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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4화 (14/250)
  • 제14화

    제14편

    번쩍!

    정말이지 눈이 멀 만큼 밝은 빛이었다. 순간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억압의 손길을 거두었다가 다시 발동했다.

    지금 이 타이밍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거리는 계산을 끝내 놓았다.

    차르르륵! 기다란 사슬이 놀을 상대했을 때처럼 크게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사슬을 끌어당겨 바싹 타 버렸을 고블린의 산더미 같은 시체와 포털을 한데 묶어 버렸다.

    “자아, 터널이 완전히 막혀 버렸지? 어쩔 셈이냐.”

    진화된 각성자의 눈은 금방 시야를 되찾았다.

    치이이익……. 내 계산대로 바싹 타 버린 고블린의 사체가 포털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포털은 어떤 식으로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니까. 이걸 치우고 다시 나오려면 안쪽의 녀석들이 꽤 고전할 터였다.

    “끝난 건가?”

    포털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결이가 후들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하긴 이 많은 수를 거의 혼자 감당했는데, 지금쯤 마력이 바닥났을 거다.

    나도 이 도깨비불 녀석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마력이 바닥났겠지. 회복시키는 속도가 아직 느리긴 해도 전투에선 마력 1포인트가 아쉬운 법이다.

    “덕 봤다.”

    콕. 손가락으로 도깨비불을 건드리자 녀석이 무웅 하고 소리를 내며 불길을 움지럭거렸다.

    “귀엽…….”

    띠링.

    결이가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또다시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고블린 부대 상대하기’ 중하 난이도로 클리어.]

    [조정된 보상을 지급합니다.]

    오, 다행히 내 계획이 먹혀들었다. 난이도가 재조정되긴 했지만 이게 어디야. 슬쩍 보니 시스템 알림 때문에 한결이도 멈춰 서 있다. 아이템이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결이의 얼굴이 풀어진다.

    이번에도 해냈다. 둘이 힘을 합쳐서. 나는 결이를 향해 씩 웃어 주었다. 그래 이거지. 이게 우리 듀오지!

    그때, 다시 한번 띠링! 하고 시스템 알림이 들려왔다.

    ‘뭐야? 설마 또 퀘스트? 안 끝난 건가?’

    인상을 왈칵 찌푸린 내 눈앞에는 난생처음 보는 글자가 떠 있었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비정상적인 속도광]

    “어라?”

    “왜?”

    시스템 알림에 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결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 아냐……. 너, 혹시 업적 같은 거 받았어?”

    “응? 업적? 무슨 말이야?”

    결이는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이 업적이라는 건 나만?

    사실 업적이라는 게 뭔지 안다. 남들이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을 가장 먼저 달성한 각성자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보상.

    한데 어떻게 하면 이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전혀 단서가 없기에 회귀 전에도 업적을 따낸 각성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업적은 아무리 강하더라도 뭔가 독특한 일을 달성해야만 받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선착순으로 한 명만!

    뒤늦게 남이 얻은 업적을 따라 해도 소용없다는 거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업적.

    그런 업적을 내가 얻다니…….

    ‘비정상적인 속도광이라……. 역시 그건가? 민첩에만 몰빵한 것.’

    짚이는 건 그것밖에 없다. 방금 내가 한 짓은 여러모로 비정상적이고 또 속도에 관련된 거였으니까.

    이렇게 민첩만 S급인 D급 각성자는 없을 테니까.

    [업적 보상이 주어집니다.]

    “응?”

    [업적 보상: 헤르메스의 신발(아이템)]

    “허억?!”

    나도 모르게 괴상한 비명을 질러 버렸다. 헤르메스의 신발이라고?! 왠지 이름만 들어도 굉장할 것 같다! 업적 보상이니까 분명 엄청나겠지. 지금 당장이라도 어떤 기능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순식간에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나를 한결이가 찡그린 얼굴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결이의 눈에는 내가 약간 맛이 간 것처럼 보일 테지. 확실히 그 정도로 흥분하긴 했다.

    “하준아, 너…… 괜찮은 거 맞아?”

    “아, 어어…… 어. 갑자기 마력을 많이 써서 그런가 봐.”

    씰룩거리는 얼굴 근육을 조절하지 못하면서 둘러대자 한결이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 그럼 어서 병원에 가야지!”

    “저, 저어. 저한테 포션이 있습니다.”

    멀리서 다가온 목소리는 우리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던 살아남은 괴물 특수부대원이었다. 그래, 둘이 죽고 하나만 살아남았다.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벨트 포켓에서 작은 병을 건넸다.

    “이걸 마시면 좀 괜찮을 겁니다.”

    “군용품인데 함부로 써도 될까요?”

    “이런 위급 상황에서는 당연히 됩니다. 게다가 두 분 덕분에 저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두 분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전 벌써…….”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곧장 눈을 반짝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두 분은 어제 각성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멋진 전투를 해내실 수 있었는지. 고블린 10개 부대라니……. 각성자 다섯 명으로는 어림도 없는 전투였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아, 결국 10개 부대를 완전히 처치하진 못했지만요.”

    퀘스트를 제대로 완료한 게 아니다. 억지로 종료시켰을 뿐이지. 실패 페널티가 없는 퀘스트들은 이런 식으로 조정되는 걸 알고 있어서 시도한 일일 뿐이다.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어찌 되었건 퀘스트의 종료는 종료입니다. 이런, 이런 식으로 전투를 할 수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전부 해치우지 않아도 포털을 막아 버리는 것만으로 퀘스트가 완료되다니.”

    그는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것 같았다. 하긴, 이때쯤이면 아직 그런 정보가 없을 때인가.

    사실 이런 식으로 포털을 잠깐 막을 수 있는 건 그 안에서 나온 몬스터로만 가능하다. 바깥의 어떤 강한 물질로도 포털의 힘을 막아 내진 못하기 때문이다.

    후에 가서는 몬스터를 가공해 이런 크랙의 방어벽을 만들어 내긴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벌써 그런 사실을 알게 되어도 괜찮을까?’

    사실 이건 빨리 알아차릴수록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각성자들이 몇 번 실험하다 보면 금방 잘 제어할 수 있게 되겠지. 그래, 이거라면 크랙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 때문에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그래도 어제 각성한 각성자가 방법을 알고 있으면 이상하니까, 대충 둘러댈 셈이다.

    “사실 저도 잘 몰랐어요. 그냥…… 이게 되네요? 하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은하준 님! 제가 상부에 제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이제 곧 지원 부대가 올 겁니다. 일이 터지자마자 제가 연락을 넣어 놨습니다.”

    “좋네요. 저랑 한결이 전부 엄청나게 지쳐서요. 이제 쉬고 싶어요.”

    일부러 더 힘든 척 하하 웃고 있는 나를 한결이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은근슬쩍 소울메이트를 해제했다. 이러다간 조만간 한결이에게 들킬지도 모르겠는걸. 앞으로는 바로바로 해제해야겠어.

    어느새 도깨비불은 사라진 상태다. 내가 사람들 있을 때는 어지간하면 들어가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똘똘하다니까.

    “후우.”

    한시름 놨더니, 한숨이 절로 나오네. 업적과 보상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서 나는 슬쩍 부대원과 거리를 두며 앉을 만한 곳을 찾아 털썩 앉았다.

    “하준아.”

    들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한결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

    “내가 뭔가 더 알아야 할 게 있어?”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다. 갑자기? 끝인가?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았나? 어쩐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 말…….

    “아, 어? 왜?”

    “……아니, 너는 하루 만에 엄청나게 성장한 게 보여.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잖아.”

    한결이의 얼굴은 엄청나게 진지하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

    “응? 무슨 소리야. 너도 스킬 다루는 게 보통이 아니던데? 아무리 S급이라도 단 이틀 만에 그렇게 컨트롤 가능한 건 진짜 대단한 거야! 다큐멘터리에서 봤잖아.”

    “……그건 그렇지만.”

    하긴, 대충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내가 S급만큼 빠르게 움직였다는 사실을, S급인 한결이는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까.

    어떡한다. 나는 가만히 한결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까만 눈이 뭔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어제 레벨 업 했잖냐. 하하하.”

    나는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

    한결이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은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바로 곁에 괴물 특수부대원이 있으니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구나.”

    한결이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레벨 업 덕분에 펫 스킬도 생겼고. 그 펫이 정말 유용한 녀석인가 보네.”

    “펫한테 질투하진 마라.”

    “뭐? 무슨……. 그런 거 아냐!”

    가라앉았던 한결이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내 일등 친구는 너니까. 아니, 우린 가족이잖냐.”

    앉은 채로 발을 뻗어 한결이의 종아리를 툭 걷어찼다. 세게 찬 것도 아닌데 한결이는 비틀거렸다.

    이거 민첩 때문에 가속도가 붙었나?

    비틀거리던 한결이는 내게서 고개를 확 돌렸다.

    어쩐지 귀가 새빨갛다.

    ‘엥? 아, 그러고 보니……. 20대 때는 이런 낯간지러운 말 잘 안 했었나? 하긴 시커먼 사내들끼리.’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이랬던 거 같은데? 그럼 아직 한결이에게 면역이 없을 때인가. 이 녀석은 어릴 적엔 감정 표현하는 게 엄청 서툴렀으니까.

    ……재밌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결이의 뒤통수를 마구 쓰다듬어 버렸다. 이러면 분위기 환기도 되겠지.

    “이 귀여운 짜식.”

    “아! 진짜 왜 그래! 갑자기……!”

    내 손을 쳐 내는 한결이의 손길이 억세진 않다.

    역시 우리 결이는 착하다니까. 21살의 한결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귀엽구나.

    ‘10년도 더 어린 한결이라. 자꾸 감회가 새롭네.’

    아들처럼 느껴진달까? 뭔가 책임감이 불끈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그래, 앞으로 내가 진짜 제대로 서포트해 줄게. 결아. 회귀 전보다 훨씬 더 최강의 콤비가 되자!

    “짜증 나. 그만해. ……난 지원 부대가 오는지 좀 보고 올게.”

    결국 내 놀림을 견디다 못한 한결이가 자리를 떴다. 멀어지는 까만 뒤통수를 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이제야 시스템에 집중할 수 있겠군.

    스스스. 시스템 창을 연 뒤, 일단 제일 먼저 업적 창을 확인한다. 이번에는 지나가는 알림이 아니라 제대로 업적 페이지가 펼쳐졌다.

    “음? 이게 다야?”

    페이지는 형편없었다. 뭔가 더 자세한 설명이나 업적 효과에 관한 이야기도 없었다. 하위 카테고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업적이 덩그러니 텍스트로 떠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 텍스트의 색이 은색이라는 점?

    ‘업적마다 등급이 있다고 들었어. 은색이라, 실버 등급이라는 거네. 그러면 그다지 높지 않은 업적이야.’

    업적은 브론즈, 실버, 골드 순으로 높은 등급이었다. 그 위로도 등급이 존재했고 회귀하기 전까지 드러난 업적 중 가장 높은 등급이 크리스털 등급이었다.

    ‘실버 업적으로 얻은 보상은 어느 정도려나.’

    손가락을 까딱거려 인벤토리를 열었다. 안에는 이 모든 일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해 줄 아이템이 있었다.

    [헤르메스의 신발]

    헤르메스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습니다.

    아이템을 착용하면 공중을 걸을 수 있습니다.

    지속 시간: 10초

    강화 +0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간신히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서 다행이었다.

    ‘완전히 나한테 필요했던 거잖아!’

    나는 변변한 이동기 스킬이 없다. 펫을 소환할 수 있는 엄청난 스킬을 얻긴 했어도, 도깨비불 녀석은 척 보기에도 탑승용은 아니다.

    그런데 어지간한 이동기 스킬과 맞먹는 아이템을 얻은 것이다!

    ‘미쳤어. 10초면 흘러넘치지.’

    게다가 더욱 놀라운 점이 있었다.

    ‘강화가 0단계.’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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