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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cm 짜리 상대를 튕겨 버리다니, 몸 싸움이 그새 많이 는거야?"
골 세레모니를 마치고 돌아오며 마르코 로이스가 신기하다는 듯 질문해 왔다. 그가 리버풀에 합류한 뒤로, 최소 프리미어 리그 레벨에서 데이빗이 공중에서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에 자연히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아냐, 저 쪽이 방심한 것도 있고 난 달리던 힘까지 있었잖아. 수비는 제 자리에 가만히 있었고. 그래서 그런거지 뭐. 같이 자리를 잡고 뛰었다면 이기지 못했을 거야."
스스로도 상당히 쾌감을 느끼긴 했지만 냉정히 분석하는 데이빗이었다. 이제는 확실히 몸싸움 능력에 있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꾸준히 훈련을 통해 보완해 왔고 실전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요령도 깨우쳤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보통 팀에서 가장 강력한 피지컬을 자랑하는 중앙 수비수들과의 경쟁에서 압도할 만큼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넣기 힘든 골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시원한 헤더 골을 기록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데이빗은 기분 좋게 웃었다.
"완전히 째졌네. 그렇게 좋냐?"
수아레즈가 부럽다는 듯 쿡 찌르며 말을 걸어 왔다. 본인이 조금만 침착했다면 멋지게 골키퍼를 제치고 골을 넣을 수 있었을 텐데 터치가 길어 어시스트로 만족해야 했다.
"좋지. 도움닫기를 하긴 했지만 내가 상대 수비를 몸으로 굴려본 적이 있었어야 말이지. 이야, 이것도 진짜 쾌감이 장난이 아니네."
기술로 상대를 농락하고 스피드로 떨궈 내는 것도 기분이 좋았지만 이런 플레이도 색다른 맛이 있었다. 원초적인 강함을 확인할 수 있다고나 할까? 상대보다 무언가 확실히 우위에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비 시즌 동안 벌크업이라도 해보지? 스타일 체인지 어때?"
장난스럽게 말하는 수아레즈,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약간의 근력을 늘리는 운동은 필요하고 늘 하고 있었으나 스타일 체인지 수준으로 가서는 곤란했다. 그가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플레이어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스피드와 기술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억지로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려다 기존의 장점을 말아 먹어서야 곤란했다. 벌크업을 하게되면 필연적으로 스피드, 순발력, 유연성에서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 볼까?"
장난스럽게 농담으로 받아 넘기는 데이빗, 수아레즈 또한 농담이었기에 더 말하지 않고 웃어 넘겼다.
전반 14분에 터진 데이빗의 선제골로 리버풀은 한승 기세를 끌어 올렸다. 마치 지난 맨체스터 시티에게 당했던 것처럼, 완벽한 하프 코트 게임으로 상대를 몰아 넣고 두들기기 시작했다. 첫 골을 넣은 데이빗은 자신에게 경계가 강해지자 욕심내지 않고 오히려 뒤로 물러나 연결해 주는 플레이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나이스!"
전반 23분, 핸더슨이 패스해 준 공을 가지고 살짝 뒤로 빠지는 데이빗, 그리고 그와 자리를 교대하는 듯 올라 오는 엔리케, 데이빗은 그대로 공을 엔리케에게 밀어 주었다. 패스를 건네 받은 엔리케는 빠르게 왼쪽 측면을 파고 들었고 중앙을 한 번 힐끗 바라 보고는 그대로 크로스를 시도했다.
날카롭게 휘어지며 올라가는 크로스, 수아레즈는 라이언 쇼크로스보다 한 발 먼저 머리에 공을 맞추는 데 성공했지만 방향을 너무 꺾으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의도는 먼 쪽 포스트로 돌려 놓는 것이었지만 지나치게 공을 돌려 버렸고 그대로 엔드라인 밖으로 흘러 나가고 말았다.
"젠장! 나이스 패스였어!"
머리를 감싸 쥐며 아쉬움을 표현한다. 하지만 좋은 크로스를 보내 준 동료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 모습, 엔리케도 엄지를 들어 올리며 좋은 시도였다고 말하고 자신의 자리로 복귀했다.
[리버풀이 완벽하게 경기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점유율은 정말 처참한 수준이네요. 74 대 26. 사실 상 스토크 시티는 공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점유율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지표는 아닙니다만 오늘만큼은 점유율로 설명이 가능하겠습니다. 리버풀은 소위 티키타카를 구사하는 팀이 아닙니다. 중 장거리 패스 시도도 잦은 팀이고 옆으로 돌리며 수비를 끌어내는 것보다는 전진 패스, 혹은 돌파를 선호하는 팀입니다. 그럼에도 저런 점유율이라는 이야기는 그만큼 리버풀의 도전적인 시도가 높은 확률로 성공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네, 거기에 대부분의 공격을 슈팅까지 끌고 가고 있죠?]
[그렇습니다. 골을 넣지 못한다고 해도 한 번의 공격에서 슈팅까지 마무리하고 온다는 것은 아주 긍정적인 일입니다. 공격에 리듬이 생길 뿐만 아니라 역습을 당할 일도 적어 지죠.]
[이어지는 순간 데이빗 장의 중거리 슈팅! 아! 골대를 살짝 넘어 갑니다!]
[스티븐 제라드 선수와의 순간적인 원 투 리턴에 스토크 시티 선수들이 전혀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슈팅 코스가 열린 상황에서 마음 먹고 때린 강력한 슈팅이었습니다만 살짝 벗어 나네요. 스토크 시티로서는 천만 다행입니다."
[스토크 시티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타개해야할 테지만 쉽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리버풀의 공격1]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축구였다. 아마 일반적인 경기였다면 리버풀이 전반에만 5골을 넣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흐름이었다. 리버풀은 패스를 마음 먹은대로 돌리고 있었고 제 집 드나들 듯 스토크 시티의 진영을 돌파해 댔다. 슈팅 셀렉션 또한 크게 무리하는 것이 없었다. 여러모로 지난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리버풀을 압도할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시작은 단순했고 아무런 위협이 느껴지지 않았다. 스토크 시티의 골키퍼 베고비치가 멀리 차낸 공이 리버풀의 진영으로 날아왔을 뿐이다. 베고비치의 킥은 그의 의도보다 길게 날아 갔고 리버풀의 골키퍼 알렉산더 도니가 문제 없이 걷어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공에 죽자사자 달려든 스토크 시티의 공격수 왈터스의 존재로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이미 페널티 박스 밖으로 나온 상황이라 손을 쓸 수도 없었고, 앞에서는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공격수가 있었기에 알렉산더 도니는 당황하고 말았다. 괜히 공의 소유권에 욕심낸다고 짧은 패스를 시도했다가는 빼앗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대로 멀리 차내려고 했다. 그의 발이 공을 제대로 때려 냈다면, 빗맞지만 않았다면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잊혀졌을 것이다.
그의 킥은 발등에 제대로 걸리지 못했고 아웃사이드에 애매하게 맞아 버렸다. 자연히 공은 스핀이 걸리며 오른쪽 사이드로 향했고 원 바운드 된 공은 한층 더 꺾이며 리버풀의 진영으로 흐르다가 사이드 라인으로 나가고 말았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이빗은 황당함에 입을 벌렸다. 사이드 라인으로 나갈거면 좀 멀리 나갈 것이지, 묘하게 회전이 먹어서 자신들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가까운 곳으로 나가고 말았다. 코너킥보다 조금 멀긴 하겠지만 그게 별 의미가 없는 선수가 상대방에 있었다.
'이러면 안 되겠지만...묘하게 기대가 되는데...?'
자신들에게 위기였기에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조금 기대가 되는 느낌도 들었다. 영상으로만 보던 그 플레이를 실제로 볼 생각을 하니 괜히 두근거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골을 먹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스로인만 보고 골은 안 먹혔으면 좋겠다.'
어느 새 사이드 라인에 서서 공을 닦고 있는 델랍을 바라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데이빗이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힘을 비축한다. 어느덧 전반 32분이었다. 델랍은 자신의 축구 인생에 있어 이 정도로 길게 느껴졌던 30분이 있을까 생각했다. 제대로 된 공격, 아니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지도 못한 채 상대에게 휘둘려 다녔다. 한 골 밖에 허용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처참한 경기력이었다. 아마 후반전이었다면,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경기장을 떠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참 빌어먹게도 강한 팀이야."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과 달리, 델랍 본인의 프로 커리어는 사실 보잘 것 없었다. 지금은 풋볼 리그1(3부)에 소속되어 있는 칼라일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단 한번도 강팀이라 불리는 팀에서 뛰어본 적이 없었다. 더비 카운티, 사우샘프턴, 선덜랜드를 거쳐 지금의 스토크 시티에 이르기까지. 그는 승리보다 패배에 익숙한 팀에 있었고 크게 빛나본 적이 없었다. 다른 빅 클럽, 그리고 거기에 소속된 스타 플레이어들이 거두는 승리의 조연에 불과했다.
"나도 이거 말고 다른 쪽, 멋진 킥이나 드리블에 재능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쓰게 웃으며 진행 요원이 가져다 준 수건으로 젖은 공을 꼼꼼히 닦아 낸다. 눈과 비가 내리고 있다 보니 공은 젖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가뜩이나 손에 잡고 던지기 힘든 공이 미끄럽다면 의도대로 공을 보내기 힘들어 진다. 간신히 잡은 찬스였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
"찬스라, 그래도 다행이군. 이 능력이 도움이 된다니 말이야."
찬스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일반적인 팀들 간의 시합이라면 말이다. 상대의 진영에서 스로인을 얻어낸 것을 두고 찬스라고 부르는 팀은 자신의 팀이 유일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종목을 잘못 선택한거 아니냐는 소리도 들어 봤지만 말이지."
실제로 창 던지기 선수로 활동한 적도 있었고, 한창 롱 스로인으로 재미를 보았던 2008-09 시즌 이후에는 정식으로 창 던지기 올림픽 대표 출전을 권유 받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축구가 더 좋았기에 고사하고 남았다.
어쩌면 미련한 일인지도 몰랐다. 롱 스로인을 잘 한다는 것은 어쨌거나 축구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축구가 손으로 하는 운동이라면 몰라도 필드 플레이어는 손을 쓸 수 없는 것이 축구였다. 골키퍼를 하면 되지 않냐는 말도 들어 봤지만 자신에게는 골키퍼에 필요한 반사 신경이 부족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에 필요한 재능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별 쓸데 없는 능력이라고 여겨졌던 강한 어깨를 살려 팀의 새로운 공격 패턴을 장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자신을 두고 반 쪽짜리 선수라고, 스로인을 빼면 볼 것 없는 선수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남의 인생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에 귀 기울일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수건을 바닥에 던지며 거리를 가늠했다. 코너 플랙에서 약 3m 떨어진 지점이었다. 동료들은 이미 상대의 골문 앞에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래도 다행이네. 페널티 박스에서 가까운 곳이라."
한창 이름을 날렸던 몇 년전에 비해 어깨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상대의 진영 한 가운데 쯤에서 던져도 페널티 박스 안까지 보내는 데 문제가 없었으나 지금으로서는 그건 무리였다. 그래서 지금 위치에서 걸린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 정도 거리라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했다.
"후읍."
크게 호흡하며 도움 닫기를 시작했다. 몸을 활처럼 젖히며 탄력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머리 뒤에 있던 공을 앞으로 끌어 당기며 크게 휘둘렀다. 뒤로 젖혀졌던 몸이 앞으로 급격하게 쏠리며 마지막까지 힘을 전달한다. 델랍은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 냈음을 손의 감촉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보통의 장거리 스로인이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에 비해 델랍의 그것은 궤를 달리 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의 머리 높이에서 공이 일직선으로 페널티 박스로 향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스피드가 빠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말이다. 리버풀 선수들은 처음으로 겪어 보는 스로인 궤적에 당황했다. 당연히 떨어져야 하는 공이 떨어지지 않고 뻗어가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 공은 그의 스로인에 익숙한 그의 팀 동료, 2m의 장신 스트라이커 피터 크라우치의 머리에 정확히 연결되었고 크라우치는 가볍게 머리로 공을 찍으며 리버풀의 골망을 갈랐다.
============================ 작품 후기 ============================
-제 소설의 주인공은 소위 말하는 천재형 선수지만
-제가 실제로 좋아하는 선수는 좀 달라요
-천재형 선수라도 올마이티 스타일의 약점 없는 스타일보다는
-장 단점이 명확한 선수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로리 델랍처럼 한 부분의 스페셜리스트도 좋아합니다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스킬이라도 최고가 되면 다르다는 걸 보여준 선수라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마이너 스킬로 인정 받는 건 멋집니다
-마치 제가 본문 보다 후기를 더 잘 쓰는 것처럼요
-자랑이 아닐텐데?
-당당하게 후기를 더 잘 쓴다고 했어?!
-...본편도 더 재밌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예약 등록입니다
-이거 올라가 있을 때 쯤엔 자고 있을 거 같네요
-컨디션 회복하고 내일 다시 2편 연재할 수 있도록 할게요
-그럼 즐감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