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9 =========================================================================
잉글랜드와 불가리아와의 유로2012 예선 경기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위치한 '나시오날렌 스타디온 바실 레프스키'에서 열리게 되었다. 경기가 열리는 시각은 현지 시간으로 20시 였고, 불가리아보다 2시간 느린 잉글랜드에서는 18시에 경기 시작을 볼 수 있었다.
"헤이 아직 시작 안했지?"
"어, 아직 시간 좀 남았어. 먹을 거 사오는 거야?"
티티는 양손 가득 무언가를 사들고 온 제임스를 보며 물었고 제임스는 호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버풀에서 데뷔할때도 정말 기뻤지만 말야, 오늘은 데이빗이 국가 대표로 데뷔하는 날이잖아. 이런 날 맥주가 빠지면 안된다고."
"...아직 선발 명단 뜨지도 않았다만?"
티티는 지나친 설레발을 떠는 것 같은 제임스를 향해 살짝 태클을 걸었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이봐 티티, 선발로 안 뽑히면 그게 이상한거라니까? 루니 그 망할 놈은 뭐...한 자리 가져가겠지만 말야, 나머지는 죄다 얼간이들이라고."
"아니...얼간이까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다 필요없고, 저기 뽑힌 놈들 중에 데이빗보다 요즘 골 잘 넣는 친구 있어? 없잖아? 안 그래?"
단순 명쾌한 논리, 하지만 최근 폼으로 따지면 데이빗 만큼 압도적인 선수가 없는 건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티티였다. 하지만 그는 국가 대표로 경기에 나서는 것이, 무조건 최근 활약상만 가지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뭐 네 말대로 데이빗이 선발로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아 나는 맥주는 됐어. 공부해야 하거든. 시험이 정말 얼마 안 남았다고."
그러면서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와 컵에 따른다. 제임스는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생이 많네 티티. 그래도 좋은 결과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지만, 뭐 일단 끝까지 열심히 해야지."
"그래도 데이빗 국가 대표 데뷔전은 봐야지?"
"음...그래야 겠지?"
어차피 식사도 해야 했기에 티티는 제임스가 사온 먹거리를 뜯으며 한숨 돌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TV광고가 끝나고 중계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빨리 선발 명단이 뜨길 바라며 TV를 응시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잉글랜드와 불가리라, 불가리아와 잉글랜드와의 유로 2012 예선전의 중계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여기는 불가리아의 소피아, 나시오날렌 스타디온 바실 레프스키 경기장입니다.]
"아 잡설 집어 치우고 빨리 명단이나 발표하라고."
당연한 캐스터의 멘트에도 성질 급한 제임스는 불퉁스레 중얼거렸다.
[...낮에 온 비로 인해 현재 경기장은 젖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 부분이 변수가 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비가 온 그라운드는 미끄럽기 때문에 볼 터치에 있어서 평소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모두 소속 팀에서 비와 함께 리그를 치르지 않습니까? 저는 잉글랜드 대표 선수들이 잘 해낼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제 경기에 나설 양 팀의 라인업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홈 팀 불가리아의 라인업입니다.]
------------------이벨린 포포프-----츠베탄 겐코프-------------------
마르틴 페트로프---스틸랸 페트로프---게오르기 사르모프---이반 이바노프
니콜라이 보두로프--지프코 밀라노프--발렌틴 일리에프--알렉산데르 툰체프
-------------------------니콜라이 미하일로프-------------------------
sub. 블라디슬라프 스토야노프, 시메온 라이코프, 코스타딘 스토야노프, 게오르기 보질로프, 마르쿠스 마르키뉴스, 파스 델레프, 페타르 자네프
감독. 로타르 마테우스
[4-4-2의 전형으로 나오는 불가리아입니다. 역시 가장 주의해야 할 선수는 마르틴 페트로프와 스틸랸 페트로프 두 선수겠죠?]
[그렇습니다. 두 선수 모두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면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들입니다. 잉글랜드 대표 선수들과도 시즌 중에 상대해 본 경험이 있기에 무시할 수 없겠습니다.]
[하지만 불가리아 대표팀에서 가장 스타라면 역시 로타르 마테우스 감독이겠죠.]
[현역 시절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선수였죠. 베켄 바워의 후계자라고 불렸던 선수 답게 그야말로 리베로 그 자체였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스위퍼까지 모든 포지션을 완벽하게 수행할 줄 알았고 월드컵 우승, 유로 대회 우승 등 숱한 우승 경력이 있는 그야말로 레전드입니다.]
[하지만 불가리아 대표팀을 맡으며 조금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불가리아는 현재 승점 5점으로 G조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위 잉글랜드와는 승점 6점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이 경기를 내주게 된다면 사실상 조 1위의 가능성은 사라진다고 봐야겠죠. 다행히 2위 몬테네그로와는 승점 차이가 불과 1점 밖에 나지 않아 조 2위의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그만큼 오늘 불가리아는 사력을 다해 경기에 임할 것이 분명하겠네요. 그럼 우리 잉글랜드의 라인업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메인 데포-------------------
--------------웨인 루니-------------------------------
스튜어트 다우닝--스티븐 제라드--스콧 파커--제임스 밀너
레이튼 베인스----존 테리----졸리온 레스콧----애슐리 콜
----------------------조 하트-------------------------
sub. 로버트 그린, 글렌 존슨, 필 자기엘카, 프랭크 램파드, 애슐리 영, 시오 월콧, 데이빗 장
"......"
"......"
[역시 4-4-2의 전형으로 나서는 잉글랜드입니다. 최전방에 저메인 데포와 웨인 루니가 투 톱으로 나서고...]
"뭐야! 왜 데이빗이 선발이 아닌건데?!"
왈칵 분통을 터뜨리는 제임스, 티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임스처럼 그의 친구가 무조건 스타팅 라인업에 들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실망감은 꽤 컸다. 티티는 어느 정도 배를 채웠다 싶은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난 그럼 들어가서 공부 좀 하고 있을게. 데이빗이 혹시 교체 투입되면 알려줘."
"제기랄, 나도 보기 싫어졌어."
툴툴거리는 제임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 챙겨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티티는 '그럼 부탁할게'라며 방으로 들어갔다. 제임스는 맥주를 벌컥 벌컥 들이키며 TV를 쏘아 보았다.
"젠장. 안볼거라니까."
하지만 그는 리모콘에 손을 대지 않았고 곧 경기가 시작되었다.
슥-스윽
보드에 적혀지는 이름, 일부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일부 코치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감독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긴 토론이 끝나고 내일 불가리아 전에 나설 엔트리가 확정되었다.
"내일 선발은 저메인이야. 그가 지난 번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보여 준 활약은 대단했어. 불가리아 선수들은 저메인의 움직임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지. 데이빗은 벤치에 대기 시키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군."
감독의 결정이 내려진 이상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그리고 경기 당일 오전 미팅 시간에 저녁에 있을 경기의 엔트리가 발표되었고 선수들마다 희비가 교차되었다.
'아...'
데이빗은 속으로 탄식을 흘렸다. 대표팀 훈련을 진행하며 감독이 요구하는 움직임에 완벽히 부합하지는 못했으나 그것은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보여준 모습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쉬움은 컸다.
툭툭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글렌 존슨이 씩 웃고 있었다.
"뭘 그리 죽을 상이야."
"글렌 씨."
"나도 후보라고. 그리고 벤치에 들어가지 못한 친구들도 있어. 너만 아쉬운거 아냐. 표정 풀어."
웃음을 지우지 않는 채 위로하는 글렌 존슨의 모습에 데이빗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렇게 굳어 있었나?
"그렇게 티가 났나요."
"엄청."
씩 웃으며 그의 머리를 매만져 준다. 데이빗은 아쉬움을 털어 내며 웃었다. 그제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 왔다. 벤치에 들지 못한 버틀랜드, 존스, 지나스, 체임벌린, 캐롤의 표정은 그야말로 볼만 했다. 다들 가슴에 국기를 달고 나라를 대표해 경기에 나서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아예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가능성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에 비하면 교체로 투입될 가능성이 있는 자신의 처지는 분명 나았다.
"무슨 생각하는지 참 알기 쉽네. 뭐 선수라면 당연한 건가?"
"또 그렇게 티가 나요?"
"의심의 여지 없지."
"잘하고는 있는 것 같은데...뭔가 좀 묘하게 막히는 느낌이네."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은 동료들이 뛰고 있는 모습을 관전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현재 경기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교체 투입되었을 때 빠르게 경기에 녹아들 수 있었기 때문에 벤치에 있다고 해서 경기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램파드의 중얼거림에 다른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상대가 수비 위주로 플레이해서 그렇겠지만, 주도권을 잡은 상태에서 공간 활용이 영 안되는 것 같아."
"패스는 잘 돌아가고 있는데, 상대 위험 지역에서는 딱 막히는 느낌이야."
"그러...오!"
전반 20분까지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못하고 있던 잉글랜드였기에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들은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하며 관전하고 있었다. 그때 제라드의 패스를 이어 받은 스튜어트 다우닝이 상대 수비를 한명 벗겨내고 돌파하기 시작했다.
"달려! 달리라고!"
"좋아! 조금 더 치고 올라가서...아...!"
정확한 왼발 킥으로 데이비드 베컴의 후계자라고 불릴 때도 있는 스튜어트 다우닝이었기에 선수들은 멋진 장면이 나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다우닝의 크로스는 저메인 데포의 머리에 닿기 전에 한발 먼저 상대 수비가 먼저 클리어 해 냈다. 선수들은 머리를 감싸 쥐며 아쉬움을 표했다.
"아 진짜 괜찮았는데, 저게 걸리냐."
"크로스가 조금만 더 길게 갔으면 제대로 저메인한테 걸렸을 텐데, 아깝네."
방금 오랜만에 괜찮은 장면이 나왔기에 선수들의 아쉬움은 컸다. 하지만 데이빗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자신이었다면 좀 더 확실한 장면을 만들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나였으면...거기서 바로 크로스를 올리지 않고 안쪽으로 더 치고 들어 왔을거야. 그리고 상대 수비를 더 끌어 들인 다음에 바깥쪽에 있는 캡틴에게 내줬겠지. 그랬으면 완벽하게 노마크 찬스로 캡틴이 슈팅을 때릴 수 있었어.'
4-4-2의 양 날개는 보통 클래식한 윙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카펠로 감독이 이번 경기를 준비하며 양 날개에 위치한 선수들에게 주문한 부분도 정확한 크로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조건 크로스만 올리란 말은 하지 않았고 애초에 잉글랜드의 투 톱으로 나선 두 명의 공격수는 다재다능하긴 했으나 제공권 장악이 강점인 선수들은 아니었다. 아니, 스쿼드에서 빠진 앤디 캐롤을 제외하면 제공권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데이빗으로서는 방금 전의 선택이 아쉬웠다. 다우닝이 크로스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이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페널티 박스 안에 바글바글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크로스를 올려야 했을까? 특히 중거리 슈팅에 강점을 가진 스티븐 제라드를 살릴 수 있는 찬스였다고 생각하니 더욱 아쉬웠다.
이 장면 이후로도 경기는 큰 변동없이 흘러갔다. 지루하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한 경기, 주도권을 잉글랜드가 잡고 밀어 붙이는가 싶었으나 큰 실속은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경기를 포함하여 며칠 뒤에 있을 웨일즈 전까지 깔끔하게 2연승을 거둬 하루라도 빨리 유로2012 본선 진출을 확정 짓고 싶었던 카펠로 감독의 미간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삑 삑-
그리고 전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잔뜩 인상 쓰며 카펠로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리고 코치를 불러 지시를 내린 뒤 먼저 라커룸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헤이 데이빗."
벤치 대기 선수들은 전반이 끝나고 보통은 함께 라커룸에 들어가지 않는다. 후반 교체 투입될 때를 대비해서 미리 몸을 풀고 그라운드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데이빗은 함께 벤치에서 대기하던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로 나서려던 참이었다. 코치가 자신을 부르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네? 무슨 일이시죠?"
"감독님의 지시야. 자네, 후반전 시작과 함께 들어가게 될 테니 확실하게 준비하고 있게나."
두근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데이빗은 심장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처음 안필드에 섰을 때 이런 기분을 느꼈던가. 달아오르는 열기를 억누르며 데이빗이 강하게 대답했다.
"네!"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댄다.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세인트 조지를 매만진다. 딱히 애국심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라를 대표해서 뛴다는 것은 대단한 명예라고 생각했다. 축구 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아니 동네 축구를 할 때에도 한 번쯤은 꿈꿔왔던 장면이 지금 현실이 되려하고 있었다. 데이빗은 강하게 결의를 다지며 후반전의 시작 휘슬을 기다렸다.
============================ 작품 후기 ============================
-쓰다보니 국대 데뷔전이 늦어졌네요
-다음편엔 뛰겠죠?
-왜 의문형이야
-후반 시작 1분만에 빽태클 퇴장
-이렇게 쓸린 없겠져
-순순히 추천을 해주신다면 유혈...아니 퇴장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 즐감하세요~ 추천, 선작, 코멘, 쿠폰 모두 감사드립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