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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206화 (206/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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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 처음 만나게 되네. 은퇴하기 전에 한 번쯤 만나고 싶었어. 알레산드로 네스타야."

경기 중이다보니 악수를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상당히 젠틀해 보였다.

"반갑네요. 데이빗 장이에요."

"그래 데이빗, 아 데이빗이라고 불러도 될까?"

이름으로 불러도 되냐는 그의 질문에 데이빗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과 이런 한담을 나눠도 될까 싶었지만 가끔 있는 일이었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고마워, 너도 날 알렉스라고 불러도 좋아."

"나중에요, 네스타 씨."

아직 이름을 부르긴 꺼려진다며 데이빗이 웃으며 거절하자 네스타는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살살 좀 부탁할게. 나이가 있다보니 너같이 젊은 친구들을 막아 내는 게 영 예전 같지가 않단 말이야."

좀 친해졌다고 바로 징징거리는, 약한 소리를 늘어 놓는 네스타, 데이빗은 그 모습이 퍽 웃겼기에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네스타 씨를 앞에두고 방심할 수는 없죠.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이번 시즌 활약이 대단하시던데요?"

상대 팀, 그것도 직접 맞상대 해야 하는 상대이니만큼 영상을 통해 충분히 살펴본 데이빗이다. 그가 본 네스타는 분명 전성기에 비해 느려졌지만 아직도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선수였다. 마크에도 실수가 거의 없었고 라인 통솔은 예술에 가까웠다. 어줍잖은 뒷공간 침투는 바로 오프사이드에 걸려버릴 것이다.

더 무서웠던 부분은 지난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현재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를, 다른 동료들이 모두 털리고 있는 와중에 홀로 막아내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팀은 1무 1패로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네스타의 활약은 빛났다. 오죽하면 팀이 2골이나 실점한 경기에서 수비수로서 경기의 MOM으로 뽑혔겠는가.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운데? 나도 아직 쓸만하다는 건가?"

"다른 사람한테가서 그렇게 말하면 욕 먹을 걸요."

노인정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 탑 클래스의 클럽으로 꼽히는 AC 밀란이다. 거기에서 주전 센터백을 차지할 수 있는 기량이 평범할 리 없다. 노장을 선호하는 팀이라고 해도 수준 이하의 경기력이라면 바로 빼버릴테니 말이다.

"그래, 뭐 그렇다고 하자. 더 이야기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 같구만."

너털 웃음을 흘리며 손을 으쓱하는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베테랑의 관록인가 싶을 정도. 데이빗은 사람 좋게 웃고 있는 네스타를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뭐, 잘해 보자고. 경기 중에 서로 거칠게 대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런 것도 축구니까 어쩔 수 없겠지?"

"물론이에요."

한담을 나눈다고 해서 플레이에 지장을 줄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데이빗의 대답도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1분 간, 데이빗이 네스타와 잠시 잡담을 나누는 사이 양 팀의 미드필더들은 서로 잡아 먹을 것처럼 달려 들었다. 서로 공을 차지하기 위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노련함의 밀란과 기동력이 뛰어난 리버풀 간의 대결이었다. 리버풀의 양 사이드 미드필더로 나선 디르크 카윗과 무사 시소코는 적극적으로 중원 싸움에 가담했다. 사실 볼 탈취율 자체는 리버풀이 더 뛰어 났다. 같은 4-4-2 시스템이라고 해도 중원 싸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호비뉴를 보유한 밀란의 특성상 사실상 중원에서 숫적인 우위를 점한 것이나 다름 없는 리버풀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방으로 공이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것은 밀란의 중앙 미드필더 세 명이 워낙 노련하게 잘 막아 내는 부분이 컸고 심판의 보이지 않는 홈 팀에 대한 관대한 콜도 한 몫했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 조금씩 중반 지역을 제압하기 시작한 것은 리버풀이었다. 왼쪽 사이드에 위치한 무사 시소코의 스피드와 기동력에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 리버풀은 시소코를 중심으로 패스 루트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라인을 앞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역시 바로 시작하는 군?'

네스타는 자신이 마크해야 하는 상대, 데이빗 장에게 바로 공이 투입되는 것을 보고 예상대로라고 생각했다. 리버풀이 전개하는 공격 방향의 절반은 데이빗 장이 있는 쪽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경기의 첫 공격은 열에 아홉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랬기에 무사 시소코의 패스가 데이빗에게 향할 것이라 예측했고 그의 예상대로 조금 아래로 내려간 데이빗이 공을 받아 낸 뒤 자신에게 달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늙었단 말이지. 예전 같았으면 진작 따라가서 패스를 잘라 냈을 것을.'

자신을 등지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물러서서 패스를 받는 움직임에 따라가기 힘들었다. 억지로 따라가려고 해 보았자 민첩성의 차이가 심한 상황이라 순식간에 역동작에 걸려 제쳐질 것이 뻔했다. 수십번이나 돌려본 데이빗의 플레이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젊은 공격수는 스피드도 뛰어났지만 상대의 무게 중심을 빼앗는 플레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이었다. 그랬기에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 빈틈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달려드는 플레이는 지양해야했다. 상대는 말도 안되는 민첩성으로 공을 순식간에 반대로 터치하고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는 존재였다.

'역시 이럴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지.'

수비는 상대의 공을 빼앗는 역할이 아니다. 상대의 공격을 방해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깔끔하게 빼앗아 내는 것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상대가 더 이상 공격할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게 힘들다면 자신이 빼앗지 않아도 된다.

상체를 낮추고 슬슬 시동을 거는 상대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발로 슬금 슬금 볼을 건드리며 자신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모습, 그리고 한 순간, 자신의 오른쪽으로 순식간에 튕겨져 나가는 듯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빨라! 하지만...'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현혹되지 않았다. 숱한 경험을 통해 그는 그가 원하는 방향이 자신의 오른쪽이 아닌, 왼쪽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렇다고 해도 정직한 몸이 문제였다. 원래의 의도대로라면 속아주는 척하다가 진로를 막아 설 작정이었지만 자신이 잠깐 반응하는 사이 상대는 이미 반대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진로를 막기에는 늦어 버린 상황. 네스타는 혀를 차며 몸을 날렸다.

'센터백으로서 그리 좋은 플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잖아.'

뚫리는 것보다 몸을 던지는 것이 나았다.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뚫리게 될테니 말이다. 발을 쭉 뻗으며 공을 건드리는 데 성공한다. 완벽히 제쳤다고 생각했는지 데이빗은 속수무책으로 그의 터치를 허용하고 말았다. 네스타의 발에 맞고 흐른 공은 티아구 실바가 한 발 먼저 걷어 내며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대단하네요."

데이빗은 경탄과 함께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완벽하게 제쳤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속임 동작에 반응한 네스타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분명 자신이 방향을 전환할 때까지 제대로 몸을 추스리지 못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갑자기 자신의 발 아래에서 공을 빼낸단 말인가? 신체 능력으로 이루어 낸 수비가 아니었다. 데이빗은 직감적으로 이 노련한 수비수가 자신의 동작을 한 발 먼저 읽어 냈음을 감지했다.

"이야, 큰일 날뻔했네. 역시 엄청 빠르구나."

툭툭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네스타, 여전히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쳤고 이 정도 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긴, 지난 번에 메시도 막아냈던 선수니까.'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을 받고 있는 선수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이런 실력이라니, 도대체 이 사람의 전성기때는 어땠을지 궁금해지는 데이빗이었다. 그리고 호승심도 끓어 올랐다.

'메시도 막아낸 선수라...그럼 나는 어떨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딱히 선수 간 우열을 가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이제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었고 메시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였으니까. 이 경기에서 눈앞의 수비수를 뚫어 낸다고 해서 자신이 메시라는 선수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세계 최고라 불리는 선수를 막아냈다고 하는 이에게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승부욕이랄까, 도전 의식이 생겼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알레산드로 네스타! 정말 대단하군요! 오늘 리버풀의 에이스, 데이빗 장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봉쇄해 내고 있습니다!]

[정말,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은 이 선수를 위해 준비된 말이 아닐까요? 도대체 누가 이 선수를 두고 전성기에서 멀어진 선수라고 했습니까?]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자와 캐스터마저 찬사를 아끼지 않을 만큼 네스타의 수비는 놀라웠다. 처음의 맞대결 이후, 데이빗으로부터 공을 빼앗아 낸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끈덕지게 마크를 유지하며 그가 쉽사리 공격을 전개하지 못하도록 막는 모습은 그야말로 수비의 정석, 그 자체였다.

[지난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때의 모습이 생각나는 군요!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를 상대로도 완벽한 수비를 보여준 네스타 선수였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뚫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그는 정말 대단했죠. 그런데 오늘도, 새로운 도전자를 상대로 정말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네요!]

[마치 아직 젊은 재능들에게 너희는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네요! 그만큼 노련합니다! 정말 잘 숙성된, 오래된 와인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네요!]

[그렇다고 해도 데이빗 장도 대단합니다. 억지로 돌파를 계속 시도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공을 다시 뒤로 돌려주고 있어요. 젊은 선수들이라면 호승심 때문에라도 무리한 돌파를 감행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혈기왕성한 나이일 수록 오히려 플레이에 있어서 유연함이 부족한 경우가 많죠. 자신의 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나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데이빗도 상당히 현명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말씀드리는 순간, 루이스 수아레즈와 스위칭을 시도하는 데이빗 장, 이것도 막아내는 밀란입니다! 티아구 실바와 알레산드로 네스타는 전혀 현혹되지 않았습니다!

데이빗이라고 해서 완전히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몇 번의 대치 상황에서 그를 뚫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커버를 들어오는 티아구 실바의 존재로 인해 패스를 연결하기 전에 끊겨 버리고 말았다. 데이빗은 정말 귀신에 홀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예측을 잘 한다고 해도,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어쨌거나 축구는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 스포츠였다. 플레이가 예상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 막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랬기에 스피드 경쟁도 걸어 보고 최대한 정신없이 중심을 흔들어 보기도 했지만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정말 자신의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깔끔하게 자신에게 따라 붙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 신체 능력이 확실히 둔화된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끈질기게, 또 얄밉게 떨어지지 않고 달라 붙어 오는 모습에 오랜만에 정말 답답함을 느끼는 데이빗이었다.

삑 삐익-

결국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렸고 양 팀은 별다른 소득없이 라커룸으로 향하게 되었다. 데이빗은 고개를 흔들며 발걸음을 옮겼다. 네스타는 수아레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경기장 밖으로 향하는 데이빗을 지켜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끝내 주네요 알렉스."

같이 중앙 수비를 맡고 있는 티아구 실바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는 것이 느껴졌다.

"아 티아구. 너도 멋졌어."

자신의 칭찬에 손사래를 치며 겸양하는 티아구 실바.

"저야 뭐 한 게 없는데요. 알렉스 혼자 다했죠. 앞으로 10년은 거뜬한 거 아니에요?"

"설마, 내 나이가 지금 벌써 36에 가까운데, 그건 말디니 씨도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밀란의 전설적인 수비수, 그리고 자신과 함께 뛰었던 위대한 인물을 떠올리며 그렇게 대답한다.

"말디니 선수가 못했던 것을 알렉스가 하게 되면 그것도 멋진 일이잖아요?"

"아부는 그쯤 해둬. 슬슬 들어가자고."

기분 좋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어쨌거나 전반전에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후반전에도 이정도 수준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까마득해지는 네스타였다.

'진짜 젊음이 좋긴 좋구나.'

눈 뜨고 놓칠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메시를 막을 때도 느꼈지만 정말 사람 같지 않은 녀석들이었다. 아마 오늘 경기가 끝나면 며칠동안은 아무것도 하기 힘들만큼 지쳐버릴 것이다.

"그래도 해야할 일은 완수해야겠지."

"음? 뭐라고 하셨어요?"

"혼잣말이야. 신경쓰지 말고 들어가자."

============================ 작품 후기 ============================

-실제로 저 당시 AC 밀란 수비들이 바르셀로나의 흉악한 공격진에게 영혼까지 털릴때

-기량이 떨어졌다고 까이던(?) 네스타 선수가 메시를 막아내는 기괴한 현상이...

-진짜 클래스는 어디가지 않는듯 느낀 경기였어요

-근데 더 공포스러운 건

-저 시즌(11-12)이 끝나고 나서 저분이

-자기는 세리에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기 버겁다면서

-MLS로 가버렸어요

-읭?

-...그렇게 말하면 부끄러워서 은퇴 해야할 선수가 한 둘이 아니었을텐데

-그만큼 전성기가 대단했다는 반증도 되겠죠

-그래서 주인공도 좀 털려야

-메시도 털렸는데

-너흰 아직 준비가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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