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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 졌습니다! 선제골을 넣은 팀은 원정 팀인 노리치 시티입니다! 리버풀을 상대로 완벽히 압도당하고 있던 노리치 시티가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리며 골을 기록합니다!]
[스티븐 제라드의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어려운 볼 처리도 아니었어요! 오늘 긴장한 것인지,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인지 평소에 비해 무거운 움직임을 보여주던 제라드! 정말 믿기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군요.]
[그라운드에 주저 앉아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제라드입니다. 시간을 1분 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일 겁니다.]
[제라드 정도의 베테랑이 범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안타깝네요. 잊어 버려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죠. 계속 머리속에서 스스로를 괴롭힐 겁니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아 있어요. 주장으로서 딛고 일어 서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캡틴..."
데이빗은 주저 앉아 있는 제라드에게 가까이가지 못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리고 말을 한다고 해서 과연 그에게 들릴 것인가. 다른 동료들이 그에게 다가가 그를 위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무너진 멘탈이 그리 쉽게 회복될리는 없다. 간신히 일어나는 제라드, 여전히 멍한 표정이다.
우승을 가장 간절히 원하는 이가,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이건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데이빗은 한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동경하는, 위대한 캡틴에 연민이 들었다. 축 처진 그의 어깨가 안쓰러웠다.
"루이스."
덤덤한 말투로, 조용히 수아레즈를 부른다.
"어...엉?"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읽은 것일까. 수아레즈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데이빗을 바라 보았다.
"흐름을 끊어야 해.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건 우리 뿐이야. 알겠지?"
단호하게,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말한다. 수아레즈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얼른 나쁜 분위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데이빗이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분위기에 압도 당했다.
"당연하지. 나만 믿어."
가슴을 탕탕치며 자신감을 보인다. 데이빗은 미미하게 웃어 보인 뒤 센터 서클로 향했다.
'절대로 저 사람이 자책하게 만들 수는 없어.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만약 우리가 우승을 놓친다면...캡틴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지고 살거야.'
그런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반드시 경기를 뒤집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선제골을 넣은 노리치 시티는 급할 것이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제 골이었다. 사실 노리치 시티로서는 이번 경기에 대한 동기부여가 리버풀에 비해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재 11위에 랭크되어 있는 노리치 시티는 남은 경기 결과에 따른 순위 변동이 크지 않았다. 전승을 거둔다고 해도 유럽 대항전에 진출할 수 있는 순위는 가능성이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강등을 걱정할 처지도 아니었다. 즉, 순위가 거의 고정된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고 그만큼 이번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그리 절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리그 1위 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만한 기회가 찾아 왔는데 이를 발로 걷어 차 버릴만큼의 얼간이들도 아니었다. 운이 좋아서든, 어쩌다 얻어 걸린 것이든 상관 없었다. 잘만하면 이번 시즌 안필드에서 리버풀을 처음으로 이긴 팀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물론 전반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고 후반전이 통째로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전원 수비라. 당연한 일이지."
노리치 시티의 전술 변화를 지켜 본 달글리시 감독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그들로서는 굳이 공격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이곳, 안필드에 오면서 이미 승리는 거의 포기했을 그들이다. 그 강력하다는 바르셀로나 마저 이곳에서 자신들을 상대로 승리하지는 못했으니까. 그들이 최대한으로 노려볼 수 있는 것은 무승부였을 것이고 패배도 어느 정도 마음에 두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상대의 실수로 재수 좋게 한 골을 거저 주웠다. 이 말은 무승부를 넘어 승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랬기에 달글리시 감독은 그들의 선택이 당연하다 느껴졌다. 자신이 노리치 시티의 감독이라고 해도 그렇게 지시를 내렸을 테니 말이다.
"스티비가 평소라면 뒤에서 확실히 뒷받침을 해 주었을 텐데..."
밀집 수비를 깨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는 것이다. 리버풀에는 세계 최고의 중거리 슈터가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 대포가 지금 정상이 아니었다. 달글리시 감독은 두 명에게 둘러 쌓인 상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데이빗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 보앗다.
"뒤로 돌려 데이빗!"
"제길...!"
마르코 로이스가 크게 외치는 소리에 데이빗이 이를 갈며 공을 넘겨 주었다. 억지로 공간을 비집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두 명까지는 제쳤다. 이것만 해도 물론 엄청난 일이었다. 보통의 선수라면 해내기 힘든 퍼포먼스임에는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골대까지는 아직 많은 수비의 장막이 있었다. 혼자서는 무리였다. 속공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미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는 상대 여럿을 한 번에 제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랄까. 이럴 때 캡틴이 좀 흔들어 주면 좋을텐데..."
왼쪽 사이드 미드필더로 출장하긴 했지만 플레이 메이커의 롤을 수행하고 있는 마르코 로이스였다. 그런 만큼, 지금 공격 작업이 활발하지 못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데이빗의 돌파는 문제 없었다. 하지만 단단히 박혀 있는 수비의 벽을 그것만으로 뚫어내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이럴 때 제라드의 힘이 필요했다. 장거리에서 지원 사격을 시도해 준다면 자연스레 상대 수비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 틈을 자신과, 그리고 데이빗 또는 수아레즈가 노린다면 득점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쯧...정말 멘탈이 나가 버린 것 같네. 저 사람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 참..."
포지셔닝이 굉장히 어정쩡한 제라드의 모습에 혀를 차는 로이스, 그리고 할 수 없다는 듯 반대 쪽 사이드로 크게 체인지를 시도한다. 디르크 카윗의 컨디션은 그럭저럭이었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최소 1인분의 역할은 수행해 줄 수 있다고 보았다. 지금 리버풀의 공격이 죄다 왼쪽, 혹은 중앙으로 쏠린 감이 있었기에 한 번 상대의 의식을 흔들 필요가 있었다.
"가서 받아 줘 루이스!"
그나마 왼쪽과 중앙에 비해 공간이 있는 오른쪽이었지만 카윗이 애초에 돌파력이 아주 뛰어난 선수도 아니었던 만큼, 금방 저지당했다. 다행히 완전히 고립되기 전, 수아레즈가 합류하여 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루이스!"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곧바로 패스를 이어준다. 어느새 페널티 박스 바깥 쪽까지 나온 데이빗이 공을 이어 받는다. 그리고 달려드는 수비수 한 명을 가볍게 피하며 공을 오른발 각도에 맞춘다.
콰앙!
통렬한 중거리 슈팅, 하지만 페널티 박스 안에 우글거리는 수비를 피해 코스를 잡다 보니 힘 조절에 실패했고 골 포스트를 살짝 벗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전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제길."
조금만 정확히 때렸다면 후반으로 넘어가기 전에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며 데이빗이 조그맣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다고해도 이미 울린 심판의 휘슬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 자신에게 좋은 패스를 내어 준 수아레즈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미안, 넣었어야 하는데. 좋은 패스였어."
"괜찮아. 잘 때렸어. 어휴, 페널티 박스 안에서는 뭘 하기가 힘드니 원."
어깨를 으쓱하며 질린다는 듯 웃음을 흘린다. 약한 멘트를 늘어 놓는 것 치고는 안색은 나쁘지 않다.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슬쩍 먼저 라커룸으로 향하고 있는 제라드를 바라 본다.
"할...이야기도 있을 테니 말이야."
"스티비."
수건을 머리에 덮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제라드, 그 앞에 달글리시 감독이 선다. 차마 시선을 맞출 용기가 나지 않는 듯, 잠시 어깨를 움찔하고 떤 제라드지만 고개를 들진 못했다.
"스티비."
재차 부르는 달글리시 감독, 그리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자네 정도 되는 선수에게 굳이 무슨 말을 하겠냐만은..."
한숨을 쉬며 말을 잇는다.
"잊어 버리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자네게 평소 동료들에게 언제나 해 준 말이 아닌가? 왜 그래 놓고 본인의 실수는 잊지 못하나?"
"......"
"자네가 얼마나 이 경기에 걸고 있는 열망이 큰 지, 우승을 간절히 원하는 지 모두 알고 있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 자네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나. 우리에게는 자네의 힘이 필요해."
간절한 감독의 말, 하지만 제라드의 떨어진 고개는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달글리시 감독이 재차 입을 열려던 찰나, 그들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캡틴."
데이빗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라드의 앞에 섰다. 그리고 살짝 몸을 굽히며 몸을 낮추었다.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이야기하진 않을 게요."
덤덤히 이야기하는 데이빗. 감독도, 다른 선수들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 힘들어 진 건 사실이에요. 그게 캡틴을 더 괴롭게 만드는 거겠죠. 하지만 우리가 언제 쉬운 경기를 한 적이 있었나요?"
그렇지 않다며 데이빗이 제라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제가 찬스를 날려 먹어서 이기지 못했던 경기도 있었어요. 그 경기들 중에서 한 두 경기를 이겼다면, 그래서 지금 이미 우승을 확정지어 놓은 상황이라면, 캡틴이 이렇게 괴로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뇨, 그렇지 않을 거에요. 오늘 경기, 그리고 다음 경기를 이긴 다면 우승이라는 사실에 얽매이지 말아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1라운드부터 모든 경기를 이겼어야 해요."
"...미안하다."
조그맣게 들리는 제라드의 목소리, 데이빗은 고개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왜 미안하다고 하는 거에요. 누가 보면 우리 팀 벌써 진 줄 알겠네. 제가 혹시 경기 종료 휘슬을 전반 종료 휘슬로 착각한 거에요?"
너스레를 떨며 주변을 둘러보는 데이빗의 제스처에 실소를 흘리는 동료들. 데이빗은 거 보라는 듯 말을 잇는다.
"45분이 남아 있어요. 캡틴이 잊어버렸을까봐 다시 말씀드리는 데, 저 이번 시즌에 6분만에 3골을 넣은 적도 있다구요? 45분이면 도대체 몇 골이야?"
자기 자랑을 하듯 뻐기는 데이빗의 모습에 장난스러운 야유소리가 들려 온다. 데이빗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캡틴의 힘이 필요해요. 난 사실 캡틴만큼 이 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캡틴이 얼마나 우승을 간절히 원하는 지 알지 못해요. 그저 상상하기 힘들만큼 원하고 있다고 추측할 뿐이죠."
"우리가 우승할 수 있도록, 다음 경기에서, 안필드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도록 이끌어 줘요. 캡틴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렇게 해준다면."
제라드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단호히 말했다.
"제가 이런 점수 따위, 바로 뒤집어 버릴게요. 할 수 있겠어요?"
할 말을 다 했는 지, 데이빗이 굽혔던 무릎을 펴고 일어 선다. 그리고 제라드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떼고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제라드의 입이 열렸다.
[후반전을 위해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 오는 양 팀 선수들입니다. 양 팀 모두, 명단에 변화가 없는 모습이죠?]
[그렇습니다. 노리치 시티는 전반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으니 굳이 변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리버풀은 선수들을 믿는다는 뜻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전반에 확실히 움직임이 좋지 못했던 선수들이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체를 하지 않았다는 건, 달글리시 감독이 라커룸에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리버풀로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동점골을 성공시켜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승 경쟁을 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가 한 시간 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잡고 추격에 성공했거든요? 오늘 경기에서 패하거나 무승부를 거두게 되면 우승의 향방은 시즌 최종전까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리버풀로서는 반드시 오늘 경기를 잡아야 다음 첼시 전에서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어요.]
============================ 작품 후기 ============================
-연재를 재개한 이후
-오늘만큼 글이 안 써지는 날은 처음이네요
-머리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건 있는데
-손이 안따라주는 느낌이랄까
-네 그래서 오늘은 한 편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그런가
-컨디션이 영 메롱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