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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트래포드라, 오랜만인걸."
7월 26일, 영국과 세네갈의 경기가 열리는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 베컴은 과거 자신이 전성기를 보냈던 웅장한 경기장을 방문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운 듯 했다.
"거의 10년 만인가?"
"아니, 9년 정도. 어쨌든 10년 다 되어가는 건 확실하네."
"벌써 그렇게 됐나. 시간 참 빠르네."
긱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베컴, 둘을 제외하면 데뷔한 지 10년은 커녕 5년이 넘는 선수도 거의 없었기에 다른 선수들에게는 별세계의 이야기였다.
"아직도 널 기억하는 팬들이 많아. 아까 오면서도 봤지?"
"고마운 일이야. 뭐,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영감님 성격에 두 번 다시 날 부를 것 같지는 않고."
"너는 생각이 있고?"
"여러 군데를 떠돌다 보니 역시 가장 생각나는 건 친정팀이더라."
피식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복귀가 어렵다는 것은 베컴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선수를 용서한 전례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는 긱스도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고보니, 같이 유스 팀에서 올라 온 멤버들 중에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건 너하고 폴 둘 뿐이네?"
"폴은 은퇴를 한 번 했다가 영감님이 다시 불렀지만 말이야. 그때 폴의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낄낄거리며 그땐 정말 걸작이었노라며 말하는 긱스, 베컴은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폴 성격에 그 영감님의 끈질긴 부탁을 거절하긴 힘들었겠지. 근데 그만큼 팀 사정이 안좋았어? 폴의 실력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뭐, 영감님 눈에 젊은 친구들이 마땅치 않았다는 거지. 미드필드에서 중심을 잡아 줄 만한 사람이 부족하기도 했고 말이야. 나 혼자서는 힘들더라."
두 베테랑의 대화는 선수들의 관심을 끌었다. 어느새 다른 동료들이 자신들의 대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베컴과 긱스는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노인네들의 대화가 재밌었나 보네? 다음 이야기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 들려주도록 하지. 다들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하라고."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니까. 세네갈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저 나이 대의 아프리카 녀석들은 장난 아니라고."
긱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사실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올림픽, 혹은 그 이하의 연령대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강세는 확실히 눈에 띄었으니까. 아론 램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러고보니 확실히 아프리카 친구들이 낮은 연령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느낌이네요. 월드컵에서는 대부분 16강, 8강에 그쳤던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지경인데요? 보통 우수한 연령대가 성장하면 A 대표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보통인데..."
지네딘 지단을 필두로한 프랑스의 황금기가 그랬고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등이 주축이된 포르투갈의 골든 제너레이션도 주목할만 했다. 하지만 유독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나이가 들 수록 힘을 못 쓰는 경우가 많았다.
"뭐...아무래도 어렵게 자란 친구들이 많다 보니 말이야. 저 연령대 대표팀에서 활약하다 보면 빅 클럽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잖아? 그럼 아무래도 절박함이랄까, 그런 것이 좀 사라지는 것도 있지."
모든 아프리카 계의 선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보통 피지컬로 밀어 붙이는 축구를 구사하는 경우가 많거든. 자연히 나이가 들면서 피지컬이 떨어지면 그 힘이 반감되는 경우가 많지. 기술이 뛰어난 친구들도 있지만 그 기술이라는 것도 대부분 속도나 힘이 뒷받침 되었을 때 쓸모가 있는 경우가 많거든. 그들이 구사하는 축구가 보통 그래."
"피지컬이 동반되어야 효과가 있는 스킬이라구요? 잘 이해가 안되는데요?"
데이빗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질문을 던진다. 어쩌다 보니 경기 전의 휴식 시간이 강의 시간 비슷하게 되었다며 베컴이 난처한 미소를 짓는다.
"이것 참, 물어 보는데 대답해주지 않을 수도 없고...쉽게 이야기하자면...어디보자..."
적당한 예시를 찾으려는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던 베컴, 이내 괜찮은 비유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생각해보자고. 자, 데이빗. 너는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드리블러야. 너와 비슷한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친구는 장담컨대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어. 그렇지?"
"...하하하."
난감한 예시라며 데이빗이 뺨을 긁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컴은 씩 웃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그럼 여기서 문제, 그렇다면 다른 선수들이 과연 너와 동등한 수준으로 스킬을 갈고 닦으면 너와 같은 드리블 돌파를 경기 내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
"...그건..."
당연히 그렇지 않겠냐고 대답하려던 찰나 말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귓가에 팀 동료 글렌 존슨의 투덜거림이 들려오는 듯 했다.
'넌 딜레이라는 것도 없냐. 넌 그냥 존재 자체가 사기야.'
"...아무래도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네요."
그렇다 라고 대답하면 글렌 존슨에게 왠지 미안해질 것 같았다.
"그래. 그게 사실이야. 네 스킬은 분명 뛰어나. 세계 최고 레벨이지. 하지만 그 스킬이 더욱 빛나 보이는 건 너의 피지컬이 뒷받침 되기 때문이야. 이해가 돼?"
베컴의 친절한 설명에 데이빗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확실히 일리가 있는 견해였다.
"반면에...사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킥의 정밀도는 보통 연습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지."
"벡스, 니가 그런 얘기하면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진 다고. 킥도 타고난 부분이 있어야 해."
옆에서 긱스가 태클을 걸어 온다.
"대부분이라고 했잖아. 아무튼 이런 류의 기술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피지컬의 노쇠화에 비해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훨씬 길어. 뭐, 아무리 그래도 나이 앞에서는 장사 없지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해하기 편하네요. 친절한 설명 고마워요."
"천만에.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하다가 이런 소리까지 하게 된 거지?"
기분 좋게 웃다가 뭔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샌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는 사이, 타이밍 좋게 피어스 감독이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타이밍 좋네.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
"그래야겠네요. 좋은 이야기 고마웠어요."
"의외네. 너는 선발로 뛸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어. 선발 여부야 감독이 정하는 건데."
++
"그러니까 그 감독이 널 쓸 게 분명했을 거란 이야기야. 유로 대회 다녀 온 것 때문이겠지? 그것 말고는 널 벤치에 대기 시킬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오늘 데이빗과 함께 벤치에서 시작하는 마빈 소델은 팀 내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총 세 명의 공격수가 뽑힌 이번 대표팀에서, 자신은 그저 3옵션에 불과했다.
리그 원탑의 공격수 데이빗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데이빗이 지난 시즌에 기록한 골의 숫자가 자신의 커리어 전체 골보다 많았으니까.
다니엘 스터리지도 자신보다 한 발 앞서 있는 선수였다. 그가 볼턴 원더러스로 이적하게 된 것도 볼턴에서의 임대 생활을 마친 그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함이었으니까. 승부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두 선수가 자신보다 우위에 있음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뭐, 그거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
'...예선에서 출장 시간 제한이 걸렸다고 이야기하긴 좀 그러니까...'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늦게 합류한 부분에 대해서는 큰 잡음없이 넘어갔다. 하지만 출장 시간까지 조절해 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선수단 전체에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었다. 특정 선수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쓴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어서는 곤란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겠지? 뭐 내가 널 걱정할 처지는 아닌가?"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경기나 보자. 누가 경기에 나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말을 마치고 시선을 경기장으로 돌린다. 이제 막 시작된 경기, 긱스가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게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세네갈도 만만히 영국의 페이스에 휘둘리고 있지 않았다. 강인한 피지컬을 앞세워 영국 대표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조직력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었지만 넘치는 기동력과 강인한 체력은 이를 보충하고도 남았다. 애초에 영국 단일팀 역시 조직력이 완성된 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수준이 조금 떨어지네.'
23세 이하의 선수들이 주축이 된 올림픽 무대, 그 중에서도 정예급의 전력은 대부분 소속팀의 차출거부로 참여가 무산된 상태였다. 그렇다보니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나로서는 나쁜 일이 아니겠지만.'
3일 간 훈련을 치르며 어느 정도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다. 훈련이 진행될 수록 활기를 찾아가는 데이빗의 움직임에 코칭 스탭들은 만족감을 표시했지만 데이빗 본인이 느끼기에는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뭐, 조만간 괜찮아 질테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었다. 실제로 점점 나아지고 있었으니까.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난다면 평소와 다를바 없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골이야!!"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사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벤치 멤버들, 데이빗도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 났다. 오늘 원톱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장한 다니엘 스터리지가 골을 넣고 슬라이딩 세레모니를 선보이고 있었다.
"멋진 골이었어! 다니엘 녀석, 컨디션 죽이는데?!"
"정말이야! 일이 잘 풀리는데! 잘했다 다니엘!!"
'어...어떻게 넣은 거지?'
기뻐하면서도 딴 생각을 하느라 골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지 못했던 데이빗은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전광판에서 방금 전의 골 장면이 다시 나오고 있었다. 아론 램지의 전진 패스를 이어 받은 스터리지가 한 번 공을 쳐 놓고 그대로 중거리 슈팅을 시도한 것이 그대로 골망을 흔든 것이다.
"와우! 진짜 파워풀한 슈팅이었어! 멋지네!"
뒤늦게 감상을 말하는 데이빗, 옆에서 소델이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 온다.
"뭔가 반응이 느리잖아. 버퍼링이라도 걸렸어?"
"무슨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있으니까 그런거지."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데이빗, 소델은 짜게 식은 눈빛으로 그를 보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스터리지의 선제골에 힘입어 기선 제압에 성공한 영국 대표팀은 한결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많다 보니 분위기에 크게 좌우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아무리 베테랑 선수가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베컴이나 긱스가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아주 시기적절하게 터진 골이었고 가치가 높은 골이었다.
전반을 1 대 0으로 마친 양 팀, 후반들어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홈 팬들의 일방적인 성원, 그리고 심판의 유리한 판정이 더해져 경기를 지배하기 시작한 영국 대표팀이었다.
"이 정도면 이번 경기는 무난하게 잡겠는데."
벤치에서도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후반도 30분에 가까워졌다.
"아직 몰라. 15분, 아니 로스 타임까지 계산하면 20분 정도 남아 있다고."
"한 골만 더 넣으면 확실히 게임을 끝낼 수 있을텐데."
"그러게 말이야. 들어갈 듯 하면서도 계속 안 들어가네."
분위기는 아직도 영국 쪽에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상대의 숨통을 끊는 결정타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데이빗은 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다른 선수들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코치와 감독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교체 카드를 준비해야 할 때인데...난감하군."
걸어 잠그자니 한 골차의 리드가 불안했고, 공격적인 카드를 투입하기에도 마땅하지 않았다.
"일단 그럼 체력이 떨어진 선수 한 명 정도를 교체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이언이 조금 지쳐 보이는 군요."
이럴땐 정석대로 체력이 떨어진 선수를 동 포지션의 선수로 바꿔 주는 것이 어떻겠냐며 제안하는 코치, 피어스 감독도 동의했다.
"지금 벤치에 있는 친구 중에..."
"조 앨런의 컨디션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 조에게 몸을 풀기 시작하라고 전해 주게. 대기심에게 사인을 보내는 건 잠시 대기하도록. 그리고..."
말을 마치지 못하는 피어스 감독, 경기장 내의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반전되었다. 영국의 공격을 끊어낸 세네갈이 참았던 공격 본능을 폭발 시키듯 빠른 역습으로 나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피어스 감독은 불길함을 느끼고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달려 나갔다.
"빨리 돌아와! 일단 끊어! 끊으라고!"
다급한 외침, 하지만 세네갈의 공격은 생각 이상으로 빨랐고 정교했다. 단 한 번의 긴 패스가 최전방의 무사 코나테에게 연결되었고 코나테는 빠른 발을 살려 아직 전열이 갖추어지지 않은 영국 수비 라인을 단숨에 돌파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어진 골키퍼와의 1 대 1 상황, 잭 버틀랜드 골키퍼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 그 혼자서 커버하기에는 골대는 너무 컸다. 가볍게 슈팅을 성공시키는 코나테, 그리고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빌어먹을."
피어스 감독은 아쉬운 마음에 바닥을 발로 찼다. 이런 것이 축구였다. 아무리 유리한 경기라고 해도 한 방에 모든 것이 뒤집힐 수 있었다. 열광적인 응원으로 가득찼던 경기장 분위기가 팍 식어 버렸다. 이대로는 좋지 않았다. 첫 경기부터 흔들려서야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분위기를 반전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영국 대표팀에게는 이를 위한 최고의 카드가 준비되어 있었다.
"데이빗!"
동점골을 허용했을때 이미 자신을 찾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이며 점퍼를 벗고 일어 섰다.
============================ 작품 후기 ============================
-구정이네요
-다들 떡국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설 명절 되세요!
-이제는 세뱃돈을 주는 처지가 되어 버린 아재...ㅠ
-저도 세뱃돈 받고 싶어요!
-새뱃돈 = 추천
-주세요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