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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저건 말도 안 되는 짓이야."
전반을 마친 리버풀의 라커룸, 제이미 캐러거는 땀을 닦아낸 수건을 거칠게 바닥에 던져 버렸다. 경계하던 상대의 공격에 그대로 당하는 것만큼 수비수로서 힘 빠지고 화가나는 일도 드물다. 스크르텔도 열이 받았는 지 전반에 입었던 유니폼을 바구니에 강하게 던져 버렸다.
"도대체 무슨 스로인이 저래?"
험악한 분위기의 수비수들과 달리 공격수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을 벗어나는 궤도로 날아오는 스로인이었다. 애초에 거리부터 상식을 벗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영상으로 보긴 했지만, 직접 보니 느낌이 정말 달라. 당연히 떨어져야 하는 공이 그대로 머리 위를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영상에서야 그저 잘 던지는 구나, 멀리도 던지네, 생각보다 정확한데? 정도의 감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얼마나 강한 힘으로 던진 것인지 떨어지지 않고 쭉 뻗는 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궤적에 당황해 버린 것이 실점의 원인이었다.
"지금 웃을 일이 아니야. 장난 아니라고. 왜 스로인을 줄 바에야 차라리 코너킥을 주라고 한 지 알겠어."
실제로 스토크 시티에서는 정확한 킥을 구사할만한 선수가 부족하다. 피터 크라우치라는 세트 플레이에서 강점을 가진 공격수를 보유하고도 그들이 프리킥, 혹은 코너킥 찬스에서 득점력이 떨어지는 이유였다.
반면 로리 델랍을 이용한 장거리 스로인의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률을 자랑했다. 이번 시즌에는 델랍 본인의 보상으로 인해 기회 자체자 적었고 이전 시즌에 비해 위력도 떨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오늘 전반에 득점이 만들어진 것까지 포함하여 이번 시즌, 장거리 스로인으로 2번의 골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스토크 시티였다. 횟수는 적지만 시도 대비 결정력으로 보았을 때는 아주 효율적인 공격이었다. 물론 델랍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2008-2009 시즌의 8회 득점 창출에 비하면 손색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알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 거야."
수아레즈는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뜻으 밝힌다. 말을 꺼냈던 호세 엔리케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를 돌려 도니 골키퍼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쨌거나 상대에게 스로인 찬스를 주게 된 원인은 골키퍼의 깔끔하지 못한 볼 처리였으니 말이다. 엔리케가 입을 열때, 그보다 먼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봐 알렉산더, 사실 스로인을 줬다고 탓 하는 것도 웃긴데 말이야, 감독님이 경기 전부터 말했잖아. 우리 진영에서 스로인을 주지 말라고. 그리고 그냥 멀리 차 내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뭐가 그리 급했던 거야?"
캐러거가 그 점을 짚고 넘어간다. 도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이다.
"미안...상대 공격수를 너무 의식하는 바람에 킥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 후반에는 이런 일 없을 거야."
깔끔하게 실수를 인정하며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도니의 모습에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 소재를 따지기 위함이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본인이 저렇게 말한 이상 더 따지는 것은 감정의 대립을 불러 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래, 그거면 돼. 사실 우리가 제대로 마크하지 못한 것도 있으니까. 우리도 절대 쉽게 슈팅을 허용하지 않겠어."
스크르텔이 그렇게 말하자 분위기는 한결 개운해졌다. 자존심 강한 선수들이지만 아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속이 좁은 것은 아니다. 최근 리버풀의 분위기가 괜찮은 것은 선수들 사이에서 감정의 대립이 크게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도 주된 원인이었다.
선수들이 서로 질책하고 책임을 따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파벌이 갈린다. 물론 아무리 사이가 좋은 팀이라고 해도 친한 선수들끼리 어느 정도 그룹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건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파벌이 되는 순간, 아무리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팀이라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다. 많은 지도자들이 팀 케미스트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달글리시 감독은 기분 좋게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선수들 스스로 답을 찾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정말 뿌듯한 일이었다.
"좋아, 다들 크게 흔들림은 없는 것 같군."
선수들을 둘러 보며 입을 여는 달글리시 감독, 완벽히 상대를 압도한 전반전이었지만 단 한 번의 공격, 그것도 상대 팀의 상징과도 같은 특별한 공격 방법에 실점을 했기에 혹시나 선수들의 사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실점에 대해 분함을 표하긴 했지만 크게 흔들려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자신이 할 일은 그들이 전반전과 같은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스로인으로 골을 먹었다는 사실은 크게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한 골일 뿐이야. 특이하게 넣었다고 해서 두 골로 인정해주는 것은 없어. 상황은 아주 심플하네. 1 대 1, 동점일 뿐이야. 여러분들은 이제 이제 막 경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깔끔한 상황 정리, 굳이 선수들에게 실점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보다는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라는 달글리시 감독의 주문은 효과적으로 보였다. 찝찝한 기색이 남아 있던 수비진들의 표정이 한결 풀리는 모습이다.
"우리의 리듬대로 경기를 하면 된다. 슈팅을 아끼지 말도록. 전반에 조금 불운했다고? 그런 것에 신경쓰지 말고 자신 있게 날려. 공격에 가담하는 선수들은 모두 때릴 수 있을 때 자신있게 슈팅을 시도하도록 해. 박스 안에 있는 공격수들은 동료가 슈팅을 쏠 경우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도록."
"무사, 자네는 중간에 교체 투입될 거야. 몸은 잘 풀었나?"
라커룸 대화를 마치고 후반전 개시를 위해 다시 그라운드로 나온 양 팀의 선수들, 달글리시 감독은 휴식시간 동안 몸을 풀었던 시소코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입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더듬거리는 말투와 달리 강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답, 안필드 데뷔전이었다. 기대가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고 시소코는 강한 의욕을 보이며 출전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좋아, 후반 15분 정도에 투입할 예정이다. 조단이 뛰고 있는 자리로 들어가는데 자네의 활동량을 살려서 공격, 수비에 걸쳐 폭 넓게 뛰어주기 바란다. 전방의 포워드들에게 패스를 연결해 주어도 좋고 직접 골을 노려도 좋다. 자네의 능력을 보여주고 오게."
자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체력, 기동력을 살리라는 말. 이전의 팀에서 하는 역할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공격수로 나설 때도 수비 가담이 많았고, 수비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공격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신의 장점이었다.
시소코는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고 차분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안필드의 관중들, 그들의 성원 소리가 좀 더 가깝게 들려왔다. 벤치에 대기하고 있을 때와, 투입이 확정된 지금 느끼는 바는 확실히 달랐다.
'예전 팀 홈 구장하고도 느낌이 좀 다르네. 조금 '
그가 원래 있었던 팀, 툴루즈가 사용하는 홈 구장 스타디움 드 툴루즈는 공식 수용인원이 33,000명으로 안필드와는 약 1만명 정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 차이로 이런 분위기 차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왜 안필드가 원정팀에게 지옥이라고 하는 지 알겠다.'
숫자를 뛰어 넘는 어떤 열정, 광기가 느껴지는 구장이었다. 유럽에서 악명 높은 구장은 대충 다 이렇겠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런 열정적인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뛰는 것은 확실히 선수로서 즐거운 일일 것 같았다. 시소코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경기를 치르고 있는 동료들을 살펴 보았다.
'잘 하네. 확실히 이전에 있던 팀하고는 수준이 달라.'
자신이 데뷔한 팀이었고, 지금도 애정이 충분히 남아 있는 친정팀이긴 하나 지금 리버풀이 보여주는 모습에 비한다면 정말 한 수, 아니 몇 수 아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팀 훈련을 소화할 때도 느꼈지만 개개인의 기량 차이가 상당히 심했다. 이 클럽에서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 혹은 벤치에 들지 못하는 선수들이 자신의 친정팀에서는 주전으로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역시 눈길을 끄는 선수는 그가 최근에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어, 데이빗 장이었다.
"와우..."
타고난 센스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보고 있으면 축구를 참 쉽게 하는 느낌,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선수로서 지금 데이빗이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얼마나 수준 높은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저기서 저런 식으로 돌아 서네. 진짜 쟤는 미친 놈이야."
벤치에서도 그런 감상이 들렸으니 자신이 유별나게 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소코는 몸을 돌리며 감독이 빨리 자신을 투입시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저 친구와 경기를 함께 뛰고 싶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 왔다. 달글리시 감독이 대기심에게 다가가 교체 의사를 전했고 곧 그는 안필드의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최고의 데뷔전이 되길 기대하겠네. 자네라면 할 수 있어. 훈련할 때 보여주었던 만큼만 해주면 된다고."
등을 팡팡 두드리며 마지막 독려를 전하는 감독을 뒤로 하고 사이드 라인 안쪽으로 발 걸음을 옮긴다. 자신과 교체되는 조단 핸더슨과 가벼운 하이 파이브를 나누자 열렬한 박수 소리가 들려 왔다. 오늘 열심히 뛰어준 조단 핸더슨에게 향하는 박수인지, 아니면 첫 데뷔를 시작한 자신을 격려하는 박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피가 끓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조단 핸더슨 선수가 나오고 등 번호 13번의 무사 시소코 선수가 투입됩니다. 이번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팀에 합류한 선수인데 오늘 바로 데뷔전을 치르는 군요!]
[그렇습니다. 이번 이적 시장에서 약 13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출하며 리버풀이 데려온 선수입니다. 리버풀에서 기대가 아주 큰 선수죠.]
[이전 소속 팀에서는 그야말로 멀티 플레이어의 정점이랄까요, 미드필더 전 포지션 뿐만 아니라 윙어, 거기에 풀백까지 소화한 전력이 있는 선수입니다. 오늘은 본인의 주 포지션 중 하나인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게 되었네요.]
[달글리시 감독은 그를 두고 다양한 자리에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었죠? 그래도 데뷔전은 역시 가장 익숙한 자리에서 뛰도록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열성적인 안필드의 팬들 앞에서 최고의 데뷔전을 치를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뭐랄까, 제설차 같은 느낌인가."
데이빗은 투입되자 마자 경기장 이곳 저곳을 누비며 본인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무사 시소코를 보며 그런 감상을 입에 담았다. 조단 핸더슨 또한 활동량이 부족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기세랄까, 포스가 달랐다. 흑인 특유의 탄력과 파워를 앞세워 상대를 압박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캡틴도 확실히 여유가 생긴 것 같고."
단지 수비를 할 때만 존재감이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계속 움직이며 동료들에게 패스 코스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자연히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이는 플레이 메이커를 맡고 있는 스티븐 제라드일 수 밖에 없었다. 데이빗은 기분 좋게 웃으며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슬슬 자신에게 패스가 연결될 타이밍이었다.
'확실히 저런 하드 워커가 들어오니 경기하기가 편해 지네.'
디르크 카윗이나 무사 시소코 같은 하드 워커가 각광받는 이유였다. 본인이 빛나지는 않더라도 같이 뛰는 동료들은 그 선수의 고마움을 잘 안다. 데이빗은 그의 데뷔전을 반드시 승리로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에게 연결되는 공을 킵하지 않고 그대로 흘렸다. 수비가 당황하는 사이 데이빗이 흘린 공을 잡은 것은 호세 엔리케, 그는 사이드를 완전히 뚫어 버릴 듯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쪽으로 수비가 몰린 사이 뒤로 공을 내 주었다.
"나이스!"
전방으로 합류하지 않고 뒤에 남아 있던 데이빗, 약간 후방이긴 했지만 편안하게 공을 잡는 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공을 슬쩍 오른발 각도에 맞추고 강하게 전방의 루이스 수아레즈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루이스 수아레즈는 확실히 센스가 있는 선수였다. 자신의 크로스를 억지로 슈팅으로 연결하려 들지 않았다. 만약 슈팅을 시도하게 하려 했다면 크로스를 조금 다르게 올려 주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 챘다. 가볍게 머리로 공을 뒤로 흘려주는 수아레즈, 그리고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달려드는 중거리 슈팅의 마스터, 스티븐 제라드가 그 공의 마지막 수취인이 되었다.
늘 그렇듯, 인정사정 없이 온 힘을 다해 슈팅을 시도하는 리버풀의 캡틴, 발등에 제대로 얹힌 공은 기묘하게 흔들리며 골대로 날아갔고 애처롭게 뻗어지는 골키퍼의 손에 닿지 않고 그대로 그물에 휘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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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회의 공지글 삭제 했습니다.
-어제부터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네요
-날 잡고 하루 쉬는게 나을지도...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