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5 외전 =========================================================================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많이 피곤해 보이네. 훈련이 힘들었니?"
"아뇨. 그건 아닌데..."
어머니와 살짝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앤디. 에리카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아뇨. 별 건 아닌데...아빠는요?"
"아빠? 아빠는 지금 잠깐 외출했는데."
지금 출타 중이라고 이야기하자 앤디가 한숨을 푹 쉰다. 에리카는 앤디의 손을 잡고 소파로 데려갔다.
"무슨 일인데 그러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한 번 이야기해 보렴."
"...그게요."
억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어. 드디어 왔구나 데이빗 주니어."
"이봐. 앤디라는 이름이 있는데 그렇게 부르면 실례지. 아무튼 반가워. 브램 카윗이야. 이 팀의 주장이기도 하지. 어려운 점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해."
앤디의 퍼스트 팀 합류는 꽤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일단 아버지가 데이빗 장이라는 사실이 컸다. 현재 리버풀의 주축 선수로 뛰고 있는 많은 이들은 데이빗 장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이들이다. 그만큼 데이빗 장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를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아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지대했다. 물론 앤디가 팀 내에서 손 꼽히는 유망주라는 사실도 중요한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앤디 장이라고 해요. 편하게 앤디라고 불러 주세요."
"그래. 뭐, 퍼스트 팀은 처음이겠지만 리저브와 크게 다를 것도 없어. 우리가 하는 건 어차피 축구거든. 쫄 필요도 없고 긴장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야. 알겠지?"
선배들이 돌아가며 따뜻하게 격려해 준다. 덕분에 적응 여부를 놓고 걱정 했던 앤디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렸다. 그리고 퍼스트 팀을 이끄는 감독, 스티븐 제라드가 도착했다.
"다들 이미 인사를 나눈 것 같군. 잘 알겠지만 앤디 장이다. 잭 그 친구가 부상을 당한 사실은 다들 알고 있겠지? 우리는 앞으로 석달 동안 그 친구를 볼 수 없게 되었고 그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올라오게 되었지. 퍼스트 팀이 처음인 친구이니만큼 다들 잘 대해주길 바란다. 앤디,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언제든 이야기하도록. 불편한 점이 있으면 숨기지 말라는 거야. 알겠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며 바짝 군기가 든 모습을 보여주는 앤디, 제라드는 피식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럼 슬슬 오늘의 훈련을 시작해 볼까. 다들 움직여."
"좋았겠구나.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었니?"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모든 것이 완벽했다구요. 그런데..."
훈련은 리저브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앤디는 약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여유로워 보이던 선수들은 훈련이 시작되자마자 눈빛이 바뀌었다. 설렁설렁, 대충대충 뛰는 선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들 마치 실전을 치르는 것 마냥 눈에 불을 켜고 공을 쫓아 다녔다. 같은 팀원들끼리 무슨 원수라도 졌는지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분위기, 살벌할 정도의 집중력의 차이가 느껴졌다. 앤디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자신도 그 분위기에 녹아 들기 위해 노력했다. 신인답게 패기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적극적으로 돌파를 시도했고 악착같이 공을 쫓아 달렸다. 선배들보다 한 발이라도 더 뛰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듯 그라운드 이곳 저곳을 누비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잘 뛰네. 확실히 체력이 좋다고 하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것 같지 않은걸?"
"아, 감사합니다 캡틴."
훈련을 마치고 가장 먼저 주장인 브램 카윗이 다가와 격려를 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런데 크로스 타이밍을 조금 더 빨리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존은 헤더도 곧 잘 따내는 편이지만 역시 뒷 공간으로 들어갈 때 가장 무섭거든. 그러니까 윙 쪽에서도 한 템포 빠르게 침투 패스를 넣어 주는 것이 좋아."
"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그 부분을 꼭 염두에 두고 플레이할게요."
"그래. 뭐, 그래도 크로스가 상당히 정확해 보이더라. 코너킥도 제법 잘 찬다지?"
"...하하. 나름 자신은 있지만요."
퍼스트 팀에서 프리킥과 코너킥을 도맡아 처리하는 이가 브램 카윗이었기에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브램은 사람 좋게 웃으며 숨길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다.
"연차나 나이는 상관 없어. 킥은 팀 내에서 가장 잘차는 사람이 차는게 맞아. 괜찮으면 오늘 남아서 킥 연습을 좀 하고 가지 않을래? 아무래도 같이 하다보면 자극도 될거고 서로 배울 점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저야 영광이죠. 꼭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일단 조끼부터 반납하고..."
"제가 갖다 놓고 오겠습니다. 이리 주세요."
루키 답게 싹싹한 모습을 보이는 앤디, 브램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미 자신의 조끼를 받아 들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앤디의 모습에 웃고 말았다.
"그럼 그거 가져다 놓고 저쪽 그라운드로 오라고."
"네 알겠습..."
퍼억-!!
대답을 하던 앤디의 말문이 막힌다. 갑자기 자신의 엉덩이를 때리는 무언가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놀라 넘어질 뻔한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앤디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저 멀리서 존 캐러거가 배를 잡고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어, 그러니까...뭐지? 지금 존 씨가 날 맞힌 건가?'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그저 눈만 깜빡이는 앤디, 브램 카윗이 놀란 표정으로 달려 온다. 그리고 존을 향해 크게 소리치는 모습.
"뭐하는 거야 존?! 갑자기 공을 차면 어떻게 해?"
"아아, 실수야 실수."
"실수는 무슨! 딱 봐도 고의였구만! 빨리 와서 앤디에게 사과해!"
브램의 말에 킥킥거리며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존 캐러거, 그리고 앤디 앞에 다가와 엉덩이를 툭툭 쳐준다.
"아팠냐?"
"...네? 아...그러니까."
"음 딱히 널 맞히려던 건 아니지만, 아빠를 대신해서 맞았다고 생각하면 될거야."
"...네?"
영문모를 소리에 앤디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눈 앞의 이 선배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며 눈을 굴리는 앤디, 브램은 기가막히다는듯 혀를 차며 핀잔을 준다.
"참 나. 너 설마 아직도 몇 년전에 있었던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거야?"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빚은 갚아야지."
"그게 앤디가 한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그 양반의 아들이지. 원래 채무는 승계되는 법이라고."
"...지랄하고 있네. 어휴. 앤디. 신경쓰지마. 그냥 장난이니까. 이봐 존. 너도 이걸로 장난은 그만 둬."
"음 글쎄. 나는 뭐 그렇다쳐도, 다른 친구들도 꽤 기대하고 있는 것 같던데..."
은근슬쩍 말을 남기고는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나는 존, 브램은 한숨을 쉬었고 앤디는 아직도 경황이 없어 보였다.
조금 분위기가 어색해지긴 했지만 브램과 킥 훈련을 진행하다보니 존 캐러거와의 이슈를 잊어버린 앤디였다. 하지만 존의 말대로 일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으앗 차가워!"
갑자기 자신에게 차가운 음료를 들이 붓는 선배도 있었고,
"...내 옷 어디 간거지...?"
샤워를 하고 나니 갈아 입을 옷이 사라진데다,
"...내 가방은...?"
심지어 가방까지 사라졌더랬다. 수건으로 대충 가리고 라커룸안을 한참 뒤지고 난 뒤에야 나타난 선배들이 잘 챙기라며 가방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내일 보자며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 떠났다.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에 앤디는 축 늘어진 채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저런. 그랬구나."
"네...브램 씨가 말해 주었는데, 아버지가 현역 시절에 존 씨에게 장난을 많이 쳤었나 봐요. 그래서 저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거라고..."
"...하여간 니 아버지도 주책이지. 조카 뻘되는 선수들에게 그렇게 장난을 치고 다녔으니..."
혀를 차며 자리에 없는 자신의 남편 데이빗을 탓하는 에리카, 그래도 그리 심각한 장난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앤디를 위로했다.
"그래도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구나. 조금 짓궂기는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동료들과 친해지는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생각보다 피곤하다며 한숨을 쉰다. 퍼스트 팀의 선수들이 엄하게 굴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던만큼 당혹감이 더 컸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잠시 쉬고 있으렴. 좀 있으면 에밀리가 올 거야. 아버지는 오늘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으니까 에밀리가 오면 저녁을 먹자."
"네. 엄마."
이후로도 앤디는 한동안 팀 내에서 선수들의 짓궃은 장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물론 정도가 정말 심한 장난을 치는 선수는 없었고 어디까지나 웃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었기에 앤디도 당황하면서도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넘길 수 있었다. 다만 의외로 존 캐러거는 첫 날 공으로 엉덩이를 맞힌 이후 별 다른 장난을 걸지 않고 있었다.
"패스 타이밍이 늦잖아! 좀 더 빨리 달라고!"
오히려 훈련에 진지하게 임하며 앤디를 엄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방금 앤디의 패스가 한 템포 늦었다 싶자 바로 크게 손을 들며 질책하는 모습.
"죄송합니다."
"확실하게 해! 연습 때 제대로 안 나오는 플레이를 리그 경기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히려 이런 모습이 더 적응하기 편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퍼스트 팀의 모습은 이런 분위기였으니까. 앤디는 이를 악 물고 새로운 동료들에게 인정 받기 위하여 뛰기 시작했다.
"존 녀석, 제법 엄하게 이끌어 주고 있네요."
수석 코치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고 제라드 감독 역시 피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데이빗에게 당하던 걸 갚아주려는 걸까요?"
"아아, 그건 아니겠지. 지금은 실제로 앤디의 크로스가 늦기도 했어. 존은 훈련에 있어서 그렇게 치졸한 모습을 보이는 녀석이 아니야. 누구보다도 진지하지. 자네도 잘 알고 있잖나?"
제라드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석 코치, 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그저 웃자고 한 말일 뿐이었다.
"그래도 앤디 녀석, 제법 잘해 주고 있네요. 패스 타이밍이야 호흡을 맞춰가다 보면 충분히 괜찮아 질 부분일테니까요. 돌파도 상당하고 압박이 아주 좋습니다. 박싱 데이 주간에 이런 에너지 넘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될테죠."
"음. 피지컬로는 리그에서 수준급이야. 이제 18살인 친구가 이런 파워를 보여주는 건 쉽지 않은데."
"핏줄부터 남다르니까요. 누가 뭐라해도 리버풀의 전설, 데이빗 장의 아들 아닙니까."
"...아버지를 그리 닮은 것 같지는 않지만. 데이빗은 현역 시절에 피지컬이 그리 강한 타입은 아니었어."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그래도 그 운동 신경이 어디 가겠습니까?"
"...아아, 그래. 그 운동 신경을 탐 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문제긴 하지."
혀를 차며 틈만 나면 자신의 딸과 앤디를 결혼시키겠다고 이야기하는 디르크 카윗이 갑자기 떠올라 피식 웃음을 흘리는 제라드였다.
"아무튼, 저 친구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데뷔전을 치러도 되겠어. 애초에 써먹으려고 부르긴 했지만."
"네. 주전 선수들의 체력 저하도 상당한 상태입니다. 앤디가 한 경기를 맡아 소화해 주며 에너지 레벨을 보충해 줄 수 있다면 팀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음. 사실 다음 경기에는 벤치에서 대기시킬 생각이었네. 신인이 데뷔하기에는 너무 큰 무대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미리 최고으 ㅣ무대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예전에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수첩을 꺼내 일정을 확인하는 제라드, 수석 코치는 그러고보니 묘한 인연이라며 박수를 쳤다.
"그러고보니 분명 데이빗의 데뷔전이..."
"그래. 첼시였지. 우리의 다음 라운드 상대이기도 하고 말이야."
"부자가 모두 같은 팀을 상대로 데뷔하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인연이네요."
신기하다며 수석 코치가 휘파람을 분다.
"그래. 그나저나 아버지 쪽은 첼시만 만나면 날아다녔는데, 아들 쪽은 어떨지 모르겠군."
"데이빗이 딱히 약했던 팀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요."
"...그래. 확실히 그랬지."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팀을 상대로 골을 기록한 것이 데이빗 장이다. 그야말로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가했기에 딱히 강했던 팀이라던가, 약했던 팀을 찾는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뭐 잘 하지 않겠습니까? 연습 때처럼만 해준다면 아주 좋은 옵션이 될테지요. 잭이 돌아온다고 해도 주전 자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그래. 그리고 그가 경기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린 최선을 다해야겠지."
============================ 작품 후기 ============================
-완결을 낸 뒤에 선작이 왕창 빠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선작을 유지해 주고 계셔서
-뭐랄까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하네요
-새로 연재하고 있는 글이 있다보니
-외전 작업은 이렇게 드문드문 할 수 밖에 없지만
-가끔이라도 이렇게 찾아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