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300화 (30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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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깔끔하네."

오랜만에 자택으로 돌아온 데이빗은 깨끗이 정리된 집안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고용인 메리가 확실히 성실하게 일을 했는지 먼지 하나 찾아 보기 힘들 만큼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돈 많이 버니까 좋네. 이런 호사도 누리고."

가방을 대충 던져 놓고 일단 소파로 다이빙한다. 호텔의 푹신한 침대도 좋았지만 역시 자신의 집만큼 편하진 않았던 것 같다. 소파 위에서 밍기적거리며 쿠션에 얼굴을 파묻고 안락함을 만끽한다.

"이대로 자고 싶네. 자도 자도 졸리니 원..."

확실히 단기간에 치러지는 토너먼트 대회다 보니 피로 누적이 시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박싱 데이 무렵의 살인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기간이 조금 더 길다보니 체감은 비슷했다.

"아...체중...확인해 봐야지."

소파에서 일어나기가 귀찮았지만 해야할 일은 해야했다. 어제 확인했을 때는 한창 좋을 때에 비해 3kg이 모자란 상태였다. 활동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데이빗이 이 정도로 체중 유지가 힘들었으니 다른 선수들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었다.

"...거의 회복 되었네. 1.2kg만 채우면 되니까...며칠 내로 회복할 수 있겠다."

운동 선수가 지나치게 살이 쪄도 곤란하지만 자신의 적정 체중보다 미달되는 것도 위험했다. 체격은 곧 체력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상적인 신체 컨디션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운동 선수들에게 있어 체중 관리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섬세하게 관리를 해야하는 부분이다.

"저녁은...해 먹기 귀찮은데...나가기도 귀찮고..."

대회가 끝나고 나서 성취감 때문인지, 피로감 때문인지. 데이빗은 조금 무기력한 상태였다. 물론 올림픽을 앞두고 나서는 다시 의욕이 생길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만사가 귀찮았다. 어디 나가기도 귀찮고 무언가 움직이기가 싫었다.

"...에리카한테 와서 밥 해달라고 하면 화내려나..."

오늘은 데이트하기도 좀 피곤하고 귀찮았다. 와서 밥만 먹고 가라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기에 데이빗은 깔끔히 포기했다. 그렇다면 역시 이럴 때는 친구 밖에 없었다. 데이빗은 휴대폰을 들고 제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아라 얼른..."

얼마지나지 않아 제임스가 전화를 받았다. 데이빗은 반색하며 소리쳤다.

"제임스? 나야. 지금 뭐해?"

-엉? 뭐야, 왜 이렇게 들떴어? 무슨 일 있냐?

"무슨 일은, 좀 있으면 저녁 시간이잖아. 오늘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어때?"

-...뭐야 벌써 저녁 시간이야? 허, 벌써 5시가 넘었네.

"그렇게 바빴어? 시간도 못 볼 정도였나 보네."

-말도 마라. 요즘 진짜 장난 아니야. 티티도 눈가가 아주 시커멓게 죽었다고.

고충을 토로하는 친구의 모습에 데이빗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적당히 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몸 상하면서까지 할 건 없잖아."

-...맞는 말이긴 한데...니가 그런 말 하니까 뭔가 기분이 좀 이상한데?

"내가 뭘?"

-도대체 우리가 왜 바쁜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 원인 제공자가 그런 말을 하니까 당연히 이상하지 임마. 에휴, 그렇다고 적당히 활약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제서야 자신의 유로 대회 성적으로 인해 이들이 바빠졌음을 깨달은 데이빗이 멋적은 웃음을 흘렸다.

"그건 좀 그렇네. 이걸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됐네요. 웃자고 하는 이야기니까 신경쓰지마. 그나저나 밥 먹자고? 먹긴 먹어야 하는데...나는 그냥 간단히 때울 생각이었는데...

잠시 생각하던 제임스, 그리고 원래 고민을 깊게 하지 않는 성격 답게 시원하게 대답한다.

-그래 먹자. 니 말대로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지. 그럼 이쪽으로 올래? 니네 집 근처에는 먹을 만한 곳이 없잖아. 죄다 주택밖에 없는 동네니까.

합리적인 제임스의 제안, 하지만 데이빗은 그런 의도로 그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지 말고 제임스, 네가 일 마치고 우리 집으로 대충 사서 오면 안돼?"

-......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짜게 식은 목소리가 들려 온다.

-너 임마, 솔직히 얘기해. 지금 밥 해먹기 귀찮아서 나 부르는 거지? 밥 셔틀 시키려고?

"무슨 소리야? 그냥 같이 먹고 싶어서 부른 거지!"

완강히 부인하는 데이빗,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제임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럼 이쪽으로 와도 되잖아. 얼마 전에 티티하고 괜찮은 집을 하나 찾았는데 너도 한 번 와봐. 테이크 아웃이 안되는 곳이라 사갈 수가 없어.

이 정도면 외통수, 데이빗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다른 날이면 몰라도 오늘은 정말 귀찮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끼니르 거르고 그냥 자고 싶을 정도. 운동 선수로서의 의무감만 아니었다면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잤을 것이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해단식을 마치고 협회 사람들로부터 괜찮은 술을 몇 병 선물 받은 것이 있었다. 이걸 써먹을 때라며 데이빗이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너희들 주려고 선물을 좀 사왔거든. 와서 가져 가라고."

선물을 받은 것이 어느새 자신이 직접 구한 것으로 둔갑했지만 데이빗은 신경쓰지 않았다.

-...알겠다 알겠어. 갈테니까 그냥 귀찮으면 귀찮다고 얘기해 임마.

"정말이라니까."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 적당히 먹거리 사갈테니 기다리고 있어. 지금 급한 일부터 처리하면...아마 7시는 넘어야 갈 수 있을 것 같아. 대충 쉬고 있으라고.

자신을 훤히 아는 친구의 모습에 데이빗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어쨌거나 이해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래 기다릴게. 천천히 와도 괜찮아."

전화를 마치고 데이빗은 대충 해결했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대충 던져 놓고 소파 위로 몸을 던졌다.

"...이럴 줄 알았지."

제임스는 기막힌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데이빗을 바라 보았다. 초인종을 몇 차례나 눌렀음에도 반응이 없기에 전화 통화도 시도했다. 역시나 받질 않았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대로 문 고리를 돌려 보았다. 잠겨 있지 않은 현관, 혀를 차며 실내로 들어 왔고, 가장 먼저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데이빗을 볼 수 있었다.

"일어나 임마. 사람을 불러놓고 또 쳐 자고 있어?"

툭툭 건드리자 반응이 온다. 조금 더 강하게 흔들자 부시시한 눈을 뜨는 데이빗, 제임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지간히도 피곤했나보네. 야, 가서 세수나 좀 하고 와. 정신 좀 차리라고."

"...알았어."

어기적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난 데이빗이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 사이에 사온 먹거리를 식탁에 대충 세팅하는 제임스. 그 사이에 적당히 씻었는지 데이빗이 식탁으로 다가 왔다.

"미안, 잠깐 쉰다고 하는게 나도 모르게 자 버렸네."

"됐어. 근데 너 문단속은 하고 있어라. 뭐, 덕분에 밖에서 기다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래도 조심할 건 조심해야지 않겠냐?"

"아, 내가 문을 안 잠궈 놨었어?"

"...정신 좀 차리라니까."

"진짜 몰랐어. 앞으로 조심할게."

"그래. 이 집이 니가 사는 집이라는 거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축구 선수는 다들 잘 산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전에 그...제라드 그 양반도 집 한 번 털렸다면서?"

"아, 몇 년 전에 그랬다고 하더라. 생각해 보니 그렇겠네. 나도 조심할게."

데이빗이 알아 듣는 모습을 보이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제임스, 그의 성격상 잔소리를 길게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기에 이 정도로 마무리 되었다.

"먹자. 대충 빵이랑 스테이크 조금 사왔는데, 아직 식지는 않았을 거야."

"어 그렇네. 잘 먹을게. 이거 얼마나 들었어?"

자신이 비용을 감당하겠다는 데이빗, 제임스는 빵조각을 입에 넣으며 손사래를 쳤다.

"됐어. 얼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내가 먹자고..."

"됐다니까? 그래도 네 덕분에 항구에 있을 때보다 돈을 몇 배나 더 벌고 있는데, 이런 빵조각 몇 개 산다고 아까워하면 안 되지."

태연히 이야기하는 제임스의 모습에 할 말이 없어진 데이빗이다. 친구 사이에 괜히 재고 싶지는 않았고 생색을 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자신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부분은 조금 민감한 부분이었기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순순히 호의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의 말마따나 식사 한 끼 정도야 큰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그 이상의 경제력이 필요한 부분이라면 단호히 거절했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집이 깨끗하네. 그 고용인이 탱자탱자 놀지는 않았나 봐."

"그러게. 괜찮은 사람 같아."

"혹시 알아? 계속 놀다가 너 올때 쯤에 한 번 제대로 일했을지도."

"...그거야 CCTV를 설치하지 않는 이상 모르는 건데...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 뭐, 내가 돌아왔을 때 깔끔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말자며 데이빗이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포장해서 이동하는 시간 동안 조금 식긴 했지만 아직 충분히 온기가 남아 있었고 먹을 만 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데이빗이었기에 이 정도면 아주 준수한 식사였다.

"뭐 니가 마음에 들면 된거지."

길게 이야기할 생각이 아니었기에 제임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식사를 계속한다. 이후 식사 시간은 데이빗의 유로 대회 당시 대표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 졌다. 주로 제임스가 질문을 했고 데이빗이 대답하는 모습.

식사를 마치고 나자 조금 힘이 나는지 데이빗이 손님 대접을 시작했다. 차보다는 술을 더 좋아하는 제임스다 보니 와인 한 잔을 따라 주었다.

"그나저나, 요즘 그렇게 바빠?"

와인보다는 맥주를 더 선호하는 제임스였지만 티티를 도와 에이전트 업무를 보조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와인도 조금씩 익숙해 지고 있었다. 잔을 몇 번 흔들며 빛을 확인하고 향을 맡더니 만족스럽게 한 모금 마신다.

"아? 아까 얘기 안했나?"

"얘기하긴 했지. 근데 도대체 어느 정도인데?"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하려나. 일단 CF 제의가 제일 많은데, 지금까지 40건 넘게 들어 온 것 같아. 액수들도 다들 장난이 아니라 좀 자세히 살펴 보고 있고...그리고 사업 제안 같은 것들도 많이 들어 오고 있는데 이쪽은 거의 쓰레기 같은 것들이라 대부분 무시하고 있어."

"아, 그런거. 아직도 많이 들어와?"

"예전보다는 좀 덜 하긴 한데, 만만치 않지. 그리고 또...아, 기부 요청도 좀 들어오고 있어."

"기부 요청?"

그건 좀 관심이 가는지 데이빗이 눈을 반짝인다.

"어, 꽤 자주 들어 오는데, 이쪽도 좀 잘 알아 보지 않으면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남 좋은 일이라는 건 니 돈을 빼돌려서 지들 배때지 불리는 데 쓸 수도 있다는 거야. 아, 그 전에 물론 니가 기부할 의사가 있어야 겠지만 말이지."

"의사야 당연히 있지. 좋은 일하면 좋잖아?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뭐, 기부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처럼 전재산을 내놓는다거나 이런 건 불가능하겠지만 적정 수준이라면 할 의향이 있어. 아, 네 말대로 잘 알아봐야 하긴 하겠네.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는다고 돈을 냈는데 엉뚱한 녀석들이 빼돌린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단호히 선을 긋는 데이빗의 모습에 제임스가 만족스럽게 웃는다.

"나와 티티도 그런 생각이야. 네 돈을 가지고 장난치게 두진 않을테니까 걱정하지마. 아 티티는 아예 니가 재단을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

"내 이름으로?"

"그래. 왜 선수들 각자 재단을 가지고 있는 경우 많잖아? 그렇게 해서 니가 믿을 만한 사람한테 맡긴다면 돈이 엄한데 쓰일 확률도 줄어들 거고, 니가 관심 있는 분야에 도움을 줄 수 있을테니까. 일석이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네. 그건 좀 더 알아봐야겠다."

"급한 거 아니니까. 일단 티티한테도 그렇게 전해 놓을게."

이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정리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뭐, 다른 구단으로부터 이적 문의가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는데...사실 이거 뭐라더라...사전 접촉 금지가 어쩌고 하던데, 뭐 다들 하는 부분이라고 하니까 크게 신경쓰진 않아도 될거 같아. 어차피 걸려도 우리가 접촉한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이야기한 거니까."

또 이적 이야기냐며 데이빗이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그도 사람인지라 자신을 원하는 팀들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뿌듯했고 자부심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팀을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냥 거절해줘. 딱히 팀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선수들이 이적을 결심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돈 문제, 데이빗은 지금 주급 체계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탭들, 혹은 동료와의 불화. 이 부분 또한 해당 사항 없음이다. 이미 팀 내에서 확실한 에이스로 대접받고 있었고 데이빗 또한 딱히 모난 성격이 아닌지라 인간 관계에 큰 문제가 없었다. 또 팀의 비전, 즉, 우승을 노릴 수 있느냐,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팀이냐 또한 중요 요소였는데 리버풀은 지난 시즌 우승을 거둔 팀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8강까지 올라간 팀인 만큼 어느 팀을 간다고 해도 이 이상가는 조건을 찾기 힘들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럼 그렇게 이야기 해 놓을게. 그리고 리버풀 측에서 재계약 조건을..."

식후 간단히 디저트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려 했는데 어느새 업무에 대한 미팅처럼 변해 버렸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제임스는 이러려던게 아닌데 라고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티한테 뭐라고 할 게 아니구만. 나도 어느새 워커 홀릭이 된건지..."

"다음에는 그냥 일 얘기 빼고 놀자. 오늘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뭐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그럼 난 이만 간다. 너도 피곤해 보이는데 푹 쉬어."

"조심해서 들어가. 또 연락할게."

============================ 작품 후기 ============================

-여행 6일차

-리얼 성실 라이즈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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