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70화 (27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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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좋아 보이네. 헤이, 웨인! 잘 지냈어?"

5월 25일, 유로 2012를 앞두고 확정된 최종 대표팀 멤버들이 세인트 조지 파크에 집결했다. 유로 2012의 개막은 6월 8일, 잉글랜드의 첫 경기는 6월 11일 프랑스 전으로 잡혀 있었다. 카펠로 감독은 조금 더 일찍 소집하여 전술 훈련에 매진하고 싶었으나 리그를 막 마친 선수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소집 일자를 5월 25일로 결정하게 되었다.

"스티비! 오, 데이빗도 함께 왔네. 우승 축하해. 이번 시즌 너희들 정말 대단하더라."

"고마워 저메인. 토트넘도 만만치 않던데."

"만만치 않긴. 아, 너희 팀을 상대로 한 번 이기긴 이겼구나. 그래 봤자 5위인데 뭐. 이번엔 챔피언스 리그에 꼭 나가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지."

껄껄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서 이미 그가 아쉬움을 털어 버렸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데이빗 또한 오랜만에 만나는 데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잘 지냈어요? 경기장에서 본 이후로 꽤 오랜만인거 같네요."

"그렇지? 니네랑 우리랑 마지막으로 만난게...1월 인가 2월 인가. 그쯤 아니었나? 아무튼 세 달도 더 지났네. 시간 참 빠르다."

토트넘과는 지난 시즌 5라운드(9월), 24라운드(2월)에 만난 것이 전부였으니 데포의 감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렇네요. 아무튼 이번 대회 잘 해봐요. 우리도 우승 한 번 해 봐야지."

"그래, 솔직히 언론에서 종주국이네 강호네 떠드는 것도 좀 창피할 지경 아니냐? 결과를 낸 적이 있어야지. 그래도 이번에는 꽤 느낌이 좋은 것 같아. 조가 좀 더럽게 걸리긴 했지만 말야."

이번 유로에서 잉글랜드는 개최국 우크라이나, 잉글랜드의 천적 스웨덴, 전통의 강호 프랑스와 함께 D조에 편성되었다. 스웨덴이야 세계 랭킹에 관계 없이 잉글랜드의 천적으로 이름 높은 나라였고 프랑스는 최근 조금 주춤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90년 대 중 후반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뚜렷한 족적을 새긴 강호였다. 우크라이나가 조금 전력 상 한 수 아래라 평가할 수는 있지만 개최국의 이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유로 본선 쯤 되면 사실 실력이 떨어지는 약 팀들은 대부분 걸러지게 된다. 사실 A, B, C, D조 가운데 그나마 이름 값이 조금 떨어지는 나라들로 구성된 A조를 제외하면 B, C, D조는 모두 죽음의 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로 2012 본선 조편성

A조: 폴란드, 러시아, 체코, 그리스

B조: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포르투갈

C조: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아일랜드

D조: 우크라이나, 잉글랜드, 프랑스, 스웨덴

사실 어느 조에 편성된다고 해도 조별 예선 통과를 장담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저메인 데포가 나름대로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난 조별 예선에서 데이빗의 합류 이후 잉글랜드의 부족했던 골 결정력이 보충되며 한층 더 파괴력을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잉글랜드가 그간 국제 메이저 대회에서 죽을 쑤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최전방 라인이었으니까. 데이빗 장의 합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대표팀에 걸린 기대가 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뭐, 나야 보나마나 벤치 대기 신세겠지만, 이 녀석하고도 어쨌든 호흡을 맞출 수 있지 않겠어?'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춰 본 시간을 짧았지만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즐거움을 느꼈던 저메인 데포였다. 비록 이번 시즌 27골을 때려 넣은 웨인 루니의 자리를 빼앗지는 못하겠지만 (40골을 집어 넣은 데이빗 장은 애초에 열외였다) 조커로라도 투입된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조는 상관 없어요. 다들 잘하는 팀들이긴 하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리그 우승을 거머쥔 이후 한층 더 자신감이 붙은 데이빗이 당당히 이야기했다. 데포도 기분 좋게 웃으며 그와 주먹을 맞대었다.

"당연하지. 아무튼 잘 부탁한다. 오, 자기엘카하고 베인스도 지금 도착했네. 헤이, 반가워!"

총 23명, 잉글랜드를 대표하여 유로 2012 본선 무대를 밟은 선수 전원이 모두 모였다. 다들 시즌 중에는 원수같이 잡아 먹을 것처럼 달려든 사이지만 이 자리에서만큼은 친근하게 지내자는 데 뜻을 같이 했다.

GK- 조하트  (맨체스터 시티)  1번

- 로버트 그린  (웨스트 햄)  13번

- 잭 버틀랜드  (버밍엄 시티)  23번

DF- 글렌 존슨  (리버풀)  2번

- 애슐리 콜  (첼시)  3번

- 마틴 켈리  (리버풀)  5번

- 존 테리  (첼시)  6번  ( C )

- 레이턴 베인스  (에버튼)  12번

- 필 존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4번

- 졸리온 레스콧  (맨체스터 시티)  15번

- 필 자기엘카  (에버튼)  18번

MF- 스티븐 제라드  (리버풀)  4번

- 조단 핸더슨  (리버풀)  8번

- 애슐리 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1번

- 제임스 밀너  (맨체스터 시티)  16번

- 스콧 파커  (토트넘 핫스퍼)  17번

- 스튜어트 다우닝  (아스톤 빌라)  19번

-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아스날)  20번

FW- 데이빗 장  (리버풀)  7번

- 저메인 데포  (토트넘 핫스퍼)  9번

- 웨인 루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0번

- 시오 월콧  (아스날)  21번

- 대니 웰벡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2번

"그나저나 프랭키가 탈락한 건 좀 의외긴 하네."

감독과의 미팅이 열리기 전, 선수들은 삼삼 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며 친목을 도모하고 있었다. 데이빗은 저메인 데포, 웨인 루니,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준비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양반, 뭐냐...무슨 수술한 다음부터 영 상태가 좋지 않았잖아. 실제로 지난 마지막 예선 경기까지 좋지 못했고. 올해 리그에서도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던 거 같은데?"

웨인 루니가 어깨를 으쓱하며 탈락한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고 말을 받았다.

"하긴,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었지. 스티비하고 공존 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을 데려갈 필요는 없다고 본 거 같네."

"흠."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지만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제라드, 루니는 그런 제라드의 모습에 이채를 띈다.

"이봐 스티비, 뭔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데. 프랭키가 뽑히지 않은게 그렇기 마음에 드는 거야?"

"...난 아무 말도 안했다만?"

시치미를 뚝 떼는 제라드, 하지만 저메인 데포가 음흉하게 웃으며 그의 속마음을 폭로했다.

"뻔한 거 아냐? 프랭키가 저번에 데이빗 녀석한테 엄청 집적거렸잖아. 아, 웨인 넌 그때 자리에 없었나?"

"...기억이 날 거 같기도 하고...잘 모르겠네. 그래서?"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던지는 웨인 루니, 제라드가 만류하기도 전에 데포의 입이 먼저 열렸다.

"둘이서 엄청 신경전을 벌이는데, 정말 옆에 있는게 힘들 정도였어. 나중에는 프랭키가 데이빗한테 밥 먹자고 이야기하는데도 갑자기 나타나서 훼방을 놓았지? 진짜 웃겼다니까."

표정 연기까지 곁들이며 상황 묘사를 하는 데포의 모습에 루니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듣던 데이빗 마저 웃음을 참기 힘들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푸하하! 진짜 그랬어? 스티비도 진짜 대박이네."

"...젠장."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제라드, 루니는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데이빗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우리 팀은 어때? 뭐, 리버풀하고 사이가 좀 더럽긴 하지만 미래는 모르는 거 아니겠어? 우리 영감님도 널 엄청 좋아할 거야."

"...무슨 말도 안되는..."

"헤, 그럴 까요?"

"!!!"

발끈하며 입을 여는 제라드, 하지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눈을 동그렇게 뜨고 입을 벌린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장난스런 표정으로 입을 연 데이빗의 모습, 루니는 죽자고 웃어대며 데이빗의 어깨를 팡팡 쳤다.

"진짜 미치겠네! 스티비 지금 표정 봤어? 와 이건 진짜 사진이라도 찍어 놨어야 하는 건데!"

"아 캡틴. 농담인게 당연하잖아요. 정말 미치겠네."

데이빗마저 배를 잡고 웃어대자 그제서야 자신을 놀리기 위한 장난이었음을 깨달은 제라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려고?"

"...알거 없잖아."

틱틱거리는 목소리, 루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물론 손을 들어 한 쪽을 가리키며 말이다.

"상관은 없는데, 저기 감독님 오시는데?"

"...젠장, 되는 일이 없어."

투덜대며 다시 자리에 앉는 제라드, 데이빗은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막고 끅끅댔다.

'아 진짜 캡틴, 너무 귀엽잖아!'

상당히 실례되는 생각을 하며 웃음을 참아 냈다. 그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제라드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 버렸고 말이다. 그러는 사이,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입장을 마쳤고 선수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오랜만이군."

묵직한 목소리가 세미나 실에 울려 퍼지자 잡담이 멈춘다. 그 모습에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인 카펠로 감독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러 분들은 잉글랜드를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섰다. 그 말인 즉, 여러분들이야말로 잉글랜드 최고의 선수들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그에 걸맞는 플레이를 피치 위에서, 훈련장에서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최고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선수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만족스러운 반응에도 카펠로 감독은 안색에 변화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은 일단 휴식을 줄 생각이다. 다들 시즌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로가 남아 있을테니까. 내일부터는 회복 훈련과 병행하여 조금 풀어진 몸 상태를 끌어 올리는 훈련을 진행할 것이다. 본선 경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주. 우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여러분들은 나와 코치들의 지시에 성실히 따라 주길 바란다. 여러분들이 우리를 신뢰하고 따라 준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약속하겠다."

"확실히 우리 감독님과는 좀 스타일이 달라요. 그렇죠?"

"...그래. 그래도 집중해라."

조그맣게 옆 자리의 제라드에게 소곤거리는 데이빗, 자신의 소속 팀 감독인 케니 달글리시와는 스타일이 정 반대라고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달글리시 감독은 언제나 온화한 사람이었다.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 잡는다기 보다는 포근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강했다. 선수들에게 질책보다는 격려가 익숙한 사람이었고 일방적인 명령보다는 소통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카펠로 감독은...조금 독재자 같은 느낌? 아무튼 딱딱해 보여.'

지난 소집때도 느꼈지만 그런 면에서는 조금 불편한 사람이었다. 능력이야 그의 화려한 지난 경력들이 증명해 주고 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지만 말이다.

"...이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겠다. 혹시 질문이 있나?"

딱히 질문할 거리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최소한 데이빗은 그랬다. 그런데 옆 자리의 제라드가 번쩍 손을 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카펠로 감독은 그를 지목하며 발언권을 주었다.

"제가 듣기로 본선 경기를 앞두고 친선 매치가 잡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과 관련하여 정확한 팀 일정을 듣고 싶습니다."

"아, 내가 빠뜨렸군. 중요한 점을 짚어줘서 고맙네."

헛기침을 하고 설명을 시작하는 카펠로 감독.

"우리는 오늘부터 6일 뒤, 그러니까 5월 31일에 스페인과 평가전을 치르게 된다. 현지 적응을 위해 폴란드의 그단스크로 이동하여 경기를 치를 것이다. 물론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본선을 치르게 될 것이기에 경기를 마치고 한 번 더 이동해야겠지만 말이다."

"다들 알겠지만, 5월 31일의 스페인 전이 유로 2012 본선 직전의 마지막 평가전이다.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누구도 주전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명성, 레코드는 나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다. 여러분들은 온전히, 여러분들이 훈련장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평가전에서 보여주는 모습으로 평가받을 것이고 기회를 부여 받을 것이다. 다들 내 말 뜻을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그럼 또 질문이 있나?"

이번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카펠로 감독은 몇 번 고개를 주억거린 뒤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그럼 오늘은 푹 쉬도록. 숙소 배정은 수석 코치에게 일임해 두었으니 전달 받도록 한다. 이상."

============================ 작품 후기 ============================

-실제 명단과 거의 비슷합니다

-앤디 캐롤 대신 데이빗이 들어간 것 빼고는...

-망할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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