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132화 (13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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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는 진짜 유독 심한데요."

리버풀 선수들은 안필드의 경기장 입장 통로에서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통로 밖에서는 비가 그야말로 미친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잉글랜드의 지랄맞은 날씨에 어느 정도 적응된 선수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쏟아지는 비.

"사실 이 정도 비오는 건 아예 신기한 일은 아닌데, 경기를 치를 때 이렇게 오는 건 확실히 드물긴 해."

비가 일상인 잉글랜드에서 이 정도 호우는 흔하진 않아도 드문일도 아니었다. 다만 이 정도 폭우 속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아무리 비에 익숙한 선수들이라도 부담스러운 부분은 분명 있었다.

"우리 구장 진짜 관리 잘되고 있는 편인데 말야, 저기 봐, 벌써 웅덩이가 생겼어. 왼쪽 친구들 오늘 고생 좀 하겠는데."

누군가의 말에 오늘 왼쪽 풀백으로 나선 마틴 켈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호세 엔리케라는 리그 탑 클래스의 선수와 경쟁을 펼치는 그로서는 지랄 맞은 날씨가 원망스러울 법했다. 아무래도 이런 폭우 속에서는 실수할 확률이 맑은 날에 비해 높았으니 말이다. 얼마 되지 않는 기회속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길, 그냥 최대한 안전하게 플레이할 게요. 빌드업보다는 그냥 걷어 내는 식이 낫겠어요."

켈리의 말에 다른 선수들도 동의한다. 그들은 비가 오는 날 경기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상대방도 같은 잉글랜드 클럽인 만큼 잘 알고 있을테지만 말이다. 자신들 맞은 편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울버햄튼 선수들도 쏟아지는 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아마 자신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리라.

"어설프게 공을 끌지 말고, 오늘만큼은 짧은 패스보다는 긴 패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낫겠어. 공격수들은 드리블 보다는 아예 적극적으로 슈팅을 노리는 게 나을 거야."

이런 날씨에는 수비수만 볼 컨트롤에 애를 먹는게 아니었다. 공격수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었는데 평소와 다른 그라운드 컨디션은 드리블을 시도할 때 곤혹스러움을 안겨줄 수 있다. 반면 중거리 슈팅은 골키퍼가 평소보다 더욱 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는데 일단 공과 바닥이 미끄러워지기 때문에 처리가 어려워 진다. 거기에 더해 이정도 폭우라면 시야도 평소와 같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슈팅을 노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데이빗, 너도 평소처럼 돌파보다는 빠른 타이밍에 슈팅을 가져가봐."

리버풀 공격의 제 1옵션, 데이빗에게도 그런 충고가 전해진다. 그의 돌파는 리그에서도 최고로 꼽혔기에 동료들은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다. 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하나를 잃는다는 것은 속이 쓰릴 수 밖에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쩔수 없는 일이라 동료들은 생각했다.

"흐음."

데이빗은 가타부타 말 없이 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달글리시 감독은 오늘 오랜만에 4-4-2 전형으로 시합에 임했다. 얼마 전, 미팅에서 투 톱의 활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있었고 이렇게 비가 미친듯이 쏟아지는 날에는 롱볼 축구가 더 유리했다. 공격형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짧은 패스와 돌파를 이용하는 4-3-3보다는 전형적인 잉글랜드 식 롱볼 축구를 구사하기에 4-4-2가 더 유리한 점도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 한 몫했다.

"빨리 걷어내!"

"공 끌지마! 간결하게 처리하란 말이야!"

양 팀 선수들의 악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데이빗은 루이스 수아레즈와 함께 투 톱을 이루었다. 달글리시 감독은 딱히 둘 사이의 위치와 롤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정해주지 않았다. 자유롭게 스위칭하고 움직이라는, 자유로운 역할을 맡겼던 것이다. 애초에 달글리시는 데이빗 장과 스티븐 제라드 한정으로 세세한 지시는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냥 자유롭게, 마음대로 하라고 언제나 이야기했고 오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경기에서는 졌으니까...오늘은 반드시 이겨야겠지."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1차전, 마르세유 원정에서 3 대 1의 기분좋은 승리를 거둔 리버풀은 3일만에 토트넘 원정 경기를 치러야 했다. 달글리시 감독이 관리를 해준다고 하긴 했으나 계속된 3~4일 간격의 경기는 선수단을 힘들게 했고 결국 경기를 0 대 1로 내주고 말았다. 데이빗 본인도 선발 출장하였으나 무거워진 몸 상태를 어찌하지 못하고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했다.

"일주일이나 쉬었어. 무조건 이겨야 해."

상대하는 울버햄튼이 한 수 아래라는, 여기가 안필드라는 생각도 지워버렸다. 지난 경기를 내주며 4승 1패를 기록, 4승 1무를 기록 중인 맨유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오늘 이겨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리한다면 여전히 2위겠지만 초반에 더 벌어져서는 곤란했다. 이번 시즌, 무슨 일이 있어도 리그 우승컵을 들기로 선수들과 다짐하지 않았던가.

"드리블이 힘들거라고?"

쏟아지는 빗줄기, 데이빗은 마치 비를 가늠이라도 하듯 손을 벌려 본다. 순식간에 손바닥에 흥건히 고이는 빗방울, 고개를 돌려 그라운드를 다시 확인한다. 최고의 관리인이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안필드의 그라운드였으나 쏟아지는 자연의 힘 앞에서는 어쩔수 없었다. 이미 물 웅덩이가 이곳 저곳에 생기고 있었다. 유니폼은 그라운드에 들어 섰을 때 이미 완벽히 젖어버렸고 신발도 물이 찬 듯 평소보다 무거웠다.

"좋아, 아주 좋아."

씩 웃으며 물에 젖은 머리를 위로 털어 낸다. 이런 비가 자신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면 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알려줘야 겠다. 데이빗은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그라운드를 밟으며 크게 손을 들었다. 오늘 오른쪽 사이드로 자리를 옮긴 제라드가 공을 잡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비오는 날인지라 서로 정교한 볼 컨트롤을 하지 못한 채 뻥뻥 걷어내기 바쁜 양팀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끝에 리버풀이 완벽하게 볼 소유권을 쥐었다. 그리고 공을 잡은 이가 제라드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그라면 이 빗속에서라도 자신에게 패스를 연결시켜 줄 것이다.

콰앙-

자신을 확인한 제라드로부터 강렬한 롱패스가 날아 왔다. 빗물에 부딪히며 물보라를 일으키며 날아오는 공, 데이빗은 강렬한 공의 기세를 가슴을 이용하여 완벽히 죽여 버렸다. 살짝 튕겨져 오르는 공, 그리고 달려드는 수비, 데이빗은 다음 동작을 취했고 달려들던 수비는 공이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튀어 오른 공을 그대로 어깨로 다시 쳐올려 넘기는 신기, 예측할 수 없었던 움직임에 너무나도 쉽게 수비 한명이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수비의 머리를 지나 내려오는 공을 다시 가슴으로 받아 낸다. 다른 수비수가 다시 달려 든다. 데이빗은 오른발로 공을 살짝 띄웠고 공을 지나치듯 움직였다. 그리고 따라오는 왼발 뒤꿈치로 공을 다시 앞으로 차 올렸다.

[믿을 수가 없군요! 오늘 데이빗은 길거리 묘기 축구를 하러 왔나요?]

캐스터의 격앙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흥분한 것은 해설자도 마찬가지였다.

[공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은 채 수비수 두명을 제쳐냅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아도 믿을 수가 없군요!]

해설자들 만큼이나 난리가 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안필드를 가득 메운 리버풀의 팬들이 그들이었는데, 이들은 미친듯이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목소리 높여 응원하고 있었고 데이빗의 묘기와도 같은 돌파가 터져 나오자 모두 일어서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순간이 조금 더 이어지길 원했다. 저 젊은 선수가 보여주는 판타지가 계속되길 기원했다.

바닥에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수비수 두명을 제쳐낸 데이빗, 하지만 더는 이런 묘기와도 같은 행진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상대 수비가 바보가 아니라면 두 번이나 당한 플레이에 또 다시 당할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상대의 수비를 지나 자신의 앞으로 떨어지는 공을 다시 차올리지 않고 데이빗은 발 아래 공을 두었다. 그 모습에 아직 남아 있는 수비수가 접근해 왔다.

'제법 깜찍한 짓을 했지만, 네놈도 여기까지다.'

발을 움직일때마다 질퍽한 물이 느껴질 만큼의 그라운드였다. 이런 상황에서 드리블 돌파는 있을 수 없다고 수비수는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성급한 판단이었고 그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주 뼈아픈 대가를.

왼발이 공을 오른쪽으로 보낸다. 평소보다 무겁게 움직이는 공, 그렇다고 너무 강하게 힘을 준다면 공은 튕겨져 나가버릴 것이다. 데이빗은 미묘한 힘 조절을 통해 평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공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공을 빼앗기 위해 뻗어진 상대 수비의 발을 피해냈다. 그리고 앞으로 공을 밀어내는 오른발과 함께 평소처럼, 아무 부담을 느끼지 못하는 듯 간단히 세번 째 수비수를 제쳐냈다.

'드리블이 안된다고?'

오른발로 밀어낸 공을 다시 한번 왼발로 크게 앞으로 쳤다. 그리고 속도를 붙이는 데이빗, 질퍽질퍽한 그라운드, 무겁고 미끄러운 공, 하지만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데이빗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정도 그라운드면 천국이지 뭘.'

왜 드리블이 안될거라 단정짓는지 데이빗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평상시 맑은 날에도 비가 내리는 그라운드보다 상태가 몇 배는 거지같은 곳에서 축구를 해온 자신으로서는 말이다. 드리블하다 돌에 걸리는 것은 예사였고 편평하지 않아 오르락 내리락하며 볼 컨트롤을 해야했다. 비가 와서 발이 무겁다? 제대로된 축구화를 신지도 못하고 거친 길바닥에서 공을 차보면 그런 말을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몸만 무거워지나? 날 상대하는 녀석들도 마찬가지 잖아.'

본인 스스로도 평소에 비하여 스피드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극도로 세밀한 볼 컨트롤에 있어서는 실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날씨는 모두에게 공평했다. 자신이 비를 맞고 있다면 상대도 맞고 있다는 얘기였다. 내가 서 있는 그라운드 상태가 나쁘다는 것은 상대 또한 마찬가지란 얘기다.

'그렇다면 평소와 같단 얘기야. 지레 겁먹을 필요 따윈 없어.'

자신감 있게 돌파를 시도한 근거였다. 세 명의 수비수를 제친 그의 앞을 가로 막는 것은 오직 골키퍼 밖에 없었다. 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을 향해, 평소보다 좀 더 강하게 슈팅하는 데이빗, 그물에 걸린 공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두 팔을 벌려 환호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이 선수가 뛰는 경기를 중계하면 제일 많이 하는 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왜 이 선수를 두고 리버풀의 보물, 잉글랜드의 미래라고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혼자서 끝내버립니다! 와우!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흥분한 캐스터와 해설자들, 그리고 느린 중계화면으로 방금 전의 장면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가 심하게 내리고 있어 양 팀 모두 섬세한 볼 컨트롤이 어려울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만, 이 선수가 저희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군요! 혹시 데이빗이 있는 곳만 비가 그쳤었나요?]

능청을 떠는 캐스터, 해설자는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저도 그런게 아닐까 싶었지만 우리의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군요. 느린 화면에도 보이지만 비가 다른 곳과 똑같이 쏟아지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하지만 이 정도 빗줄기로는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 수비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어요.]

[사실 저들이 못한게 아닙니다. 세상에 누가 이런 날씨 속에서, 이런 그라운드 속에서 저런 돌파를 해 낼수 있겠습니까? 지금 팬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는 리버풀의 10번, 데이빗 장을 제외한다면 불가능하다고 봐도 될겁니다!]

[팬들이 그를 붙잡고 놓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라도 그렇겠네요! 앗! 이게 무슨 일인가요?]

[오, 이런. 데이빗의 유니폼이 찢어 졌군요? 한 팬이 그의 유니폼을 잡고 있었는데 데이빗이 돌아서다 찢어진 것으로 보이네요.]

[유니폼이 정말 가지고 싶었나 봅니다.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팬입니다. 데이빗에게 금방 새 유니폼이 전달되는구요. 찢어진 유니폼은 새로 갈아 입어야 하는 것이 규칙이죠.]

[유니폼을 갈아 입는 데이빗, 여성 팬들이 좋아할 것 같은 장면입니다. 빨리도 갈아 입네요. 이제 다시 자신들의 진영으로...어라? 데이빗이 다시 관중석을 향해 갑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캐스터와 해설자였고 곧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이빗은 찢어진 유니폼을 자신의 옷을 잡아 당겼던 팬에게 전해 주었다.

[와우. 자신의 유니폼을 잡아 당긴 팬에게 찢어진 유니폼을 전해 줍니다. 이런 경우도 있나요?]

[저도 처음 보는 일입니다. 애초에 경기 도중에 팬이 유니폼을 잡아 당겨 찢어 지는 것도 저는 처음 보네요. 이야, 데이빗이 골에 이어 완벽한 팬 서비스를 해주네요.]

[유니폼을 받은 팬이 화면에 비춰지고 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군요. 유니폼에 입을 마추며 세레모니까지 합니다.]

[저 사람은 이제 아마 평생 데이빗의 팬이 될겁니다. 저런 팬 서비스를 해주는 선수는 사랑받아 마땅하죠. 정말 보기 좋은 장면입니다.]

============================ 작품 후기 ============================

-딱히 니가 가지고 싶어해서 주는건 아니야

-수선비 내놔

-비오는 날 드리블이 어렵다구요?

-이렇게, 저렇게 해서 요렇게 하면 수비를 제칠 수 있습니다

-참 쉽죠?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여러분도 추천할 수 있어요

-그럼 즐감해주세요. 추천 선작 코멘 쿠폰 모두 정말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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