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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1화 (11/250)
  • 제11화

    제11편

    “칩을 박는다고요?”

    딱딱하게 굳은 결이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담당 공무원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가 한쪽 입꼬리를 비죽였다.

    “아, 모르셨구나. 각성자 관리법 때문에 그래요. 그게, 이런 말 들으시면 좀 기분 나쁘실 수 있겠지만요. 각성자들이 폭주하거나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게다가 칩이랑 증에 있는 칩이랑 일치해야 나중에 던전 출입할 수 있으시거든요.”

    그건 괴물 특수부대가 지키고 있는 던전에 한한 일이지만. 사실 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퍼스트 오픈 이후로 생긴 각성자들이 일으킨 사고나 범죄가 꽤나 컸으니까.

    “그렇다고 몸에 칩을 박으라니……. 동물도 아니고.”

    설명을 듣고도 한결이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결국 각성자 관리라는 이유로 자유를 박탈당하는 건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냥 인식 칩인데, 평소에는 작동도 안 해요. 추적 기능 뭐 그런 것도 없고. 그리고 나라에서 관리하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문제 터졌을 때를 대비한 거라니까요.”

    공무원의 목소리에 짜증이 살짝 섞였다. 그의 말에 반박할 거리는 많지만, 나는 한결이의 어깨를 살짝 잡아 진정시켰다.

    어차피 이 각성자 관리 칩도 각성자들이 몇 되지 않을 때나 존재하는 것이지 일 년도 안 되어 사라진다. 각성자들의 인권 문제로 계속 반발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우린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 지금 당장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좋다.

    “원래는 각성자 교육이 바로 있는데,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렇게 등록만 하고 돌려보냅니다. 일단 자택에서 대기하고 계시면 따로 저희 쪽에서 연락을 드릴 겁니다. 그럼 그때 교육받으러 다시 오시면 됩니다. 헌터 자격증까지 나와야 헌터 활동 할 수 있으신 거 알죠? 서인화 씨도 그때 서류, 마저 제출하시고요. 참, 지금 너무 바빠서 신경을 못 써 드려서 죄송합니다. 난리예요. 난리.”

    공무원은 굉장히 사무적으로 말하고는 자리를 정리하고 먼저 일어났다.

    “그럼 앞으로 고생들 하십쇼.”

    등록증을 받아 든 우리가 짐을 챙겨 복도로 나오니, 각성자 관리부 사무실 앞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등록증을 만들어 준 공무원이 인파를 헤치고 겨우 사무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우리는 일찍 와서 다행이네. 한참 기다릴 뻔했어.”

    “그것도 그건데, 안은영 소위 덕분에 우리만 이쪽으로 빠져서 발급받은 걸 거야.”

    나랑 한결이야 그렇다 치고. 위험을 감수하고서 오늘 바로 각성자 등록을 하러 오다니, 역시 각성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잠시 마비된 경우들일 거다. 대부분 높은 등급을 받는 각성자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양상이다.

    그러고 보니 인화 선배도…….

    “저기요! 빨리 등록 좀 해 주세요!”

    “처리 인원이 이거밖에 안 됩니까?”

    “불안해 죽겠는데, 제대로 설명 좀 해 달라고!”

    불안정한 상태의 각성자들이 아우성이라, 확실히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예전의 나는 곧장 등록하러 오지 못하고 한참이나 집 안에서 벌벌 떨었기에 이런 광경은 좀 낯설다. 이들 말고도 과거의 나처럼 집에 그저 숨어 있는 각성자들이 엄청 많겠지.

    우리 세 사람은 북적이는 사람들을 지나쳐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혀를 내둘렀다.

    “어차피 셋 다 한국대 병원 가야 하는데 동행하시죠. 바깥은 아직 위험하기도 하고요.”

    내 말에 인화 선배의 얼굴이 다시 밝아진다.

    “두 사람 덕분에 정말 든든하네요! 저한테 딱 두 사람 나이대의 남동생이 있어요.”

    알아요. 그래서 우리 둘한테 특히나 더 잘해 줬다는 거. 선배한테서 수백 번 들었어요. 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올리며 들뜬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가 차를 가져왔거든요. 병원까지 내 차 타고 가요.”

    * * *

    이동하는 내내 도로는 한산했고, 사람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구급차나 경찰차, 군용 트럭이 지나는 모습은 꽤 보였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스킬인지 뭔지를 시도해 봤는데 한 번 썼다가 부엌이 홀라당 박살 난 거 있죠. 어머, 세상에. 가로수가 다 쓰러져 있네. 여기서 뭔 일 있었나 봐요. 무서워, 무서워.”

    인화 선배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공포를 담당하는 뇌 기능이 약해진 게 틀림없다.

    “그래도 도로가 막힌 곳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우리 집에서 나올 때는 도로 몇 군데가 끊어져서 돌아오느라 고생했다니까요. 으, 무서워라. 이상한 거 튀어나오면 안 될 텐데.”

    다행히 선배의 바람대로 우리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몬스터를 만나거나, 엄청난 사고 현장과 맞닥뜨리지 않았다.

    우리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각성자과에 가서 왼쪽 팔뚝 안쪽에 칩을 이식받았다.

    칩을 박기 직전까지 한결이는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주사 맞는 것 정도로 따끔한 게 다였다.

    “이상한 기분이네요. 운전면허보다 각성자 등록증이 따기 쉽다니.”

    각성자 검사까지 마친 후 병원을 나서며 인화 선배가 말했다.

    “뭐, 지금은 그냥 등록증이니까요.”

    “후후, 그럼 우리 헌터 자격증 훈련 같이 받으려나요? 동기네, 동기.”

    그녀는 안심된다는 듯 말했다. 그렇구나, 인화 선배는 이제 선배가 아니라 동기다.

    “오늘 고마웠어요.”

    “저희가 한 게 있나요.”

    “아니죠. 두 분 덕분에 발급도 빨리 받고, 병원도 이렇게 안전하게 도착했잖아요. 다음에 식사 한 끼 대접할게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정말…….”

    “집은 어디예요? 태워 줄게요.”

    “아뇨, 됐습니다. 들를 데가 있어서요.”

    나는 이 상황이 좀 이상해서, 좀 딱딱하게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인화 선배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활짝 웃었다.

    “내 번호예요. 다음에 연락하면 꼭 같이 나와 주세요? 그때까지 무사하시고요. 그럼 다음에 만나요! 동기들!”

    그러더니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가볍게 뒤돌아 사라졌다.

    “들어가세요!”

    “…….”

    나는 선배 쪽으로 꾸벅 인사를 하곤 한결이를 보았다.

    “난 저 사람 마음에 안 들어.”

    “뭐?”

    나는 황당하다는 듯 한결이를 보았다.

    어떻게 선배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쏘아 주고 싶었지만, 지금의 한결이에게 인화 선배는 그냥 오늘 처음 본 사람이다.

    게다가 한결이의 사회성을 생각하면…….

    “너도 그래. 각성 이후로 나보다 네가 더 위험한 상태일지도 몰라. 모르는 사람들에게 너무 편하게 대하는 것 아냐?”

    글쎄다. 그건 그냥 자연스럽게 내가 연륜이……라고 말해도 지금의 한결이는 이해할 수 없겠지.

    겉은 21살이지만, 속은 다 늙은 아저씨가 들어앉아 있다는 걸.

    ……아니, 그래도 30대 정도면 아저씨는 아니지. 청년이지, 청년.

    나는 눈썹을 긁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마음을 가다듬었다.

    “삐졌어?”

    “삐지긴 뭘 삐져.”

    “넌 꼭 새 친구 사귈 때마다 이러잖아.”

    내가 능청스럽게 웃음을 흘리자, 한결이의 미간이 왈칵 구겨진다.

    기억하는 것보다 우리 한결이가 훨씬 애같이 굴어서 웃음이 난다. 꼭 시설에서 지내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뭐? 친구? 저 사람에 관해서 뭘 안다고 벌써 친구…….”

    지이이잉. 바지 주머니가 진동했다. 액정을 보니, 아침에 저장했던 이름이 뜬다.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본 한결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성현준 대위.”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은하준 씨.]

    휴대폰에서 벌써 정이 들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각성자 관리부에 등록하시고 증도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칩도 한국대 병원에서 이식하셨다고요.]

    “소식 되게 빠르시네요.”

    [하하, 상황이 상황인지라요. 사실 방송으로는 지금 상황이 많이 진압되었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우리 괴물 특수부대 손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 특히 두 분을 주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성자 길드들이 있는데도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까?”

    [물론 길드 소속 각성자분들께서도 노력하고 계시죠. 하지만 지금 상황이 어떤지 은하준 씨는 아시잖습니까.]

    이봐요, 내가 다 어떻게 압니까? 물론 다 알지만, 그건 내가 회귀를 했기 때문이라고요. 이 상황에서 생판 일반인인 내가 어떻게 상황을 압니까? 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래, 상황이 상황이다.

    어제 각성한 각성자들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절박한 사정이라는 게……. 어쩌면 그들로서는 비참할 수도 있는 상황인 거다.

    그나마 무사히 각성자 관리부에 들르고 병원도 오고 갔지만, 거리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라 전체에 락다운이 걸린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아니, 이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일이니까. 전 세계가 락다운 상태인 참 끔찍한 상황이지.

    “뭐, 대충은요.”

    [그래서 말입니다. 정말 부담스러우실 거라는 걸 잘 알지만, 현장 진압에 힘을 보태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어, 언제부터요?”

    [……지금 당장 가능하십니까?]

    “지금 당장요? 아시겠지만, 저희 헌터 자격증도 안 나왔어요.”

    [압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던전 내부에 들어가는 활동이 아니라면, 일단 각성자 등록증만 있어도 괜찮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완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이라고? 너무 황당하잖아! 우리 한결이는 어제 각성했는데! 아무리 S급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좋은 기회일 수 있었다. 이런 재난 상황을 좋은 기회라고 하는 건 양심에 찔리지만.

    어차피 내가 옆에 붙어 있으니까 조심하기만 하면 한결이나 나나 레벨도 올릴 수 있고, 아이템도 얻을 수 있다. 또 아까 받았던 것처럼 국가를 상대로 보상금도 받을 수 있을 거다.

    ‘헌터 자격증을 따기 전까지는 던전 안도 함부로 못 들어가니까.’

    또 앞으로 던전을 오가면서 마주칠 괴물 특수부대에도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

    이러저러한 개인적인 욕망이 들끓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크게 마음을 흔드는 건…… 지금 내가 돕는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거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면 이전보다 훨씬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덜덜 떠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알겠습니다.”

    “은하준.”

    [정말이십니까?]

    성현준 대위는 자기가 말해 놓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옆에 선 한결이의 시선은 너무 따가워서 얼굴에 구멍이 뚫릴 지경이고.

    “네. 뭐, 어디로 가면 됩니까?”

    [아직 병원 근처이시면 그쪽으로 차를 보내겠습니다.]

    “예. 병원 정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은하준 씨.]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보내 주세요. 저흰 어제 막 각성했다고요. 무서워 죽겠거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위험한 현장까지는 투입되지 않을 겁니다. 부대원들한테도 잘 말해 놓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더 징징댔다. 그가 너무 우리 실력을 믿는 것 같아서. 내가 회귀자라는 걸 들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불안했다.

    또 생각해 보면 성현준 대위의 말을 아주 못 믿을 것도 없다. 그래, 이 사람도 제정신이라면 나랑 결이를 진짜 전투 현장에 냅다 던지지 않을 거다. 아마 잘해 봤자, 위험 지대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 호위 정도겠지.

    물론 그것도 훈련받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지만. 지금은 손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상황이니까.

    이게 다 그 인터넷 방송 찍은 놈 때문이다. 울컥 짜증이 치솟았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하준아.”

    결이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걱정이 깊게 배어들어 있었다.

    “응? 괜찮아. 나만 믿어.”

    “아니, 나는…… 네가 걱정돼서 그래.”

    “응?”

    “넌 가끔, 속으로만 삼키고 무리하잖아.”

    결이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10살 넘게 어린 결이를 걱정시키다니. 죄책감이 심장을 쿡쿡 찔렀다.

    “괜찮아. 원래 형님은 좀 무리해도 돼.”

    “또 그런다. 제발 그러지 말라니까.”

    “결아, 나는.”

    “…….”

    “너 지킬 수 있으면 뭐든 할 거야.”

    “……뭐.”

    “내 특기가 잘 삼키고 소화 잘하기잖냐.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이거야.”

    “뭐야, 그게.”

    결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괜히 신발로 바닥을 찼다.

    “얌마. 고마워, 형! 이래야지.”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그리고 너 빠른 연생이잖아. 따지면 내가 형인데 자꾸. 그리고…… 확실히 이번엔 네가 대단했지만, 이때까지 너 지키던 건 나거든.”

    “참 나, 이 상황에 그런 걸 따질 거냐? 치사하게.”

    “지금 형, 동생을 시작한 게 누구인데.”

    나는 툴툴거리는 한결이의 머리를 힘껏 쓰다듬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가볍게 투덕거리는 사이 우리에게 익숙한 SUV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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