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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화 (2/250)

제2화

제2편

몇 번 눈을 깜빡이는 시간 만에 몬스터의 머리 위에 도달한 결이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냈다.

츠츠츠츳!! 손잡이 위로 검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손잡이 위로 뻗치는 번개 그 자체가 결이의 검이었으니까.

결이는 그대로 무시무시하게 요동치는 번개를 휘두른다.

콰광! 콰과광! 쿠과과광!!

엄청난 굉음과 뜨거운 바람, 연기.

‘제대로 들어갔다. 저 공격에 당하면 어지간해서는…….’

하지만 뒤이어 펼쳐진 광경은 눈을 의심하게 했다.

치익, 치이익. 삐우우우-!

잠시 멈췄던 불쾌한 음악의 템포가 조금 더 빨라지고, 시커먼 연기를 뚫고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런, 씨.”

기기긱, 놈을 붙들어 놓은 내 사슬이 버거운 소리를 내더니 타앙! 타앙! 결국 끊어진다.

샹들리에 몬스터의 아랫부분에 잔뜩 달린 크리스털 부분이 고속 회전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결국 드릴처럼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막아!”

결이의 명령과 함께 몬스터를 향한 팀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칼날 같은 바람이나 번쩍이는 섬광들, 화염. 또 그들을 뒤에서 서포트하고 있는 사람들.

부웅 하고 몸이 들리는 느낌과 함께 결이의 얼굴이 보인다. 이동기 스킬을 사용해 나를 받아 낸 거다. 짜식, 하여간 구름의 아들 스킬은 진짜 빠르다니까. 부럽다. 난 왜 저런 이동기 하나 없어서는…….

쿠우웅!!

몬스터는 우리 팀원들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듯 전진하여 조금 전 내가 있던 장소를 박살 냈다. 한결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완전히 다져졌겠지.

“젠장! 팀장님! 공격이 하나도 안 먹힌다고!! 염화맹편(炎火猛鞭)!!”

염태규가 손에서 용처럼 사나운 불 장풍을 뿜어내며 악을 썼다.

‘놈의 공격 패턴을 알아내야 해. 늘 하던 대로. 가장 빨리 파악해서 전략을 내놓는다. 할 수 있어.’

나는 결이에게 들려 공중에 있는 채로 눈으로는 팀원들의 공격을 받아 내는 몬스터의 공격 형태와 패턴을 집요하게 읽어 들였다.

아무리 D급이라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 있다. 패턴 분석과 약점 캐치 후 가장 효율적인 전투로 이끄는 것.

아무리 짐짝 취급을 받아도, S급 헌터의 인맥빨이라 욕먹어도. 내가 당당하게 한결이 곁에 있을 수 있는 이유다.

“결아, 저놈 촉수가 있어. 아직 공격 패턴은 확실하지 않지만, 최대한 원거리 공격으로 끌고 가자.”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 샹들리에 속에서 꿈틀거리는 촉수를 발견하고 곧장 한결이에게 설명했다.

“저런 놈들은 촉수가 닿는 범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해. 우리가 촉수 달린 놈들 상대할 때 쓰던 전법 B타입으로 가 보자. 그리고 내가 봤을 땐, 촉수 뿌리의 중심 쪽을 공격할 때 훨씬 예민하게 반응해. 거기가 약점일 확률이 높겠어.”

“R-9팀! 뒤로 백!!”

한결이는 곧장 팀에게 명령을 내렸다.

팀장은 결이지만, 우리 두 사람의 팀워크에선 항상 내가 주도하는 편이었고 결이는 내 의견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통찰의 눈 쓸게. 원거리 공격으로 약점 바로 체크하고 불길한 예감으로 디버프 건 순간에 다시 공격…….”

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오싹함에 귀가 본능적으로 꿈틀거렸다. 순간이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슬로 모션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 멀리 있던 거대한 몬스터가 어느새 우리 둘의 뒤에 바짝 붙어 있다.

‘순간 이동이라고? 저 거대한 놈이 공중으로.’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이 거리는 위험하다. 놈은 정확히 우리를 노리고 있고, 크리스털 밑에서 꿈틀거리던 촉수가 폭발하듯 튀어나온다.

특별한 것 없는 공격 같지만, 너무 빠르다. 한결이의 등으로 바로 꽂히는 공격. 나는 결이의 어깨 너머로 그걸 정면에서 보고 있는 거다.

순식간에 궤도가 그려졌다.

이건 제대로 꽂힌다.

망설일 수 없었다. 아마 본능적으로 행동했던 거 같다.

영혼을 쥐어짠 듯한 제일 나은 선택.

공중에서 한결이를 밀치고, 억압의 손길을 써서 그 애를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순간이었지만, S급 헌터보다 반응 속도가 빨랐다니. 아마 이후로 평생 내 자랑거리가 될 거다.

“은하……!!”

촤아악!

당황스러워하는 한결이의 표정을 보며 날카로운 감각이 온몸을 꿰뚫는 것을 느꼈다.

공중에서 떠 있을 수 있는 스킬이 없는데도, 내 몸은 허공에 떠 있는 채다. 시선을 살짝 내리니 웬 시커먼 게 배를 관통한 게 보인다.

그 크기가 사람 팔뚝보다 굵은데 현실감이 없어서 입가가 씰룩거렸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는데.

푸촤악! 순식간에 검은 가시 같은 것이 도로 내 몸에서 빠져나가고, 나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이상하다. 순간 이동이라고? 갑자기 그런 스킬을? 하긴, 전혀 모르는 몬스터였으니까. 게다가 이 거지 같은 던전에선 물리 상식을 거스르는 놈들도 너무 많고, 공격을 예상할 수가 없을 수밖에. 이런 놈과 갑자기 싸우라니. 하지만 촉수 공격 자체는 단순해. 순간 이동 스킬만 조심하면 돼. 일단 딜 2팀으로 뒤를 막고…….’

터억. 무엇인가 부드럽게 내 몸을 받아 내는 감각. 아마 한결이일 것이다.

아직 소울메이트로 연결된 채라서 익숙하고 따뜻한 감각이 나를 위로한다.

“은하준!!”

삐이-.

하지만 이명과 함께 끔찍한 통증으로 사고가 마비되어 버린다. 뭔가…… 평소랑은 다른 느낌이고, 좀 불길하다.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졌다.

* * *

“은하준!!”

“커흑!”

다시 한결이의 목소리에 눈을 떴을 때 이곳이 병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끝나고 다행이다, 수고했어. 따위의 말이 오가는.

‘잠깐 기절했나.’

하지만 살벌한 던전 안의 풍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결이 등 뒤로 보이는 몬스터는 검은 김을 뿜어내며 쓰러져 있었다. 땅에 처박힌 것도 같고, 반으로 부서진 것도 같다.

“……와, 해치웠구나. 이야, 역시 우리 팀장님 진짜 대단하시다. 멋져.”

“왜 그랬어! 왜!!”

“아이구……. 왜 이렇게 화를 내. 잡았으면 됐지.”

결이의 고함에 귀가 왱왱 울린다.

세상에. 정말 대단하네.

그래, 결이는 ‘지나친 복수자’라는 스킬을 썼을 거다.

받은 대미지를 곱절로 갚아 주는 스킬인데. 나랑 소울메이트로 연결된 상태니까, 내가 받은 대미지까지 반격 대미지로 환산하고. 또 그게 피해 입은 대상자의 퍼센티지로 계산하니까. 죽을 만큼 타격 입은 나 때문에 반격 대미지가 엄청나게 불어나서…….

사실 이 스킬은 이전엔 거의 사용을 못 했던 거다.

한결이가 그런 식으로 대미지를 끌어올리긴 싫다고. 한사코 내게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 냈었으니까.

하기야 헌터 생활 10여 년을 하고도 나는 거의 물몸이라, 솔직히 S급인 한결이 옆에 붙어 있기는 목숨이 간당간당했지. 결이도 항상 나를 신경 써야 하고. 여러모로…….

그래도 이번엔 이 스킬이 저 무시무시한 신규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거다. 드디어!

다행이다.

도움이 되어서.

“하준……. 은하준!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내가 무전도 쳤고 곧 힐러가…….”

「치칙…… 동쪽 제2부대 전멸. 웬 처음 보는 몬스터가……. 치지직. 지원을……! 치지직.」

힐러를 불렀다고? 우리 팀에도 힐러가 있잖아.

왜 따로 무전을 친 거지? 그러고 보니 주위에 모여든 팀원이 하나도 없다. 팀장이 이만큼 멘탈이 터졌으면 누구라도 챙겨야 할 텐데.

“결아, ……우리 팀원들은?”

“그딴 거 알 게 뭐야.”

“……장난하냐. 인마, 너 팀장이잖아.”

책임감 없는 소리에 꿀밤을 놓고 싶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녀석이 쥔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은 별로 희망적이지가 못하다. 잡음과 비명이 연이어 삐져나온다. 힐러라니, 구조라니. 그거 안 될 거 같은데?

나를 부축한 한결이의 손이 무척 떨리고 있었다. 녀석은 나를 쥐지도 놓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한다. 네가 자꾸 그러니까 나도 덜컥 겁이 나잖아.

나, 죽는 건가?

“왜 그랬어……. 왜 그런 짓을……. 왜…….”

그래, 그러게. 왜 그랬지. 내가. 제대로 된 방어 스킬도 없는 주제에. 왜.

왜 그랬을까. 좀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조금만 눈치를 빨리 챘더라면, 조금만 스킬을 빨리 썼더라면, 내가 너를 밀어내지 않고도 우리 둘 다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까? 피를 너무 많이 쏟았는지 제대로 계산이 되질 않는다.

우리가 함께 이길 방법이 있었을까?

멍청하게 그냥 눈을 깜빡일 뿐이다.

“왜 나 대신…….”

“……넌 내 가족이잖아. 하나밖에 없는 내 가족.”

더듬더듬 말했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이건 헛소리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가족이라곤 한결이밖에 없다. 그리고 한결이도…….

마주치던 새카만 눈이 왈칵 일그러진다.

“그래도 우린 남이잖아.”

쿵.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고, 한결이의 말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울린다.

“진짜로 피를 나눈 것도 아닌데, 왜 목숨 같은 걸 바쳐! 왜 대신 죽어!”

이렇게 화가 난 한결이는 오랜만에 본 것 같다.

물론 그 애 말도 틀린 건 아니다. DNA로 따지면 완전히 남이다. 하지만 혈연이 아니더라도, 가족은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남이라고 말하는 한결의 말에 마음이 상한다.

죽어 가고 있는 와중인데도 그런 게 서운하다니.

“피 그깟 게 중요하냐, 우리 사이에……. 쿨럭!”

기침과 함께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한결이의 얼굴은 죽을 것처럼 창백해졌다. 진짜로 죽어 가는 건 나인데도 말이다.

아, 진짜 죽는 건가. 이제는 아프지도 않고 그냥 엄청 춥다. 그리고 엄청, 생각보다 무섭네.

“콜록, 컥!”

“헉, 하, 하준아. 그만. 그만 말해. 아니지, 말을 해야 정신을 잃지 않으려나? 어, 어떡하지? 어떡해야 해? 나 모르겠어, 하준아. 죽으면 안 돼. 제발……. 네가 가르쳐 줘야…….”

아이고, S급 각성자에 헌터에 1개 팀 팀장인 녀석이 멘탈이 탈탈 털렸네.

어떡하려고 그러니. 하여튼 은근히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니까. 그래, 한결이는 꼭 이럴 때가 있다. 언제나 강하고 굳세면서. 그런 애를 다독여 보려고 소리를 쥐어짜 냈다. 하지만 딱히 쓸모 있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바보 같은 중얼거림뿐이다.

“응……. 그래, 결아…….”

“왜 이런 일이……. 왜…….”

“응, 괜찮아…….”

눈이 감기고 의식이 멀어졌다. 한결이는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왜냐고 되묻고 있었다.

왜라니. 왜…….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울 때 내게 빛이 되어 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고.

가장 춥고 외로울 때 언제나 곁을 지켜 줬으니까.

다시없을 내 소중한 친구이자, 마지막으로 남은 내 가족이니까.

늘 나를 구해 줬으니까.

나도 한 번쯤은 너를 구해 주고 싶었다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은데 이젠 정말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너 결혼해서 애 낳는 거까진 보고 싶었는데.’

[마지막 전투 달성률 95%]

눈앞에서 시스템 창이 깜빡거린다. 큰일이네. 꽤 많이 채워지긴 했지만, 아직 달성률이 모자라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도 없는데. 결이를 위해 분석해 줄 수도 없는데.

나 없이도 한결이가 혼자 잘해 낼 수 있을까?

그래. 그렇겠지. 아마 그럴 거야.

넌 강하니까, 그래야만 한다.

‘한결아……. 살아야 해. 넌 꼭 살아남아야 해.’

그렇게, 나는 죽었다.

* * *

[마지막 전투 달성률 95%]

[마지막 전투 달성률 94%]

[마지막 전투 달성률 93%]

[마지막 전투 달성률 92%]

* * *

“야, 은하준!”

“……응?”

엄청나게 부신 눈을 겨우 뜬다. 아니, 못 뜬다. 엄청나게 눈이 부시다. 눈알이 터질 것 같은데? 여긴 천국인가?

그리고 나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듣고 말았다.

“뭐 하고 있어. 출근해야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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