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95화 (29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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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카펠로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루니의 체력을 조금 당겨쓰는 느낌으로 운영을 한 것이 결과적으로 좋게 작용했다. 방금 전의 골은 데이빗의 환상적인 무브먼트도 인상적이었지만 루니의 적극성과 창조성 역시 곁들여 졌기에 가능했던 골이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경기가 풀릴 때 만큼 감독으로서 뿌듯한 순간도 없었다.

"한 골로는 부족해! 긴장 늦추지 말고 계속 몰아 붙여!"

평소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리를 지키고 가만히 관전하는 편인 카펠로 감독이 이례적으로 테크니컬 에어리어까지 나와 소리쳤다. 스페인을 상대로 한 골 차의 리드는 충분하지 않았다. 기회를 잡았을 때 확실히 벌려야 했다.

'이대로 스페인이 당황해 준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생각보다 쉽게 이 경기를 가져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은 위험했다. 상대는 지난 유로 대회를 석권하고 월드컵까지 제패한,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팀이었다. 그런 그들이 한 골을 얻어 맞았다고 기가 죽을리 만무했다. 그랬기에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된다고 카펠로 감독은 판단했다.

"저 자식은 사기야. 미친 놈이라고."

다비드 실바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옆에 있던 파브레가스도 한숨을 쉰다.

"내가 프리미어 리그에 있을 때 저 친구를 많이 못 본게 다행인 거 같네."

2011년 4월에 한 차례 맞붙어 본 경험이 있는 파브레가스였다. 그 당시에는 골키퍼 알무니아의 정신 나간 플레이로 인해 패배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프리미어 리그를 떠나 고향 팀으로 돌아간 이후, 저 공격수는 아예 리그를 박살 내 버리며 존재감을 확대했다. 아스날에서 보낸 시간도 적지 않았기에 아직도 연락을 주고 받는 선수들이 있었고 본인 스스로도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가끔 찾아 보곤 했기에 데이빗이 얼마나 위협적인 선수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 자식만 아니었으면 이번에 우승은 우리가 하는 건데."

맨체스터 시티의 이야기였다. 결국 맞 대결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이 우승의 향방을 결정 짓는 분수령이 되었고, 가장 큰 원인이 데이빗 장이었기에 실바의 푸념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니들 팔자 좋게 계속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 후딱 따라 잡아야지!"

어느 새 센터 서클에 자리잡고 선 다비드 비야가 소리쳐 부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두 선수는 이야기를 마치고 발 걸음을 옮겼다. 아직 경기는 초반일 뿐이었다. 이대로 순순히 우승컵을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는 스페인 선수들이다.

"여태까지 유로 대회를 연달아 우승한 나라는 없다고 했지?"

발걸음을 옮기며 슬쩍 질문하는 파브레가스, 사실 그도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물어 보는 이유는 다시 한 번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 우리가 이번 대회에 우승한다면 역대 최초라고 하더라."

"최초라. 난 최초라는 말이 참 좋더라. 뭔가 선구자같은 느낌이 나잖아?"

씩 웃는 파브레가스, 실바도 나쁘지 않다며 미소를 짓는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건 언제나 환상적인 일이지."

한 골을 얻어 맞은 스페인, 하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유로 2012 개막 전에 가졌던 마지막 평가전에서 두 팀은 이미 한 차례 만난 경험이 있었다. 그때에도 선제골을 허용한 것은 스페인이었지만 결국 경기에서 승리한 팀 역시 스페인이었다. 그런 경험과 함께 최근 몇 년 동안의 성공들이 선수들에게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안겨 주었다. 오히려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부스케츠가 이제 몸이 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다른 화려한 선수들에 비해 인지도가 조금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는 선수지만 실제 그를 상대해 본 선수들은 부스케츠야말로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음지에서 묵묵히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가 부스케츠였다. 스페인의 패스 마스터들이 마음 껏 활개칠 수 있는 것은 뒤에서 그들에게 방파제 역할을 해주는 부스케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잉글랜드 미드필더들은 곤란함에 봉착했다. 공을 빼앗아도 쉽게 전개시킬 수가 없었다. 애초에 공을 쉽게 빼앗기도 힘들었다.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를 유지하는 근간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사비 에르난데스였다. 이 두 선수에게 공이 모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잉글랜드 선수들은 두 선수를 집중적으로 마크했다. 하지만 부스케츠가 뒤쪽에서 계속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고 공을 돌려 받기 쉬운 곳으로 움직이다보니 사비와 이니에스타가 그를 이용하여 압박에서 벗어나기가 수월해 졌다. 정 안되면 뒤로 내 주면 그만이니 부담도 없었고 말이다.

자연스레 잉글랜드가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줄어 들었다. 부스케츠의 백업을 받은 2선의 미드필더들이 덩달아 날뛰기 시작하자 숨도 쉬지 못한 채 웅크려야 했다. 아무리 루니를 한 단계 내리며 어느 정도 맞 붙어 볼 각오를 했다지만 그것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완벽하게 컨디션이 살아난 스페인의 중원진을 상대로 주도권 싸움을 벌인다?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객기에 가까운 일이다.

"역시 스페인이군요. 쉽지가 않습니다."

"음."

카펠로 감독도 침음성을 흘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왕 기세를 탄 김에 한 골 더 추가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스페인의 회복이 빨랐다. 오히려 한 골을 넣은 것이 그들에게 독한 약으로 작용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지금 경기 양상은 스페인이 잉글랜드를 가두어 놓고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힐끗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다. 이제 막 전반 30분이 지났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다며 내심 투덜거려 본다. 시계를 보기 전에는 전반이 거의 끝나갈 때쯤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버텨야 해. 한 골의 리드를 지킨 상태로 후반에 들어간다면 운영하기가 좀 더 편해질 거야."

남은 15분 정도를 버틴다면 후반이다. 자연히 흐름이 한 번 끊어지는 셈이다. 만약 농구처럼 작전 타임을 부를 수 있다면 카펠로 감독은 망설임 없이 지금 작전 타임을 신청했으리라. 그는 이 흐름이 1초라도 빨리 끝나길 원했다.

스페인이 본연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며 속절없이 주도권을 내준 잉글랜드였지만 골은 허용하지 않았다. 위험 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반칙도 불사했고 그로 인해 심판으로부터 주의를 받고 카드를 받는 이들이 속출했지만 어쨌거나 버티는 데 성공했다. 잉글랜드 관중들도 초조함을 억누른 채 선수들에게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며 힘을 보탰다. 그리고 전반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크게 한숨을 토해내는 관중들이다.

"어휴, 진짜 조마조마해서 미칠 뻔 했네."

"젠장, 시계가 고장난 줄 알았다니까. 뭐가 이렇게 안 끝나?"

"고장난 거 맞아. 이제 전반이 끝났다는 게 말이 돼? 연장 후반까지 끝난 기분이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관중들,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들 뿐만 아니라 관중들에게도 휴식 시간이 필요했다. 45분 내내 소리를 지르며 감정을 쏟아 낸 그들에게는 재 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야 남은 45분도 쉼없이 달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여기 마사지 좀 해줘! 이 자식아! 수건 좀 가져 오라고 했잖아!"

"지금 갑니다! 드링크는 여기 있어요!"

"다리를 좀 들어 올리 겠습니다. 힘을 빼 주세요."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잉글랜드 라커룸 분위기였다. 스탭들은 정신 없이 오가며 선수들의 케어에 힘쓰고 있었다. 급격한 운동을 통해 떨어진 수분을 보충하고 열량을 공급했다. 그리고 근육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어 주기 위해 매달렸다. 카펠로 감독은 그런 선수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주 잘해 주었다. 여러분들은 전반 동안 트로피를 들어 올릴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차분하지만 열기가 깃든 목소리로 선수들을 독려한다. 이 상황에서 전술이 어떻고 저떻고,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투지를 잃어 버리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 주어야 했다.

"이제 45분, 45분이다. 45분 동안만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면 여러분들은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입장하면서 다들 앙리 드로네를 보았겠지?"

"몸매가 아주 잘 빠진 아가씨였죠."

제라드로서는 드물게 농담을 던졌다. 선수들은 피식 웃으며 다들 한 마디 씩 보탠다. 카펠로 감독은 선수들의 반응에 만족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그 멋진 아가씨를 바람 맞혀서야 신사라고 할 수 없겠지. 저 스페인 녀석들은 그저 들이 댈 줄만 알지 숙녀에 대한 에스코트가 부족해. 역시 잉글랜드 신사들이 그런 쪽으로는 전문 아닌가?"

"제가 또 그런 건 기가 막히게 잘 합니다."

루니가 씩 웃으며 나섰다. 준결승 전에서 약간 언쟁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관 없었다. 카펠로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루니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웃음을 짓는다.

"그래, 기대하고 있지. 다들 유럽 최고의 신사가 될 준비는 되었나?"

"물론입니다!"

라커룸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선수들의 목소리.

"좋아, 그럼 이제 최고가 될 시간이다. 오늘 밤은 여러분들에게 잊지 못할, 환상적인 밤이 될 거다. 나가서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와라!"

"괜찮아요?"

입장을 준비하며 루니에게 슬쩍 말을 붙인다. 전반에 골을 기록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루니가 아니었다면 경기를 이렇게 끌고 오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많은 거리를 소화한 루니였기에 데이빗의 물음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물론이지. 누가 누굴 걱정해?"

슬쩍 손을 들어 데이빗의 배를 가볍게 치는 루니, 본인의 건재함을 알렸다. 사실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아마 전반전에만 못해도 6km 이상 뛰었을 것이 분명했다. 데이빗이 한 경기를 풀 타임으로 소화했을 때 보통 8km 정도의 활동량을 보였으니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전반전만에 데이빗의 한 경기 치 운동량을 보인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무리 축구 선수라고 해도 힘들지 않을리 없었다. 그만큼 루니의 결의가 느껴졌기에 데이빗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게요. 잠깐 사람을 착각했네요. 걱정할 사람이 없어서 인간 같지 않은 웨인을..."

"엉?"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들어 올리는 루니의 모습에 데이빗이 손사래를 쳤다. 주먹이 참 매서워 보였다.

"아뇨. 아무것도."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피우는 데이빗, 루니는 인상을 쓰며 째려보다가 피식 웃었다.

"45분이야."

"그렇네요."

불분명한 문장이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 지 충분히 알아 들을 수 있었다.

"45분이면...별거 아니잖아. 내가 집에서 목욕하러 들어갔다가 잠깐 노래 좀 부르고 나오면 40분은 그냥 지나가 있더라고."

'...무슨 노래를 얼마나 하길래...'

조금 어색한 미소를 흘리는 데이빗, 하지만 별 다른 태클은 걸지 않았다. 후반에도 더 많이 뛰어야 하는 것은 루니였다. 그 사실은 본인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별 거 아니라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웨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 겠죠."

그랬기에 슬쩍 모른 척하고 넘어간다. 그건 이 경기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땀을 흘릴 동료에 대한 예의였다.

"그래. 그런 거야. 어떻게 하면 저 트로피를 들고 멋지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다보면 순식간일 거야."

말은 저렇게 해도 그라운드 위에서 누구보다 집중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이미 눈빛은 전투 태세로 들어가 있는 루니였다. 어디까지나 부담감을 털기 위해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늘어 놓는 것일 뿐이다. 데이빗은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길었던 유로 대회도 이제 마지막이다. 45분이 지나고 웃기 위해서는 이제 모든 것을 잊어야 했다.

============================ 작품 후기 ============================

-아침 비행기로 콸라룸푸르로 떠납니다

-거기서 1박한 후에 호주로 슝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은 2/3일이 될 거 같습니다. 집에 오면 밤이 될듯

-2월 2일까지는 연재 분량이 있습니다.

-2월 3일 늦게 도착할 거 같으니 아마 2월 3일, 2월 4일 이틀 동안 연재가 빠질 것 같네요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날씨 추운데 건강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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