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335화 (33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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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도 확정했고...이제 은퇴 경기만 남았네."

"아 그렇지. 부담 없이 마지막 경기를 치를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아쉽지는 않아?"

"왜 아쉽지 않겠어? 그래도 뭐 이제는 해야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자택 내 응접실에서 여유로운 티 타임을 가지고 있는 데이빗, 그의 오랜 친구이자 형제와도 같은 티티와 제임스도 함께였다. 둘 모두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 회사의 제일 큰 고객이 은퇴하는데 이거 우리 내일부터 문 닫야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수염을 깔끔하게 기른 제임스가 너스레를 떤다. 거친 사나이였던 그도 세월이 지나며 원숙해진 모습이다.

"엄살 피우지마. 관리하는 선수도 많으면서 뭘. 노땅 하나 은퇴했다고 타격이 있을리 없잖아."

"좋게 말해줘도..."

툴툴거리는 제임스, 하지만 그들이 운영하는 RS 코퍼레이션은 이제 데이빗 장 혼자만을 관리하는 에이전시가 아닌, 많은 선수들을 대리하는 대형 에이전시로 발전한 상태였다. 물론 그들의 업체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데이빗의 영향력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반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현재 리버풀 소속의 주전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브램 카윗과 존 캐러거 역시 RS 코퍼레이션과 계약을 맺고 있었고 이는 데이빗의 영향이 큰 부분이었으니까.

"나야 뭐 은퇴하지만, 다른 선수들도 잘 관리해 줘."

"헹. 니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고객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제임스가 콧대를 세우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데이빗은 무신경하게 하품하며 '그러시던가'라고 말하며 제임스의 혈압을 올리는데 일조했지만 티티의 적절한 개입으로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사실 구단에서도 우리한테 연락이 왔었거든. 네가 은퇴하는데 우리가 같이 무슨 일을 하지 않겠냐고 말이야."

"너희한테?"

"응. 근데 우리는 너하고 맨날 보는 사이인데다...아무튼 딱히 우리 이름을 걸고 뭘 하기가 애매한거야. 그래서 그냥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했거든."

미안한듯 이야기하는 티티, 제임스는 뭘 그리 어렵게 이야기하냐는 듯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긴 뭘 하냐고. 그냥 은퇴하고 우리랑 술이나 마시면 되지. 안 그래?"

"...어이, 남의 은퇴를 술 마실 기회로 만들지 말라고."

데이빗이 혀를 차며 핀잔을 준다. 그러는 사이 간단한 먹거리를 들고 에리카가 그들 곁으로 다가 온다.

"아, 고마워. 내가 챙기러 가도 괜찮았는데."

"괜찮아. 로이 씨, 그리고 스튜어트 씨. 오늘 저녁도 드시고 가실 거죠?"

"실례가 많지만 그렇게 하고 싶네요. 켈리 씨의 요리 솜씨는 워낙 훌륭해서 언제나 기대가 되니까요."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 티티였고,

"잘 먹겠습니다. 어이, 표정이 왜 그래? 우리가 온 게 불만이야?"

데이빗을 째려보며 말하는 제임스였다.

"좀 있으면 앤디가 돌아올 거에요. 삼촌들이 와서 앤디도 좋아하겠네요."

"유소년 클럽에서 지금 돌아 오는 건가요? 생각보다 늦게 귀가하는 군요?"

시계를 확인하며 티티가 말했고 에리카는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 무슨 일인지 클럽 활동을 마치고 귀가가 늦어지네요. 연습을 더 하고 오는 것 같은데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네요."

그리고는 슬슬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며 발걸음을 옮기는 에리카,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무리해도 좋지는 않은 것 같다며 티티가 걱정을 표한다.

"본인이 하고 싶어하니까. 딱히 무리라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보고 있어. 안 그래도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면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줬으니까."

잘 할거라며 데이빗이 웃는다. 티티도 그럼 괜찮겠다며 수긍한다. 그러는 사이 양반은 되지 못하는지 앤디가 문을 열고 들어 온다.

"다녀왔습니다. 어라? 제임스 삼촌! 티티 삼촌!"

친척은 아니지만 아버지와 형제와도 같은 이들이었기에 어려서부터 삼촌이라 불러 왔고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제임스와 티티는 웃으며 반가운 조카를 반겨 주었다.

"어서와. 안 그래도 네가 올때가 되었다고 해서 네 얘기를 하고 있었어."

"아, 클럽 활동이 끝나고 좀 남아서 킥 연습을 하느라 늦었어요. 삼촌들이 올 줄 알았으면 일찍 왔읉텐데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유독 아껴주었던 제임스와 티티였기에 앤디도 살갑게 그들을 대하는 모습이다.

"우리 조카의 연습을 방해해서는 곤란하지. 요즘 유소년 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고 하던데, 덕분에 이 삼촌도 아주 뿌듯하다고."

제임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앤디의 등을 두드려 준다. 앤디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흔든다.

"아직 멀었어요. 내년이면 저도 15살이 되는데...마냥 시간이 많이 남은 건 아니니까요. 빨리 안필드에서 경기를 치르고 싶으니까 열심히 해야죠."

어른스럽게 이야기하는 앤디의 모습에 데이빗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가끔은 너무 프로를 의식하는 느낌도 들어 걱정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자식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나 조급한 부분은 자신이 적절히 풀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넌 아직 어려. 좀 더 몸이 성장해야 해. 그 전까지 너무 조급해 하지 마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전 더 클 거에요. 식사도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고 있고 잠도 충분히 자고 있으니까요."

14살, 한창 클 나이였다. 벌써 170cm가 넘어간 앤디였기에 180cm는 가뿐히 넘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아 오늘 시합이 있었어요. 런던에서 온 클럽 팀하고 경기를 했는데 우리가 이겼어요!"

뿌듯한 표정으로 자랑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였다. 조금 전의 성숙한 모습과 달리 천진한 면이 남아 있는 모습, 이런 모습이 더 보기 좋다며 세 남자는 기분 좋게 웃으며 받아 주었다.

"멀리서 온 친구들에게 제대로 대접해 줬나 보네. 잘했다 앤디."

"3 대 0으로 이겼어요. 저도 오늘 어시스트 하나 했어요. 오른쪽 사이드에서 한 명을 제친 다음에 크로스를 올렸는데, 정말 연습할 때보다 킥이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았어요. 아! 아빠가 알려준 기술 오늘 써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나중에 다른 기술도 알려 주세요!"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스럽게 늘어 놓는 모습, 제임스와 티티는 연신 잘했다며 칭찬을 아까지 않앗다.

"자랑스럽구나 앤디. 나중에 저녁 먹고 마당에서 한 번 해볼까?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걸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단다."

"알고 있어요. 아빠가 알려준 기술 연습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는 걸요. 그래도 새로운 플레이를 배우는 건 즐거워요. 만약 제가 배울만 하다고 생각하시면 나중에 새로운 스킬을 알려 주세요."

"물론이지. 일단 씻고 오렴. 곧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아버지의 허락에 희희낙락하며 욕실로 뛰어가는 앤디, 제임스는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직 어린 아이네."

"그러게. 난 저런 모습이 훨씬 보기 좋은데. 앤디는 너무 조숙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거든."

친구들의 말에 데이빗도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보기 좋은 것인데 앤디는 어려서부터 철이 빨리 든 느낌이었다. 그 모습이 가끔은 안타깝기도 했기에 지금 보여주는 아들의 천진난만함이 더욱 보기 좋았다.

"그래도 앤디는 정말 복 받았네. 햐, 아빠가 데이빗이라니. 만약에 저녁마다 데이빗에게 축구를 배울 수 있다면 백만 파운드를 아끼지 않을 친구들이 많을텐데 말이야."

옆구리를 찔러 오며 이야기하는 제임스의 손을 쳐내며 데이빗이 난감한듯 대답한다.

"그렇게 말해도 말이야...난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재주가 없는 것 같아. 팀에서도 어린 녀석들에게 뭘 알려 줄때 난감한 경우도 많고...앤디는 특히 아직 어리니까 잘 알아 들을 수 있게 설명해 줘야하는데 그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

"너한테는 당연한 일을 설명하려니까 어려운 거냐?"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은데...그냥 내 말재주가 부족한 것 같아. 가르치는 스킬도 그렇고."

그래서 은퇴한 이후에 지도자 쪽은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한숨을 쉰다. 제임스는 아예 배를 잡으며 폭소를 터뜨렸다.

"확실히 그러고 보면 감독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거 같아. 왜 그 입방정 잘떠는 그 양반...누구냐...아, 무리뉴 그 사람도 그렇고, 옛날 맨유의 영감도 그랬고...또..."

손가락을 꼽아가며 이야기하는 제임스, 티티는 그런 것만은 아니라며 반박한다.

"로베르토 만치니나 과르디올라 같은 사람들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잖아. 지금 리버풀의 감독인 제라드 감독도 잘 하고 있고 달글리시 감독도 괜찮았지. 딱히 그렇지는 않아. 다만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감독들이 아무래도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못 할때 부각되는 면이 많아서 그럴 뿐이지."

그러면서 데이빗을 돌아 보며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굳이 지도자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긴 하잖아. 그래도 네가 하고 싶다면 벌써부터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나도 알아. 고마워. 그래도 은퇴하고 나서는 한동안 휴식을 취할 생각이야. 20년 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확실히 그건 그렇네. 비 시즌때도 맨날 국가 대표 소집에, CF 촬영에...정말 바쁘게 지냈으니까 넌 좀 쉬어도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와이프에게도 은퇴하고나면 먼저 가족 여행부터 가자고 말했어. 앤디하고 에밀리가 방학하면 한 달 정도는 여행을 다닐 생각이야."

"나쁘지 않네. 다음에는 시간 맞춰서 우리 가족들도 함께 가자."

"그래. 아, 제임스 너네 가족도 물론 같이 가는 거니까 불만 터뜨리지 말라고."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 또한 화기애애했다. 앤디는 오랜만에 활발한 모습으로 오늘 있었던 경기에 대해 자랑을 늘어 놓았고 에밀리는 특유의 친화력과 애교로 두 삼촌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저녁 식사였다며 데이빗도 만족스럽게 자리를 즐겼고 에리카도 마찬가지였다. 식사를 마치고 얼마간 대화를 나누던 제임스와 티티가 너무 늦게까지 있는 것은 실례가 될 거라며 귀가했고 데이빗은 아들 앤디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향했다. 앤디가 하루 중 가장 기대하는 시간, 아빠와의 개인교습시간이었다.

"어때요? 전보다 확실히 익숙해진 것 같죠?"

전에 알려 주었던 동작을 펼쳐 보이고 데이빗을 돌아보는 앤디,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와 같은 모습에 데이빗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칠 때에는 딱히 칭찬만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보여준 동작에서는 확실히 많은 연습량이 느껴졌다.

"많이 늘었네. 정말 연습 열심히 했구나."

슥슥 머리를 매만져 주며 격려한다. 아버지의 칭찬에 앤디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클럽에서 코치들에게 칭찬 받을때도 기분이 좋았으나 역시 앤디가 가장 만족감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낄 때는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였다. 그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영웅은 아버지 데이빗 장이었으니까.

"그럼 약속대로..."

"아아, 오늘은 그럼 다른 동작을 알려 줄까. 전에 아버지가 윙 포워드로 뛸 때 주로 사용하던 스킬인데..."

슬쩍 공에 발을 올리며 설명을 시작하는 데이빗, 앤디는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집중하는 모습이다. 아들을 실망시킬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해 설명하는 데이빗, 하지만 갑자기 없던 재주가 생길리는 만무했고 결국 한숨을 쉬며 입고 있던 점퍼를 벗는다.

"...역시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는게 낫겠지?"

말로 안되면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앤디는 어쨌거나 좋았다.

"네! 저도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잘 보렴. 그러니까...먼저 오른발을..."

두 부자의 눈빛이 진지해진다. 공 하나를 놓고 땀을 흘리는 2대, 그들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함께 했다. 두 시간 가까이 움직이던 두 부자는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공을 멈춰 세우고 그대로 주저 앉았다.

"아빠."

"왜 그러니?"

입술을 달싹이며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앤디, 데이빗은 차분히 그런 아들을 기다려 주었다.

"...은퇴...꼭 이번에 해야 하는 거에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을까, 데이빗도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몇 년만...앞으로 3년, 아니 2년만 더 해주면 안되요? 난 아빠하고 같이 경기장에 서고 싶어요. 아빠라면 2년 정도는 충분히 뛸 수 있잖아요."

아직도 최고라며, 조금만 더 뛰어 달라고 이야기하는 아들의 모습에 데이빗이 온화한 표정으로 앤디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들하고 같은 그라운드에 설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진 일이겠네. 그래도 앤디, 이제는 말이야..."

가벼운 한숨을 쉬며 이야기한다.

"아빠가 이제 자리를 비켜 줘야 앤디같은, 어리고 재능있는 친구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거야. 그걸 이해할 수 있겠니?"

"알고 있어요...그래도 아쉬우니까..."

웅얼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데이빗은 웃으며 그런 앤디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아빠는 은퇴해도 이렇게 밤 마다 너와 함께 할 거야. 그리고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란다.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렴."

아버지의 위로에 조금 침울한 표정을 짓던 앤디가 애써 표정을 밝게 한다. 그 모습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앤디도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만 들어 가자. 너무 늦었다고 엄마한테 혼나겠어."

"네. 오늘 고마웠어요 아빠."

============================ 작품 후기 ============================

-이세돌9단 VS 알파고가 요즘 엄청 이슈네요

-바둑은 잘 모르지만

-뭔가 좀 씁쓸하달까...

-묘한 기분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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