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제15편
아이템은 강화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뉜다.
거기서 또 일반 강화와 단계별 강화가 있다. 일반 강화는 일회성 강화다. 단 한 번만 강화가 된다는 말이다.
반면에 단계별 강화는 말 그대로 여러 번 업그레이드를 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고. 그건 정말 최고다!
강화 가능 아이템은 그 자체로도 희귀하다.
‘대박이잖아!’
더군다나 이 헤르메스의 신발은 내가 꼭 필요했던 이동 능력 아이템!
‘강화 효과로는 어떻게 될까? 이동 시간이 길어지면 초대박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이미 S급만큼 빠르니, 지금 헤르메스의 신발에 부여된 10초의 공중 이동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진짜 상상을 초월하게 좋은 거였구나. 이 업적이라는 거!’
너무 감격스러워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렇게 운이 좋아질 거라면 몇 번이든 회귀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이런 식이라면, 정말로 미래를 구해 낼 수 있을 거다.
츠츠츳. 곧장 헤르메스의 신발 아이템을 소환했다.
당장은 반투명한 네온 빛깔의 신발 잔상이지만, 내 신발에 적용한다고 생각하자 형상이 진짜 신발 위로 겹쳤다.
스륵. 흰색 스니커즈 양쪽 옆면에 회색의 얇은 선으로 작은 날개 문양이 생겼다.
“오, 괜찮은데. 눈에 확 띄지도 않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실버 등급인데도 이렇게 대단하다니. 크리스털 등급 놈들은 대체 어떤 보상을 받은 거야? 이런 정보는 쉽게 풀지 않으니 전혀 몰랐어. 진짜 대박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나 혼자였다.
“한번 사용해 볼까?”
스으읍. 숨을 들이켜고 헤르메스의 신발을 사용하는 찰나.
“네, 저쪽에 계십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살아남은 부대원의 목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앗, 발동 취소. 발동 취소!’
업적과 아이템에 관해서는 내가 제대로 파악하기 전까지 비밀로 해 둘 생각이었다. 철푸덕. 덕분에 발이 얽혀 휘청거리며 넘어지는 꼴을 보이고 말았지만.
쪽팔리는군.
“은하준!”
부대원 옆으로 걸어오던 한결이가 넘어진 나를 보며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많은 지원군. 그중에서 가장 상관인 사람이 내 앞으로 쭉 걸어왔다.
결이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는 내게 그가 말을 걸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뭐. 아니요. 보시는 것처럼요.”
“그러실 만합니다.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해서는 김진섭 일병에게 보고받았습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두 분이 모든 상황을 해결했다니. 놀랍습니다.”
그가 나를 향해 짧게 경례했다. 나는 무릎을 툭툭 털었다.
“괴물 특수부대가 아직 일반인 신분이신 두 분께 본을 보이지 못해 사과드립니다. 철저히 저희 실수입니다. 두 분을 위험에 빠트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김진섭 일병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뭐 그러실 필요까진 없어요. 게다가 이 크랙에서 뭐가 언제 튀어나올지, 아무도 몰랐는데요. 원래 크랙에서는 최소 몇 주는 텀을 두고 몬스터가 나오잖아요.”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헬멧 너머로 느껴진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이후로는 저희 괴물 특수부대에서 다시 인계받아 관리하겠습니다.”
“다행이네요. 사실 저게 언제 다시 터질지 정말 무서웠거든요.”
나는 일부러 요란스레 어깨를 떨었다.
“그럼 이제 저희는 돌아가면 되나요?”
“은하준 님과 한결 님께서는 담당 부대원을 따라 이동해 주시면 됩니다. 상위 랭크의 부대원 둘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하긴. 은하준 님과 한결 님이라면 걱정하실 필요도 없겠습니다.”
“에이 참, 아니라니까요? 정말 무서웠다니까요~!”
우리 주위의 포털과 고블린 사체 더미로 괴물 특수부대원들이 몰려갔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이동해 주십시오.”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가 가리키는 입구 방향에는 이미 부대원 둘이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결이와 내가 인솔 부대원들을 따라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니었다.
* * *
“은하준 님. 한결 님.”
낮은 목소리의 정체는 성현준 대위였다.
그는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사무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헬멧을 쓰지 않은 성 대위는 처음이었다.
‘상상이랑은 조금 다른 모습이네.’
헤어스타일도 군인치고 긴 기장이었고 깊은 눈 밑으로 옅게 그늘이 져 있어서 약간 수척해 보였다.
‘원래 저런 인상인가, 아니면 이틀 사이에 저렇게 된 걸까?’
군인이라기보다는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 같은 얼굴이랄까. 하긴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 사건들이긴 하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이 방으로 들어오는 동안 지나친 부대원들의 헤어스타일도 각양각색이었다. 역시 일반 부대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 군복만 입었지, 일반인들이랑 다르지 않달까? 단 염색만은 금지되는 모양이었다.
나와 한결이가 자리를 잡고 앉자 성 대위가 입을 열었다.
“상황은 보고받았습니다.”
“아, 그러세요? 굉장히 빠르시네요.”
최대한 온순한 표정으로 상대해야지.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하지만 은하준 님과 한결 님의 입으로 한 번 더 듣고 싶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제 각성한 각성자 둘이서 어떻게 고블린 10개 부대를 완벽하게 상대한 겁니까.”
역시. 예상했던 대로 성 대위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하긴,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 엉겁결에 처리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깔끔한 처리였으니까.
건물도 무너지지 않았고, 크랙도 효과적으로 안정시켰다.
그걸 안정이라는 범위 안에 넣을 수 있다면 말이지.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괴물 특수부대원 둘이 희생당했잖아요.”
“원래는 모두 죽을 정도의 위급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것들이 서울역 밖으로 나갔다면 더욱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을 겁니다.”
“……글쎄요. 그래서 죽기 싫으니까, 그저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던 것뿐이고요. 운이 따라 줬죠. 안 그랬으면 대위님 말씀대로 정말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쩐지 테이블 위로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성 대위가 우리를 의심하고 있다.
“당신들, 정말 평범한 일반인이 맞습니까?”
사실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애초에 두 번이나 갓 각성자가 된 이들이 보여 줄 리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평범한 일반인이 맞냐니 그럼 뭐 타국에서 온 첩보원이라도 되겠습니까?
말꼬리를 잡자면 이미 각성자니까 일반인은 아니고!
“달리 뭐가 있겠어요. 하하.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왠지 슬프네요.”
나는 어수룩하게 보이도록 코를 긁적거렸다.
성 대위를 거스를 생각은 없다. 대충 여기서 잘 보이고 물러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니까. 후……. 또 필살 미소를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와중, 귓가에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초에 수준 낮은 부대원들과 함께 위험하고 무리한 임무를 시킨 당신 잘못인데, 왜 우리가 취조받는 분위기지?”
“응? 하, 한결아.”
“맞잖아. 어제 막 각성한 초짜를 데려다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크랙 옆을 지키게 하다니. 그게 상식 밖인 거 아닌가?”
“그건……. 크랙은 원래…….”
“글쎄. 난 저쪽이 무리한 상황에 우릴 끌어넣어 시험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결이가 천천히 일어나 성 대위 쪽으로 천천히 몸을 숙이며 말했다.
터억, 테이블에 손까지 얹어 가면서. 누가 봐도 위협하는 모습으로!
세상에. 저, 저, 저 불손한 눈깔 좀 봐! 한결아! 제발 가만히 있어라. 이 형님이 다 해결해 줄…….
“시험? 위험한 말씀을 하십니다.”
성 대위의 피곤한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당연히 위험하겠지. 국가에서 각성자를 상대로 비밀 실험을 한다는 찌라시가 한참 돌았잖아. 우릴 실험실로 데려가려고 떠본 거 아닌가? 특이 케이스니까.”
“찌라시라, 감히 이 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한결이와 성 대위 사이에서 마치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공기가 무거워지고 숨 쉬는 것이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이건…… 상급 랭커들의 기세 싸움이다.
기세 싸움이라는 건 각성자들이 가진 초능력의 아우라를 체외로 발산하면서 상대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행동이다.
고만고만한 B급 이하의 각성자들이야 일반인에게나 조금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정도고, S급이나 레벨이 높은 A급은 되어야 각성자들에게까지…….
“헉, 허억.”
젠장, 산소가 부족해서 현기증이 일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작 D급인 나는 손가락 까딱할 수가 없다. 호랑이 싸움에 낀 토끼 새끼처럼 얼음이 된 거다.
“그만…….”
“……!”
겨우 짜낸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결이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와 동시에 성 대위의 기세에 밀려 한결이도 나도 몸이 밀쳐졌다.
밀쳐진 정도로 그쳤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뒤로 완전히 넘어가 의자와 함께 구르고 말았다.
우당탕!
“큭.”
“콜록, 콜록!”
넘어져서 아픈 건 신경도 안 쓰일 정도였다. 성 대위가 기세를 거두자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폐가 쪼그라들었는지 거센 기침이 나왔다.
“하준아, 괜찮아?”
그런 나를 발견하고 한결이가 걱정스럽다는 듯 바짝 다가왔지만, 아직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머리도 울리고 목과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아니, 어제 각성한 놈 맞냐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기세를 펼칠 수 있게 된 거지?
“흠, 이런 어린애 같은 기세라니. 엄청난 연기가 아니라면 정말로 어제 각성한 일반인이 맞겠군.”
“……뭣.”
“기세를 사용하는 줄도 모르고 썼잖습니까. 그 덕분에 지금 당신 친구가 그 꼴입니다.”
성 대위는 마치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처럼 비릿하게 웃었다.
나는 그에게 그만하라고 매달리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만, 그만! 제발 우리 한결이 자극 좀 하지 마세요!
“……그런.”
다행히 한결이는 성 대위의 조롱에 화를 내는 대신, 자신 때문에 내가 숨을 쉬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를 부축하던 커다란 손이 멈칫거리며 떨어진다.
아니 그런데 기세를 쓰는 줄도 모르고 썼다고? 우리 한결이 진짜 천재 아냐?
“콜록……. 괘, 괜찮아. 킁, 콜록.”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당황하는 한결이를 달래 옆에 앉혔다.
“은하준 님도 그렇습니다. 어제 각성한 서툴기 그지없는 S급의 기세 정도에 꼼짝을 못 하다니. 서류에 적어 주신 D급이라는 건 확실히 거짓이 없나 봅니다.”
성 대위의 표정은 다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변해 있었다. 피곤해 보이고 지쳤지만, 공격적인 기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로.
소름이 오싹하게 돋았다.
확실히 소울 포인트를 민첩에 투자하길 잘했다. 다른 스텟에 투자했다면, 지금 여기서 성 대위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들켰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렇다니까요.”
목소리가 볼썽사납게 떨리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성 대위는 기세만으로 우리 둘을 죽여 버릴 수도 있다.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레벨이 높은 것 같았다.
S급일까? 레벨 높은 A급일까.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는 기세를 다 뿜어내지도 않은 것 같으니까.
성 대위…… 성현준. 그런 이름의 S급이 있었던가. 기억을 뒤져 봐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결이는 낙담한 채로 입을 다물고 테이블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합니다.”
“네?”
성 대위가 사과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나는 약간 멍해졌다. 하지만 그건 정말 미안해서 하는 사과가 아니었다.
“한결 님이 말한 괴소문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만, 사실 당신들을 시험해 볼 생각이긴 했습니다. 아, 물론 서울역의 크랙 사건은 우리가 의도한 바가 아닙니다. 계획했던 테스트는 전혀 일어난 적이 없으니, 그 점은 확실히 해 두죠.”
“어…….”
“서울역 임무 종료와 함께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당신들이 과연 괴물 특수부대원이 될 수 있을지. 표가 나지 않게 시험하려 했습니다.”
“뭐라고요?”
미간이 확 구겨졌다.
설마 지금, 입대하라는 말씀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