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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2화 (12/250)
  • 제12화

    제12편

    이번에 성현준 대위의 명령으로 도착한 SUV에는 안은영 소위가 없었다. 낯선 군인들이 탄 차에 오른 우리는 곧장 서울역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괴물 특수부대 요원이 건네준 옷과 신발로 갈아입었고, 간단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역 내부에 던전 게이트가 생성됐습니다. 1차 파견 부대가 상황 진압하고 던전 공략을 완료했습니다만, 건물에 무너진 부분이 있습니다.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인데, 상급 요원들은 다른 위급 현장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서울역이라니. 피해가 엄청났겠군요.”

    사실 나는 이미 서울역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과거에는 뉴스로 전해 들어 직접 그 광경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리포터가 전해 주는 이야기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습니다. 일단 상황은 정리가 됐는데, 던전 게이트가 크랙인 것 같아서 하급 요원들이 대기를 해야 합니다.”

    던전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던전이 생성되면, 각성자 헌터가 진입해서 내부의 일반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까지 모두 잡으면 클리어가 된다.

    이렇게 한번 클리어된 던전 중에는 사라지는 것이 있고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사라지는 던전 게이트는 그냥 일회성 던전 게이트다. 게이트라고 부르기도 했고, 포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던전 포털을 ‘크랙’이라고 불렀다.

    차원이 비틀린 흉터. 균열의 틈. ‘크랙’은 던전 공략이 끝난 뒤에도 불특정 주기로 몬스터를 다시 생성해 냈다.

    세컨드 오픈이 일어나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을 때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거추장스럽긴 해도 꾸준히 연구할 장소가 되어 주고, 던전 부산물을 얻을 수 있는 요긴한 장소가 되었었으니까.

    퍼스트 오픈 이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인구가 붐비는 곳에 생긴 크랙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가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지금부터는 언제 또 몬스터를 뱉어 낼지 모르지만 제거할 수도 없는 엄청나게 골치 아픈 존재가 된 거다.

    “몬스터 등급 자체가 위험한 곳은 아닙니다. 겨우 고블린이죠.”

    그렇게 말하는 요원의 표정이 어두웠다. 고작 고블린 정도로, 그 정도로도 서울역에서는 참사가 일어났다. 물론 지금 어느 곳이든 다 그렇겠지만.

    평범한 인간은, 그만큼 문 너머의 것들 앞에서 나약했다.

    차 안은 급격하게 조용해졌다. 정적을 깬 건 한결이의 목소리였다.

    “다른 곳은 상황이 어떻죠? 다른 지방은…….”

    “그건…… 아직 민간인분들에게 말씀드리기가.”

    “그냥 민간인이라기엔 저희도 각성자인데요. 지금도 당신들을 도우러 현장에 왔고요.”

    “죄송합니다.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요원은 말을 아꼈다. 어디의 소속도 아닌 우리에게 괴물 특수부대나 국가에서 아직 파악 중인 내용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에는 무리가 있을 거다.

    사실 그가 말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이 포털, 던전, 게이트, 크랙이라고 하는 건 인구 밀집도에 비례해서 생겨났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어떤 이유로 생겨난 것인지 앞으로 14년이 지나도록 알아낼 수 없는 이것들은 묘하게도 주로 사람이 바글바글한 도시 주변에서 많이 생성되었다.

    물론 예외가 있는 장소들도 있긴 했지만, 각성자가 많은 곳에는 포털도 많다. 각성자가 적은 곳에는 포털도 적다.

    그러니까 어디든 상황은 고만고만했다. 물론 던전이나 몬스터, 각성자들의 처치 외에 화재나 붕괴 같은 일반 재난에 대처하는 건 지역 차가 있겠지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디선가 신은 버틸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던데. 이런 경우에 써야 하는 말일지.

    나는 씁쓸해진 입맛을 다셨다. 그때, 드디어 차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

    “은하준 님, 한결 님. 제 뒤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철컥. 차 문이 열리고 익숙한 서울역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익숙하지 않은 모습인가. 아무리 한낮이라고는 하나 서울역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이던 곳. 사실 회귀 전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땐, 이미 복구가 다 끝난 상태였다. 크랙의 처리도 제대로 됐었다. 크랙이 있는 장소를 따로 격리해서 각성자들이 지키게 했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갔었다. 그랬는데…….

    “이쪽입니다.”

    괴물 특수부대 요원들이 지하철 입구로 내려갔다.

    “윽.”

    한결이가 걸음을 멈추며 뒷걸음질 쳤다. 고약한 피비린내. 무엇인가 탄 냄새. 먼지. 형용할 수 없는 악취들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왔다.

    시체는 이미 회수되어 없었지만, 사방에 끔찍한 핏자국들과 살점으로 보이는 검붉은 것들이 조각조각 떨어져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화학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몬스터가 나오는 곳은 아니어서 따로 방독면을 드리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필요하시면…….”

    “……됐어요.”

    한결이는 겨우 대답했다. 사실 각성하고 나면 일반인보다 감각이 예민해지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고통스러울 거다. 아니면 예민해진 감각을 이겨 낼 만큼 각성자로서의 자아가 강해지든가. 오늘 아침 보았던 위험을 뚫고 각성자 관리부까지 찾아온 사람들처럼.

    “결아, 힘들면 방독면이라도 써.”

    “……아냐. 진짜 괜찮아.”

    결이는 손등으로 코를 막은 뒤, 앞으로 가자고 제스처를 취했다.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요원의 말대로 현장은 꽤 정돈된 상태였다.

    무너진 부분들을 임시로 뚫어 놓아 아래로, 복잡한 통로들을 통해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지나치는 통로들 끝에서 들리는 소리로 아직 복구 작업을 하는 곳을 가늠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우리의 목적지는 따로 있었으니까.

    회귀한 첫날, 한결이와 함께 지하철 창문으로 본 기묘한 빛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혹시 나올지 모르는 몬스터를 대비합니다.”

    던전 게이트, 포털이 나타났다. 오로라처럼, 아니면 어떤 보석이나 사진으로 본 우주처럼. 여러 가지 오묘한 빛이 일렁이는 타원의 형체.

    마치 백설 공주 이야기에 나오는 마법 거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게임 속에서 본 차원의 문 같은 것처럼 생긴 형체. 보는 것만으로도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그건 지면에서 살짝 떠 있는 채로 존재했다. 측면에서 보면 얇아서 두께가 5c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오묘한 빛의 얇은 막이 바로 차원의 균열,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몸 안에 흐르는 각성자의 힘이 포털과 함께 공명하는 것처럼. 이 증상은 각성 직후에 강하게 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져 무뎌질 감각이었다.

    한결이 역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결이가 묘한 표정으로 이끌리듯 포털로 다가가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대기하고 있던 다른 괴물 특수부대 요원 하나가 한결이 앞을 가로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괴물 특수부대 요원이 셋, 나와 한결이. 이렇게 다섯이 이곳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듯했다.

    우리와 같이 온 요원이 나와 한결이를 간단하게 소개해 주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딱히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냐. 어쨌든 저 사람들 처지에서는 우린 어제 각성한 햇병아리인데, 결국 일이 더 늘어나는 꼴이 아니겠어. 제발 걸림돌이나 되지 않았으면 하고 있겠지.’

    그들은 표정을 감출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원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요원 둘이 우리와 멀찍이 거리를 두더니, 저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성 대위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람.”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저 녀석들 죽기라도 하면 그대로 우리 책임 되는 거 아닙니까.”

    “X발, 진짜. 몬스터가 또 안 튀어나오길 바라야지. X같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크랙이라고 해도 몬스터 재생성까지는 적어도 몇 주씩 걸리지 말입니다.”

    “한 놈은 D등급이라는데? D급 저놈은 무슨 은둔형 외톨이처럼 희멀게선, 우리가 슬쩍 치기만 해도 죽는 거 아냐?”

    “야 S등급이라도 레벨 1 때는 생각보다 쉽게 죽어.”

    “크크크. 아, 나는 생각만 하고 참았는데 그걸 말해 버리네?”

    막 각성한 햇병아리들이라 못 들으리라 생각한 건지, 아니면 들어도 상관없는지. 아니면 우리가 정말 죽으리라 생각하는지 그들은 겁도 없이 떠들고 있었다.

    “저 씨…….”

    “한결. 하지 마.”

    발끈하려는 한결이를 말리자, 당황한 검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뭐라고?”

    어이가 없다는 한결이의 눈.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이게 관록이지. 어른이지. 안 그래? 시시한 도발 같은 거에 당해 주면 쓰나. 게다가 우린 정말로 햇병아리가 맞으니까, 뭐.

    저래 보여도 우리보다 한참 선배인 각성자들이니까. 뭐, 이곳을 지키는 정도의 임무라면 아마 레벨이 좀 되는 D급이나 C급 정도의 각성자들이겠지만.

    그리고 인간은 죽여도 경험치가 안 오른다고. 암, 그렇고말고.

    ‘아, 그 스킬 한번 써 볼까? 영혼 분별사.’

    회귀 후에 생긴 이상한 스킬. 상대의 소울 등급을 알려 준다고 하던가? 하도 정신이 없어서 잠깐 잊고 있었다. 이런, 그걸 잊고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금방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등급 D에서 C등급인 놈들한테 굳이 쓸 필요 있나. 마력 아깝게. 그래, 아깝다……. 이런 대우 받을 시간에 거래소에 가서 아이템이나 팔고 싶네.’

    나는 뻔히 들리는 험담을 모르는 척 대충 기댈 수 있는 곳을 찾아 기댔다. 한결이도 마지못해 내 쪽으로 다가왔고, 우리를 데리고 온 요원만이 뻘쭘하게 중간에 서서 어색해하고 있었다.

    “어제 각성했다고 너무 겁먹지 말고!”

    “그래도 각성자잖아?”

    “그렇게까지 내뺄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하하하!!”

    “걱정하지 마. 우리가 지켜 줄 테니까, 도련님들. 잠깐, 너네 아직 미성년자는 아니지?”

    우리 험담을 하는 놈들은 목소리를 높여 낄낄거렸다. 물러나는 우리가 자신들의 기에 눌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놈들을 저지하지 못하는 걸 보니, 우릴 데려온 쪽이 지위가 낮은 것 같고.

    이제는 멀어져 잘 들리지 않는 험담과 어색한 정적과 함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회귀 전에도 가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항상 들었던 걱정은, 기억력이 별로라서 과거로 가도 별로 쓸모가 없으면 어쩌지였다. 아무래도 보통은 세세한 것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최대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고 곱씹었다. 오늘, 오늘은 어떤 사건 사고가 있었나. 내일은, 그리고 모레는.

    ‘그래, 그래도 성현준 대위가 나름 편한 곳으로 보내 줬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여유도 있고.’

    하지만 난 곧 그 생각을 철회했다.

    “어?”

    “아, 야이씨.”

    포털에서 가까이 있던 두 요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기묘한 포털의 중앙이 일그러지며 쭈욱 하고 늘어졌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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