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74화 (27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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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폴란드의 그단스크 PGE 아레나 스타디움.

유로 2012 본선 무대를 앞두고 마지막 평가전을 치르게 된 잉글랜드와 스페인 대표팀이 경기에 앞서 몸을 풀고 있었다. 오늘 선발 명단에 포함된 데이빗은 몸 상태가 썩 괜찮아 보였다. 아무래도 다른 선수들보다 거의 열흘에 가까이 휴식을 더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치른 첼시 소속의 선수들에 비하면 2주를 더 쉰 셈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잉글랜드 베스트 11 (4-4-2)

---------------------저메인 데포-------------

-------------데이빗 장-----------------------

--스튜어트 다우닝-----------------애슐리 영--

-----------스티븐 제라드--스콧 파커----------

애슐리 콜-필 자기엘카-줄리온 레스콧-글렌 존슨

-------------------조 하트-------------------

스페인 베스트 11 (4-2-3-1)

-------------------다비드 비야--------------------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다비드 실바--사비 에르난데스-

--------------사비 알론소----부스케츠--------------

호르디 알바-헤라르드 피케-세르히오 라모스-아르벨로아

-------------------이케르 카시야스------------------

양 팀의 베스트 11이 전광판에 표시되었다. 전형적인 잉글랜드 식 4-4-2 시스템으로 경기에 임하는 잉글랜드였다. 양 윙어로 빠르고 크로스가 좋은 두 선수를 배치하고 중앙 지역에는 활동 폭이 넓으면서 중거리 슈팅에 강점이 있는 선수를 배치했다. 투 톱에는 음주 파문을 일으킨 웨인 루니 대신 저메인 데포가 데이빗 장의 파트너로 낙점 받으며 빠른 역습을 노리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였다.

반면 스페인은 최전방에 배치된 다비드 비야를 정점으로 4-2-3-1 시스템으로 경기에 나섰다.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와 거의 흡사한 축구를 구사하는 스페인의 색깔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선수 구성, 바르셀로나의 주전 미드필더들을 통째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다만 메시의 역할을 해 줄만한 선수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었는데 그렇다고해도 절대 얕볼 수 없는, 아니 세계 최고라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라인업이었다.

"국가 대표 경기에서 얼마만에 주전으로 나서는 지 모르겠다."

센터 서클 안에서 킥 오프 휘슬을 기다리며 너스레를 떠는 저메인 데포, 데이빗은 어이없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오래 됐다고 그래요. 맨날 선발로 뛰었으면서."

"무슨 소리야? 그건 다 니가 대표팀에 뽑히기 전 얘기지. 그때도 맨날 주전으로 뛴 건 아니었어. 앤디나 대런 같은 녀석들하고 번갈아 가면서 뛰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대표로 발탁된지가 얼마나 됐다고...하아."

국가 대표 경력이래봤자 3경기(실제로 뛴 건 2경기)에 불과한 데이빗이었기에 데포의 푸념이 황당할 법도 했다.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넘어가자. 어쨌든 오늘 잘 부탁해."

"저야말로요. 훈련 때처럼만 하면 충분히 좋은 경기할 수 있을 거에요."

"나만 믿으라고."

가볍게 주먹을 맞대며 파이팅을 다짐한다. 그리고 울리는 심판의 휘슬, 저메인 데포가 가볍게 공을 굴려 주었고 데이빗이 그 공을 뒤로 크게 돌리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진이 그리 처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메이저 대회에서 이름 값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잉글랜드라고는 하나 세계 적인 강 팀임에는 분명한 잉글랜드의 대표로 뽑히는 선수들이 녹록한 실력일리는 없었다. 스튜어트 다우닝의 돌파력과 크로스, 수비 가담 능력은 월드 클래스임에 분명했고 스콧 파커는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파이팅이 넘치고 밸런스가 좋은 투지 넘치는 플레이어였다. 애슐리 영은 빠른 발과 정확한 오른발을 자랑하는 스페셜리스트였고 스티븐 제라드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보다 더 한 괴물들이 모인 스페인이라는 것이 좋지 못했다. 벤치 자원마저 잉글랜드의 주전에 못지 않거나 압도하는 실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주전으로 나서는 미드필더들이 다비드 실바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르셀로나 소속의 선수들이었기에 호흡을 맞추는 데도 무리가 없었다.

"오른쪽 비잖아! 확실히 체크해!"

주장 완장을 달고 나선 제라드의 호통에 가까운 지시가 이어진다. 선축으로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을 넘겨주고 말았고 그 이후로는 제대로 공을 잡기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이는 실력 차도 실력 차였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이 이런 짧은 패스로 땅 따먹기를 하는 듯한 스타일에 익숙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아스날이 그나마 이와 비슷한 축구를 구사하긴 하나 완성도나 템포에 있어서 비교가 불가능했기에 선수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곳 저곳에서 빈틈을 노출하고 있었고 스페인 특유의 패스워크에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고 있었다. 그나마 왼쪽 사이드의 스튜어트 다우닝이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며 버텨 주고는 있었지만(물론 공격은 사실 상 포기한 상태) 오른쪽의 애슐리 영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한 모습이었다.

[애슐리 영, 오늘 지나치게 긴장한 듯한 모습이네요. 스페인의 왼쪽 미드필더로 나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군요.]

[그나마 글렌 존슨이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커버해 주고 있습니다만,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소속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인데요, 오늘은 좋아 보이지 않는 군요.]

[전반 13분, 현재까지의 점유율은 62 대 38로 스페인이 압도적입니다. 사실상 잉글랜드는 공을 제대로 소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간혹 공을 빼앗아도 라인이 밀려 있다보니 공을 전개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죠. 미드필드에서도 수적 열세에 놓여 있다보니 상대의 강한 압박을 이겨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전형적인 4-4-2 시스템의 약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 중앙을 생략하고 최전방의 투 톱을 향해 한 번에 연결시키는 패스를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정확도가 아쉽습니다.]

[미드필드에서 롱 패스에 일가견이 있는 스티븐 제라드 선수를 사비 알론소가 적절하게 방해해 주고 있습니다. 스콧 파커는 롱 패스에 재능이 있는 선수가 아닌 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잉글랜드가 노리는 역습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투 톱에게 정확한 패스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단순한 뻥 축구에 지나지 않죠.]

'...어째 리버풀이 더 셀 거 같은데...'

데이빗은 오랜만의 국가대표 경기를 뛰며 그런 감상이 들었다. 스콧 파커의 성실함과 기동력은 루카스 레이바의 깔끔한 저지 능력에 비해 투박해 보였고 애슐리 영의 지금 모습은 디르크 카윗과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다우닝이 폭 넓은 활동량을 보이며 수비에 공헌이 컸으나 마르코 로이스의 다재다능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말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되게 답답하네.'

사실 리버풀에서도 가끔 이런 역습만을 노리는 전술을 취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체력적으로 맛이 간 상황에서 붙게 된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가 그랬고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도 있었다. 공이 제대로 오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은 동일했지만 피치 위에서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답답했다.

'스페인도 바르셀로나보다 그리 강한 느낌은 안 드는데. 기분 탓인가?'

분명 깔끔한 패스워크였고 주도권을 틀어 쥔 스페인이였다. 하지만 말로 설명하긴 힘들었지만 막연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메시가 없어서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

홀로 2~3명의 수비를 잡아 두는 메시가 없어서 인지 확실히 한쪽으로 수비가 쏠리는 현상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패스 워크를 따라 잡기는 요원해 보였지만 최소한 일 대 일 돌파는 저지하고 있었으니까.

'...뭐, 한 번은 좋은 패스가 오겠지.'

카펠로 감독은 자신의 전술 밖으로 벗어나는 행동에 대해 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감독이다. 설령 그것이 자신이라고 할 지라도 재수가 없으면 눈 밖으로 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데이빗은 굳이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염 없는 기다림만 있을 뿐.

"심심하냐?"

어색한 영어가 들려 온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짧은 머리에 턱수염을 살짝 기른 선수가 보였다. 세르히오 라모스, 오늘 그의 전담 마크맨으로 낙점된 이였다.

"아니 별로."

무심하게 대꾸하고 고개를 돌린다. 그다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라모스가 뭐라뭐라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시했다.

'보나마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해서 트래쉬 토크를 하려는 거겠지.'

평소였다면 적당히 맞받아 치면서 넘겼겠지만 오늘은 귀찮았다. 그래서 무시를 택했고 데이빗이 별 다른 반응이 없자 세르히오 라모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포기했다.

'그냥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최근 유럽에서 가장 핫 한 선수로 꼽히는 이였기에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한 마디 제대로 말을 붙여 보기도 전에 거절당해 버렸다. 좀 머쓱한지 괜시리 머리를 긁적인다.

'시합 중에는 잡담하지 않는 스타일인가?'

어쨌거나 지금은 적으로서 상대해야하는 입장이기에 데이빗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슬쩍 고개를 돌려 벤치에 앉아 있는 푸욜을 바라본다.

'저 노인네를 아주 탈탈 털었다고 하니까...'

마음에 드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푸욜을 농락하다시피 한 데이빗에게 경계심과 더불어 호기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만약 이번 경기에서 저 친구를 막아 낸다면 푸욜에 대한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

'일단 이번 경기에서 우아하게 막아 내고...'

경기가 끝난 뒤 유니폼 교환을 요청하며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이긴 뒤에 당당한 승자의 여유를 보여주는 것은 꽤 괜찮은 그림일 거라 생각했다. 라모스가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미소짓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데이빗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뭐야?"

잠깐 딴 생각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워낙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경기였고 상대의 진영에서 공이 제대로 넘어오지 않고 있었기에 일어난 방심, 사비 알론소에게 이어지는 패스를 스콧 파커가 특유의 성실함으로 끊어 냈다. 그리고 사비 알론소의 마크에서 벗어난 제라드에게 연결, 제라드는 지체 없이 장거리 스루 패스를 시도했다.

'뭐긴 뭐야. 니가 반응이 늦은 거잖아.'

속으로 가볍게 비웃으며 데이빗은 뒷 공간으로 달렸다. 약간은 왼쪽 사이드로 치우친 패스였지만 충분히 좋은 찬스였다. 일단 라모스는 자신을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미 한 걸음 이상 차이가 나 버렸으니까. 공을 받음과 동시에 데이빗은 사이드로 흐르는 공의 진로를 중앙으로 꺾었다. 그리고 라모스의 태클을 가볍게 뛰어 넘고 달리기 시작했다.

'저메인, 땡큐!'

수비진의 시선을 혼란시키는 저메인 데포의 움직임이 좋았다. 그로 인해 라모스의 백업을 나오려던 헤라르드 피케의 움직임이 멈춰 버렸다. 중앙 지역의 힘 싸움에 가담했던 양 쪽 풀백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즉, 사실상 데이빗의 돌파를 저지할 만한 스페인의 자원은 전무한 셈.

"빌어먹을!"

아니, 한 명 남았다. 이케르 카시야스가 순식간에 데이빗을 향해 거리를 좁혀 왔다. 점점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카시야스였지만 아직도 세계적인 수준임에는 분명했다. 그는 좋은 타이밍이 뛰쳐 나왔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동작으로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불운이라면 단지 하나, 상대가 나빴다는 점이다.

"...!!!"

카시야스는 공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자신의 품 안에 거의 들어왔던 공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상대 공격수의 발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자신의 위를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그라운드 위로 날린 몸을 추스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이 지켜야 했을 골대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공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 작품 후기 ============================

-야 잠깐만, 말하는데 때리는게 어디 있...

-일단 한 대 맞아

-질문은 나중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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