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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티티, 뭐하고 있어? 경기 시작했다고?"
"아, 잠깐 정리 좀 할 게 있었어.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해도 되겠지. 경기나 보자."
노트북을 덮으며 기지개를 켜는 티티, 제임스는 혀를 차며 맥주캔을 건네 주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너무 빡세게 하는 거 아니야? 쉬엄 쉬엄 하라고."
가볍게 던져진 맥주캔을 솜씨 좋게 받아내는 티티, 씩 웃으며 대답한다.
"어째 예전에 공부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좀 더 참신한 설득은 안되는거야?"
"앙? 다른 시답잖은 이유가 뭐 필요해? 먹고 즐기려고 일하는 거지 일하려고 먹는거 아니잖아. 보나마나 데이빗이 찍을 CF 정리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천천히 해도 되는 거잖아. 어차피 데이빗이 시즌 중에 찍을 생각 없다고 해놨고, 저번에 적당히 추려 놓기도 해놨고 말이야."
설렁설렁 대답하는 제임스의 모습은 가끔 무책임하게 보일 때도 있었지만 꽤 정곡을 찌르는 경우도 많았다. 티티는 손을 흔들며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건 그렇네. 그럼 오늘 우리 고용주가 얼마나 잘 뛰는지 한 번 볼까?"
"보나 마나 잘 하겠지. 다른 놈들이 발목 잡지만 않으면 말이야. 보면 알겠지만 시작하자마자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혀를 차더니 맥주를 벌컥 벌컥 마시는 제임스다. 데이빗의 에이전트 업무를 맡게된 이후 이전처럼 리버풀 FC라는 구단에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내지 않게된 친구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인가.'
예전에는 그저 리버풀이라는 클럽이 좋았다. 글쎄, 왜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 클럽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자신이 보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클럽이었으니까. 우승을 좀 못한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형제와도 같은 친구가 그 좋아하던 클럽의 선수가 되자 조금 느낌이 달라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친구의 권리를 대변하는 에이전트가 되고 나서는 정말 사무적인 관계, 비즈니스 상의 파트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아직도 애정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판단에, 친구의 권리에 해가 되는 수준의 애정은 아니었다. 아마 제임스도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었으나 은연 중에 보이는 말이나 태도로 미루어 보았을 때 분명해 보였다. 티티는 쓰게 웃으며 생각을 끊었다. 제임스가 건네 준 맥주캔을 뜯고 소파에 몸을 실었다. 딱 봐도 제임스의 소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그러네. 오늘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
"그렇지? 죄다 영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 것 같아. 맥이 없어 보인다니까."
"다들 체력이 정상이 아니겠지. 어쩔수 없을거야."
티티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자 제임스는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쉬었다.
"전반 10분인데 데이빗은 아직 공 한 번 제대로 만져 보지 못했어. 맨체스터 시티 녀석들은...아 씨 깜짝이야! 들어 가는 줄 알았네! 방금 전까지 해서 벌써 슈팅 세 개째 때렸나."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슈팅이 골대를 살짝 빗나가자 깜짝 놀라는 제임스였다. 티티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래서야 답이 없겠는데. 거 참...이정도로 밀리는 경기, 진짜 오랜만이네."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습니다."
"으음..."
벤치에서 지켜보던 달글리시 감독과 클락 수석 코치 또한 마찬가지의 감상이었다.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들의 상상 이상이었다.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었으나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아니, 진작 골을 먹혔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구먼."
쓰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향했다. 이미 원래의 플랜이 사실상 붕괴한 이상 플랜 B로 전환해야 했다. 미련을 가져 봤자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었다. 달글리시 감독은 공이 멀리 나간 틈을 타 가까이 있던 디르크 카윗을 호출했다.
"헤이 디르크! 다른 친구들에게 전해. 데이빗과 루이스만 전방에 남아 있도록 하고 마르코가 중앙으로 합류하라고 말이야. 그리고 라인을 내리고 상대에게 공간을 주지 마. 최대한 상대가 우리 지역에서 공간을 넓게 쓰지 못하도록 일단 웅크리도록 해. 공격은 한번에 전선으로 연결 시키도록. 역습을 노려. 알겠나?"
"알겠습니다!"
전반 20분이 지났을 뿐인데 지친 기색이 역력한 카윗의 모습이다. 팀 내에서 체력이 좋기로 유명한 카윗 마저 상태가 좋지 않은 모습에 달글리시 감독은 마음이 무거워 지는 느낌이었다. 땀이 흥건한 등을 두드려 주며 독려했다.
"조금만 더 버텨주게. 오늘이 최대 고비야. 오늘만 넘기면 한동안 여유를 찾을 수 있어!"
실제로 오늘 경기 이후에는 근 2주간 일정이 비게 된다. 칼링컵 경기가 있긴 하지만 리버풀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걱정 마시죠. 경기가 끝날때까지 쓰러질 일 없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동료들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며 감독의 지시를 전달한다. 그 모습을 보는 클락 수석 코치도 마음이 편치 않은지 씁쓸하게 중얼 거렸다.
"정말 리그 주최측에서 이런 모습을 좀 보고 일정을 짰으면 좋겠네요. 선수들이 이 정도로 처절하게 뛰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게 되면 이런 미친 박싱 데이 일정은 꿈도 꾸지 못할 텐데요."
한숨을 쉬며 달글리시 감독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하필이면 박싱 데이 기간의 마지막 경기가 맨체스터 시티라는 것도 우리에게는 정말 최악인 것이지. 다음 21라운드 경기는 스토크 시티 전이 아닌가. 12일 뒤에 있는 경기 말이야. 그 경기와 오늘 경기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정말 다른 느낌의 일정이 되었을 거야."
강팀과 만날 거라면 차라리 맨체스터 시티만이라도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만큼 프리미어 리그의 강팀들 중에서도 저들의 스쿼드는 독보적으로 두꺼웠다.
"오늘은 어쩔 수 없어. 겁쟁이처럼 웅크리는 전술은 절대 선호하는 바가 아니지만 이번 경기를 내주는 것보다는 나아. 공격은..."
유이하게 하프 라인을 넘어서 있는 리버풀의 두 선수, 데이빗 장과 루이스 수아레즈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 둘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어."
"흐음, 거북이처럼 웅크리겠다는 건가."
달글리시 감독이 디르크 카윗을 불러 무어라 지시하는 것을 보았다. 전반 20분만에 전술의 변경을 지시하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사령탑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이후 리버풀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 보았다. 쓰리 톱 체제가 투 톱으로 변화하며 마르코 로이스가 중반 지역으로 내려 오는 모습, 그리고 전체적으로 라인을 뒤로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나쁜 판단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판단이군. 어줍잖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다니. 의외인걸?"
솔직한 감상이었다. 현실적으로 지금 양 팀의 에너지 레벨은 심각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비축된 에너지 잔량이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만치니 감독은 달글리시 감독이 이렇게 빠르게 조치를 취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두 차례의 맞대결에서 생각보다 괜찮은 감독이라고는 느꼈으나 전술적인 역량이 뛰어난 감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존심을 굽힐 줄은 몰랐군. 하긴, 그만큼 이번 경기가 중요하다는 거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납득한다. 어쨌거나 상대가 자신들의 열세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그렇다면 자신들도 바뀌어야 했다. 상대가 물러났다고 해서 기분에 취한 상태에서 계획 없이 경기를 치르는 것은 전혀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만치니는 좀 전에 달글리시가 그러했듯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야가 좀 더 적극적으로 올라가도록 해! 상대는 지쳐 있다. 피지컬로 밀어 붙이라고! 풀백들도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 하되 상대의 10번과 가까운 풀백은 공격 가담을 자제 하도록. 나이젤은 중간의 공백을 채우도록 해! 상대가 노릴 것은 역습밖에 없다! 볼을 내어 주지 마!"
시기적절한 지시였다. 맨체스터 시티가 자랑하는 2선 공격진을 뒤에서 커버하던 야야 투레를 전진 배치 시키며 공격에 무게를 한층 더했다. 특히나 피지컬로는 리그 최상급으로 꼽히는 야야 투레인만큼 체력 상황이 좋지 않은 리버풀 선수들에게 악몽을 선사해 주기에 차고도 넘칠 것이다. 그러면서도 개인 기량이 뛰어난 리버풀의 투 톱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으니, 리버풀의 변경된 전술에 완벽한 맞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승기는 우리 쪽에 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야 2류 선수만도 못한 법이지."
만치니 감독은 달글리시 감독이 지난 뉴캐슬 유나이티드 전에서 베스트 라인업을 가동한 것이 실착이라고 보았다. 아무리 리버풀의 라인업이 두께가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자신들과의 경기를 앞둔 상태에서 주전들의 체력을 소진하다니 말이다.
"하긴, 뉴캐슬이 이번 시즌 아주 잘하고 있는데다 우리와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군."
뉴캐슬은 이번 시즌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첼시를 7위로 밀어 내며 6위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5위 토트넘 핫스퍼와의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리버풀 전에서 3 대 0으로 패하기는 했으나 전반기에 보여준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내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거지 같은 박싱 데이 일정에 감사하게 될 줄은 몰랐군."
실제로 달글리시 감독 체제하에서의 리버풀과의 전적은 1무 1패로 열세를 보이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자신의 팀이 같은 기간 만난 상대 중 가장 약한 모습을 보여 왔던 상대가 리버풀이었으니 만큼 이렇게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 때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히 선수들을 독려하는 만치니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더 빠르게 움직여! 상대가 편하게 수비하게 두지 말란 말이야!"
"왜 그렇게 단장과 감독이 선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는지 알 것 같군요."
경기를 지켜보던 존 헨리 구단주가 그런 감상을 내뱉었다. 그 말에 오늘 구단주를 보좌하기 위해 함께한 코믈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다. 딱히 대답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니었던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의 예상대로 존 헨리는 재차 입을 열었다.
"우리 팀 경기를 저도 대부분 보았습니다만, 이렇게 선수들의 몸이 무거워 보이는 것은 처음이군요."
그러면서 옆에 있던 만수르 구단주에게 부럽다는 듯 말을 건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단은 정말 명불허전이군요. 솔직히 두 팀으로 만들어도 모두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노려볼 만한 팀이 나오지 앟겠습니까?"
"그정도야 되겠습니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팀입니다."
겸양하는 만수르 구단주,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였다. 만수르 구단주 입장에서야 진심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코믈리가 은근 슬쩍 농담조로 말을 붙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맨체스터 시티만큼이나 탄탄한 전력을 갖춘 팀이 몇 팀이나 될까요? 제 생각에 한 손으로 꼽으면 충분할 것 같군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혹시 시티에서 출전 기회를 자주 잡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면 저희 팀으로 임대라도 보내 주시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경험을 쌓아서 돌려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마치 읍소를 하는 듯한 코믈리의 모습에 만수르 구단주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승을 놓고 다투는 팀끼리 있을 수 없는 제의였지만 농담조인데다 말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우리 구단의 프런트, 그리고 감독에게 문의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선수단 운용에 대해 전혀 간섭하는 바가 없거든요."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을 뺀다.
"그래도 구단주 님이 지시를 한다면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선처를 부탁드린다며 두 손을 모으는 코믈리, 만수르는 졌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으로 이야기를 꺼냈던 코믈리가 오히려 놀랄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만수르의 대답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저도 말은 꺼내 보겠습니다만, 저희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팀이니..."
서로 상부상조 하자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슬슬 표정이 굳어지는 코믈리였다.
"데이빗 장을 우리 팀으로 임대 보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럼 한 명이 아니라 세 명까지도 임대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
"......"
본전도 못 찾은 코믈리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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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을 주면 세 명으로 돌려 준다니까 그러네?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어휴 호갱...아니 고갱님 이런 기회 흔치 않다니까요?
-님한테 흔치 않은 기회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