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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9화 (9/250)
  • 제9화

    제9편

    순식간에 나와 결이를 둘러싸는 사람들.

    “청렴 길드 스카우트 팀에서 왔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선문 길드는 대한민국 최고 길드로서.”

    양복을 잘 차려입은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결이 앞으로 명함을 내밀기 바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아직 헌터 자격증 신청도 안 한 상태다. 개인 정보가 이렇게 빨리 빠져나가다니. 역시 그 인터넷 방송을 찍은 놈 때문인가 싶다.

    각성자 관련 사업을 주도하는 기업, 헌터 길드는 눈에 띄는 각성자가 있으면 서로 주워 가기 위해 이렇게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좋은 각성자를 하나라도 더 데리고 있는 것이 길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우리처럼 이제 막 각성한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은 길드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먹잇감이라고 하면 어감이 좀 그런가.

    연예인을 길거리에서 캐스팅해 가는 것 뭐 그런 거랑 비슷하다.

    어쨌거나,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난 어제 각성했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 각성자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

    “실례.”

    한결이를 잡아끌며 뒤로 감췄다. 내 귀한 친구를 이런 승냥이 무리에게 홀랑 잡아먹히게 둘 순 없지.

    “아, 놀라셨죠. 이제 막 각성하신 분들께 다들 너무 갑자기. 하하하. 아직 모르는 게 많으시고, 혼란스러우시리라 생각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일단 이렇게 들이닥친 점에 관해서 모두를 대신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내 경계를 누그러뜨리려고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득이 들어온다. 곧 목소리의 주인공이 쑥, 한 발 앞으로 나선다.

    말끔한 차림새에 마치 공무원처럼 모난 구석 하나 없는 호감상의 얼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여유롭고 말투도 유려하다.

    각각 다른 길드에서 온 것일 텐데, 마치 대장처럼 능숙하게 주도권을 빼앗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금성 길드에서 파견된 심우진입니다. 금성 길드에서는 두 분을 바로 상급 조건으로 계약해 드릴 수 있습니다. 금성 길드가 현재 대한민국 3대 길드 안에 드는 규모가 큰 길드라는 건 잘 알고 계시는 사실이죠.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드릴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저희 쪽으로 오시면 절대 후회하실 일 없습니다. 다른 길드에 비해서 조건이나 복지 쪽으로도 급이 다르니까요.”

    그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내미는 검은색 명함에 금박이 된 선명한 글자가 보인다. 길드 금성.

    그래,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도 내가 정확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대형 길드다.

    “어깨 위의 그건 혹시 펫인가요?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걸요? 펫이 있는 각성자는…….”

    도깨비불을 보더니, 그의 눈이 탐욕으로 번득인다. 하지만 나는 차갑게 그의 말을 잘랐다.

    “죄송하지만, 우리는 아직 헌터 자격증조차 없어서요. 길드에 들어가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길드와 계약을 먼저 한 후에 자격증 발급 절차를 밟으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계약서에 그 사항도 명시될 테고 금성 길드는 각성자들의 초기 교육까지 케어하고 있으니…….”

    “참 나, 아직 증명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용감하시네요.”

    내가 실실 웃자, 금성 길드의 스카우터는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분명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상대편일 텐데, 어째서 저렇게 여유로운 것일까?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금성 길드다. 대한민국 최고는 아닐지라도 금성 길드인데……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 그건. 이미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으로 두 분의 자질을…….”

    “하하, 그러시구나. 옙.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아직 생각이 없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는 한결이를 끌어 스카우터 무리를 가르고 지나쳤다.

    “어, 어어?”

    “은하준 씨?”

    “저기! 잠시만요!”

    스카우터들이 따라붙었다. 귀찮을 것 같아서 뛸까 생각하는 찰나. 끼이익! 시커먼 SUV 차량이 코앞에 멈춰 섰다.

    “은하준 씨.”

    차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괴물 특수부대 안은영 소위입니다.”

    헬멧을 쓰지 않은 안은영 소위였다. 그녀는 앞머리가 없는 칼 단발에 눈매가 날렵해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다. 사복 차림은 아니었고, 아래는 군복에 윗옷은 괴물 특수부대 마크가 박힌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니, 춥지도 않나? 지금 한겨울인데?

    “어서 타십시오.”

    당황하는 나와 결이를 보더니, 안은영 소위가 손짓했다.

    “이봐요! 은하준 씨!”

    뒤에서 스카우터들이 아우성을 치며 바짝 쫓아오다가, 안은영 소위를 발견하더니 우뚝 멈춰 섰다. 차에는 별다른 마크가 없었지만, 마크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안은영 소위의 덩치가 워낙에 커서 50미터 밖에서도 그녀가 어디 소속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 어흠.”

    “커흐흠…….”

    멈춰 선 스카우터들이 괜히 바닥을 차거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모양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중에 가서는 길드들의 힘이 하도 커지는 바람에 괴물 특수부대는 거의 영향력이 없는 기관이 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도 썩 강력한 조직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면 안은영 소위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인가……. 돌아보니 그녀가 아주 부리부리한 눈으로 스카우터들을 보고 있었다.

    “각성자 관리부까지 태워 드리겠습니다.”

    “아…… 저희끼리 갈 수 있는데요.”

    “밤새 헌터들이 수습에 힘썼지만, 아직 서울 곳곳이 아주 위험한 상태입니다. 물론 두 분은 어제도 놀라운 기량을 뽐내 주셨지만, 성현준 대위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위에서 그러는 겁니까. 아니면 그냥 성현준 대위님이 원래 잔걱정이 많으신 겁니까?”

    “예?”

    안은영 소위는 내 말에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확실히 그냥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괴물 특수부대의 도움을 받는 게 안전하기는 하지.

    원래 사람이 누가 도와준다고 하면 넙죽 도움을 받을 때도 있어야 한다. 어릴 땐 괜히 날이 서서, 도와 달라는 말도 잘 못 하고, 누가 도와준다고 해도 가시를 세우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때 좀 더 유연했더라면 덜 고생해도 됐을 텐데 싶었을 때가 많았다. 그래, 사람이 그냥 아득바득 독기로만 살지 않아도 살아지기는 하더라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좀 더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부르릉, 차가 출발했고 내 옆에 앉아 안은영 소위의 눈치를 보던 결이가 어깨를 툭 쳤다.

    “너 미쳤어?”

    “응? 왜?”

    “금성 길드……. 아까 너튜브에서 봤잖아. 우리나라 3대 길드 중 하나라고. 저기 들어가면 복지만도 장난 아니라던데.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웬만한 일반인이 대기업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했잖아.”

    안은영 소위가 코앞에 앉아 있는 데다가, 그녀는 각성자라서 속삭이는 것 정도는 다 들릴 텐데도 결이는 속닥거렸다. 그게 무슨 커다란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괜찮아, 괜찮아. 그런 거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아니, 무슨 소리야. 굳이 금성이 아니더라도, 이름 들어 본 곳이 몇이나 있던걸.”

    “응~ 이 형님도 다 알지.”

    “다 아는데 왜 그래?”

    안타까운 결이의 타박과 함께 차가 덜컹! 진동했다. 안은영 소위가 기민하게 운전석과 소통하지만, 큰일이 벌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결이는 약간 겁먹은 얼굴로 눈을 굴리고 있었다. 나는 결이 어깨를 토닥이며 빙긋 웃어 주었다.

    “그거 다 부풀려진 거야. 3대 길드라고 해 봤자,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길드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여섯 군데밖에 안 돼. 그런데 어제를 기점으로 갑작스럽게 각성하는 각성자가 엄청나게 많지.”

    거기까지 말하고는 안은영 소위의 눈치를 봤다. 말하고 싶은 건 많지만, 여기선 곤란하다.

    “그러니까 상황을 좀 지켜봐야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섣부르게 계약해 버리고 그러면 위험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

    물론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건, 어떤 게 돌다리인지 돌다리인 척하는 가짜 다린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금성은 대한민국 1위 길드에 집착했다. 이 세컨드 오픈 이후로 무리하게 길드 덩치를 키우려고 공격적인 활동을 하다가 각성자 관련 문제도 많이 일으키고, 해외 쪽으로 투자를 받아 한국을 뜨려고 하다가 정부 제재에 철퇴를 맞는다.

    그러다가 치고 올라오는 신생 길드에 자리를 내어 주고, 결국 십여 년 뒤에는 그저 그런 길드 중 하나가 된다.

    자세한 속사정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금성은 별로 실속이 없다는 거지.

    ‘그보다 떡상하는 신생 길드 이름을 내가 알고 있으니, 기다렸다가 그곳으로 가는 게 나을 거다.’

    신생 길드라 초반 복지는 미흡하더라도, 미래에 투자할 셈이다. 게다가 그 길드는 던전 신무기 개발에 성공해서, 내가 죽기 직전까지도 엄청난 기세로 성장하는 미래성이 확실한 곳이니까. 미국에서조차 이 길드를 어떻게 해 보려고 혈안이 됐었다.

    난 로또 당첨 번호를 알고 있고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금광이 있는 위치를 아는 거다. 길드의 원년 멤버가 된다면, 후에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 길드 내에서도 입지가 탄탄해질 거고.

    아, 그러고 보니 로또…… 번호는 기억하는 게 하나도 없네.

    “뭐, 어차피 로또 당첨되는 것보다 더 많이 벌 테니까…….”

    “뭐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걸 결이는 아직 불만이 가득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아, 아냐.”

    “은하준 씨는 아주 침착하신 분이군요.”

    “네? 아, 뭐……. 그, 그렇죠?”

    갑자기 말을 걸어온 건 안은영 소위였다. 한결이와 나 사이의 분위기가 팽팽해진 것을 의식한 걸까. 나는 그녀가 사적으로 말을 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서 약간 바보같이 대답해 버렸다.

    “막 각성한 각성자들에겐 정보도 많이 없고, 또 각성 후유증 때문에 심리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데 은하준 씨께서는 이런 와중에도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시네요. 의견을 보태자면, 그건 아주 좋은 선택이십니다.”

    “아, 그……. 감사합니다. 하하하.”

    나는 혹시라도 이상하게 보였을까 걱정하며 대충 웃음으로 무마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안은영 소위는 진지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입니다. 저는…… 처음 각성하고 나서 완전 패닉에 빠졌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다치게 할 정도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건 경솔함이 아니라 그녀만의 배려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이는 계속해서 불안해 보이는 와중에 나는 이상하리만치 침착하니 안은영 소위 입장에서는 그걸 내 방어기제라고 생각한 듯했다.

    동질감을 자극할 이야기를 꺼내서 조금이나마 안심시키려는 심산이겠지. 기분이 좋아질 만한 칭찬도. 내가 침착한 게 방어기제일 거라는 건 오해지만…….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네.

    “한결 씨는 좋으시겠습니다. 이렇게 든든한 친구가 옆에 계시고.”

    “…….”

    다행히 안은영 소위의 말에 결이의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짜식이, 조금 전까진 너무 대단하다느니 모르는 게 없다느니 그래 놓고도 내 선택을 의심하더니. 하긴, 어제 같이 각성한 나보다는 괴물 특수부대 소위의 말이 더 믿음직스럽긴 할 테지.

    분위기가 꽤 훈훈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결이는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끼익. 생각보다 도로가 막히는 곳은 없었고, 우리는 금방 각성자 관리부에 도착했다.

    “고맙습니다.”

    “뭘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필요하실 때 연락해 주십시오.”

    “바쁘시잖아요?”

    “이것도 제 임무의 일환이니까요.”

    안은영 소위가 가볍게 웃어 보이고, 차 문이 닫혔다. 괴물 특수부대 소속의 검은 SUV는 담백하게 멀리 사라졌다. 도깨비불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없고. 안은영 소위는 뭔가 특이하다.

    집 안에선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펫이 있으니까 너무 이목을 끈다.

    “잠깐 들어가 있어라.”

    “뮤륵!”

    내가 손짓하자, 도깨비불은 심통이 난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화르륵 사라졌다.

    “하준아, 저길 봐.”

    결이의 손짓에 돌아보니, 길거리 곳곳이 파괴된 것이 보였다. 어제의 소동 탓이겠지. 회귀 전에도 본 장면이었으나, 그때는 어느 정도 수습이 된 후여서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아니, 오히려 회귀 전에는 더 떨어서 그때가 더 살벌한 풍경처럼 느껴졌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바깥은 위험하니까, 일단 들어가자.”

    나는 저 멀리 상공을 날고 있는 몬스터를 발견하고는 결이를 이끌고 익숙한 건물에 들어갔다.

    각성자 관리부.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유일한 각성자 관련 정부 공식 행정 기관이다.

    처음에는 괴물 특수부대와 통틀어서 군에서 관리했었지만, 10여 년 동안 일반 행정과가 분리되어 나왔다. 이곳에서 각성자들의 검사와 등록 등 전반적인 관리를 했다.

    당연히 ‘헌터 자격증’ 또한 이곳에서 발급해 주었다.

    각성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헌터라는 말도 없었다. 모두 군인이 되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정부는 몬스터를 뱉어 내지 않는 던전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점점 각성자의 관리를 민간 기업에게 맡겨 사업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길드가 생기고…….

    “어라?”

    “하준아?”

    갑자기 멈춰 선 내 등에 결이가 퍽 하고 부딪쳤다. 그러나 나는 결이가 부딪친 줄도 몰랐다. 이미 죽은 사람을 눈앞에서 마주친다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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