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1화 (1/250)

SSS급 소울메이트

제1화

“전방 뚫리지 마라!”

빛나는 황금 슈트를 입은 남자가 외친다.

남자가 입은 슈트는 히어로물이나 SF 영화에 나올 법하다. 근미래적이면서도 멋들어졌다.

어쩐지 이름은 골든 라이언, 뭐 그런 이름이 붙을 것 같은 디자인. 헬멧을 쓰지 않은 그의 머리가 정말로 사자의 갈기처럼 풍성하게 흩날리고 있다.

그의 주변으로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듯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눈으로 좇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간다.

고도로 훈련받은 특수부대원이라도 저런 움직임을 낼 수는 없으리라. 흘끗 봐도 일반인의 움직임이 아니다.

그렇다. 그는 일반인이 아니다.

각성자나 헌터라고 불리는 존재.

영화나 만화나 소설에 나올 것 같은, 이능력을 사용하는 특수 인류.

그러니까 한마디로 초능력자다.

“얼씨구, 저 아저씨 또 오버하네.”

피식 웃으며 그와 함께 전장을 누비고 있는 나 역시 일반인이 아닌 각성자다.

“음?”

키르르륵!!

끔찍한 모습의 곤충을 닮은 거대 괴생명체가 바로 내 발아래에 있는 흙바닥에서 솟아올라 앞을 가로막는다.

깜짝 놀랐지만, 각성자의 감각은 이미 평범한 인간의 수치를 훨씬 뛰어넘은 초인. 빛처럼 빠른 반사 신경으로 스킬을 발동한다. 게다가 놈의 특성이나 약점 같은 건 이미 알고 있다.

“억압의 손길!”

쉬리리릭, 차르륵! 반투명한 에너지 형태의 사슬이 내 등 뒤에서부터 튀어나와 순식간에 몬스터의 몸을 결박한다. 이 녀석은 특히나 꼬리 부분이 약해서 이쪽을 결박시키면 꼼짝도 못 한다.

“케에엑!”

버둥거리는 몬스터 너머 저 멀리 솟아오르는 화염과 기괴한 비명, 정체불명의 폭음이 이어지고 있다. 아비규환의 아수라장.

초능력을 가진, 이능력을 다루는 각성자들이 누비는 전장.

이곳은 던전 안이다.

바깥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전혀 상관없는. 어떤 차원의 틈새 같은 곳. 현실의 총, 폭탄, 미사일 같은 무기는 이 던전 안에서 효과가 전혀 없었다.

이곳에서 먹히는 건 오직 각성자의 능력뿐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초능력을 가진 인간인 ‘각성자’는 괴물들과 괴현상이 즐비한 던전 안에서 ‘스킬’이라는 초능력을 이용해서 이들을 소탕…….

“우중격침(雨中擊針).”

붙들어 둔 몬스터의 머리 위에서 빛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장검의 잔상이 일어난다. 아니, 잔상이 아니다. 실재하는 각성자의 힘, 스킬이니까.

검 하나가 성인 키만큼 커다랗고, 그 개수가 수십.

파직, 파지직! 콰콰콰쾅!! 곧이어 비처럼, 벼락처럼. 거대한 검들이 쏟아진다.

얼핏 사마귀를 닮았던 몬스터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겨 버렸다. 한순간에. 놈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강력한 스킬 시전 덕분에 거친 바람이 일어 흙먼지에 머리가 마구 날리고 인상이 찌푸려진다.

“은하준, 방심하지 마.”

어린아이를 다루듯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곁으로 바짝 붙는다.

방금 그 무시무시한 스킬을 사용한 각성자다.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커다란 키에 사나운 눈매가 올려다보인다. 겉보기에도 강인해 보이는 육체를 가진 남성이다.

“제가 언제 방심했다고 그러십니까! 방금도 혼자 처리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한결 팀장님.”

군인이라도 된 듯 거수경례를 하자,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이 미묘하게 찌푸려진다.

“……봐, 또 그렇게 장난스럽게.”

“예이, 예이. 우리 믿음직스러운 팀장님 옆에 바짝 붙어 있을게요. 안 다치게~. 햐, 이런 게 바로 인맥빨인가? 나는 우리 한결 팀장님만 믿어용.”

“은하준 팀원.”

사뭇 진지한 음성이 들려오지만, 분위기가 얼어붙지는 않는다. 그야…….

“왜용? 팀장님? 버프라도 넣어 드릴까용? 제가 공격 스킬은 허접해도 버프 디버프는 또 기깔 나게 넣잖아용.”

“진짜, 그런 이상한 말투 쓰지 말랬지. 무슨 30대가 그런 말투를 쓰냐.”

우리는 굉장히 막역한 사이니까. S급 각성자 헌터. 한결 팀장은 내 친구다.

함께 지낸 세월이 얼추 30년은 됐으니 소꿉친구나 죽마고우, 베스트 프렌드 같은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거다.

“얌마. 너도 30대면서 모르는 척은! 다 똑같애! 그깟 나이 좀 먹는다고 말투가 변할 것 같아? 짜식이! 요즘은 말이야! 인터넷도 많이 발달하고 그래서 어른 말투 아이 말투 이런 게 없어요! 나는 쉰 먹고 나중에 칠순 잔치 할 때도 이 말투 쓸 거다. 사람 변하기 쉽지 않어.”

일부러 발끈하는 척을 했더니 녀석이 피식 웃는다. 하여튼 내가 애같이 굴면 저도 좋아하는 주제에.

한결이는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내가 오버하듯 난리를 피우면 훨씬 편해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까.

“알겠는데, 나 진짜 농담하는 거 아니야. 벌써 던전에 투입된 각성자 65%가 연락 두절이래.”

한결의 말에 나는 얼굴을 굳히고 눈앞에 떠 있는 글자를 보았다.

[마지막 전투]

난이도: ???

인류의 존속을 걸고 최후의 전투를 치르십시오.

가치를 증명하십시오.

▶성공 보상: 생존

▶실패 페널티: 인류 멸망

달성률 89%

반투명한, 마치 VR 게임에서 나올 것 같은 화면과 메시지가 보인다. 이건 각성자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시스템 창’이다.

각성자가 된 후 일반인과는 달라진 신체 능력이라든지, 특수 능력인 스킬에 관한 설명이라든지. 또 가끔은 이렇게 발생하는 이벤트 알림까지 보여 준다.

각성자들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면 마치 게임처럼 변해 버렸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별한 힘을 얻고,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을 올리고.

게임, 그러나 진짜 목숨을 건 게임.

“참 나, 급수도 한참 낮은 D급 주제에 선두에서 까불거려. 민폐잖아.”

“쉿, 조용히 해. 팀장님 절친인 거 몰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언제까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닐 셈이시래?”

“그깟 데이터랑 전술은 우리끼리도 충분히 짤 수 있어. 아니, D급 대신에 A급 하나만 더 붙어도 그딴 건 필요도 없지.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으니까.”

“야! 조용히 해. 그러다가 듣겠어.”

금방 쫓아온 팀원들끼리 작은 소리로 떠들어 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미 다 들렸다. 아니, 뭐 일부러 들으라고 한 소린가?

“이런 중요한 순간에도 저런 D급을 데려오다니.”

“염태규. 조용히 하지?”

몬스터를 살펴보려 약간 떨어져 있던 한결이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제가 뭐라고 했나요?”

염태규는 뻔뻔한 얼굴로 씩 웃어 보이고는 한결이가 등을 돌리자마자 분명한 적대감을 드러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확실히 우리 R-9팀원들의 평균 등급은 A급이니, 내가 못마땅하게 느껴질 거다. 솔직히 말해서 급수가 안 맞는 건 맞는 말이다. 할 말 없지.

5년이나 함께 팀원으로 움직인 염태규 역시 A급 중에서도 상당한 공격력을 지닌 우수한 헌터다. 처음부터 나와는 영 인연이 아니었지만.

「치칙. R-9팀, 서쪽 지원 좀 부탁합니다. 밀리고 있나 봅니다. 대답도 제대로 안 하네. 우리도 여기 정리하고 그쪽으로 갈 테니까.」

불안한 무전이 울리고 팀장인 결이를 따라 R-9팀 전체가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R-9팀은 각성자 헌터 20여 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성자는 사람마다 그 능력과 스킬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공격 특화, 방어 특화, 치유 특화, 서포트 특화.

MMORPG.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을 비유로 들자면 전사, 마법사, 궁수, 성직자처럼 직업이 나뉘지 않는가.

그처럼 각성자들도 정말 다양한 특성을 가졌다. 그러니 특성에 맞춰 팀을 꾸리고 전투력을 높이는 것이다.

내 경우는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다. 좋게 말하면 공격도 방어도 남을 서포트해 주는 것도, 이것저것 잔뜩 할 수 있는 건데 나쁘게 말하면 죽도 밥도 아니랄까.

약간 애매한 능력이다. 주인공은 못 되고, 주인공 친구 정도 할 수 있는? 아니다. 주인공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 정도? 아니면 주인공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지인 정도?

게다가 각성자 등급도 D급.

어렸을 땐 그냥 주위에 믿을 만한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었으니까. 헌터로서 꽤 자리를 잡아 갈 때쯤엔 애매한 능력의 나를 챙기는 건지 뭔지, 한결이 녀석이 굳이 나를 페어로 고집했다. 내 스킬은 미약하더라도 확실한 도움이 되는 부류긴 하니까.

이 나이가 되도록 합을 맞춰 온 짬도 무시하지 못할 거다.

여하튼 화끈한 탱커 겸 딜러인 내 친구, 한결과 나는 손발이 잘 맞았고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하다.

물론 아까 같은 악담도 항상 세트로 따라오지만.

“참 나, 서쪽이면 진 팀장님 담당 아니야? 그쪽은 항상…….”

서쪽을 향해 질주하던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야…… 이게 뭐냐?”

눈앞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번쩍이고 있다. 수백 개의 초와 크리스털이 반짝이고, 그 위로는 뭔지 모를 태엽과 기계장치가 증기를 뿜어내고 있다.

문제는 여기가 베르사유 궁전이 아니라 던전 안이라는 거지. 이게 달려 있을 천장도 없다고. 허허벌판이니까.

그 높이만도 3층 건물 크기.

스피커 기능이라도 있는 건지. 오래된 고딕 무비에 나올 것 같은 요상한 음악도 흘러나왔다. 불길함에 전신이 오싹해진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몬스터’의 외양에서 좀 벗어난 모습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건데?”

물론 무생물 형태의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녀석은 뭔가 달랐다. 그냥 분위기만 불길한 게 아니다.

놈의 앞에는 시체의 산이 쌓여 있다.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고,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는 게 내 신조지만. 더는 여유로운 척을 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시체 더미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진 팀장인가. 제기랄.

뭔가 잘못됐다.

던전에는 등급이 있고, 등급에 해당하는 난이도의 몬스터가 나와야 했다.

마지막 전투라는 퀘스트가 뜬 시점에서 그걸 따지는 건 무의미한 것 같지만…….

‘뭐야, 저거? 신규 몬스터인가? 지난 5년 동안 신규 몬스터가 발견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정말로 뭔가 벌어지는 거야? 멸망이니 최후니 하는 게 정말이라고? 그딴 말도 안 되는 페널티는 단 한 번도…….’

우우웅. 비비빕, 기기기긱……. 귀를 가르는 꺼림칙한 선율이 불안감을 고조시키는데 문득 멈춰 있던 놈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은하준!”

“어, 응!”

결이의 외침에 곧장 정신을 차리고 스킬을 시전한다. 그러는 와중에 팀원들도 결이가 지시하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울메이트!’

파츠츠츠! 내 몸에서 희뿌연 연기가 일더니 얇은 끈이 되어 결이의 몸에 들러붙었다. 그 모양이 마치 종이컵으로 만든 전화기를 떠올리게 한다.

종이컵 바닥에 구멍 뚫어서 실로 연결한 그거. 물론 내 눈에만 보이는 거지만.

비유는 좀 이상해도 이건 내 각성자 능력 중 꽤 쓸모 있는 스킬이다. 스킬로 연결된 상대의 스텟 능력치 5%, 스킬 능력치 5%를 상승시키거든.

참 나, 솔직히 나쁘지 않은 스킬이거든? 우리 결이는 S급이니까, 5%만이라도 엄청난 거라고! 물론 우리 팀원들에게는 이 스킬 정도론 내가 한결이 옆에 붙어 있는 이유로 부족할 거다. 아이템으로 메꾸고 공격력이 강한 헌터를 하나 더 데려오고 싶겠지.

“억압의 손길! 말뚝박기!”

곧장 에너지 형태 사슬이 몬스터를 붙잡기 위해 땅에서 솟아오르고, 반투명의 거대한 창이 하늘에서 내리꽂힌다. 두 가지 스킬이나 사용한 것이지만, 놈에게 들어간 대미지는 0이다.

둘 다 디버프 스킬이기 때문. 억압의 손길은 놈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말뚝박기 스킬의 살벌한 창은 상대의 HP, 그러니까 체력 대신 MP, 마력을 깎는다.

하지만 대미지를 하나도 주지 못해도 괜찮다.

‘가라.’

내가 기다리는 것은 따로 있으니까.

“구름의 아들.”

자랑스러운 내 친구, 한결의 모습이 점멸하면서 높이 솟아올랐다. 짧게 내려치는 벼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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