 대우를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바깥의 길드에서 받는 대우와는 비교도 안 될 겁니다. 현재 가장 많은 정보와 힘을 가진 건 우리 특수 괴물 부댑니다.”

    성 대위는 포기하지 않고 물어 왔다. 하지만 이미 내겐 그려 놓은 청사진이 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젓자, 성 대위는 반쯤 감겼던 눈을 더 게슴츠레 떴다.

    “그 결정은 원래 정해져 있던 겁니까, 아니면 내 접근 방식이 잘못되어서입니까.”

    “원래 정해져 있던 겁니다.”

    확고하지만 건방지지 않은 말투에 성 대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사과도 했으니, 우리 사이가 틀어질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됐다. 다행히 성 대위가 빠르게 한발 물러났다.

    이쪽에서도 확실히 조심스럽게 대할 생각이 있는 거다.

    “뭐. 애초에 틀어지고 말고 할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 말에 성 대위는 조금 놀랐다는 눈빛이었다.

    당연히 성 대위와 틀어질 생각이 없다. 앞으로 던전을 수월하게 드나들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혈기만 가득한 예전의 21살 은하준이 아니니까.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전투 때문에 피곤하실 텐데 제가 너무 많이 시간을 뺏었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차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음, 입대 제의라면 더 연락 안 하셔도 되는데요.”

    “하하. 예, 저도 여러분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려면 당분간은 사려야겠습니다. 입대를 거절하셔도 부대 측에서 부탁드릴 일들이 있습니다. 그건 거절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일이니까.”

    조금 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장난 섞어 말하자, 성 대위가 웃으며 받아 주었다.

    휴. 결국 성 대위 쪽에서 억지를 부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보다 질질 끌지 않는 타입이다.

    그럴 가능성은 낮아도 성 대위가 무턱대고 들이박기만 하는 성격이었다면 정말 곤란할 뻔했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분위기가 녹은 참에, 그걸 써 볼까. 사실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 감도 잘 안 오긴 하지만.’

    나는 각성자의 능력을 발동했다.

    스킬 영혼 분별사.

    츠츠츳. 성 대위의 얼굴 옆으로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떠오른다.

    [성현준]

    영혼 등급: A

    영혼 상태: 안정

    싱크로율: 21%

    나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게 노력해야 했다.

    ‘상태는 한결이보다 좋은데, 싱크로율이 21%. 조금 전 대화만으로도 잘 알겠다. 안 맞네, 안 맞아. 나랑 안 맞는 사람이야.’

    수치를 보니 괜히 짜증이 치밀었다.

    왜 우리 한결이보다 상태가 좋은데? A급에 안정? 별로 엄청나게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다.

    ‘스킬을 두 번째 사용하는 건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네. 더 발동되는 것도 없고. 그저 확인만 할 수 있는 걸까.’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복해서 쓰다 보면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서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서 뭐가 좋은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게다가 내가 소울메이트 스킬을 사용하는 건 한결이밖에 없으니까.

    ‘하아, 집에 빨리 가고 싶다.’

    성 대위가 슬쩍 나를 보더니, 사무실의 문을 열어 주었다.

    “또 뵙겠습니다.”

    “그럼 고생하세요.”

    복도로 한 발 나오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지 조금 전까지는 끔찍한 폭풍에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회귀 전에도 익히 경험하긴 했지만, 다른 각성자의 기세에 눌리는 것은 불쾌하기 그지없다.

    한결이가 레벨이 높아진 후로는 항상 다른 각성자들의 기세에서 지켜 줬기 때문에 이 감각을 잊고 있었다.

    얼른 더 강해져야겠어.

    주먹을 불끈 쥐며 나는 한결이와 함께 건물을 빠져나왔다.

    * * *

    ‘입대를 거부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성 대위는 창문 너머로 사라지는 작은 뒤통수들을 보며 조금 전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을 곱씹었다.

    ‘분명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상상 이상인데.’

    성 대위는 은하준과 한결을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렸다. 그래 봤자 얼마 전이다. 던전 포털이 일으킨 재앙과 함께 홀연히 나타난 범상치 않은 각성자.

    첫 각성의 순간에 놀 부대를 완전히 제압한 천재들.

    게다가 그중 하나는 귀하디귀한 S랭크.

    상부에서는 보고만으로 난리가 났다. 각성자 법 제정으로 인해 각성자들의 입대가 모병제로 바뀌면서 이미 부대원의 수가 크게 줄어드는 양상이었다.

    이런 때에 군에서 S급 각성자를 놓치고 싶어 할 리 없었다.

    하지만 안달이 난다고 해서 뜻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조금 전처럼.

    ‘어리바리하게 생겨서 강단이 있단 말이지?’

    S급 각성자인 한결도 한결이었지만, 성 대위가 관심이 가는 쪽은 은하준 쪽이었다.

    한결은 어리고 거칠다. S급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값어치를 하지만, 제대로 다듬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만약 영원히 길이 들지 않는 S급이라면, 오히려 독이 될 거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성 대위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어제만 해도 섭외한 S급이 있으니까.

    하지만 은하준은 어떤가.

    겨우 D급이면서 고레벨 A급인 자신의 기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두려워해. 두려워하면서 물러나지 않아. 게다가 나이에 비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태 파악에도 빨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영리한 친구야.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 대위는 이런 식으로 많은 각성자를 입대하게 한 전적이 있었다. 대개 대위보다 낮은 등급의 각성자들은 그가 기세를 푸는 즉시 완전히 휘말려 원하는 대로 끌려갔다.

    등급이 높은 각성자도 예외는 없었다. 그만큼 성 대위는 기세를 다루는 능력이 좋았고 별다른 언변 없이도 위압감을 조성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도.’

    고작 1레벨의 S등급. 자신의 기세를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

    당연하게도 한결의 기세는 정말 서투르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기세에서 밀리면서도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성 대위가 자비를 베풀어 기세 조절을 하고 있었지만, 그가 물러났을 때는 친구인 은하준에게 타격이 갔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부서져도 피하지 않는 타입. 영 골치 아파. 이런 타입은 길들이기 힘들지. 생각만 해도 고생길이 훤하다. 하지만…….’

    성 대위는 약간은 흐릿한 인상의 은하준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말 평범하고, 차라리 유약할 것 같은 그 얼굴. 솜털도 빠지지 않은 어린애였다.

    ‘아무리 그런 시절을 함께 지내 온 보통 친구 사이가 아니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의지한다는 건 은하준 쪽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성 대위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서류를 정리했다.

    은하준과 한결의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인생이 적힌 서류들이었다.

    사실 성 대위는 한강 위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주도권을 쥔 사람이 하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무슨 대단한 사건이라도 있었던 걸까. 뭐, 그거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번 만남으로 인해 성 대위는 은하준을 공략한다면, 한결은 덤처럼 따라올 것이라 확신했다.

    S급이 덤으로 따라오는 D급이라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성 대위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건 오히려 은하준 쪽이었다.

    ‘감히 내 앞에서 몰래 스킬을 사용한 것도 그렇고 말이야. 한결이 그야말로 선명하게 보이는 호랑이 새끼라면, 은하준은 순진한 새끼 개의 탈을 쓰고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건가.’

    피식, 성 대위는 웃음이 터진 입을 팔등으로 막았다. 이런 모습을 들킨다면 안 소위가 노발대발할 터였다. 개인적인 이유로 재밌어할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재밌어. 상부에서 한소리 하겠지만, 일단은 은하준이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보고 싶은걸. 그래, 순전히 재밌어서.’

    그는 서류 가방에 종이 뭉치를 바르게 넣고 사무실을 나섰다.

    * * *

    “아오…… 삭신이야.”

    으드득. 기지개를 켜자 온몸에서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게 다 성 대위 때문이다. 같은 각성자에게 당하는 기세 압박은 몬스터에게 당하는 것보다 훨씬 회복이 느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됐는데도 이 꼴이다.

    “좀 잘해 봐.”

    “뮤아앙~!”

    도깨비불이 꼼실거리고 돌아다니지만, 회복이 되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오늘 나갈 셈이야?”

    “응, 꼭 가야 해. 괴물 특수부대 때문에 어제 하루 공쳤잖아.”

    “공쳤다기엔 보상을 넉넉히 받았지. 하루쯤 쉬어도 괜찮잖아.”

    한결이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어딜 간다고?”

    “동묘.”

    한결의 미간이 순식간에 찡그러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