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19화 (219/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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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긴장감은 풀린 것 같군."

라커룸에 들어서기 전, 달글리시 감독은 선수들이 많이 긴장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만의 8강이라는 말인가. 거기에 주력 선수들 중 절반은 이 무대에 경험이 없는 선수로 구성되어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고 이제 경기에 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을 해주고자 했다. 하지만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평소처럼 여유로운 모습으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감독님 오셨습니까?"

오늘 선발 출장이 예정되어 있는 디르크 카윗이 씩 웃으며 반긴다. 그리고 데이빗과 장난을 치고 있는 캐러거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좀 전에 캐라가 썰을 좀 풀었거든요. 예전의...어...무용담이랄까, 영웅담이랄까, 아무튼 예전에 바르셀로나를 만났을 때의 얘기를 좀 했거든요. 다들 죽자고 웃으며 떠들고 나니 확실히 좋아졌네요."

그 말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달글리시 감독이다. 오늘 벤치에서 시작하는 제이미 캐러거였지만 그는 자신이 뛰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나서서 동료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는 데 앞장 섰다는 사실에 달글리시 감독은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이것이 감독들이 베테랑 선수들에게 바라는 역할이다. 감독이 나서서 말하는 것과 그들과 같은 눈 높이에 있는 선수, 그것도 경험이 풍부한 리더 격의 선수가 말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위에서 아래로 말하는 것과 수평적인 관계에서의 대화는 선수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 캐라. 그만 하도록 하게. 우리 귀중한 공격수가 입장하기도 전에 부상당하면 어쩌나?"

장난스레 투닥거리다 어느새 데이빗에게 암 바를 걸고 있는 캐러거의 모습에 달글리시 감독이 웃으며 끼어 들었다. 과장스레 비명을 지르고 있는 데이빗을 보며 주변 동료들은 허리를 부여 잡고 웃어대고 있었다.

"아 감독님. 이 건방진 녀석에게 베테랑의 힘을 보여주고 있던 참입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넉살 좋게 감독에게까지 농담을 건다. 달글리시도 꽉 막힌 사람이 아닌지라 여유롭게 웃으며 받았다.

"저런, 그래도 어쩌겠나. 이제 경기를 뛰어야 할 우리 공격수 아닌가? 불쌍하니 그만 놔 주게나."

감독의 말에 캐러거가 짐짓 으르렁거리며 '운 좋은 줄 알아'라고 말한 뒤 웃으며 데이빗을 놔 주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스크르텔과 하이 파이브를 나누는 모습, 데이빗은 그 모습을 쏘아보다가 은인을 만난 눈빛으로 달글리시 감독을 바라 보았다. 하지만 그가 고마움을 느끼기엔 아직 일렀다. 자고로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했다.

"경기 끝나고도 시간이 충분히 있지 않나. 우리 부주장이 팀의 기강을 잡는다는데 말릴 수야 없지."

"감독님!"

흡사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치는 카이사르의 표정으로 데이빗이 울상을 짓자 다시 한번 폭소가 터져 나왔다. 캐러거도 껄껄 웃으며 데이빗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감독님 말씀 들었지? 경기가 끝난 뒤에 보자고 베이비."

"젠장,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다른 팀을 좀 알아 봐야..."

"들어 올 땐 마음대로 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괴상한 표정으로 절규하고 있는 데이빗을 향해 선심 썼다는 듯 넌지시 말을 던진다.

"뭐, 오늘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좀 봐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젠장...내가 더러워서 골을 넣고 말지. 아 알았다고요 그만 해요."

투덜거리면서도 구명줄을 받아 든다. 캐러거는 잘 해보라며 그의 등을 다시 한번 팡팡 두드렸고 달글리시 감독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선수들을 둘러 보았다.

"좋아. 다들 아주 표정들이 좋군. 내가 언제나 보아 왔던 모습들이야."

"언제나 잘 생겼죠. 그렇지 않습니까?"

디르크 카윗이 고개를 뒤로 기울이며 말했고 라커룸은 순식간에 야유 소리로 가득찼다. 제이미 캐러거는 가장 열정적으로 너만큼은 그런 소리를 하면 안된다고 소리쳤고 카윗은 니가 할 말은 아니라며 받아쳤다. 달글리시 감독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군. 확실한 건 저쪽 팀 선수들보다는 너희들이 훨씬 잘 생긴 것 같군 그래."

그 말에 야유소리 대신 환호와 박수가 라커룸 안을 가득 메웠다. 딱히 축구와 얼굴은 별 상관이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잘 생겼다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얼굴에서는 우리 팀의 압승이니까, 축구에서도 이겨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

슬쩍 본론을 끼워 넣는 달글리시 감독, 뻔한 멘트였지만 경기를 앞두고 있는 선수들에게는 단순한 멘트가 더 잘 먹히는 법이다. 리버풀 선수들은 크게 물론이라고 대답하며 그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좋아, 더 이상 말은 필요 없겠군. 오늘 경기를 이기고 우리는 안필드로 돌아간다. 그리고 5년 만에 4강, 아니 결승까지 올라가서 우승컵에 도전할 것이다!"

"Yeaha!!!"

바르셀로나를 이긴다면 빅 이어도 꿈이 아닐 것이다. 세계 최고의 팀마저 꺾은 팀이 될테니 다른 팀이 두려울 리 없을테니 말이다. 선수들은 함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이제 드디어 출전의 시간이 다가 왔다.

리버풀 베스트 11 (4-4-2)

-------------------루이스 수아레즈--------------

------------데이빗 장---------------------------

-----------------스티븐 제라드------------------

---무사 시소코----루카스 레이바----디르크 카윗---

호세 엔리케-마틴 스크르텔-다니엘 아게르-글렌 존슨

------------------호세 레이나--------------------

sub. 알렉산더 도니, 마르코 로이스, 제이미 캐러거, 마틴 켈리, 막시 로드리게스, 조단 핸더슨, 찰리 아담

4-4-2 포메이션에서 미드필드 라인을 전반적으로 아래로 내린 리버풀이었다. 그리고 미드필더의 대부분을 활동량이 풍부하고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들로 채우며 상대의 공격을 일단 막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개인 기술, 스피드, 골 결정력이 뛰어난 투 톱을 기용하며 역습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자 했다.

조금은 소극적으로 보이는 진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리버풀이 잘 나간다고 하지만 상대는 바르셀로나였다. 그나마 이런 진형도 리버풀의 자신감이라면 자신감이 보이는 부분이었다. 어지간한 팀들은 캄프 누에서는 모두 10백에 가까운 진형을 들고 나오며 선 수비 후 역습이 아니라 오로지 수비를 거듭하는 전술로 무승부를 노리곤 했으니 말이다.

바르셀로나 베스트 11 (3-4-3)

---------다비드 비야------리오넬 메시-------페드로 로드리게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

------------------세르히오 부스케츠----------------다니 알베스-----

----------에릭 아비달------카를레스 푸욜------헤라르드 피케--------

---------------------------빅토르 발데스---------------------------

sub. 티아고 알칸타라, 호세 마누엘 핀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세이두 케이타, 이브라힘 아펠라이, 아드리아누, 막스웰 안드라데

2008-2009 시즌,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했던 4-3-3 포메이션 대신 (물론 4-3-3 역시 지금도 종종 사용하고 있긴 하다) 변형된 3-4-3 포메이션을 애용하고 있는 요즘의 바르셀로나였다. 세계 최고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축구 철학 티키타카는 모든 팀이 알고 있지만 어떤 팀도 아직까지 제대로 파훼하지 못하고 있다.

베스트 11 역시 리버풀의 그것에 비해 어느 정도 앞서는 모양새였지만 벤치 멤버로 넘어가면 격차는 더욱 커지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알렉시스 산체스가 부상으로 빠진 라인업임에도 그럴 정도였으니 바르셀로나의 스쿼드가 얼마나 질 적, 양 적으로 우수한 지 알려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잘 부탁해."

"나 역시. 좋은 게임 하자."

입장을 마친 양 팀의 선수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페어 플레이를 다짐하고 있었다. 데이빗도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하나 씩 악수를 나누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맨 끄트머리에 자신보다, 아니 여기에 있는 선수 중 가장 작은 선수가 눈에 들어 왔다.

'메시...'

직접 보니 생각보다 더 작은 선수였다. 저렇게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런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 왔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수아레즈와 악수를 마친 메시가 지신을 돌아 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도 잠시 멈칫하며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만나서 반갑다. 오늘 좋은 경기를 하자."

이내 씩 웃으며 여유롭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 데이빗도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손을 맞 잡아 갔다.

"반가워. 그래, 좋은 게임이 될 거야."

마음 같아서는 조용한 카페 같은 곳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시즌 중에 술은 마시지 않지만 그와 함께 한다면 몇 잔 마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경기를 앞에 두고 있었다. 적으로 상대해야 할 선수와 잡담을 나눌 시간은 없었다.

"후우..."

주변을 둘러보며 심호흡을 한다. 얼마 전에 방문했단 산 시로 스타디움도 웅장한 크기를 자랑했으나 이곳 캄프 누 역시 만만치 않았다. 거의 10만에 가까운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이었으니 그의 감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꾸레라 불리는 바르셀로나를 지지하는 팬들의 광기에 가까운 응원이 귀에 들렸다. 스페인 어를 모르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욕은 뜻을 몰라도 뉘앙스라는 것이 있으니까.'

응원 소리와 함께 리버풀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야유, 정확한 뜻은 알기 힘들었지만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는 건 아니었다. 안필드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축구팬들은 어디가나 비슷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우리 팬들도 많이 왔네.'

원정 팀 팬들에게 배정된 좌석을 확실히 점유한 리버풀 팬들이다. 구장 규모가 규모다 보니 원정 팀들에게 배정되는 좌석 숫자도 상당했다. 그래봐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말이다. 리버풀에서 1500km 이상 떨어진 이곳 바르셀로나까지 원정 응원에 나선 팬들을 보니 뿌듯했다. 비록 숫자에서는 밀렸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확실히 들렸다. 아마 자신들의 목소리가 선수들에게 닿길 기원하며 죽어라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뭐해? 이제 곧 경기 시작이야."

수아레즈가 툭 치며 말을 걸어 왔다. 데이빗은 손가락을 들어 스탠드 한 켠을 가리켰다.

"저기, 우리 팬들을 보고 있었어."

그 말에 수아레즈도 고개를 돌려 데이빗의 손가락 방향을 따라갔다. 그리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진짜 대단하다니까. 왕복 비행기 티켓 값에, 숙박 비에...거기에 휴가를 내야 하고...그런 걸 다 감수하고 따라와서 응원해주는 거 아냐?"

팬들은 그들처럼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팬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있는 돈 없는 돈 쥐어 짜내며 어떻게든 여유를 만들어 오는 팬들도 많았고 말이다. 그런 팬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곤 한다.

"그러니까. 설마 이곳 바르셀로나에 우리 리버풀 팬이 있겠어? 있다고 해도 유학생 몇 명 수준이겠지. 다들 비행기를 타고 건너 온거라는 거야."

"내가 축구 선수가 되지 않고, 그냥 다른 일을 하면서 한 구단의 팬이었다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자신이 없네."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흔드는 수아레즈, 그건 데이빗도 마찬가지였다.

"나라고 다를 바 있겠어? 홈 경기도 가끔 찾아가지 않았을까 싶어. 참 대단하고 고마워.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열정적으로 응원한다고 해서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뭐가 생기는 게 없는 건 아닌데...일단 물질적인 부분은 없긴 하지. 그리고 저렇게 먼 거리를 따라와서 응원했는데 팀이 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될테고 말이야."

생각만해도 끔찍하다는 듯 수아레즈가 몸을 부르르 떤다.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들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그런 실망감을 안은 채 비행기에 몸을 싣길 원하지 않았다.

"반드시 이겨야 겠네. 최소한 비행기를 탈 때 열받아서 술을 마시지 않게 해야할 테니까."

"그래. 최소한 비행기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은 경기를 보여줘야겠지. 잘해 보자고."

============================ 작품 후기 ============================

-이적을 요청합니다

-앙대잖아?

-어 이적이 안돼

-이적할 수가 없어

-앙대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꼈지

-하지만 데이빗은 내 말을 듣지 않았어

-오늘은 중요한 날이야

-앙대 죽고 싶지 않아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빠져 나가야 겠어

-앙대잖아?

-들어올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땐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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