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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인지 비인지, 아무튼 여기 날씨는 적응이 안 된다니까."
시합을 앞두고 수아레즈가 가볍게 투덜거린다. 이제 곧 경기장 입장을 앞두고 있었는데 통로 밖에서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아니, 좀 전까지만 해도 화창했잖아? 도대체 뭐 날씨가 이래?"
"새삼스럽게 뭘 그래?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니면서."
가볍게 핀잔을 주는 데이빗, 그의 말마따나 팀에 합류한지 만 1년을 채운 수아레즈였다. 변덕스러운 잉글랜드의 날씨를 어느 정도 겪어 본 이였기에 굳이 투덜대지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알지, 그냥 해본 말이야."
크게 불평한 것은 아니라고 수아레즈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앞쪽에 서 있는 상대 편 선수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키 큰 양반이 예전에 우리 팀에 있었던 선수라지?"
"누구? 아, 맞아. 나도 그땐 우리 팀에 없긴 했는데 TV에서 봤어."
"키는 진짜 크네. 농구 선수라고 해도 믿겠다. 저 정도면 농구 선수 중에서도 키가 큰거 아냐?"
신장이 2m에 달하는 장신 공격수, 피터 크라우치를 가리키며 그런 감상을 입에 올리는 수아레즈, 데이빗은 뭐 무슨 상관이겠냐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진짜 크긴 크다. 나도 작은 편은 아닌데..."
키가 183cm인 데이빗도 그리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2m의 장신 앞에서는 꼬마로 보였다. 거기에 마른 체구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었고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나 보일 정도였다.
"축구를 뭐 키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아, 저 양반은 키로 하려나?"
발재간도 꽤 괜찮은 선수였지만 어쨌거나 키를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가 강점인 선수였기에 틀린 감상은 아니었다. 데이빗은 그보다 크라우치의 뒤에 서 있는, 자신들과 키가 비슷한 선수를 가리켰다.
"저 선수 알지?"
등 번호 24번의 선수를 가리키는 데이빗, 수아레즈는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되돌려 본다.
"잘 모르겠는데? 누구야? 잘 하는 선수야?"
"그 있잖아. 인간 투석기."
간단한 설명, 하지만 수아레즈에게 이해시키기에 충분했고 수아레즈는 탄성을 흘리며 말했다.
"아, 그 미친 롱 스로인 던지는 선수? 그게 저 사람이야?"
"어, 맞아. 난 진짜 영상으로 보고 내 눈을 의심했어. 무슨 코너킥보다도 더 먼 곳에서 스로인으로 골문까지 보내는데, 사람인가 싶더라."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질렸다는 반응을 보이는 데이빗, 수아레즈도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다.
"내가 본 축구 선수들 중에 가장 쇼킹한 사람이었어. 그게 저 친구였다니 놀랍네."
말하다 보니 이제야 만난 것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이번 시즌에 스토크 시티하고 한 번 경기 했었잖아? 그때는 못 본거 같은데? 부상이었나?"
"어, 부상이었다고 하더라. 웃긴게, 허벅지나 발목같은 다리 부상이 아니라 어깨가 탈구 되었다고..."
"......"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부상인지라 수아레즈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조금 황당함이 가셨는지 뒤늦게 입을 연다.
"아니, 무슨 야구 선수도 아니고...몸 싸움하다가 탈구 된 건 아니고?"
"자세한 건 모르는데...저렇게 공을 미친듯이 던져 대니 어깨가 남아 나겠어? 어디서 듣기로는 어깨 부상이랑 허리 부상을 거의 달고 산다고 하던데. 물론 스로인 때문에."
실제로 축구공이 사람이 던지기 적합한 사이즈가 아닌데다, 그걸 보통 선수들보다 훨씬 멀리 던지는 행동을 하다 보니 무리가 올 수 밖에 없었다.
"황당한 선수답게 부상도 황당하네. 나중에는 그 뭐냐...야구 선수들이 자주 받는다는 수술 있잖아."
"아...뭔지 알 것 같아."
"그래 그거. 나중에는 그 수술까지 받는 거 아니야?"
정확한 용어가 생각이 안 났지만 대충 의미 전달은 되었다. 데이빗은 아예 웃고 넘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야구하니까 생각이 난 건데, 거기 변화구 같은 거 있잖아. 우리로 치면 회전을 먹여서 휘어지게 하는 거."
"어 뭐 있다고 하더라."
"나중에 스로인으로 변화구처럼 던지는 건 아니겠지? 감아차듯이 말이야."
"스로인으로 감아 차기를 한다고?"
말이 되냐는 듯 살짝 목소리의 데시벨이 높아지는 수아레즈, 하지만 왠지 저 말도 안되는 짓을 하는 선수에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 같아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그런게 가능하면 보고 싶긴 하네."
"그렇지?"
"헤이, 로리."
"음? 무슨 일이야 라이언?"
자신을 부르는 라이언 쇼크로스를 확인하고 로리 델랍은 고개를 돌렸다.
"아까 경기장 입장 전에 통로에서요. 리버풀 녀석들이 당신을 두고 엄청 이야기를 하던데요?."
"나를? 누가? 왜?"
"저기 7번 수아레즈라는 녀석하고 10번 데이빗 장, 두 친구가 그랬어요"
손가락을 뻗어 상대 진영을 가리킨다. 델랍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저 친구들이 왜 그랬지? 난 쟤네들 처음 만나는데. 딱히 사적으로 알고 지내는 선수들도 아니고."
"아, 뒷담화 같은 건 아니었어요. 그냥 로리의 스로인이 좀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주고 받던데, 자기들이 본 선수 중에서 제일 특이한 선수라나, 뭐 그런 얘기였네요."
선수 생활을 하며 익히 들어 온 이야기였기에 델랍은 피식 웃고 넘겼다. 같은 팀 동료들도 가끔 하는 얘기였으니 특별할 것도 없었다.
"난 또 뭐라고. 그래도 날 알아본다니 기분이 나쁘진 않네."
빅 클럽에서 잘 나가는 선수들이, 어찌되었든 자신을 알아본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짓는 델랍이다.
"근데 저 치들이 한 얘기 중에서 나도 궁금한게 생겼는데요."
"음? 뭐가 궁금해?"
2007년부터 지금까지 꽤나 긴 시간을 자신과 함께 지낸 쇼크로스였다. 자신에 대한 어지간한 일들은 다 알고 있던 친구였기에 그가 궁금하다고 하자 의문이 들었다.
"저기 저 친구들이 혹시 로리라면 스로인으로 커브를 먹일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해 하더라구요. 왜 인사이드로 감아 차는 느낌있잖아요. 혹시 그런 것도 가능해요?"
"......"
"살다 살다...우리 진영에서 스로인을 줄 바에야 차라리 코너킥을 내주라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
심판의 킥 오프 휘슬이 울리려면 아직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선수들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마지막으로 몸을 풀곤 했다. 캐러거는 스트레칭을 하며 황당하다는 듯 감상을 읊었고 옆에 있던 마틴 스크르텔도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이 아니야 캐라.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도 되지 않는 지시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코너킥보다도 정확도가 높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지."
"그러니까. 나 참. 이게 축구인지 럭비인지 모르겠네."
웃기지도 않는다며 캐러거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크르텔은 걱정이 된다며 말을 덧붙였다.
"그나저나, 생각은 하고 있을텐데, 급한 상황에서는 버릇처럼 사이드 라인으로 걷어 낼텐데, 이거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네. 괜히 생각하다가 처리가 늦어지면 그게 더 골때리는 건데."
평소라면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였다. 세상에 어떤 팀이 스로인을 주기 싫어서 코너킥을 주겠는가? 하지만 실제로 그래야 하는 팀이 눈 앞에 있었고 그랬기에 머리가 아플 수 밖에 없는 캐러거와 스크르텔이었다.
"그냥 너무 신경쓰지 마. 지시대로 따를 수 있는 상황이면 그렇게 해도 급한 상황이면 일단 되는 대로 걷어 내야지, 별 수 있어?"
"그건 그렇지. 그래도 진짜 골 때린다."
"누가 아니래? 근데 생각해 보니, 이건 우리보다는 사이드 라인 친구들이 더 고민이 될 문제 같은데?"
사이드 라인에 가까이 있는 선수들은 그들이 아니라 풀백들이었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스크르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뭐, 우리는 그냥 인간 투석기가 공을 쏘아 대면 머리로 클리어 하는 수 밖에 없지."
경기는 시작부터 리버풀의 일방적인 우세속에 진행되었다. 12일 동안 꿀맛같은 휴식을 취한 리버풀 선수들은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상태였다. 체력적인 상황이 동등하다면 리버풀이 스토크 시티를 상대로 고전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이곳은 리버풀의 홈 구장 안필드. 일방적인 홈 팬들의 성원과 함께 어느 정도 홈 팀에 유리한 주심의 콜도 경기 양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음...스로인만 좋은 선수인가?'
오른쪽 미드필더로 나선 로리 델랍과 몇 차례 붙어 본 느낌은 그랬다. 데이빗은 독특한 장점이 있는 이 선수가 꽤 신경이 쓰였고 처음에는 조금 조심스럽게 공격을 전개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박감, 그리고 거리 조절 능력이 수준 이하였고 그 이후로는 자신있게 그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굳이 현란한 기술을 뽐낼 필요도 없었다. 간단한 몇 차례의 볼 터치로 상대를 흔든 뒤 반대로 빠져 나가면 그만이었다. 간단한 동작, 하지만 패턴이랄 것이 없는 스킬인 만큼 유용했다.
이름이 붙는 개인 기술, 예를 들어 지네딘 지단의 시그니처 무브인 마르세유 룰렛이나 호나우지뉴의 플리 플랩 등은 특정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스킬들이다. 무조건 그 기술을 사용한다고 수비를 제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속된 볼 터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화려한 맛은 부족하지만 실용적이었다. 특정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상대 수비가 흔들릴 때까지 발로 볼을 계속 터치하는 것이니 말이다.
아무튼 너무나 간단히 델랍을 제쳐낸 데이빗은 욕심 내지 않고 중앙의 제라드에게 공을 전달하고 그대로 달려 갔다. 중앙 미드필더였던 화이트헤드가 자신에게 붙으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제라드의 마크가 옅어 졌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르코!"
공을 이어 받은 제라드는 지체 없이 오른쪽 윙 포워드 마르코 로이스에게 크게 열어 주는 패스를 시도했다. 데이빗의 무브먼트로 인해 상대의 시선이 왼쪽과 중앙에 쏠려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대지를 가르는 듯한 침투 패스가 마르코 로이스의 전방으로 향했고 마르코 로이스는 상대의 풀백과의 스피드 경쟁에서 완벽하게 이겨냈다. 한 발 뒤에서 출발했지만 스타트 타이밍이 반 템포 빨랐던 것으로 상쇄시켰고 톱 스피드는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공을 먼저 따라 잡는 데 성공했다.
공을 터치한 마르코 로이스는 방향을 살짝 꺾어 진로를 수정했다. 대각선으로 골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 마르코 로이스, 달라 붙는 상대 센터백 후스를 오른발로 공을 부드럽게 왼쪽으로 밀어 피하고 왼발로 공을 앞으로 보내며 지나쳤다.
아크 정면을 향해 수직에 가까운 돌파를 시도하는 로이스는 후스를 뒤에 달고 있는 상태에서 쇼크로스의 시선이 분산된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마크했어야 했을 루이스 수아레즈가 절묘하게 뒷 공간을 파고 들어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투웅-
가볍게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민다. 목표는 자신이 달고 있던 후스가 원래 지켰어야 하는 공간, 그리고 수아레즈가 침투하기 시작한 그곳이었다. 마르코의 패스는 정확하게 수아레즈에게 전달 되었고 수아레즈는 슈팅을 시도하려는 듯 오른발을 크게 휘두르려 했다.
'제길!'
생각보다 상대 골키퍼의 반응이 빨랐다. 아마 자신이 침투를 시작하는 순간 이미 반응을 하기 시작했으리라. 슈팅을 하려 할때 이미 자신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상황, 미리 알았다면 머리 위를 넘기는 루프 슛을 시도할 테지만 이미 그런 타이밍은 지났다. 수아레즈는 오른발 킥을 취소하고 왼발로 공을 오른쪽으로 밀며 키퍼를 피했다. 하지만 가볍게 공을 옮긴다는 것이 강도 조절에 실패했고 공은 생각보다 멀리, 엔드라인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무나 받아줘!'
보고 패스를 하기에는 늦었다. 잠깐 시선을 돌린다면 공은 엔드 라인 밖으로 넘어가 버릴 것이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이 기회가 무산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수아레즈는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른 발로 공을 꺾어 올렸고 관성을 이기지 못한 채 그라운드 위로 굴렀다.
"마이 볼!"
크게 소리 지르며 수아레즈의 크로스를 클리어하기 위해 준비하는 쇼크로스, 그는 수아레즈의 침투를 완벽히 놓쳐버린 실수를 저질렀지만 뒤늦게라도 골키퍼 베고비치의 움직임은 놓치지 않았다. 그가 슛 코스를 막는 사이, 비어 버린 골대를 커버하기 위해 달렸고 마침 그가 움직이던 경로로 공이 오는 것을 확인했다. 이걸 걷어낸다면 어느 정도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가 다리에 힘을 주던 찰나 자신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기랄!'
그림자의 주인을 확인하는 순간, 쇼크로스는 일이 망쳐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제자리에서 점프를 해야하는 자신으로서는, 달려오던 탄력 그대로 뛰어 오르는 상대 공격수, 데이빗 장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자신이 그보다 키가 더 크긴했지만 이미 점프를 시작한 상대였고 뒤늦게 뛰어서는 경쟁력이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며 어떻게 해서든 정확한 슈팅을 방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뛰어 오른다.
"큭!!"
평소라면 이렇게 저 정도의 피지컬을 지닌 공격수에게 부딪혔다고 몸이 휘청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달려오던 운동 에너지가 고스란히 살아 있었기에 제자리에서 충격을 받아야 하는 자신으로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휘청이며 그라운드 위로 넘어진 쇼크로스는 공이 자신들의 골대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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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제 못올린 부분까지
-최소 세 편을 올리고 싶었는데요
-오후 쯤부터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 두 편만 올려야 할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