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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6화 (6/250)
  • 제6화

    제6편

    어라? 레벨이? 벌써?

    나는 인벤토리를 확인하는 것도 잊고 깜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아니, 진짜? 이렇게 쉽게?

    물론 소울메이트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결이가 해치운 몬스터들의 경험치를 나도 나눠 받았을 거다. 그래도 그렇지, 방금 각성한 각성자들이 놀을 소탕하고 곧장 레벨 업…….

    하긴 그래, 레벨 1짜리가 놀 무리를 죄다 잡았으니 말이야. 레벨 업 할 만하다.

    “은하준!!”

    한결이가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너도 레벨 업 했냐?”

    “응? 레벨 업? 아니? 넌 했어?”

    “어……. 그러네. 그래. 너랑 나랑 급이 달라서. 원래 등급이 높은 각성자가 레벨 업 할 땐 더 많은 경험치가 필요하거든.”

    “……대단하다.”

    한결이의 눈이 어린애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조금 전 생사를 오갔던 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대단하긴 뭐가 대단해. 너보다 등급 낮아서 쉽게 레벨 업 한 건데.”

    “그래도. 그리고 레벨 업이 중요한 게 아니야. 방금 진짜 대단했어. 네가 없었으면, 우리는 이길 수 없었을 거야. 죽었을지도 몰라.”

    “음, 맞는 말이긴 한데.”

    “……툭하면 얻어터지거나 어딘가 부러져서 왔었는데.”

    “뭣. 무슨 한참 옛날이야기를…….”

    하기야 지금의 한결이에게는 겨우 몇 년 전의 일들일 것이다.

    ‘한결이 녀석도 평소랑 다르게 많이 흥분해 있는 것 같네.’

    물론 감정이 널뛸 엄청난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긴 했다. 아마 아직 적응하지 못한 각성 에너지 때문에 모든 부분에서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것 때문에 첫 각성 직후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각성자들도 꽤 있으니까. 얼른 이 녀석 정신력 스텟이 올라가서 좀 진정되면 좋겠는데. 이런 상태로라면 실수하기 쉬우니까.

    절대로 한결이를 다치게 할 순 없다.

    “몬스터가 다 사라졌어…….”

    “세상에, 저 사람들이 해치운 거야?”

    “각성자들인가 봐.”

    뒤로 어느샌가 몰려든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겁도 없네, 아직 도망 안 가고 근처를 서성이다니. 아니면 너무 무서워서 엄두를 못 냈을 수도 있다.

    다리 아래 한강의 수면에는 무엇인가 거대한 것들이 헤엄치는 게 보였다. 저건 프로 헌터들이 와서 처리해야 할 만큼 무서운 놈들이다. 방금 밥으로 던져 준 놀이랑은 비교도 안 되지.

    “야, 한결아. 인벤토리 확인해 봐.”

    “어? 인벤토리?”

    “응. 그냥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열 수 있어. 거긴 각성자의 사이버 개인 비밀 금고 같은 거라서. 너 말고는 아무도 못 봐.”

    “오…….”

    인벤토리를 열었는지 한결이는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자, 그럼 나도 확인해 볼까.

    놀의 이빨 5개, 놀의 가죽 10개, 놀의 장신구 8개, 녹슨 할버드 3개. 하급 에테르석 5개. 그리고 영혼석 3개.

    와! 하급이긴 하지만 에테르석을 5개나 얻었다.

    던전 부산물 중에서도 가장 값이 나가는 게 바로 이 에테르석이다. 던전의 힘을 담고 있는 보석. 상급 아이템 제작의 기본 재료니까 아무리 급수가 낮아도 몇백에서 잘 쳐주면 천 단위까지 받을 수 있는 거다. 첫 전투에서 이렇게 많은 에테르석을 얻다니. 게다가 팀을 이룬 게 아니니까 독식이다.

    원래는 던전 하나를 공략하는 데도 여러 명의 헌터가 팀을 꾸려서 들어간다. 그러면 자연히 수익을 나눠야 하고 개인에게 떨어지는 몫이 적어진다.

    급수가 낮고 공략 기여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수익도 바닥을 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성과가 생각보다 훨씬 좋다.

    세컨드 오픈에서 막 나온 몬스터들은 이렇게 후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평소 던전 하나당 나오는 몬스터 수를 생각하면 훨씬 적은 숫자인데도 말이다. 애초에 빌어먹을 시스템이라는 놈은 변수가 너무 많다.

    “음?”

    많은 아이템 중에 특히나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영혼석 3개. 영혼석? 그게 뭔데? 처음 보는 아이템이었다. 내 12년 헌터로 생활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템을, 초보자 몬스터라고 볼 수 있는 놀을 죽이고 얻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 정보 창의 소울 포인트랑 관계가 있는 걸까?

    “한결아, 너 아이템 얼마나 나왔어?”

    “응. 놀의 이빨 14개, 놀의 가죽 20개, 놀의 장신구 9개, 녹슨 할버드 5개, 에테르석 12개.”

    “에테르석 12개?! 미쳤구만! 대박 났네.”

    단둘이서 이 정도 성과라니. 이걸 노리고 한 일은 아니지만,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이대로 한결이랑 둘이서 몬스터를 몇 마리 더 잡거나 최하급 던전 한둘 돌면 반지하 투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회귀자 최고네. 보람 있네!

    “잘 나온 거야?”

    “응, 완전. 원래 놀 정도 몬스터에, 수준이 이 정도면 이렇게까지 많은 보상을 주진 않거든.”

    “원래?”

    “어……. 너는 던전 짐꾼 하면서 그것도 모르냐?”

    “……네가 너무 잘 아는 거지. 던전 짐꾼 일 시작한 거 한 달도 안 됐잖아.”

    “으흠흠, 그런데 너 영혼석이라는 것도 나왔냐?”

    “응? 영혼석? 그런 건 없는데.”

    “진짜? 인벤토리 다시 봐 봐.”

    “진짜로 없다니까.”

    나는 한껏 한결이를 노려보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긴 한결이는 나한테 거짓말 같은 건 안 하니까. 어쩐지 한결이 입이 댓 발 나온 것 같은 찰나.

    투투투투투타타타타. 하늘을 울리며 헬기가 나타났다.

    쉬이이익. 헬기 아래로 로프가 내려오더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잇따라 하강한다.

    테크웨어처럼 보이는 낯설고 묘한 군복과 헬멧. 고글과 마스크로 온몸을 꽁꽁 싸맨 사람들.

    헬기 위에서 조준하고 있는 것인지 빨간 레이저가 바닥과 나와 한결이를 이리저리 훑는다.

    아마 내가 기억하기로 이 사람들은.

    “수도방위군 괴물 특수부대입니다. 괜찮으십니까?”

    한순간 놀 보스와 비슷한 덩치로 보일 만큼 좋은 체격의 군인이 내게 와 묻는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성. 덕지덕지 껴입은 군복 위로도 튼튼한 근육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휴, 이런 사람이 우리 편이라니. 게다가 괴물 특수부대는 병사 대부분이 각성자로 이루어진 부대다. 살았군.

    마침 스킬을 쓸 수 있는 마나가 대부분 바닥난 상태다. 이건 레벨이 오른다고 해서 진짜 게임처럼 풀 충전이 되는 방식이 아니니까.

    레벨 업을 해도 최대 마나 보유량만 늘어나는 시스템이어서 휴식이나 아이템, 스킬을 사용해서 충전하는 수밖에 없다.

    “야, 은영아. 이미 한바탕 쓸렸는데? 그쪽, 일반인이 아니고 헌터인가 봐.”

    다른 쪽에 서 있던 군인이 내 앞에 있던 군인을 부른다. 그와 함께 다른 군인들이 한결이가 바싹 구워 버린 놀의 사체를 보고 있다.

    “……헌터십니까?”

    은영이라고 불린 군인이 자신을 부른 쪽을 잠깐 보고 있다가 다시 내게 물어 왔다.

    “아, 헌터는 아니고요. 방금 막 각성했어요. 밖에서 갑자기 이상한 빛이 팡! 하고 터진 직후에요.”

    “……! 잠시만 계십시오.”

    아무래도 지금은 자세히 설명해 주는 편이 좋다. 이 세컨드 오픈 때문에 헌터 길드나 군인들이나 지금 완전히 비상사태일 테니까.

    은영이라는 군인이 자신을 부른 쪽으로 달려가더니 뭐라고 보고하기 시작했다. 놀 사체를 보고 있던 상급자로 보이는 군인이 그녀의 말을 경청하더니, 곧 내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온 그는 은영이라는 군인보다는 작지만, 나보다 훨씬 좋은 체격이다.

    “방금 각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지하철이 뒤집힐 때요. 저랑 제 친구 둘 다요. 몬스터는 저희가 처리한 겁니다. 뒤쪽에는 일반인들도 많아서요.”

    “…….”

    낮은 목소리가 고민하는 듯 속으로 앓는 소리를 삼킨다.

    그렇지. 이상하긴 하지. 막 각성한 각성자가 놀 무리를 때려눕혔으니. 거기다가 잡몹뿐만 아니라, 보스 몹도 떡하니 죽어 있고.

    조사차 당장이라도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이긴 하다.

    뭐 어쨌든 전 세계적 비상사태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적극적으로 협조할 생각이지만.

    “안 소위가 이분들 안내해서 각성자 관리부에 연결해 드려. 당장은 급성 던전 클리어 작업 완료해야 하니까.”

    그의 등 뒤로, 헬기에서 내린 군인들이 놀이 나타났던 방향 쪽으로 열심히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하늘을 덮은 오로라와 비슷한 색으로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던전 입구. 그래. 다리 한복판에 던전 입구가 생겼었지.

    “네? 성 대위님. 그러면 미리 짜 둔 진영이…….”

    “됐어. 그 정도 변수는 커버할 수 있다.”

    “그런……. 안 됩니다! 지금 상황에!”

    “불복하는 건가?”

    성 대위는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만, 나는 안은영 소위처럼 반대 의견이다. 오늘처럼 세상이 맛탱이가 간 날, 나 때문에 목숨 몇이 오갈 변수를 만들 순 없지.

    “그, 대위님. 괜찮습니다. 저희는 저쪽에 일반인분들 대피시키는 무리에 섞여 가면 되니까요.”

    “…….”

    내가 한참 뒤의 사람들과 도착한 일반 구조대들을 가리켰지만, 성 대위는 말이 없다. 그의 걱정도 알 만하다. 오늘 같은 대격변의 날에 막 각성해서 놀을 바싹 태워 버린 수상한 각성자. 그냥 보내기 껄끄럽겠지.

    좋아, 내 필살기. 무적의 ‘저는 무해한 사람입니다.’ 미소를 발사해 주겠어.

    “걱정되시면 제 연락처를 남겨 드리고, 아니면 연락처 주시고. 직접 보고드리면 되죠. 문제를 일으킬 생각 전혀 없고요. 사태 수습이 먼저잖습니까.”

    “……매뉴얼대로는 아닙니다만.”

    역시. 내 필살 미소에 버티는 사람 몇 없지. 고민하던 그의 목소리가 한결 너그럽다.

    게다가 매뉴얼은 무슨,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한 매뉴얼은 존재하지도 않을 텐데. 그래도 어쩌겠나, 지금은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재난 사태다.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그리고 사실 이 시기의 괴물 특수부대는 꽤 허술한 면이 있었다.

    나는 바지 뒷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이게 그 소동 중에 망가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역시 국내산이 최고다.

    성 대위에게 휴대폰을 넘겨주자 그가 톡톡 번호를 찍어 통화 버튼을 꾹 누른다.

    “꼭 연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은하준입니다. 저쪽은 한결이고요. 아, 민증도 보여 드릴게요. 자.”

    “예. 은하준 씨. 한결 씨. 꼭 연락해 주셔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각성자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 분은 특별한 케이스라는 점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성 대위는 신신당부를 하고 본래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안 소위와 함께 던전 입구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휴. 이제 가자. 한결아.”

    “응? 어디로?”

    “어디긴, 어디야. 병원부터 가야지.”

    정확히는 각성자 관리부에서 운영하는 각성자 전용 병원이었다.

    전용이라기엔 커다란 대학 병원 내에 각성자과가 따로 있는 거였지만. 대한민국에 딱 두 군데 있는 곳. 서울에 하나, 부산에 하나. 충격적이지만, 사실이었다. 지방에서 각성하면 서울이나 부산까지 가야 한다는 거다. 오늘 이후에는 꽤 곳곳에 생기지만.

    어쨌거나 민간인을 이동시키는 군인들을 따라 한결이와 함께 한강을 벗어났다.

    멀어지는 다리와 멀어지는 지하철. 모든 광경이 익숙하지만 새롭다.

    * * *

    “검사 끝났어?”

    한국 대학 병원으로 이동한 한결이와 나는 각성자과로 이동해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이상 없음.

    검진 후 의사 선생님과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오니 대기실에 있던 한결이가 벌떡 일어나 반겨 준다.

    마치 가게 안에 못 들어가서 주인을 한참 기다린 강아지처럼 불안한 얼굴이었다. 아니, 얘 정신력 스텟 언제 오르는데?

    내가 아는 한결이 같지 않고 조금 낯설다. 어린애 같다.

    하긴, 어린애가 맞지 참.

    “응, 문제없대. 너도 문제없지?”

    “어. 다 건강하대. 수치도 좋고. 원래 각성하고 나면 좀 불안 증세가 있다고 하더라고.”

    “맞아. 그러니까 좀 심란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한결이의 어깨를 툭 치자, 힘없이 밀려난다.

    그리고 곧 한풀 기가 죽은 목소리가 따라온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응? 나야, 너보다 형님이잖냐. 하하하.”

    “무슨 개소리야. 너 빠른 연생이잖아.”

    의심스러운 건지, 억울한 건지 모를 눈빛이 따갑다.

    참 나, 칠칠찮던 친구가 좀 의젓하겠다는데. 심란할 것도 많다.

    “원래 목적이던 병원에 오긴 했네. 하하, 요 근처에서 국밥이라도 먹고 들어갈까? 아, 맞다. 아마 여기저기 엉망진창이겠지. 국밥집 안 하려나…….”

    앞장서며 중얼거리는데 어째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다. 돌아보니 결이가 우두커니 서서 뭔갈 보고 있다.

    “응? 한결. 뭐 하냐. 안 오고.”

    “하준아, 저기.”

    하준이의 시선 끝에 있는 건 병원 로비에 있는 커다란 TV다.

    많은 사람이 빼곡하게 앉아 시청하고 있는 건 뉴스였다. 속보가 쏟아져 나오고, 엉망진창이 된 서울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그때…….

    「전국 곳곳에서 일명 세컨드 오픈으로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돌발적으로 수많은 각성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일인 방송 크리에이터가 이 모습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아나운서의 멘트 이후 화면은 마구 흔들리는 조잡한 영상으로 바뀐다. 익숙한 난장판이다.

    「뒤집힌 열차 안, 끔찍한 풍경 너머로 민간인에게 접근하는 몬스터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 등장한 두 명의 각성자.」

    리포터의 목소리와 함께 이내 화면에 나와 하준이의 얼굴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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