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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안방에서 너무 날뛰는 거 아냐?"
골세레모니를 마치고 돌아온 데이빗에게 센터 서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메시가 조용히 투덜댄다.
"이 정도 가지고 뭘."
별 거 아니지 않냐는 듯한 말,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레 말을 잇는다.
"우리가 원하는 걸 주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우리도 순순히 양보할 생각은 없거든."
수비진이 보내 온 공을 센터 서클에 놓으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데이빗은 아직 이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상대는 바르셀로나, 자신들의 팀과 비교해보아도 뒤떨어짐이 없는 클럽이었다. 그리고 메시는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선수였다.
"너희는 너무 끈질겨."
"니네들만 할까."
다시 한 발 앞서가는 리버풀, 하지만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그리 나약한 이들이 아니었다. 한 골 정도의 리드는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라 리가의 최정상을 지켜왔고 세계 최고 수준의 레벨을 유지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경험은 일일이 꼽기도 어려울만큼 많았고 불리한 상황을 뒤집는 일은 그들의 특기였다. 한 골을 허용한 이후, 그들은 10여 분에 걸쳐 차분하고 확실하게 기회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패스!"
동료에게 패스를 요구하며 움직이는 메시, 전성기가 지났다고 하지만 그의 클래스는 여전했다. 특히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은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발휘되곤 했다. 팀 내 득점 순위에 있어서는 네이마르, 그리고 이성우에 이어 3위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아직 메시는 그들에게 완벽히 대권을 넘겨주지 않았다고.
"오스카! 마르코! 둘러 싸!"
루카스 레이바가 앞 선의 동료들에게 메시를 압박할 것을 지시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메시에게 접근하여 그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오스카와 마르코, 하지만 빼앗을 수 없다. 끈질기게 중심을 옮겨가며, 볼을 터치하며 지켜내는 메시의 모습은 진정 경이로웠다.
'젠장...30살이 넘었으면 좀 얌전해 지란 말이다...!'
그가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라 불리는 이유, 네이마르와 이성우가 완벽히 팀의 에이스라 불리지 못하는 이유는 팀이 지고 있는 상황 혹은 대등한 상황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일을 메시만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버풀에서 데이빗이 그런 역할을 해 주었다면 바르셀로나는 역시 메시였다.
[리오넬 메시! 엄청난 볼 키핑력입니다! 두 선수의 압박을 이겨내고 전진! 그를 제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리버풀입니다.]
[컨디션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는 말은 그에게 딱 들어 맞습니다. 20대 시절의 폭발적인 움직임은 줄어 들었지만 노련하고 영리합니다. 자신의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수비수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결국 뚫어 냅니다! 오스카의 거친 태클에도 휘청이면서 공을 지켜내고 달립니다! 저 작은 체구로 어떻게 저 정도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걸까요?!]
[신인 시절 부터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그는 어지간하면 인플레이를 이어가려고 하죠. 파울을 유도하는 행위는 극도로 자제하는 편이고 그로 인해 드리블러에게 필수적으로 따라 붙는 다이버에 대한 논란도 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죠. 정말 대단합니다!]
두 선수의 압박을 이겨 낸 메시에게 돌아온 보상은 달콤했다. 어쩔 수 없이 루카스 레이바가 그에게 달려들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다른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들이 프리하게 풀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유롭게 활개치기 시작하는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들, 메시는 좋은 타이밍에 올라 온 백승주에게 패스를 하고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백승주는 다시 한 번 공을 메시의 발 아래에 붙여 주고 패스 코스를 넓히기 위해 벌려 서듯 움직였다.
"여기야!"
어느새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접근한 메시, 최종 라인 사이에 선 네이마르가 뒷 공간을 노릴 것처럼 손을 들며 움직인다. 그리고 여기에서 리버풀 수비의 치명적인 실수가 나오고 말았다. 오더의 역할을 맡고 있던 마틴 켈리는 성급하게 오프 사이드 트랩 사인을 냈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악수가 되었다.
"...!!!"
메시는 패스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패스를 하는 척만 했다. 그는 패스 모션을 캔슬하고 그대로 직접 리버풀의 최종 라인을 향해 파고 들었다. 오프 사이드 트랩을 위해 앞으로 한 발 나오던 리버풀 수비수들에게 있어서는 갑작스러운 기습과도 같은 메시의 공격, 당연히 제대로 대처가 될 리가 없었다. 애초에 중심이 앞으로 쏠린 상태에서 달려드는 공격수를 막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쇼 타임이었다. 특유의 양 발 드리블로 공을 접어가며 수비수를 피해내는 모습은 예술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느새 골키퍼와의 일 대 일 찬스, 메시는 서두르지 않았다. 침착하게, 마치 동료에게 패스를 하듯 굴려 놓는다. 각도를 좁히기 위해 달려 나오던 골키퍼의 손을 살짝 피하며 골대에 안착하는 슈팅,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간 경기였다.
"저 두 친구는 이번에도 둘 만의 쇼 타임을 할 생각인가."
동점골이 들어가는 순간 클롭이 머리를 감싸쥐며 아쉬워한다. 흐름을 잡을라치면 곧바로 반격하는 상대의 모습이 얄밉기도 하고 질리기도 했다.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메시는 메시네요.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 사실 양 팀의 에이스 대결에서는 우리가 우위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정말 쉽지가 않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데이빗과 어느 정도 내리막에 접어든 메시였기에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리버풀이 우위를 점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메시는 아직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우리가 이 팀에 오기 전에 있었던 결승전이 생각나는군요."
"내 말이 그거야. 정말이지...팬들이야 즐겁겠지만 우리는 피가 마르는군."
서로 치고받는 명승부는 팬들 입장에서나 즐거운 경기이다. 감독과 코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이기는 경기가 가장 좋은 법이니까. 이런 경기는 특히 심장에 좋지 못하다. 다른 무대도 아닌 챔피언스리그, 그것도 결승전이었으니 말이다.
"데이빗도 불이 붙은 것 같네요."
센터 서클 부근에서 큰 목소리로 수비수들을 독려하며 빨리 공을 보내 줄 것을 요구하는 데이빗을 가리키는 코치, 클롭도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라이벌의 멋진 퍼포먼스롤 봤으니까. 이 경우에는 데이빗이 먼저 보여주긴 했지만 말이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얌전해 보이는 친구지만 승부욕은 루이스 못지 않게 강하니까요."
"그래. 뭐, 두 녀석의 환상적인 퍼포먼스는 관중들이나 즐기라고 하고...우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선수에게 모든 것을 맡겨 둘 수는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클롭, 그리고 터치라인에 서서 큰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늘 그렇지만, 우승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네."
"새삼스럽게 뭘."
센터 서클에서 다시 한 번 킥 오프를 준비하는 두 남자, 데이빗과 수아레즈였다.
"우승이 쉽다면 다들 그렇게 간절히 원할 리가 없겠지."
"그건 또 그렇네."
이제는 충분히 경험이 쌓인, 베테랑 선수가 된 둘은 크게 여유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심이여 어떻든 드러난 모습에서는 아무런 동요가 없어 보였다.
"이 팀에서 벌써 4번 째 결승이네."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손가락을 꼽으며 헤아리는 수아레즈에게 살짝 핀잔을 주는 데이빗.
"별 건 아니고, 작년 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 놈들에게 지지 않았으면 결승 진출 시 100% 우승이 될 수도 있었잖아."
"지나간 이야기해서 뭐하겠어. 그리고 오늘 이기면 75%의 확률로 우승하는 셈인데 이것도 나쁘진 않아."
"그래. 나쁘지 않지."
"확실하게 움직여 줘. 좋은 자리를 잡으면 바로 패스를 보내 줄게. 그게 아니라면..."
"니가 승부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줄게. 그거면 됐지?"
20대 초반 시절부터 함께한 사이였기에 척하면 착하고 알아 듣는다. 데이빗은 그게 자신이 원하는 거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은 내가 니 미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말이야."
웃으며 장난을 걸어 온다. 데이빗은 새삼스럽게 뭘 그러냐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부정하진 않네?"
"나 생각보다 까다롭다고? 루이스는 그런 면에서 최고의 미끼...가 아니라 파트너지."
"...너 지금 대놓고 미끼라고..."
짐짓 미간을 좁히며 투덜대는 수아레즈, 하지만 곧 표정을 풀며 껄껄 웃어 젖힌다.
"뭐, 그래도 나쁘진 않네."
"빅 이어를 들리면 더 괜찮아 질 거야."
"그건 당연한 거고."
양 팀 모두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먼저 긴장의 끈을 놓는 쪽이 경기를 내어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직감한다. 다음 골을, 세 번재 골을 먼저 넣는 팀이 이 경기를 잡게될 것이라고.
그렇기에 선수들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체력이 한계에 달하기 시작하는 후반 30분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페이스를 늦추지 않았다. 쓰러지는 것은 경기가 끝난 뒤에 해도 족했다. 지금은 달려야 했다.
"컥...!"
"파울이야!!"
거친 몸싸움이 난무하고 파울의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달아 오를대로 달아 오른 선수들이니 만큼 플레이가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한 것, 심판이 바쁘게 움직이며 그런 선수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0 여분 만에 양 팀에서 총 세 장의 옐로우 카드가 주어졌을만큼 치열한 양상이었다.
그리고 양 팀의 사령탑들은 교체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활기를 불어 넣고자 했다. 바르셀로나는 경기 내내 데이빗에게 엉망으로 휘둘린 그리말도를 대신하여 새로운 마크맨을 투입했고 리버풀은 체력이 떨어진 기색이 역력한 루카스 레이바를 빼고 조단 핸더슨을 투입했다.
그리고 점차 흐름이 리버풀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이 약한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상대가 지나치게 나빴다. 포백 라인만으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없다보니 미드필더들이 수비적인 부분에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네이마르, 메시, 이성우를 상대하는 리버풀도 비슷했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팀의 전술 특성 상, 미드필드에서 인원이 부족해 질 경우 더욱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바르셀로나였다.
"조단!!"
체력이 남아 도는 조단 핸더슨이 공을 커트해 내고 오른쪽 사이드에서 뛰고 있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친구에게 패스를 연결 시켜 주었다. 바르셀로나의 수비 의식이 죄다 왼쪽과 중앙으로 쏠려 있음을 눈치 챈 노련한 플레이, 조단 아이브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오른쪽 사이드에서 중앙쪽으로 대각선 침투를 시작했다. 쭉쭉치고 올라간 아이브는 자신이게 견제가 들어 오기 시작하자 미련없이 공을 중앙 쪽의 마르코 로이스에게 연결시켜 주었다.
'좋아!'
패스를 이어 받은 마르코 로이스는 공을 끌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지정석이라도 된 것처럼 상대 페널티 박스 왼쪽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던 데이빗에게 다이렉트로 공을 연결시켜 주었다. 조단 아이브가 공 운반을 잘 해준 덕분에 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체력을 온존한 상태로 상대의 심장부 근처에서 공을 연결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말이야. 이 팀을 맡고 나서 공격 전술에 있어서는 딱히 손을 볼 것이 없더라고."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는 클롭, 그는 여유롭게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왜 그렇잖아. 만약 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고. 칼을 어떻게 찌르느냐에 따라 치명상을 입힐지, 아니면 살가죽만 긁고 끝날지 모르는 거 아닌가."
"그거야 그렇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를 챈 코치가 동의한다.
"근데 내가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다고 해봐. 어떻게 써야 한다는 방법이 있나? 딱히 그런 게 없지. 그냥 상대의 머리 위에 떨어 뜨리면 끝이야. 그럼 그냥 쾅! 하고 모든 걸 박살내 버린다고."
그리고는 환상적인 움직임으로 교체 투입된 자신의 새로운 마크맨을 제압하고 박스 안쪽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데이빗을 가리킨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명확했지. 거대한 폭탄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터뜨릴 버튼만 만들면 되는 거였어. 저 친구에게까지 도화선이 이어질 수 있게만 만들면 되는 거였단 말이야. 나도 편한 일이었지. 굳이 패턴을 만들 필요도 없고 전술을 새롭게 짤 필요도 없었으니까."
공만 주면 골을 넣는데 전술은 무슨 전술! 이라며 웃어 넘긴다. 그것은 코치도 동감이었다.
"루이스의 움직임도 아주 좋군요. 둘 사이에는 정말 엄청난 유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절묘하게 상대 수비가 백업 나가는 길목을 가로 막았다가 빠지며 패스 코스를 확보하는 움직임이 예술적이었다.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대부분의 팬들은 알아 채기 힘든 숨겨진 장면, 하지만 데이빗이 더욱 빛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플레이였다.
"끝이야. 난 저 친구가 저 위치에서 놓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어."
귀납적으로 완벽한 골이나 다름 없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클롭, 그리고 자신들의 에이스는 그 믿음에 보답했다. 포효하며 벤치로 달려오는 데이빗, 클롭 역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그를 힘껏 안았다.
============================ 작품 후기 ============================
-열흘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 조그만 녀석과 정이 많이 들었었나 봅니다
-정말 반려동물과 10년 이상 함께 한 분들은 말 그대로 가족이나 다름 없겠네요
-걱정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괜찮아요
-좀 더 정리가 되면
-새로운 녀석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네요
-그렇게 되면 그녀석에게 다 해주지 못한 걸 모두 다 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