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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비리했던 애송이가 제법 많이 컸다?"
첼시의 진영, 데이빗은 늘 그렇듯 왼쪽 사이드에서 자리를 잡았다. 첼시의 오른쪽 풀백 조제 보싱와가 이죽거리며 시비를 걸어 오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대꾸한다.
"근데 누구? 미안하지만 난 모든 선수를 기억하는 건 아니라서."
너 따위는 기억할 가치도 없다는 말.
"하?!"
어이 없다는 듯 터지는 탄성.
"기고만장한 것도 지금 뿐이지. 넌 그러니까 X나 거품이야. X도 아닌 놈이 운이 좋아서 떴다고 거만 떠나 본데, 오늘 그 거품이 싹 걷히고 나면 볼만 하겠지."
"누가 내 거품을 뺀다고? 당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니냐는 듯 되묻는 데이빗, 그리고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은 덤.
"나한테 거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당신에겐 무리. 음...맞다."
그리고 손바닥을 치며 마무리를 날린다. 가식적으로 지어보이는 해맑은 미소로 보싱와의 속을 완벽히 긁어 내는 데이빗.
"아마, 전반이 끝나면 보기 힘들 것 같으니까 미리 이야기할게. 열심히 해봐. 물론 당신은 오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을테지만 이런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전반전을 마치고 교체될 거라는 의미, 어지간히 막장 경기력이 아니라면 전반을 마치고 교체되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자신을 엉망으로 털어주겠다는 선언, 조제 보싱와의 안색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애송이 자식이, 한번 해 보자고. 넌 오늘 두 발로 서서 경기장을 나가기 힘들거야."
조제 보싱와는 경기 시작 전부터 기분이 좋지 못했다. 방금 전, 라커룸 미팅에서 자신의 감독은 이 애송이를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리버풀 공격의 핵심은 10번, 데이빗 장이다. 아니, 공격의 전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오른쪽의 디르크 카윗은 애초에 성실한 하드 워커이지 공격에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유형이 아니다. 애슐리라면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지. 중앙의 수아레즈는 지난 시즌보다 나아진 모습이긴 하지만 우리 중앙 수비를 감당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마르코 로이스나 스티븐 제라드는 우리 미드필더 진이 충분히 막아 낼수 있다. 결국 이들의 왼쪽, 그러니까 우리의 오른쪽 측면만 막아낼 수 있다면 저들의 공격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몇번이고 강조했다. 좀 전에 있었던 일, 다시 떠올려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일 대 일 상황에서 그를 섣부르게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도록 해. 어디까지나 우리 팀의 백업이 오기 전까지 시간을 끄는 데 중점을 두도록. 상대의 일 대 일 능력은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수준이다. 조제 자네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
자신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애초에 제대로 막지 못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울컥하여 대들 뻔 했지만 시합을 앞두고 문제를 일으키기 싫은 다른 동료들이 슬며시 말려서 참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런 평가를 받고 가만히 있을수는 없었다.
'보란 듯이 막아 주지. 저 재수 없는 자식을 바닥에 굴려 버리면 되는 거 아냐. 그리고 나서 저 망할 감독 자식이 뭐라고 하는지 보자고.'
으르렁거리며 위협하는 보싱와, 데이빗은 굳이 더 대꾸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저런 위협에 겁먹어서야 프로 생활을 하기 어렵다.
'기억이야 하지. 망할 자식 같으니.'
도발하기 위해서 모르는 척했지만 잊을 수 없는 선수였다. 라파 베니테즈 감독 시절, 자신의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준 선수가 아닌가.
'내 등을 걷어 찼었지. X같은 자식.'
등 뒤에서 가해진 기습이었기에 제대로 보진 못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말, 그리고 경기 이후 영상을 통해 확인하자 화가 나는 것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했던 데이빗이었다. 그런 상대를 잊을리 없었고 오늘, 다시 만난 그를 보니 반갑기까지 했다.
'악몽을 선사해 주겠어.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시비를 걸지 못하게, 날 보면 오줌을 지리게 말이야.'
거친 플레이를 즐기는 선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사실 프리미어 리그 수비수 중, 얌전하고 우아하게 수비하는 선수가 드물었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애슐리 콜이나, 자신의 팀에 있는 호세 엔리케 정도의 수비수가 아니라면 딱히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근데 첼시 분위기 안 좋다더니 생각보다 잘 하네?'
초반이지만 상당한 집중력을 보이고 있는 첼시였다. 에시앙, 미켈이 주축이 되어 중앙에서 리버풀에게 상당한 부담을 가하고 있었다. 루카스와 제라드 또한 밀리지 않고 맞섰지만 그들의 공격 기점, 마르코 로이스에게 제대로 된 전진 패스가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
"큰 소리치더니 공도 못 만져 보는데? 너 니네 팀에서 어지간히도 신뢰받지 못하고 있나봐?"
잠시도 입을 쉬지 않는 조제 보싱와, 대꾸할 가치도 없었기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동료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 본다. 그리고 계속 이죽거리는 보싱와.
"하긴, 이렇게 끝나는 게 너한테는 나을지도 모르겠지. 그럼 팀원들이 패스를 안해줬다고 변명할 수라도 있지 않겠어?"
"그건 니 얘기겠지. 동료들에게 감사해. 저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넌 벌써 끝났어."
계속되는 신경전, 그리고 곧 그들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 왔다. 세밀한 빌드업이 막히자 제라드가 곧바로 왼쪽 사이드를 향해 롱패스를 찔러 왔다. 데이빗과 보싱와는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공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캡틴은 정말 내 마음을 잘 안다니까!'
패스의 경로, 높이, 세기까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그대로 였다. 이런 패스라면 자신의 수고가 덜어질 수 있다. 데이빗은 가볍게 점프하며 발로 공을 받아 냈다. 충격 흡수 장치라도 발에 달린 것인지 먼 거리를 날아온 공은 부드럽게 힘을 잃고 그의 발 아래로 떨어 진다. 데이빗은 점프하던 탄력 그대로 착지한 뒤 달리기 시작했다. 보싱와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오는 상황.
'그래, 아무리 얼간이라도 이정도는 따라 오겠지.'
톱 스피드 상황이라면 모를까, 정지 동작에서 이제 막 시동을 걸었을 뿐이다. 이 원 모션으로 제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데이빗이 노린 것은 바로 지금 이후.
패스를 받고, 트래핑 방향을 중앙 쪽으로 잡은 데이빗이었다. 그리고 기세를 살려 전력 질주를 시작하는 듯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데이빗이 만만한 공격수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던 조세 보싱와는, 특히 그가 속도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알았기에 전력으로 그를 따라갔다.
순간적으로 데이빗의 속도가 0로 떨어진다. 쏠리는 몸을 가까스로 세워 본다. 하지만 아직 관성이 남아 있다. 보싱와는 이를 악 물고 다리에 힘을 주며 딜레이를 최소화 하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두 번째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었다. 눈 앞에서 그가 방향을 90도로 꺾어 자신을 지나치는 모습이 보인다. 손이라도 뻗어 잡아 당기고 싶었다. 다리라도 뻗어 발을 걸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 유유히 눈 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은 굴욕 그 자체였다.
'흥.'
데이빗은 짧게 코웃음을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도발도 실력이 있어야 하는거라며 비웃고는 대각선으로 첼시의 골문을 향해 질주했다. 존 오비 미켈이 뒤쪽에서 달려 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비드 루이스가 커버에 나서고 있었다. 데이빗은 무리하지 않고 동료에게 찬스를 만들어 주기로 마음 먹었다. 슬쩍 공을 왼발로 차기 좋은 각도로 옮긴다. 그리고 시도하는 얼리 크로스, 공중 볼에 강점이 있는 첼시의 센터백들이지만 한 명은 자신이 이끌어 냈다. 그리고 존 테리는 자리를 잡은 상황이 아니다. 달려 들어가는 수아레즈를 마크해야 한다. 데이빗이 노린 것은 골키퍼와 최종 라인 사이의 공간, 수아레즈의 발이라면 존 테리보다 먼저 닿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른발 킥에 비해 부족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유려하게 휘어지며 떨어지기 시작하는 데이빗의 크로스, 그의 기대대로 수아레즈는 본인의 빠른 발을 살려 먼저 공이 떨어질 위치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가볍게 머리에 공을 맞춘다. 사실상 골이나 다름 없는 상황. 하지만 축포를 터뜨리기엔 아직 멀었다. 첼시에겐 아직 최후의 수문장이 남아 있었다.
[와우! 페트르 체흐! 정말 믿을 수 없는 선방입니다! 이걸 막아 내나요?]
[루이스 수아레즈 선수의 헤딩이 부족했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이건 막아낸 체흐 선수가 말이 안되는 거에요!]
[정면으로 날아오는 헤더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막아내기 쉽다고는 하지만, 이건 수아레즈 선수의 헤더도 정말 좋았거든요. 방향을 정말 잘 바꿔 놓았는데 이걸 막아 내는군요. 정말 세계 최고의 골기퍼다운 실력입니다!]
머리를 감싸쥐며 아쉬워하는 수아레즈의 모습, 데이빗 또한 아쉬웠는지 짧게 탄성을 흘린다. 그리고 그제서야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하며 돌아오는 보싱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어디에 있었던 거야? 보이지 않길래 난 벌써 교체된 줄 알았지 뭐야. 잘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네."
되로 받으면 말로 갚아야 한다. 데이빗은 먼저 시비를 거는 타입은 아니지만 걸어온 시비를 그냥 넘기는 타입도 아니다. 완벽히 당한 상황이라 반박할 말이 궁색했던 조제 보싱와는 이를 갈며 그를 노려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데이빗은 씩 웃으며 뒤돌아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리고 뒤에서 보싱와가 거칠게 땅을 차며 욕설을 내뱉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봐 조제, 좀 더 집중해서 플레이 해. 지금 너무 쉽게 뚫려 버렸잖아. 페트르가 아니었으면 한 골 먹은거나 다름 없다고."
첼시의 주장 존 테리가 다가와서 주의를 준다. 팀 주장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 하지만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조제 보싱와에게 그런 말이 곱게 들릴리 만무했다.
"하, 너나 잘해 존. 나도 놓친 건 사실이지만 너도 저 7번 녀석을 놓친 건 마찬가지 잖아."
거친 말투로 대꾸하는 보싱와의 모습에 존 테리의 안색도 굳어진다. 사실 보싱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존 테리는 수아레즈를 완벽히 놓쳐 버렸으니까.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꾸한다면, 대화가 되질 않는다. 나도 못한 건 맞는데 너도 못했잖아? 그런데 어디서 지적질이야? 라는 말에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할리 없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감정 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컸다. 존 테리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한번 참아 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누가 내가 잘했다고 했어? 나도 집중할 거야. 하지만 난 이 팀의 주장이야. 앞으로 잘하자는 뜻에서 이야기한 건데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알겠어! 알겠다고.나도 잘 할테니까 잔소리 그만해. 제기랄."
짜증을 숨기지 않고 드러 내는 보싱와, 그리고 테리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간다. 화가 나서 소리를 치려는 존 테리, 하지만 다비드 루이스가 먼저 그의 팔을 잡으며 말린다.
"캡틴 진정해요. 캡틴까지 흥분하면 이 경기 이길 수 없다구요."
"알아, 근데 저 빌어먹을 자식이 하는 거 봤잖아!"
"저도 봤죠. 네, 조제는 지금 이성을 잃었어요. 지금 이야기해봐야 좋아질리 없잖아요. 경기가 끝나고 말해도 늦지 않아요. 아니면 전반이 끝난 뒤에 말하는게 어때요?"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료의 말에 존 테리는 후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흥분했지만 그는 첼시와 잉글랜드에서 캡틴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는데 이골이 나 있는 이였기에 금방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
"네 말이 맞아. 그래, 일단 경기부터 하고 봐야지."
"잘 생각했어요."
그렇게 그들간의 분쟁이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리버풀의 중앙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즈였다.
============================ 작품 후기 ============================
-딱히 니가 내 등짝을 걷어 차서 기억하는 건 아니니깐
-딱히 여러분이 추천해줘서 연참하는건 아니니깐
-만약 추천때문에 제가 연참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정말 오예 라고 할 수 있겠네요
-뭐라는거야
-감사하다구요
-♡
-하트 치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