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334화 (33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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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 마라 애송아."

킥 오프 휘슬을 기다리고 있는 양 팀의 선수들, 데이빗은 센터 서클에서 존과 함께 경기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난스럽게 존의 옆구리를 찌르는 데이빗, 존은 귀찮다는 듯 손을 떼어 낸다.

"쫄긴 누가 쫄았다고 그래? 영감이나 잘 하라고."

틱틱거리며 자신은 아무 문제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자신감이라면 되었다는 듯 데이빗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공을 잡으면 머뭇거리지 마라. 하고 싶은대로 해. 알겠어?"

"영감이나 잘 하라니까."

"오프사이드에 세 번 이상 걸리면 패스 없을 줄 알아."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으름장을 놓는 데이빗의 모습에 존 캐러거가 어깨를 으쓱한다.

"영감의 패스 타이밍이 늦으니까 그런거 아냐. 쳇,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틱틱거리면서도 조언을 받아 들인다. 본인도 스스로의 쇄도 타이밍이 조금 성급한 면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데이빗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친구지만 조언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겸손함이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부족함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앞으로 천천히 채워나가면 된다. 그리고 자신도 그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삐익-

킥오프 휘슬이 울리고 존은 공을 살짝 데이빗에게 빼 주었고 데이빗은 다시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브램 카윗에게 공을 빼 주었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팀의 전반적인 플레이를 조립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브램 카윗, 어린 나이지만 팀원들의 신뢰가 돈독하여 주장을 맡고 있는 인재이기도 했다.

'뭐...소심하고 얌전한 녀석이지만.'

아버지와는 정 반대되는 성격의 브램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이런 얌전하고 소심한 녀석이 거친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브램의 얌전한 모습 뒤에는 누구보다도 강한 승부욕과 승리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어디 보자...'

천천히 움직이며 경기장 전체를 탐색한다. 아군의 움직임, 그리고 상대의 위치를 빠르게 읽어 낸다. 나이가 들며 스피드가 떨어지고 활동 반경이 극도로 좁아진 만큼 미리 다음 플레이를 준비해 두어야 했다. 생각보다 단단한 상대의 모습에 데이빗은 자신에게 날아온 패스를 다시 뒤로 돌리며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천천히! 패스 코스를 만들어! 좀 더 움직이라고!"

'제법 그럴싸 해졌는데.'

자신의 마음을 알아챈 것처럼 브램의 적절한 지시가 들려 오자 데이빗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1시즌을 치르며 확실히 성장한 모습이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선수들로 구성된 지금의 팀은 아직 미숙한 부분도 많았지만 그만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이들과 좀 더 오래 뛰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더 이상 있는 건 팀에도, 나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지.'

자신의 은퇴 시기가 늦어질 수록 팀의 진정한 리빌딩 또한 늦춰지는 셈이다. 그 시기가 미뤄지면 미뤄질 수록 후폭풍이 그만큼 거세질 것이기에 미련을 끊어야 했다.

'그 전에 가르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가르쳐 주겠다고 했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데이빗은 새삼 자신이 어렸던 시절에 자신을 가르쳤던 많은 지도자들과 선배 선수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자신을 이끌어 주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지금 상황에서는 이렇게 턴하면 쉽게 찬스를 만들수 있지.'

'...어떻게요?'

'...그러니까 이렇게 오른발로 공을 뒤로 튕겨내고 반대 방향으로 반전해서 공을 잡으면...'

'...이 망할 노인네야! 그게 되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냐고?!'

처음 존에게 가르침을 주던 날이 떠오르자 절로 실소가 나왔다. 자신은 진지하게 알려 주었는데 존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쉽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가볍게 돌려 놓으면 된다니까?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 상대는 역동작이라 절대 따라오지...'

'젠장! 당신만 할 수 있는 플레이 말고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달라고!'

'...쉽잖아. 왜 그래? 너도 할 수 있다니까?'

'......'

그때 존이 자신을 바라보던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어린 녀석들도 그랬다. 심지어 얌전하고 언제나 자신에게 예의바른 청년인 브램마저 짜게 식은 눈빛을 보내 왔으니 말이다. 생각만해도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뭐...요즘 쇄도 타이밍때문에 본인도 고민이 많아 보이니까...'

최전방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는 존이 보인다. 자신의 신인 시절, 많은 면에서 도움을 주었던 캐러거의 아들, 아버지와 달리 공격수로 프로 경력을 시작한 녀석, 그리고 자신에게 격의 없이, 종종 까부는 모습도 자주 보이는 개구쟁이였지만 데이빗은 저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몸으로 알려 줄게. 언제 뒤로 파고 들어야 하는지. 내 패스를 받아 낸다면.'

마침 자신에게 전달되는 공, 슬슬 타이밍을 보고 있던 데이빗에게는 아주 적절한 패스였다. 제 자리에서 공을 슬쩍 옮기며 상대의 견제를 피해 낸다. 전성기 시절처럼 역동적인 돌파는 할 수 없었지만 기술은 여전히 수준급이었고 노련함이 더해진 그의 움직임은 거장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열린 패스 코스를 향해 가볍고 부드럽게 오른발 인사이드로 킥을 시도한다.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 빠르지 않은 패스, 하지만 밀집된 맨유의 수비수들 중 누구도 그 패스를 끊어낼 수 없었다. 정해진 레일 위를 달리는 것처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공간을 뚫어낸 그 패스는 뒷공간을 파고들던 존 캐러거에게 정확히 연결되었다. 오프사이드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온 사이드, 완벽한 찬스였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지능적인 플레이에 부족함이 있을 뿐이지 개인 기량에 있어서는 수준급의 플레이어가 된 존 캐러거가 이런 찬스를 놓칠리 없었다. 그는 데이빗의 패스를 원 트랩한 이후 그대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고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기쁨에 겨워 괴성을 지르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존 캐러거가 보인다. 마치 선생님에게 자랑하는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데이빗도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거봐. 쉽잖아. 너도 할 수 있다니까?'

[리버풀이 한 골 앞서 나갑니다! 존 캐러거의 멋진 선제골!]

[와우! 정말 깔끔한 골이네요! 존 선수의 침착한 마무리도 돋보였지만 이건 데이빗 장 선수의 품격 높은 패스가 모든 걸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말 멋진 패스였어요!]

[하하, 아드님이 골을 넣었는데 좀 더 좋아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너무 박한 평가 아닙니까?]

[존 선수도 잘했습니다. 뒤로 들어가는 타이밍도 괜찮았고 마무리도 깔끔했어요. 하지만 데이빗 장 선수의 완벽한 패스가 아니었다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리플레이로 다시 나오네요.]

캐스터의 장난스러운 말에 쑥쓰러운듯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제이미 캐러거, 느린 화면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브램 카윗의 패스를 받고 한 명을 피하는 동작이 아주 깔끔했습니다. 40에 가까운 나이라 예전처럼 파괴력있는 돌파를 선보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완벽히 제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제 자리에서 공을 컨트롤하며 압박하는 상대를 피해 냅니다. 정말 예술적인 움직임이죠. 신체 능력만 믿고 달려드는 젊은 선수들이 꼭 배워야 할 플레이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패스,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대충 차는 것 같지만 완벽한 계산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 빠르지 않은 패스입니다. 이 패스가 밀집된 상대 수비진을 뚫어낼 수 있었던 것은 상대의 위치와 동작, 심지어 무게 중심까지 완벽히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보시면 두 명의 맨유 수비수들이 발을 뻗으며 커트하기 위해 달려들지만 닿지 않죠. 많은 선수들이 라스트 패스, 킬 패스를 시도할 때 강하게 차는 버릇이 있는데 무조건 강하게 찬다고 수비진을 붕괴시킬 수 없습니다. 데이빗 장 선수가 그런 점을 정확히 알려 주었네요.]

[정말 축구를 쉽게하는 느낌입니다. 이 선수가 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만큼 여유가 넘치네요.]

[어려운 플레이를 쉽게 처리하는 것이 최고의 선수라는 증거겠죠. 잘 숙성된 와인처럼 노련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선수의 플레이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리버풀 팬들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이겠죠.]

한 골을 얻어 맞은 맨유, 하지만 굴하지 않고 강인하게 경기를 이어나갔다. 데이빗 장의 클래스 있는 플레이에 한 골 실점하긴 했지만 그들 또한 리버풀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데이빗 장의 나이였다.

노련한 움직임으로 좋은 포지션을 잡으며 상대의 공격 작업을 껄끄럽게 하는 플레이는 뛰어났지만 부족한 체력, 에너지 레벨은 미드필드 싸움에 치명적인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4-2-3-1의 포메이션,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원 지역에 4명이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공격할 때야 아직 1인분 이상의 역할을 해 주는 데이빗이지만 수비 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이스 플레이!"

몸을 날리며 상대의 패스를 끊어 낸 브램 카윗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 주는 데이빗, 자신의 부족한 활동량을 커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 다니는 어린 동료의 모습은 그에게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포지션은 달라도 저런 성실함은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니까.'

아버지에 비해 파워는 조금 부족한 브램이지만 좀 더 균형잡힌 플레이를 할 줄 알았고 스마트한 패스를 뿌릴 줄 아는 선수였다. 자신의 신인 시절, 디르크 카윗의 헌신적인 움직임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2대에 걸쳐 날 도와주는 것도 참 대단한 인연이네. 카윗 집안에는 언제나 신세를 지는 느낌인걸.'

이런 도움을 받고 가만히 입을 닦아서야 곤란했다. 베테랑, 그리고 팀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저들의 투지에 보답해 줘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족한 창조성에 대해서도 영감을 주어야 했다.

'오케이. 좋아.'

평소의 위치보다 조금 전진한 데이빗에게 다시 한 번 패스가 연결된다. 거의 포워드의 위치에 선 데이빗, 전성기 시절 가장 많은 판타지를 만들어 냈던 위치, 상대의 페널티 박스 왼쪽 부근이었다. 익숙한 장소, 변한 것이 있다면 자신의 몸이 늙어 버렸다는 것 정도일까.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려 주고자 했다. 저 혈기왕성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왜 세계 최고의 선수로 불렸는지, 아직도 그가 계속 뛰길 원하는 이들이 많은지 가르쳐 주겠다고 마음 먹었다. 시작은 간단했다. 괜찮은 타이밍에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며 쇄도하기 시작한 존 캐러거에게 패스를 하는 것처럼 킥 모션을 취했을 뿐이다. 하지만 효과는 아주 뛰어 났다.

"뭐...뭐야?!!"

이번 시즌 내내 드리블 돌파를 거의 하지 않고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선보였던 데이빗이었기에 상대 수비는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공을 접고 달려가기 시작하는 상대, 이미 패스를 끊어내기 위해 발을 뻗은 시점이기에 막을 수 없었다.

와아아아아!!!!

갑작스러운 데이빗의 돌파에 안필드가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전설의 모습에 열광했다. 스피드와 박력은 부족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데이빗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사뿐사뿐 공을 옮기고 몸을 움직이며 상대를 피했다. 완벽히 제치지는 못하지만 빼앗기지도 않았다. 아크 왼쪽에서 중앙 쪽으로 슬쩍슬쩍 접으며 접근하는 데이빗, 빼앗길 듯 빼앗기지 않는 모습이 경이롭다. 그리고 어느새 골대가 사정권이었고 슈팅 코스가 열렸다.

콰앙-!

그리 강한 슈팅은 아니었다. 낮게 깔려 굴러가는 슈팅, 하지만 코스가 절묘했다. 밀집된 상대 수비를 지나 골을 꿰 뚫는 단 하나의 길, 그 길을 완벽히 찾아가는 슈팅이었다. 이를 악물고 몸을 날리는 상대 골키퍼의 동작은 데이빗의 퍼포먼스를 더욱 아름답게 완성시키는 조연에 불과했다. 다시 한 번 골대를 흔드는 리버풀, 데이빗은 여유롭게 돌아서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어린 친구들을 맞아 주었다.

============================ 작품 후기 ============================

-데이빗은 감독하면 안됨..

-가르침 받는 선수들 의문의 1패

-거기에 본인도 암 걸릴듯

-아니 이 쉬운걸 왜 못하니?

-......

-이렇게 하면 골을 넣을 수 있다니까?

-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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