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344화 (344/346)

00344  외전  =========================================================================

"정말 대단하구나. 정말 장하다 앤디."

한 달음에 아버지가 있는 뒤뜰로 향한 앤디, 그리고 그곳에서 공을 가지고 간단히 놀고 있던 데이빗을 발견했다.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달려드는 아들의 모습에 데이빗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빠르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앤디의 말에 크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드디어 저도 프리미어 리거에요! 물론 아빠만큼 빠르게 올라가진 못했지만..."

"무슨 말이야. 아빠는 19살, 그것도 20살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처음으로 올라갔는데. 넌 아직 18살이잖니. 네가 아빠보다 빠른 거란다."

"하지만 아빠는 리저브에서 1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올라가셨잖아요. 전 2년 넘게 있었다구요."

아버지를 꼭 따라잡고 싶었다며 그렇게 이야기한다. 데이빗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는 자신보다 키가 커진 아들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눈에는 귀여운 아이였다.

"그런 건 중요한게 아니란다. 아빠가 있던 당시와 지금은 상황도 다르니까. 누구보다 빠르다거나 늦었다거나. 그런 생각은 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네가 얼마나 이 생활을 즐길 수 있는지란다. 알겠니?"

"알고 있어요. 그래도 이왕이면 일찍 올라가고 싶었으니까..."

"18살이면 충분히 일찍 올라간 거란다. 앞으로 최소 15년은 선수로서 뛸 수 있을텐데. 그렇지?"

"네. 아빠 말이 맞아요. 전 올라가서도 잘할 거에요. 정말 열심히 해서 아빠만큼이나 훌륭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이 아이에게 자신이 정말 우상과도 같은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다. 가끔은 그런 모습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은 했지만 말이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그래도 무리하지는 말고. 알겠지?"

아버지의 말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앤디, 그리고 그제서야 아버지의 발 밑에 공이 있음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마침 잘 되었다는듯 오랜만에 함께 연습하자고 보채기 시작한다.

"하하, 앤디. 아빠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너하고 함께 하기 어려워."

이제 40대 중반에 가까운 나이였기에 예전같지 않다며 슬쩍 빼는 데이빗, 하지만 앤디는 막무가내였다.

"에이. 그래도 아빠잖아요. 분명 작년에도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절 얼마나 농락하셨는데..."

"이젠 힘들어."

계속해서 빼는 모습을 보이는 데이빗이지만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었다. 프리미어 리그 입성 기념으로 한 번쯤 어울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풀고 공을 슬슬 발로 굴리기 시작했다.

"그럼 갑니다!"

말하기가 무섭게 득달같이 달려드는 앤디. 리버풀에서 괜히 기대하고 있는 유망주가 아니었다. 185cm에 이르는 큰 키가 무색할 만큼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드는 모습. 이미 중년에 접어든 데이빗이 에너지로는 이겨낼 수 없는 상대였다.

"하하, 그렇게 무작정 달려들기만 해서는 안 돼."

하지만 데이빗은 여유로웠다. 절묘하게 몸으로 공을 가리며 컨트롤을 이어 나간다. 앤디의 발이 뻗어질 때면 슬쩍 슬쩍 볼 터치를 이어가며 피하는 모습이 마치 세련된 투우사와 흡사했다.

"이익...!"

하다보니 약이 바짝 올랐는지 흥분하여 달려드는 앤디, 사실 시작 전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는 아버지와의 일 대 일에서 이길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작년에는 비록 형편없이 당했지만 일 년사이에 정말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자부했다. 자신이 발전하는 동안 아버지는 나이를 더 먹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아직도 거인이었다.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볼 키핑을 시작한 이후 반경 3m 이내에서만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멈춰 있는 상대의 공을 빼앗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고는 처음 느꼈다.

'역시 아버지는 대단해...'

동경, 질투, 아쉬움...다양한 감정이 뒤섞였다. 그리고는 호승심도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목표로하고 있는 산의 높이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 할까. 앤디는 더욱 의욕적으로 달려 들었고 마침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좋아!'

확실한 볼 컨트롤 미스였다. 최소한 앤디는 그렇게 생각했다. 함정이라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 공을 건드려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과감하게 발을 쭉 뻗는 앤디. 그리고 드디어 공을 빼앗게 되었다는 생각에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축배였다.

"...아?"

아버지의 발이 기묘하게 움직인다고 느꼈다. 분명히 중심을 잃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오른발 뒤에서 왼발이 튀어 나오더니 공을 살짝 자신의 뒤로 보낸다. 이미 앞을 향해 발을 뻗었기에 몸을 추스를수 없었다. 그런 자신을 가볍게 지나쳐 공을 다시 잡는 데이빗,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에 앤디는 결국 허탈하게 웃으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역시...아빠는 못 당하겠네요."

정말 이길 수가 없다고 두 손을 든다.

"잘 했어 앤디. 조금 급한 감이 있지만...정말 열심히 했구나."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며 앤디가 투덜거린다.

"...제가 아니라 아빠가 다시 복귀해야 할 것 같은데요."

"봐주렴. 지금 5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땀 좀 봐. 어휴. 이젠 정말 못 뛰겠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렇게 이야기한다. 실제로 긴 시간을 뛰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지금 데이빗이 보유하고 있는 기량이 폄하받을 것은 아니었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선수가 한창 때의 선수를 상대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뭐랄까.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지는 느낌인데요."

은퇴한 지 4년이 지난 아버지로부터 공을 빼앗지 못했다는 사실에 어지간히도 자괴감이 큰 모양이다. 눈에 띄게 침울해진 아들을 향해 데이빗이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 준다.

"만약 우리가 피치 위에서 상대했다면 네가 이겼을 거야. 지금은 오직 너만 신경쓰면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는데요. 패스를 생각하지 않고 공만 빼앗으면 되는 건데..."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며 앤디가 중얼거린다. 데이빗은 어떻게든 아들의 의욕을 되살려 줄 필요성을 느꼈다.

"하하. 너무 침울해 하지 마려무나. 정말 간발의 차였어. 그리고 공을 빼앗는 것이 실력의 척도는 아니란다. 실제로 난 네게 막혀서 단 1미터도 전진하지 못했잖니."

결국 시간을 끌게 되면 이기는 것은 수비 측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슬쩍 공을 앤디에게 굴려주며 이제는 네가 공격할 차례라고 말한다.

"수비 한 번을 했으니 이제 공격도 할 차례겠지? 자 오려무나."

그 말에 앤디가 다시금 의욕을 불태우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아직은 어린애라며 데이빗이 미소를 지었다.

"후우...여기가 퍼스트 팀의 라커룸..."

앤디는 오늘 평소보다도 일찍 멜우드 트레이닝 센터로 출근했다. 딱히 첫 날이라 군기 잡힌 모습을 보여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이 떠졌을 뿐. 이른 시간이었지만 퍼스트 팀 선수로서 맞는 첫 날이었기에 앤디는 빠릿빠릿하게 준비를 하고 일찍 출발했다.

'네 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늘 이 시간에 나갔단다.'

어머니가 새벽같이 나가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 말에 앤디는 그 동안 자신이 노력도 아버지에 못 미치게 했음을 실감했다. 평소라면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었으니까. 아버지는 남들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고 그것은 분명 세계 최고가 되는 길에 든든한 받침이 되었으리라.

"나도 질 수 없지."

자신의 목표는 너무나 거대했다. 모두들 자신의 아버지를 우러러 보았다. 아버지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화려하게 드러난 모습 이면에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닦던 아버지 또한 있었다. 아버지의 재능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앤디는 최소한 아버지만큼은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드디어 퍼스트 팀. 정말 열심히 해야..."

물론 리저브에서도 열심히 했다. 재능만 믿고 까부는 선수가 이렇게 콜업의 대상이 될리는 없으니까. 앤디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끼며 비어 있는 라커룸 하나를 골라 옷을 갈아 입기 시작했다.

"흥흥흥. 오늘도 내가 1등...이 아니네. 어라?"

누군가 라커룸의 문을 열고 들어 온다. 앤디는 옷을 재빨리 갈아 입고 문을 열고 들어온, 아마 선배일 것이 분명한 선수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깜짝이야. 그렇게 큰 목소리로 인사할 건 없어. 그러니까...넌 분명 앤디 장이었지?"

자신을 알아보는 상대, 확실히 앤디는 리버풀 내의 유망주 중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진 선수였다. 아버지가 워낙 유명한 선수였던데다 앤디 본인 역시 손꼽히는 유망주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네. 저어...존 캐러거 씨죠?"

"알고 있네? 그래. 내가 존 캐러거야. 편하게 존이라고 불러도 좋고. 아무튼 반갑다."

묘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하는 모습, 앤디는 예전 아버지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와 악수를 나눈다는 사실에 묘한 감흥을 느꼈다.

'존 씨도 이제 슬슬 경력이 꽤 쌓였으니까...'

아버지가 은퇴할 무렵에 신인이었던 선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났고 어느덧 20대 중반에 접어든 선수,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였다. 저돌적인 돌파와 뒷공간 침투가 장점인 선수로 지난 시즌,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데이빗 장 이후 처음으로 리버풀 소속의 선수로서 득점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어낸 선수였다.

"앤디 장입니다. 편하게 앤디라고 불러 주세요."

"아아, 그래. 퍼스트 팀에는 이번이 처음 올라온 거지?"

"네."

"프리 시즌에 하던 걸 보니까 긴장하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보통 리저브에 올라온 녀석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과도한 긴장 때문이거든."

자신도 신인 시절에는 뭘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그로 인해 경기에서 멍청한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고 말한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빡빡하게 굴 필요 없다니까...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본인이 직접 겪어 봐야 알겠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신의 라커로 향한다.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잇는 존 캐러거.

"근데 지금 시간이..일곱시 반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나온거야?"

"아, 그게 아침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더라구요."

앤디의 대답에 그럴 만하겠다며 피식 웃음을 흘리는 존. 퍼스트 팀의 데뷔를 앞둔 신인은 보통 저런 모습이다.

"알법하네."

"존 씨도 일찍 나오셨네요. 늘 이 시간에 나오시나요?"

앤디의 질문에 존이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렇지. 아직 난 갈 길이 멀기도 하고...목표는 아직 까마득하게 멀리 있으니까."

"존 씨는 지난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잖아요.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고였는데 아직 부족함을 느끼시는 건가요?"

대단하다며 앤디가 감탄한다. 하지만 존은 되려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한다.

"프리미어 리그의 득점왕 따위, 그 사람에게는 숨쉬는 일이나 다름 없었는데. 난 아직 멀었어."

주어가 생략된 불분명한 문장이지만 앤디는 존이 누구를 언급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리버풀의 주전 공격수는 아직 위대한 선배, 데이빗 장을 목표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뭐 누굴 말하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거고...아무튼 너도 알게 될거야. 그 사람의 그림자는 아직 이 클럽에 짙게 깔려 있어. 사람들은 아직도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누구도 그 사람을 대신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선수로서는 참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뭐 사실은 사실이니까."

쓰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서 앤디는 존이 얼마나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하다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는데 까지는 해 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말하다보니 어째 부끄러운 소리를 늘어 놓은 것 같다며 존이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마무리한다. 앤디는 현재 프리미어 리그 최고 레벨의 선수가 아직도 더 높은 레벨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다.

"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패기있께 포부를 밝히는 모습에 존이 씩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 준다.

"열심히 해보라고 루키."

============================ 작품 후기 ============================

-댓글 중에 신통하신 분이...

-다음 편 내용을 맞추시다니

-니가 뻔하게 쓰는거야

-...ㅠㅠ

-근데 예전 98월드컵 대표팀에서

-차범근 감독님이 선수들과 훈련할 때 직접 뛰면서 지도하셨다던데

-그 공을 아무도 못 뺐었다는 루머가 있었습니다

-...근데 루머라고 하기엔 그럴싸해서...

-그리고 지금 올리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외전입니다. 2부가 아니에요~

-일단 지금은 새로 쓰고 있는 '정상'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외전은 이렇게 가끔 생각날때마다 한 편씩 올리겠습니다

-그럼 즐감해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