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3화 (3/250)
  • 제3화

    제3편

    “뭐?”

    “……왜 이래. 어제 과음했어?”

    툭툭. 걷어차이는 감각에 찌푸린 눈을 겨우 떴다. 필사적으로!

    “너……. 어, 결이…… 너……!”

    나는 경악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죽은 건가? 녀석도 나랑 같이 죽어 버린 건가?

    두 눈에 보이는 건 틀림없는 한결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고개를 흔들어 봐도 내 친구 결이가 맞다.

    이럴 수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이 녀석은 죽으면 안 된다.

    “뭐야, 왜……. 우으븝?!”

    나는 결이의 볼을 냅다 잡고 늘렸다. 말랑해. 촉감이 있어! 역시 이건 꿈이 아니다.

    “제기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분명히 몬스터는 때려잡았는데. 설마 이놈이 나를 따라 자살을……?! 아냐, 아무리 그래도 한결이는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할 놈이 아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무슨 개고생을 하면서 컸는데, 자살이라니. 말도 안 되는 거지! 그럴 수야 없지! 하려면 더 일찍 했었어야지. 지금 와서……. 진짜 자살했으면 죽여 버린다! 헉, 그러고 보니 이벤트 달성률이 다 안 찼었지……. 이 녀석, 그 후에 당한 건가. 하긴 멘탈이 완전히 나갔었지. 이 자식이, S급 팀장이나 되는 놈이 빠져 가지고.”

    “조, 좀, 놔……!”

    결이가 거칠게 나를 밀쳐 냈다. 밀가루 반죽 만지듯 한껏 잡아 뜯었더니 녀석의 뺨이 울긋불긋하다.

    음? 시선이 약간 낮은데? 한결이가 왜 좀 작아진 것 같지? 물론 나보다 크긴 하지만.

    한결이는 나랑 비슷했다가 20살이 넘은 후에도 키가 계속 컸다. 그래서 내가 굉장히 열받았었는데. 게다가 얼굴도…….

    매서운 눈매와 날카로운 코, 조각 같은 턱선은 마치 연예인처럼 보인다. 확실히 결이는 결이가 맞다. 한 번 스친 사람도 잊지 못할 얼굴인데 몇십 년간 봐 온 나는 당연히……. 뺨엔 젖살이 좀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엉?”

    “어엉이 아니고!”

    “뭐지……. 뭔가……. 가장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는 천국, 뭐 이런 건가? 이해가 안 되네.”

    “아침부터 뭔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진짜. 정신 차리고 밥이나 먹어.”

    그제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좁은 방, 우중충한 벽지, 자세히 보니 반지하다. 아깐 왜 그렇게 눈이 부셨던 거지. 아, 형광등이구나.

    “여긴…… 20대 때 살던 투룸인데……. 그럼 별로 행복했던 때도 아닌데……? 보내 줄 거면 좀 돈 많이 벌고 안정적일 때로 보내 주지.”

    “……은하준. 너 진짜 어디 아파?”

    거실로 나가던 결이가 내가 중얼거리는 걸 들었는지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고는 미간을 찡그리며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없는데, 왜 그러지?”

    “한결아.”

    “응?”

    “너 한결이 맞지.”

    “…….”

    “한결이 너 지금 몇 살이야.”

    “……하, 장난 그만 쳐.”

    한결이는 나를 상대하길 그만두고 휴대폰을 꺼내더니 뭔가 검색하기 시작했다.

    “알코올성 치매 그런 건가.”

    웅얼거리는 한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꿈인가? 조금 전까지가 모두 꿈인 건가?

    각성자니, 헌터니, 몬스터니 던전이니 뭐 그런 것들이 다 꿈이었던 건가? 지독한…….

    “흠, 던전에서 나온 방사능? 뭐 그런 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하네……. 가끔 그런 사람이 있대.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그래, 이참에 넌 던전 짐꾼 일 그만둬. 너한텐 너무 위험한 것 같다. 각성자 놈들도 짐꾼을 무슨 개X끼 취급하고.”

    한결이가 중얼거리는 걸 보니, 각성자가 있는 게 맞긴 한가 보다.

    그럼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난 왜 내가 죽는 꿈을…….

    아니, 잠깐만……. 꿈을 하나 더 꿨던 것 같다.

    내가 죽는 꿈을 꿨다가. 의식이 흐려졌고, 두 번째 꿈을 꿨는데. 뭐더라. 무슨 내용이었더라? 아오, 한결이 녀석이랑 실랑이하다 보니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찌잉.

    이명과 함께 두통이 일면서 단편적인 장면 몇 개가 떠오른다.

    퀘스트 실패. 인류 멸망. 피로 물든 세계.

    ‘실패한 거야? 정말로, 다 죽어 버린…….’

    “은하준?”

    “어, 아, 아니…….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가? 이해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혼란스러운 얼굴인 나를 보더니, 한결이가 팔을 잡아끌었다.

    “얼른 세수하고 밥부터 먹어.”

    “벼, 별로 입맛이 없는데…….”

    “입맛 없어도 밥은 먹고 출근, 하아. 아무리 회식이라고 해도 무슨 술을 그렇게 먹어. 너 그렇게 마시는 놈 아니잖아.”

    한결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무슨 일 있는 거야?”

    “결아……. 그, 저…… 우리가 지금 몇 살인데?”

    일그러진 결이의 얼굴은 이내 황당하다는 듯 입이 벌어졌다.

    나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찾았다. 그리고 날짜를 확인했다.

    14년 전이다.

    그러니까, 내 나이가 21살이라는 거다.

    “……그냥 바로 병원 갈래?”

    병원? 병원이라고. 병원 가서 뭘 어떡하게? 내가 지금 정신에 문제가 생긴 건가? 도저히 혼자서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아닌데, 나 정상인데.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과거로 돌아왔다고?

    “어제 현장에서 다쳤어? 그렇지? 왜 숨겨 그런 걸.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하라고 했잖아.”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 병원에 가면……. 아니, 그런데 지금 이게 진짜라고? 꿈도 사후세계도 아니야?

    * * *

    철커덩, 철커덩.

    혼란한 와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지하철 안이다.

    병원에 가고 있는 건가.

    한결이의 부리부리한 눈이 내게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물가에 내놓은 애를 보듯.

    하긴, 그래. 지금 안심이 되면 이상하지.

    21살, 이때도 우리에겐 서로밖에 없었다.

    10살, 보육원에서 처음 만난 그날 이후로 말이다.

    나는 8살에, 한결이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고아가 됐다.

    모든 시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있었던 보육원은 그리 질 좋은 곳이 아니었다. 짧게 말하자면 무척 잔인하고 차가운 곳이라 할 수 있을 거다.

    그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우리는 17살에 함께 도망쳤다.

    유명한 만화에서 보길,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던가.

    죽기 살기로 도망친 후에도 그야말로 개고생만 했다. 거처 없이 노숙으로 시작했고. 신원이 불분명한 미성년자를 써 주는 곳도 별로 없었고……. 하지만 우리는 살아야 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구했다.

    돈을 벌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했다.

    그땐 정말이지 들개처럼 살았다.

    ‘21살이면…… 그래, 그나마 숨 좀 트게 된 때네. 반지하라도 따로 쓸 수 있는 방도 구하고.’

    심각한 한결이 표정을 보니, 얼른 정신 차리고 싶긴 한데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은 간단한 것부터 차근차근 정리해 보기로 한다.

    기억나는 걸 하나하나 되짚어 보다 보면 생각이 정리될지도 모르니까.

    ‘우선 여기는 던전 포털이 있고, 각성자가 있는 세계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던전으로 통하는 포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이고 들이고, 바다고 건물 안이고 할 것 없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포털은 그냥 나타난 것뿐이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고가 발생했다.

    나도 이때 부모님을 잃었다. 도로 한복판에 갑자기 던전이 생겨 버렸으니, 교통사고가 안 일어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국가들은 이 이상 현상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군대를 보내 던전에 관해서 조사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몬스터가 있었다. 현대의 무기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던전 내부로 들어가서야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들어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아도 정부는 계속해서 조사를 진행했다.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알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그러던 중 각성자가 나타났다.

    초능력을 사용하게 된, 신체 능력이 강화된 인간.

    신인류처럼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국한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평범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초인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물론 처음에는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국가는 그들을 연구했고 그들의 힘이 던전 안에서 통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각성자들은 던전 안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가 됐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얻어 낸 물건들이 아주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각성자들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얻는 전리품들.

    몬스터의 사체, 시스템이 주는 아이템.

    몬스터의 사체는 버릴 것이 거의 없었다. 가죽, 껍데기, 뿔, 발톱, 살코기까지.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튼튼하고, 지구가 가진 유한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유니크하기까지 했으니까.

    그저 장식품으로서도 수요가 어마어마했다. 세상이 거의 망할 뻔했는데도 부자들은 희귀품 수집에 열을 올렸다. 코끼리가 멸종하든 말든 상아를 얻기 위해 밀렵을 하고, 기후 위기로 녹은 얼음 속에서 매머드의 뿔을 파냈던 것처럼.

    게다가 사냥으로 얻게 되는 아이템. 게임 시스템처럼 던전 사냥 중에 보상으로 각종 아이템을 얻게 되는데, 그건 그야말로 이 지구에는 없는 특별한 아이템이었다.

    바깥의 무기는 던전 안의 것들에게 소용이 없지만, 반대의 경우는 달랐다. 안에서 얻은 강력한 아이템들은 던전 안에서도, 그리고 던전 밖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각성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물건도 있었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다.

    바깥에서도 사용 가능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 말인즉, 인간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

    시스템과 던전, 몬스터와의 전쟁뿐만이 아니라 인간들끼리의 전쟁에도 각성자는 없어서는 안 될 강한 무기가 되는 거다.

    각성자는 살아 있는 핵무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21살……. 지금은 던전에 관해서 조사가 거의 안 됐을 때 아닌가. 정부에서 정보 제재를 가해 일반인들은 각성자에 관해서도 잘 모르고, 물론 회귀 전…… 꿈……. 여하튼 그땐 이미 던전 부산물로 많은 사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을 때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심장이 철렁했다.

    ‘잠깐만, 내가 21살이라고? 지금 몇 월이지? 오늘, 오늘이 며칠이더라?’

    휴대폰을 확인한 나는 곧장 한결이가 멘 백팩을 세게 움켜쥐었다.

    “은하준?”

    당황하는 한결이 얼굴 뒤로 한강이 보인다. 익숙한 풍경. 그리고 내 뇌리에 박혀 있는 광경. 아른한 기시감이 선명하게 겹친다. 그래, 기억해. 이날을 잊을 수 없지. 이 시간을 잊을 수 없지.

    이날은 내가 각성하던 날이니까.

    어떻게 또 이렇게 이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 있을 수가. 그걸 또 왜 인제야! 사람 운명이라는 건 쉽게 바꿀 수 없는 걸까.

    나는 남은 손으로 봉으로 된 손잡이를 힘껏 끌어안았다.

    “버텨!”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전철이 마구 흔들렸다.

    카가가가가!! 끼이이이!!

    전철이 탈선하는 소리가 선명하다. 관성과 충격에 사람들의 몸이 사방으로 튀고 날아간다.

    “꺄아악!!”

    “으악!”

    우당탕, 쿠당탕! 나는 손잡이와 한결이 모두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양팔 전부 부러질 것처럼 아프다.

    취이이이…….

    충격이 멈추고 상태가 소강되지만, 곳곳에서 신음과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

    “으, 으아아……. 아아아…….”

    “파, 팔이 부러졌어…….”

    “아파, 아파! 아파!”

    “도, 도와주세요. 저 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누가 119에 신고 좀…….”

    전복된 전철 내부는 이미 끔찍한 꼴이다.

    사방을 구른 물건들로 엉망진창.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는 사람, 목이 꺾여 이미 죽은 사람. 박살 난 창문 밖으로 반쯤 걸쳐진 사람.

    재난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것처럼 처참하다.

    ‘진짜다, 그때랑 똑같아. 설마설마했는데. 회귀? 뭐 그런 건가? 정말로? 대체 이건……. 그런 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정말로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게…….’

    머릿속이 어지럽다. 더 빨리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지금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침에 휴대폰을 확인하고 곧장 알아차렸더라면…….

    하지만 어떻게 이보다 더 빨리 눈치채냐고! 난 평범한 인간인데, 사실 아직도 상황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정말 회귀나 뭐 그런 거라고? 이게 영화도 아니고. 내가? 왜?

    하지만 이제 더는 의심할 수 없다. 전신을 강타하는 통증이, 이건 꿈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크으으윽!!”

    “은하준!! 괜찮아?”

    한결이가 내 안색을 살피며 부축한다. 그리고 그 뒤로, 전철의 창문 너머로 서울의 하늘이 일그러지는 게 보인다.

    마치 거대하고 두려운 것이 집어삼키듯이.

    하늘이 바다처럼 일렁이고 있다. 하늘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색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낯선 빛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약한 파동 같은 것이 피부를 찌르르 울렸다.

    본능이 깨닫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두려움으로 모든 공간이 채워지고 있다는 걸.

    “세컨드 오픈…….”

    “뭐라고? 세……. 저, 저게 뭐야.”

    13년 전 처음 등장했던 던전은 몬스터를 뱉어 내지 않았었다.

    오직 각성자가 던전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었다. 하지만 오늘부로 던전은 완전히 바뀐다.

    던전 속의 것들도 바깥으로 나올 힘을 얻은 것이다.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처음 던전 포털이 생겼을 때보다 더 많은 죽음이 이 땅을 뒤덮을 것이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이 알 수 없는 법칙은 선심을 쓰듯 인간에게도 하나의 패를 주었다.

    이전까지는 극소수이던 각성자가 대량 발생하게 되는 것.

    그래. 오늘을 기점으로 나를 비롯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각성했다.

    바로 옆에 있던 한결이도.

    마주 본 결이의 눈동자에 하늘의 오로라와 같은 빛이 맴돌고 있었다. 초능력자의 힘, 각성의 증거. 한결이가 바라보는 내 눈에도 그 빛이 보일 것이다.

    각성이 완전히 끝나면 이 묘한 빛은 눈동자에서 사라지겠지만.

    소름이 끼치며 낯선 기운이 전신을 타고 오른다.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정전기가 튈 것처럼 온몸의 솜털이 바짝 섰다.

    그리고 VR 게임이라도 하듯, 눈앞에 반투명한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첫 번째 각성을 축하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