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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디 가냐? 곧 경기 전 미팅이라고?"
"화장실에요. 금방 다녀올 거에요"
"뭐야, 긴장한거냐?"
경기가 열리기 직전의 라커룸,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이빗을 보고 카윗이 질문을 던졌다. 데이빗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냥 소변이 마려운 것 뿐이에요. 나도 경기를 뛴 지가 제법 됐는데 딱히 오늘이라고 유독 긴장할리는 없잖아요."
"장난이야. 그래도 적당히는 긴장해 두라고."
"알고 있어요. 오늘 경기가 중요하다는 것쯤은. 아예 마음 놓고 있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죠."
데이빗의 대답에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카윗. 그래도 마지막까지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은 잊지 않는다.
"그럼 빨리 다녀 오라고. 바지에 싸지 말고."
"누굴 오줌싸개로 보는거야? 쳇, 다녀 올게요."
툴툴 거리며 복도로 나선다. 최근 강행군을 치르며 열량 소모와 함께 수분 소모도 극심한 상태였기에 경기 후에 식사량과 함께 수분 섭취량도 늘린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쌀쌀한 겨울 날씨와 맞물려 이렇게 요의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합 전에 이렇게 오줌이 마려웠던 적은 오랜만인거 같네."
경기 중에 마렵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급하게 볼 일을 처리했다. 시원하게 물을 빼고 나자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화장실이 뭔가 호화로웠다. 인테리어 수준이 화장실 치고는 너무 과분했다. 데이빗은 혀를 내둘렀다.
"구장 리모델링에도 끝내주게 돈을 썼다고 하던데, 이런 화장실까지 이렇게 호화롭게 해 놓을 줄은 몰랐네."
급할 때는 몰랐지만 볼 일을 처리하고 나니 오줌을 누기가 미안할 정도의 퀄리티였다. 데이빗은 혀를 차며 화장실을 벗어 났다.
"더러운 것보다야 낫지만, 이렇게 삐까뻔쩍해서야 볼 일 볼 때 신경쓰일 거 같은데."
소시민적인 감상을 주워 섬기며 라커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지금쯤이면 감독이 라커룸에 왔을 지도 모른다. 지체해서는 곤란하다며 조금 빠르게 발을 놀렸다.
"어라?"
내부의 통로가 모이는 갈림길에서 데이빗은 한 무리의 남자들을 발견했다. 선수나 감독, 혹은 코칭 스탭의 복장이 아니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 아무리 봐도 현장과 관계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때 그쪽에서도 데이빗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음? 자네는 분명..."
일행의 중간에 서 있던 중년의 남자가 데이빗을 돌아 보며 입을 연다. 그리고 눈에 이채가 맴돈다. 그는 분명 데이빗을 알아 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한 번쯤은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곳에서, 이런 타이밍에 만날 줄은 몰랐군."
"아..."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인데, 누구였더라?'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인물이었다. 오른쪽으로 빗어 넘겨 드러난 이마와 중동인 특유의 구리 빛 피부, 옅게 기른 콧수염이 인상적인 이 인물을 어디선가 보긴 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자는 데이빗이 자신을 정확히 알아 보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네, 데이빗 장 선수. 나는 이 구단의 주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이라고 하네."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리버풀 소속의 데이빗 장이라고 합니다."
잠시 당황한 데이빗, 하지만 이내 상대가 손을 내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망히 자신의 소개를 하며 손을 잡아 갔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나서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를 볼 수 있었다.
'...좀 부담스럽네.'
사실 잘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TV에서 가끔 얼굴을 보는 정도인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눈 앞에 있는 아랍인에 대해 자신이 아는 거라고는 그저 세계에서 손 꼽히는 부자라는 사실 단 하나 뿐이다. 프리미어 리그의 중 하위권에서 전전하던 맨체스터 시티를 순식간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권의 팀으로 만든 장본인, 구단을 인수하고 얼마를 썼다, 구장 좌석에 모두 히터를 장착했다, 주변 시설을 어떻게 바꾸었다 등 엄청난 이슈를 뿌리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정확히는 몰라도 대략적으로는 기억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방금 화장실을 그렇게 삐까뻔쩍하게 해 놓은...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뭐지...왜 저렇게 친근하게 보는 거야?'
쓰잘데기 없는 감상을 접고 나자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제대로 느껴졌다. 호기심이랄까, 친근함이랄까 무언가 복합적인 느낌의 눈빛이라며 데이빗은 괜히 불편해졌다. 그래서 슬며시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그보다 먼저 상대의 입이 먼저 열렸다.
"경기 전이라 시간이 없겠지만 잠깐만 시간을 좀 내 주겠나?"
막 경기 준비를 위해 가보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한 타이밍 먼저 말을 거는 상대의 모습에 데이빗이 입을 뻐끔거렸다. 냉정하게 거절하자니 상대가 너무 거물인데다 상당히 정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난감했다.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이다.
"고맙네. 긴 시간을 빼앗지는 않을 걸세. 다른 의도는 없어. 그저 내가 반한 선수와 잠깐이라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네."
그러면서 아쉽다는 듯 탄식을 한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제대로 된 자리에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군. 지난 경기에서 리그 20호 골, 그리고 커리어 50호 골을 기록한 것은 나도 보았네. 정말 멋졌어. 축하하네."
뜬금 없긴 했지만 어쨌든 칭찬을 해주는 모습이었기에 데이빗은 감사를 표시했다.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어요."
"운도 실력이라고는 하지만 자네의 경우에는 운이 아닌 것 같군. 세상에 어떤 선수가 50경기도 되지 않아 통산 50골을 넣는다는 말인가? 다른 선수들은 운이 없어서 그런 커리어를 만들지 못하는 가?"
점잖게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모습,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데이빗은 뭔가 상대의 범상치 않은 오오라에 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전혀 위엄을 갖추는 모습도 아니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표정도 온화했다.
"아니겠지. 겸손은 좋지만 그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네. 자네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선수지 않나?"
'이게 세계적인 부자의 포스? 오오라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구단을 운영하는 입장이지만, 사실 축구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고 하긴 어려운게 사실이지.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그저 멋진 플레이를 보고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는 것 뿐이지. 그런 면에서 자네의 플레이는 언제나 날 즐겁게 해 준다고 해야 할까, 아니 좀 더 쉬운 표현이 있었군."
씩 웃으며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만수르였다.
"그래, 난 자네의 팬이야. 자네의 플레이를 보고 감탄하고 즐거워 하고, 앞으로도 계속 멋진 플레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팬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겠지?"
다른 구단의 구단주가 자신의 팬이라 스스럼 없이 밝혀 오자 데이빗은 당혹스러우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어쨌거나 자신을 칭찬해 주는 것 아닌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경기도 마찬가지구요."
데이빗의 당돌한 대답에 만수르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데이빗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오늘 우리 팀이 상대긴 하지만 프로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면서도 장난스럽게 농담을 잊지 않는다.
"그래도 지난 뉴캐슬 전처럼 해트 트릭까지는 자제해 주게나. 바로 이틀 전에 봤으니 한 동안 보지 않아도 괜찮을 것같군."
다른 사람이 저런 뉘앙스의 말을 했다면 뭔가 좀 약해 보이거나, 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 사람이 말하니 유머러스하게 느껴졌고 오히려 당당하게 느껴졌다. 데이빗은 다시 한번 세계적인 갑부의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자네의 팬이지만, 구단주 된 입장에서 우리 팀의 승리를 바랄 수 밖에 없거든. 자네가 괜찮은 활약을 하고 우리 팀이 이긴다면 나에게는 가장 좋은 결과겠지만 말이야."
딱히 더 이야기하지 않고 묵묵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 그의 바람이 그렇다고 해서 실제 경기가 그렇게 될 거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면전에다 대고 자신의 팀이 이길거라 이야기하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그저 웃어 넘겼다.
"이런,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고 해놓고 너무 길게 잡아 둔 것 아닌가 모르겠군. 미안하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를 만나서 내가 너무 기분을 낸 것 같군."
"아닙니다. 저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구단주 님."
"다음에는 좀 더 편한 자리에서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으로 악수를 청한다.
"오늘 멋진 경기를 기대하겠네. 서로 챔피언을 노리는 팀, 그에 어울리는 경기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 데이빗은 감명을 받았다. 부자라고 하지만 오만해 보이지 않았다. 당당하면서 예의가 있었다.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늦었네, 오줌이 아니라 큰 거였냐?"
화장실 다녀온 것 치고는 조금 시간이 걸린 데이빗이었기에 카윗이 의아한 듯 질문을 던진다.
"아뇨, 그건 아닌데..."
"아니야? 그럼 도대체 오줌을 얼마나 싸고 온거야? 변기에 구멍이라도 뚫고 온건가?"
낄낄거리며 농담을 던지는 모습, 데이빗은 어색하게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대답하기가 참 애매한 일이라 생각했다.
'상대 팀 구단주를 만나서 수다를 떨다 왔어요! 그 사람이 저의 팬이라고 하던데, 놀랍지 않나요?'
라고 이야기하면 그리 팀 분위기가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데이빗도 바보가 아닌터라 맨체스터 시티 쪽에서 자신에 대한 이적 제의를 꾸준히 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지금은 겨울 이적 시장이 막 열린 타이밍이었다. 괜히 이야기를 꺼내면 끼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같았지? 난 이적해달라는 이야기할까봐 처음에는 좀 꺼림직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 사람이 정말 자신의 팬이라서 그런가 싶을 정도로 대화에 부담이 없었다.
'그래도 그럴리는 없겠지. 예전에 램파드 씨의 선례도 있었으니까.'
대표팀에서 자신에게 유독 살갑게 굴었던 프랭크 램파드의 의도를 나중에 제라드로부터 듣고 나자 지금의 만남도 완전히 순수한 만남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은,
'생각보다 소탈한 사람 같았다고 해야 하나. 매너도 좋아 보였고 말이지.'
짧은 만남이었지만 인상이 좋아 보였다는 것 뿐이다.
"그 선수가 그렇게 마음에 드셨습니까?"
"음? 아아, 데이빗 장 그 친구 말인가? 이상해 보였나?"
만수르는 수행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단주 님께서 이정도로 어떤 인물에게 호의를 보이는 일은 드문 일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군. 딱히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일세, 그렇다고 해도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있는 거 아니겠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는 만수르의 모습에 수행원은 새삼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개 선수일 뿐입니다. 정 마음에 드신다면 영입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만수르 또한 긍정을 표시했다.
"그거야 그렇지만 지금 당장 영입하긴 힘든 거라고 하더군. 이제 막 재계약을 체결한 선수고 혹시나 싶어서 우리 프런트에게 이적 시장이 열리자 마자 문의를 넣어 보라고 지시했지만 1분 만에 퇴짜를 맞았다더군."
"그리고 영입도 영입이지만, 내가 저 친구의 팬이라는 건 사실이야. 정말 순수하게 저 선수의 플레이를 즐기고 있다고. 물론 내 팀의 선수가 된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말이야."
여유로운 모습, 굳이 자신의 팀 선수가 아니라고 해도 구애받지 않겠다는 모습에 수행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배포가 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자네도 기억해 두게나. 무언가 정말 가지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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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 느님을 만난 감상이 고작
-화장실 삐까뻔쩍이라니
-우리 팀에 온다면 이 화장실을 계속 쓸 수 있어!
-똥 안나올 거 가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