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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3화 (13/250)
  • 제13화

    제13편

    쭈악, 쯔어어억.

    찐득한 소리를 내며 반짝이는 포털 내부에서 정체불명의 침략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색에 거대한 몸체가 서넛.

    누가 보아도 사람은 아니었다. 이미 부대원들에게 설명을 들었기도 했지만, 나는 놈들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고블린. 인간형 몬스터로 분류되며 평균 신장은 2m. 악력은 보통 인간의 30배 정도 된다. 또 그들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찰그락, 찰그락.

    고블린들이 쥔 무기와 갑옷에서 금속이 부딪치며 서늘한 소리를 냈다.

    “츄하……. 취르르륵…….”

    고블린의 억센 송곳니 사이로 탁한 침이 흐른다. 놈들은 노란 눈알을 굴리며 아주 침착하게 포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지, 진정!! 대형 유지해! 다른 부대에 통신도 연결하고.”

    괴물 특수부대원 하나의 외침에 나머지가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포털에서 완전히 나오지 않으면 어떤 공격이라도 무효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적절히 공격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저, 저 새끼들 왜 저래.”

    마치 그걸 안다는 듯, 가장 앞선 고블린 녀석은 몸을 완전히 꺼내지 않고 주위를 살필 뿐이었다.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건 괴물 특수부대원 하나였다.

    “지, 진 상병님! 뭔가 이상합니다!”

    “야! 이 새끼야! 전방 주시해! 몬스터 한두 번 잡아 보냐?! 아, 어라?”

    당황스러워하는 부대원들에게 잠깐 눈을 굴렸다가 보니, 포털에서는 이미 고블린들이 사라진 상태였다.

    ‘다시 들어갔다고?’

    나는 옆에서 언제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긴장한 결이를 팔로 막아선 후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무슨 꿍꿍이일까? 고블린은 생각보다 지능이 높은 몬스터다.

    무기도 갑옷도 직접 제작해서 사용할 정도다. 게다가 우리가 어제 만난 놀 무리의 장비도 고블린들이 제작한 것이다.

    아주 나중에서야 알려지는 던전의 비밀이지만, 어떤 방법을 통해 몬스터들끼리 교류가 있다는 사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블린들은 인간 사회에 관해 학습해 영리하게 대응하게 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컨드 오픈이 일어난 지 겨우 24시간이 지났을 정도다.

    어떻게 벌써 포털의 비밀을 알아챌 수 있을까?

    꿍꿍이가 있는 거라면.

    띠링. 시스템 알림이 울린다.

    [고블린 부대 상대하기]

    난이도: 상

    고블린 10개 부대를 상대하십시오.

    ▶성공 보상: 고블린의 심장

    고블린 10개 부대? 난이도 상? 순식간에 나를 포함한 다섯 명 전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피해요!!”

    내가 소리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포털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우물 속에 돌을 던져 커다란 파문이 인 것처럼 요동쳤다.

    “뭔 개소리야. 부대원도 아닌 주제에 까불지……!!”

    가장 앞서 있던 부대원이 내게 악을 질렀다.

    사실 이럴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이미 괴물 특수부대에서 오랜 기간 훈련한 각성자가 어제 막 각성한 조무래기 말을 들을 리가.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는 100퍼센트 후회할 것이다.

    츄파앗!!

    곧,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 새처럼 포털 속에서 10마리가 넘는 고블린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아니, 고작 10마리가 아니었다. 댐이 터진 것처럼, 무수히 많은 고블린이 포털 안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고, 공격……!!”

    괴물 특수부대원들이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나 훈련받은 군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엉성한 공격이었다.

    고블린 하나가 부대원의 공격을 피하더니, 그대로 그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으, 으아악!”

    “크르르르……!”

    머리가 깨지는 끔찍한 소리는 부대원들과 고블린들의 괴성으로 뒤덮여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시야를 가득 채운 푸르스름한 반투명의 사슬 너머로 그 잔인한 광경을 지켜보며 내 앞에 바짝 붙어 지키고 있는 결이의 등에 대고 말했다.

    “결아, 전투다.”

    아까 소리친 순간부터 바로 억압의 손길 스킬을 중첩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상대를 속박하는 디버프인 스킬이지만, 사슬을 여러 겹 겹치면 좋은 방패가 된다.

    ‘레벨이 낮아서 겨우 두 사람 가려 줄 크기지만.’

    심지어 아직 고블린들은 이 뒤에 우리가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의 눈앞에 곧장 서 있던,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하는 세 명의 각성자, 아니 이제 둘 남은 괴물 특수부대원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잘 보필해라, 꼬맹아.”

    “무륵!”

    순식간에 소환한 도깨비불이 씩씩하게 대답한다. 귀여운 자식. 펫이 있으니까 한결 든든하다.

    “한결아.”

    츠츳. 순식간에 소울메이트를 사용해 한결이에게 버프를 걸었다. 서로 연결되는 느낌이 전신을 약하게 울렸다.

    “전격 공격은 원거리로 쓰지 마. 여기가 아예 무너져 버릴 수 있으니까. 위험성이 너무 커. 단타로 여러 번 공격해야 해.”

    “알겠어. 너는…….”

    “걱정하지 마. 여기 꼼짝 말고 있을게. 나도 알아. 놀보다 훨씬 강한 놈들이라는 거.”

    돌아보는 한결이에게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결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채 사슬 방패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콰광! 파츠츠츠!!

    반투명한 사슬 너머로 결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빠르다. 아무리 어제 막 각성한 S급이라도 이 정도는 못해. 물론 길드에서 특수 관리를 받는다면 또 모르지만.’

    내 지시 때문에 원거리 전격은 사용하지 못하고 위험할 정도로 근접하게 붙어야 하지만, 고블린들이 따라잡기에 결이는 너무 빨랐다.

    결이가 지나가는 길마다 무기가 허공을 가르고 바싹 타 버린 고블린이 쓰러진다.

    내 시선으로조차 따라잡기 힘들다. 지금 결이는 벼락 그 자체다.

    ‘회귀 전에도 이랬던가?’

    기억을 더듬었다. 결이야 늘 굉장했었다. 어릴 때부터 싸움에 타고났고, 맷집도 또래에 비해 셌다. 민첩하고 빨랐다. 주먹이 작을 때도 아주 독해서 시설 선배를 때려눕힌 적이 있었다.

    물론 그건 나중에 더 끔찍한 상황을 불러왔지만.

    어쨌거나 한결이가 강한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회귀 전 초기에 결이를 생각하면…….

    물론 나보다야 훨씬 강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능숙하진 않았다. 결이의 움직임을 좇을수록 확신이 들었다. 이건 착각이 아니다.

    ‘소울메이트 때문인가?’

    내 스킬 소울메이트.

    시전자와 상대의 영혼이 묶여 시너지를 내는 스킬이다. 능력만 따지자면 공격력이나 방어력 등을 상승시켜 주는 버프 시킬.

    하지만 묘한 감각이 있었다. 서로의 생각을 읽거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수준까지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무의식이 서로 가까워진 상태라고 해야 할까?

    소울메이트 스킬을 사용하고 있을 때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합이 잘 맞는다.

    완전히 한 몸처럼 합체되는 느낌은 아니지만…….

    ‘내가 회귀했기 때문에 한결이한테 영향을 미친 것일지도 몰라.’

    나는 잠시 결이의 전투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결이는 정말 강하다. 이대로라면, 내가 좀 더 돕는다면. 회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지 않을까.

    “우, 우아아!! 저것들 좀 막아 봐!”

    요원 하나가 겁에 질린 채 소리쳤다.

    한결이에게는 전혀 못 미치지만, 그래도 쓸 만한 공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줄어들 기미가 없는 고블린 때문에 질려 버린 것 같았다.

    아까까지 나와 결이를 깔보던 걸 생각하면 코웃음이나 쳐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이가 엄청난 속도로 고블린들을 해치우고 있는데도 포털에서 쏟아져 나오는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이대로는 모두의 마력이 바닥나 버린다.

    갑자기 고블린 10개 부대라니. 회귀 전에는 이곳에 있지 않았으니,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이 정도라면 뉴스에도 나왔을 것 같은데. 나는 과거에 생각보다 더 멘탈이 나갔었나 보다.

    “키에에에엑!! 케르륵!!”

    “흡!”

    콰앙!!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충격파가 퍼져 왔다.

    먼지가 흩어지는 사이로 보스 몹급의 거대한 고블린과 놈의 공격을 막아 낸 결이가 보인다.

    “히, 히이익!!”

    소리 지르던 부대원은 결이의 등 뒤에서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나쁜 자식이! 기껏 우리 결이가 막아 줬는데 도망을 가?! 저런 배은망덕한!! 지금 공격으로 결이는 체력이 15%는 닳았을 텐데!! 그러고도 네가 괴물 특수부대원이냐!”

    나도 모르게 왁!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오직 결이와 부대원들에게 집중하고 있던 고블린 몇몇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케르륵?!”

    “크르라아아아!!”

    “아, 어라…….”

    아무리 벽을 등지고 구석에서 사방을 막고 있더라도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이놈들 똑똑해진 건지 아닌 건지 의심되는걸.

    스으으. 나를 돌아본 쪽 뒤편에 서 있던 고블린이 크게 몸을 젖힌다. 창! 놈의 손에 거대한 창이 들려 있다.

    “어……!”

    쉬이이익!! 엄청난 소리와 함께 창이 날아왔다.

    퍼억! 마치 수박이 깨지는 듯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눈앞의 사슬 보호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

    창은 내게 던져진 게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고블린의 투창은 내 쪽으로 도망치던 부대원의 머리에 적중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창의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벽에 박혀 버린 그의 몸을 따라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런, 벌써 두 명이나 죽어 버렸잖아.’

    성격이 나쁜 놈들이었지만, 그래도 죽을 만큼의 쓰레기들은 아니었는데. 아차 하는 사이에 피해가 너무 크다. 이제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하준아!”

    다급한 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도 순간 깜짝 놀랐겠지.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란다, 친구야.

    이럴 때야말로 주인공처럼 비기를 사용할 때니까.

    “시스템, 소울 포인트를 민첩에 몰빵한다.”

    띠링.

    [소울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차르르륵!!

    시스템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온몸을 흐르는 기운이 완벽하게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그래, 나는 민첩만 있어도 돼. 이걸로 결이한테 짐이 될 일은 없을 거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글자가 떠올랐다.

    [소울 포인트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됐다.

    이걸로 내 민첩은 108. 한결이의 스텟과 얼추 비슷할 거다. 거대한 고블린을 밀어내고 몇 번 강력한 공격을 퍼부은 뒤 내 쪽으로 달려오는 결이의 움직임이, 이제는 모두 보인다. 쫓아갈 수 있다.

    공격은 피하면 장땡이다. 피하면 대미지 0!

    게임에서 어쌔신이나 도둑과 같은 직업군은 민첩에 스텟을 많이 찍고 적의 공격을 많이 피해 내면서 엄청난 대미지의 크리티컬 공격을 한다.

    나는 애초에 주 능력이 서포터. 내게 중요한 건 한결이에게 짐이 되지 않는 거니까 민첩에만 몰두해도 된다. 하여간에 나를 신경 쓰느라 한결이 행동 범위가 너무 제한됐었으니까.

    몬스터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되고 내가 공격할 필요도 없으니 굳이 낮은 공격력을 채우는 것보다 서포터로서 훨씬 유리하게 움직일 수 있는 스텟에 투자하는 거다.

    주로 서포트하는 스킬이 소울메이트인데, 이것 역시 마력을 많이 잡아먹지 않기 때문에 마법사처럼 마나 스텟에 더 포인트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내겐 실시간으로 마나를 회복시키는 도깨비불도 있다.

    ‘마력에 관해선 나중에 장비를 마련해도 괜찮아.’

    츠츠츳!

    나는 방어막으로 만들었던 억압의 손길을 해제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반투명의 사슬들 너머로 결이의 당황한 얼굴이 보인다.

    왜?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 자식, 형님이 놀 상대하는 걸 보고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나는 씩 웃으면서 그대로 결이와 마주 보는 쪽으로 달렸다. 내가 살짝 결이 옆을 스치자, 곧장 결이가 방향을 바꿔 나를 따라온다.

    “공간을 이용할 거야.”

    “흠?”

    전격은 상하좌우로 막힌 좁은 곳에서 불리하다. 너무 강력해서다. 결이가 고블린을 상대하는 것을 봤을 때, 아주 빠른 속도로 전격을 사용하는 범위를 익힌 것은 맞다.

    하지만 강도는 아직 완벽히 조절하지 못한다. 건물이 무너지면 우리는 생매장당하고 마니까. 그럴 바에야 한 방에 끝내 보자고.

    “전기 통구이 만들 준비해. 대량으로 갈 거니까. 넌 포털 근처에서 대기해.”

    의심스럽던 한결이의 표정이 뭔가 깨달은 것처럼 밝아졌다. 역시, 소울메이트 덕분이 맞나 보다. 찰떡같이 알아듣네, 우리 한결이.

    “억압의 손길.”

    차르르륵. 솟아오르는 사슬과 함께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벽과 천장을 정신없이 오가자 고블린들은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퀘레으아러어어!”

    거대한 고블린이 나를 잡기 위해 장검을 휘두르지만, 내 사슬에 가로막혀 천장과 벽을 긁어내릴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놈들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어허! 건물을 부수면 나쁜 고블린이지! 지금 너네 때문에 무너지기 직전이잖아! 못된 고블린은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대답이 돌아올 일은 없지만 나는 싱긋 웃으며 고블린들에게 외쳤다.

    “꽁꽁 묶인다!”

    철커덩!!

    사슬이 출렁이는 소리와 함께 일순간 고블린들이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들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몸에는 온통 사슬이 얽혀 있었다.

    내가 미친 듯이 벽을 탄 건, 소울 포인트로 올린 민첩 스텟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단 몇 개의 사슬을 가지고 가장 효과적으로 고블린 모두를 사로잡아 버릴 덫을 치기 위해서였다. 입체적으로 짜인 거미줄처럼 말이다.

    “케에엑! 크레에엑! 콰에엑!”

    “키륵! 키이이익! 키르익!”

    고블린들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아무리 움직여도 나의 억압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고작 레벨 1 정도 오른 것인데 생각보다 나의 사슬은 강력해졌다.

    꾸역꾸역 밀고 쏟아져 나오던 포털 입구도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앞차가 안 빠지면 뒤차는 못 나오는 거거든.

    “결아, 시끄러우니까. 지져 버리자.”

    “휘말리지 않게 조심해.”

    한결이는 곧장 옴짝달싹 못 하는 고블린에게 달려가 손을 갖다 댔다.

    번쩍!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섬광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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