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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247화 (247/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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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위에 선 제라드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아까까지 꽉 쥐고 있던 덕분인지 손톱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손바닥.

'나는...'

사실 전반을 마치고 도망치고 싶었다. 라커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동료들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오직 이곳에서 커리어를 이어 왔다는 것은 자신의 자부심이었다. 누구보다도 이 클럽을 사랑하고, 클럽의 성공을 바란다고 자부했다.

'...정말로...'

긴 시간이었다.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금방이라도 우승을 할 수 있을줄 알았다. 데뷔 3년 차에 칼링컵, FA컵, UEFA컵을 우승하며 미니 트레블을 이루었고 주장을 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만간 리그 우승은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단지 운이 조금 부족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손에 잡힐 것 같았던 우승은 쉽게 찾아 오지 않았다. 심지어 언제부턴가 신흥 강호 맨체스터 시티에게 빅 4의 자리를 내주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에서 조차 멀어졌다. 그리고 하나 둘, 많은 동료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클럽을 떠나 갔다.

"후우..."

그럼에도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도 최고의 자리에서 환호할 수 있을 거라며,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거라 믿었다. 그리고 정말 그날이 눈 앞으로 다가 왔다.

"정신차리자."

그 기회를 자신이 망칠 뻔했다. 아마 이번에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실수로 한 시즌의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을 것이다. 실제로 좀 전까지 그랬고 말이다.

"그나저나, 저 녀석."

물끄러미 센터 서클 근처에서 휘슬을 기다리고 있는 검은 머리의 동료를 바라 본다. 자신을 일 깨워준,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 줄 소중한 동료를 보는 시선은 따뜻했다.

"리더 역할은 맞지 않는다고 징징거리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좀 전에 라커룸에서 자신에게 말하던 목소리가 다시 떠오른다.

'제가 이런 점수 따위, 바로 뒤집어 버릴게요.'

그 말에 아무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는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언제나 실력, 결과로 증명해 주었으니 말이다.

"잘 만 하는 군."

심판의 휘슬이 울렸고 제라드는 그라운드를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미몽(迷夢)은 이제 끝났다. 전반에 삽질했던 몫까지, 이자까지 붙여서 갚아야 했다. 그러려면 45분은 긴 시간이 아니었다.

'괜찮아 진 것 같네.'

데이빗은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누비기 시작한 제라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동경하던 캡틴의 인간적인 면을 보게 되어 신기하기도 했다.

'우승이라...'

데이빗은 아직 우승이라고 하는 타이틀이 주는 영광, 감동을 모른다. 제라드가 왜 그리 절박하게 우승을 원하는 지 알 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우승을 열망하고, 때로는 그것을 위해 팀을 떠나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까짓 거, 하면 그만이지.'

맨체스터 시티의 추격? 그래 봤자 자신들이 이기면 끝이다. 데이빗은 구차하게 이런 저런 경우의 수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 실력으로 찍어 누른다면 조용해 질 소리들이다. 제라드가 정신을 차린 이상 불안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데이빗은 자신감 있는 돌파로 수비수 두 명을 자신에게 붙였다. 페널티 박스 진입을 위해 몰려드는 수비수 들, 자연히 외각에 공간이 열린다. 전반까지만 해도 그 공간을 활용하는 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도움 닫기를 시작한 '그'를 발견했고 데이빗은 기분좋게 웃으며 미련없이 공을 흘려 주었다.

콰앙!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지체 없이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는 제라드, 비록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상대 수비수들은 분명 부담을 느꼈으리라. 전반과 딴판인 제라드의 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쉬워진다.

"더 올라와! 더!"

아쉽게 슈팅이 불발되었음에도 제라드는 별 아쉬운 기색도 없다. 오히려 양 쪽 풀백들에게 적극적으로 올라가라는 지시를 내리며 공격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 완전히 회복된 듯하다.

"호세!"

중반 지역에서 상대의 공을 커트한 루카스가 오버래핑에 나선 호세 엔리케에게 침투 패스를 밀어 준다. 엔리케는 마르코 로이스와 2 대 1 원 투 리턴을 주고 받으며 손 쉽게 돌파에 성공했다. 그리고 빠른 타이밍에 중앙 지역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수아레즈가 한 템포 빠르게 움직이며 잘라 먹는 헤더에 성공했으나 방향을 너무 돌린 것이 문제였다. 살짝 먼 쪽 포스트를 스치며 골 라인 아웃이 된다.

'나쁘지 않아. 좋아.'

중거리 슈팅과 사이드 돌파로 흔들게 되면 상대의 수비가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 공을 가진 상대가 장거리에서 위협적인 공격을 퍼붓는데 마크하지 않을 멍청한 팀은 없을테니 말이다. 데이빗은 슬슬 움직일 찬스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재개된 노리시 시티의 골 킥, 하지만 곧바로 공을 따내는 리버풀이다. 루카스 레이바가 먼저 머리에 공을 맞추었고 재차 카윗이 경합하며 소유권을 확고히 했다. 제라드는 자신에게 연결된 공을 지체 없이 전방으로 찔러 주었다. 자신에게 이따위 점수 차는 금방이라도 뒤집어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친구, 그가 약속을 지킬 차례라는 듯 말이다.

왼발로 부드럽게 트래핑하며 볼의 기세를 완벽히 죽인다. 달려드는 수비수의 발을 슬쩍 피하며 한 번 접고 들어간다. 경쾌한 움직임, 전진되어 있는 양 쪽 풀백의 존재로 인해 조금 옅어진 수비벽이다. 이대로 돌파할까 순간 고민한 데이빗, 하지만 더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다.

파앙-

좀 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바깥으로 흘려 주는 데이빗, 데자뷰와 같은 장면, 무뚝뚝한 표정으로 죽일 듯한 기세로 공에 달려 드는 제라드의 존재가 있었다. 방금 전, 위력적이었던 그의 슈팅을 떠올린 것일까, 부랴부랴 달려드는 노리치 시티의 수비수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패스를 내어 준 데이빗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비 라인 사이로 스며 들었고 제라드는 강력한 슈팅 대신 가볍게 찍어 차는 패스를 시도했다.

"!!!!"

자신들의 머리를 넘어 떨어지는 공의 행방을 쫓는다. 그리고 가장 받지 않았으면 하는 존재가 공을 받는 모습에 좌절했다. 아직 슈팅을 때리기 전이지만, 이미 실점해 버렸다고 직감했다. 마크하는 선수는 단 하나도 없었다. 골키퍼가 달려 나오는 움직임도 늦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슈팅을 날리는 데이빗을 제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골을 못 넣는다면 데이빗은 이번 시즌 유럽에서 손꼽히는 공격수로 이름 날리지 못했을 것이다. 가볍게 그의 발을 떠난 공이 그물을 흔든다. 그리고 숨죽이고 있던 안필드가 참아온 함성을 마음 껏 질러 댄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광기어린 함성을 들으며 데이빗은 손가락을 들어 제라드를 가리키며 달렸다. 최고의 패스를 보내준 동료에 대한 예우, 그리고 캡틴이 전반의 부진을 털고, 우승에 대한 부담을 확실히 날려 버렸다는 것에 대한 기쁨으로 환하게 웃으며 달려갔다. 제라드 또한 보기 드문 환한 표정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스 패스였어요!"

강하게 부둥켜 안으며 외친다. 제라드도 뭐라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뒤따라 자신들을 덮치는 동료들로 인해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했을지는 잘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 숨 돌렸군요."

"자네가 더 가슴 졸인 것 같군."

"감독님도 좀 전까지 엄청 소리를 질러 대셨잖습니까."

동점 골이 들어갔으니 이제 좀 여유를 찾고 농담을 주고 받는 달글리시 감독과 클락 수석 코치였다. 아직 역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흐름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전반 내내 부진에 부진을 거듭한 제라드가 살아 난 것이 고무적이었다.

"확실히 베테랑은 베테랑이군요. 그 짧은 시간에 털어 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사실 멘탈이 한 번 나간 선수는 그 경기 내내 삽질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한 경기로 끝나면 다행이다. 이런 사소한 일로 장기간 슬럼프에 빠지는 선수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제라드가 금방 털고 일어난 것이 정말 다행이라 여겨졌다.

"그렇지. 주변에서 아무리 떠들어 봐야 귀가 열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런 면에서 데이빗도 훌륭했고 스티비도 훌륭했지."

"데이빗도 좀 더 경력이 쌓이면 아주 좋은 캡틴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장난만 치는 녀석이 진중하게 분위기를 잡으니 다들 집중하고 존중해주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네요!"

좀 전의 라커룸 대화가 인상적이었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말하는 클락, 달글리시 감독도 기분 좋게 동의했다.

"실력이 되니까 그런 말에도 무게가 실리는 거지. 아무리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 놓는다고 해도 실력이 없으면 소용 없는 일 아닌가."

"그런 면에서 저 친구는 역시 언행일치가 되는군요. 지금도 바로 동점을 만들어 버렸잖습니까. 정말, 아무리 데이빗이라지만 그렇게 호언장담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그리고 보란듯이 바로 동점골을 시키다니, 정말 타고난 친구에요."

"저 친구는 조금만 뒷 받침해주면 골 넣는 건 일도 아니지."

"그렇죠, 그럼 곧 역전골도 볼 수 있겠군요?"

기대된다는 듯 말하는 클락을 보며 달글리시 감독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이봐, 자네 지금 관객 모드로 들어간 건가? 아직 경기 중이야? 이러면 곤란해."

후반 14분, 리버풀의 동점골이 터졌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동점골을 허용한 노리치 시티는 허탈한 표정이다. 진심으로 나오는 리버풀의 강력함을 몸으로 체감한 그들은 남은 30여분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리라. 하지만 전원 수비 태세는 풀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무승부만 거두어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기였으니 말이다.

차라리 투 톱만이라도 전진 배치 시키는 태세를 취해, 리버풀로 하여금 역습에 대한 부담을 주는 것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는 리버풀 선수들이 부담없이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방금 전에 이미 노리치 시티의 전원 수비를 깨뜨린 경험이 있는 리버풀 선수들이기에 크게 부담이 되지도 않았고 말이다.

"마르코!"

왼쪽 측면을 돌파해 들어가던 마르코 로이스에게 패스를 요구하는 데이빗, 그리고 지체 없이 날아오는 패스를 가볍게 받아 낸다. 전원 수비 태세라고는 하지만 리버풀의 파상 공세에 이리저리 흔들리느라 전열이 흔들린 상태였다. 지금이야 말로 자신의 장기인 드리블 돌파를 선보일 때였다. 수비수들은 많았지만 정돈되지 않았다. 데이빗은 달려드는 수비수 한 명을 제자리에서 슬쩍 공의 위치를 바꾸며 피해낸 뒤 달리기 시작했다.

"루이스!"

패스를 할 것처럼 수아레즈를 부르며 취하는 킥 모션, 완벽히 낚여 버린 수비수 한 명이 발을 뻗는 사이 가볍게 공을 접고 그를 지나 친다. 그리고 두 명째를 제치며 가속이 끝났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살려 쇄도를 시작하는 데이빗, 어느새 페널티 박스에 진입했고 남은 수비수는 한 명.

"제길!!"

순간적으로 좌우로 무게 중심을 흔드는 데이빗의 움직임에 균형을 잃은 최종 수비수, 직감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집념으로 발을 뻗는다. 그리고 그 발 끝에 공 대신, 데이빗의 발이 걸렸고 이내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삐익-

의심의 여지 없는 페널티 킥, 의례적으로 심판의 판정에 항의하는 노리치 시티의 선수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심판의 판정이 정당하다는 것을. 다행히 태클을 가한 선수에게 레드 카드 대신, 옐로우 카드가 주어졌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후우."

"잘했어. 이걸로 역전이네."

수아레즈가 다가와 데이빗을 일으켜 준다. 이번 시즌, 페널티 킥을 100% 성공 시키고 있는 리버풀이었기에 수아레즈의 말은 그리 틀린 것이 아니었다.

"괜찮나?"

제라드가 가까이 다가와 데이빗의 상태를 묻는다. 데이빗은 웃으며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을 밝혔다.

"살짝 걸렸을 뿐이에요. 완전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서 발을 뻗을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페널티 킥을 얻어 냈으니 손해는 아니지. 그럼 부탁한다."

좀 전의 골로 리그 37호골을 기록한 데이빗이다. 이번 페널티 킥까지 넣는다면 38호골, 그렇다면 남은 2 경기에서 40호 골을 달성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데이빗은 웃으며 자신의 옆에 놓인 공을 들어 제라드에게 내밀었다.

"너...?"

"캡틴이 차요."

"그게 지금 무슨..."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라드에게 데이빗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 전의 실수, 이 페널티 킥으로 씻어 주세요. 아까 말했잖아요. 괜찮다고 말하지 않을 거라고. 책임을 질 거라 믿어요."

직접 제라드의 손에 공을 쥐여 준다. 그리고 씩 웃으며 물러서며 한 마디를 더 남긴다.

"이거 넣으면 우승은 절반 이상 확정 짓는 거에요. 확실히 이끌어 주세요. 캡틴."

그리고는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 수아레즈를 이끌고 페널티 박스 바깥으로 향한다. 제라드는 황당한 듯 공을 들고 서 있다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뒤끝있는 녀석이었네."

하지만 그 마음이 소중했다. 자신에게 책임을 지라는 말과 달리, 실제로는 자신을 배려해 주는 것 아닌가. 자신의 대기록이 달렸음에도 망설임 없이 양보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이렇게까지 밥상을 차려줬는데 더 빼는 것도 모양이 나빴다. 제라드는 경건한 자세로 공을 페널티 스폿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한 발, 두 발 도움 닫기 거리를 조정했다.

삐익-

킥을 차라는 심판의 휘슬 소리, 제라드는 호흡을 멈추고 도움 닫기를 시작했다. 상대 골키퍼의 움직임? 그런 것은 신경쓰지도 않았다. 자신의 방향을 읽을 테면 읽어 보라는 듯 정직한 킥 모션을 취한다. 그리고 사정없이 온 힘을 다해 공을 때려냈다.

콰앙!

골대 우측 상단을 향해 정확히 날아가는 강렬한 슈팅, 방향을 읽은 골키퍼가 몸을 날려보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그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골망을 찢어 버릴듯 감기는 슈팅, 제라드는 그자리에서 포효했다.

============================ 작품 후기 ============================

-글을 쓰면서 리버풀-왓포드 경기 보기 시작했는데

-Aㅏ...

-이러지 말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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