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9 - =========================================================================
[공부하고 있었냐?]
제임스는 방으로 들어서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티티를 보며 말했다. 티티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간단하게 '어' 라고 대답했고 제임스는 그런 티티의 모습에 혀를 찼다.
[거 그놈의 에이전트 시험이 뭔지. 이봐 티티, 지금 리버풀 경기가 열리고 있다고. TV중계라도 보고 하는게 어때?]
[......]
바삐 움직이는 펜이 순감 멈췄다. 티티라고 경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단지 6개월도 남지 않은 시험을 생각하니 딴짓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제임스는 그런 티티의 마음을 안다는 듯 다가와 어깨를 잡고 억지로 일으켰다.
[이봐 제임스...!]
[좀 쉬면서 하라고.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쉬어주는 것도 중요하잖아.]
제임슨의 말에 티티는 한숨을 쉬다 픽 웃고 말았다.
[뭐야, 그렇게 말하니까 너 좀 공부를 한 것 같잖아.]
제임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 했다.
[나야 공부 따위는 안했지만 뭐 세상사는 게 다 똑같은거 아니겠어? 일할때도 쉬지 않고 계속 하면 몸만 병신되지 효율은 별로 잖아. 공부도 비슷하겠지. 까짓게 뭐 대수라고.]
묘하게 설득력있는 제임스의 모습에 티티는 결국 푸핫 하고 웃고 말았다. 목과 허리를 돌리고 팔을 쭉 뻗으니 온 몸에서 우두둑 거리는 소리가 났다. 꽤 긴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더니 몸이 비명을 질렀다. 이쯤에서 휴식을 좀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보고 하자. 보고 하자고.]
티티의 말에 제임스는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신나 소리쳤다.
[잘 생각했어! 내가 그럴 줄 알고 먹거리도 사왔단 말이지. 얼른 이리 와.]
아닌게 아니라 주섬주섬 손에 뭔가를 들고 왔다 싶었다. 신나서 거실 탁자 위에 이것 저것 꺼내 놓기 시작하는 제임스, 그리고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오 한다 한다! 어? 뭐야, 지고 있잖아?]
신나는 표정이 한순간에 구겨졌다. 티티도 고개를 돌려 TV 화면을 확인했다.
Liverpool 0 : Mancity 1
[아직 전반 20분 밖에 안됐잖아. 차분히 지켜 보자고.]
최근 리버풀의, 그리고 데이빗의 경기력이라면 한골도 넣지 못하고 끝날리 없다는 것이 티티의 생각이었기에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제임스는 불만어린 표정이었지만 티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 제기랄! 방금 것은 넣어줬어야지!]
데이빗이 멋들어진 동작으로 수비수의 압박에서 벗어나 수아레즈에게 절묘한 패스를 떨어 뜨려 주었다. 수비 라인을 돌아 들어가는 수아레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상대의 최종 라인과 골키퍼 사이의 공간에 떨어 뜨리는 로빙 패스, 하지만 수아레즈의 슈팅이 셰이 기븐 골키퍼의 정면으로 향했고 기븐은 안정적으로 처리해 냈다.
[저걸 저따위로 밖에 못차는 거야? 에이 답답한 자식.]
화가 치미는 지 앞에 놓인 맥주 캔을 힘차게 뜯는 제임스, 그리고 맥주가 골을 못넣은 범인이라도 되는 양 벌컥벌컥 전투적으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티티는 어쩔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고 말았다.
'저녀석은 저래야 정상이니까 뭐...특별할 것도 없지.'
답답한 플레이나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보면 누구보다 불같이 흥분하고, 멋진 플레이를 보면 또 누구보다도 기뻐하는 게 제임스였다. 좋게 말하면 솔직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변덕이 죽 끓는 듯 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근데 데이빗, 정말 잘한다. 방금 패스도 진짜 어려운 건데 말야. 어떻게 저런 위치에 정확히 떨구는 거지.]
자신들과 같이 축구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티티였다. 세계 최고의 무대라 불리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저런 플레이를 펼친다는 사실이 아직도 신기했다.
[데이빗이니까 당연한 거잖아. 젠장, 방금 넣었으면 데이빗도 어시스트를 하나 추가했을텐데.]
당연하다는 듯한 제임스의 태도, 그리고 계속 궁시렁거리는 모습이었다. 티티는 웃으며 '그래, 어련하시겠어' 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히 경기를 관전하는 제임스와 티티, 오늘따라 리버풀은 경기력이 좋지 못했고 제임스는 조금씩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티티도 답답한 마음은 동일했기에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근데 리버풀이 영 오늘 힘을 못쓰네. 어째 데이빗 혼자 고군분투하는 느낌이랄까, 이전하고는 좀 다르네.]
딱히 자신의 친구라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현재 리버풀은 양 날개로 출전한 아우렐리우와 카윗이 제대로 된 공격 작업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고 어쩔수 없이 데이빗이 좀 더 내려와서 공을 받아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레이바하고 제라드는 중앙에서 잘 버티고 있는데 양 날개가 오늘 영 시원찮아 보이네. 데이빗이 최전방에서 공을 거의 못잡고 아래로 자꾸 내려오고 있잖아.]
[그럼 제라드가 올라가면 되는거 아냐?]
제임스의 질문에 티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럼 중앙을 루카스 혼자 버텨야 하는데 그건 무리겠지. 포메이션이 양 윙어가 주력이 되어야 하는 4-4-2인데 양 사이드가 무너져서야 뭐 어쩔수 없는거니까.]
그나마 이게 최선이지-라고 덧붙였다. 티티의 말에 제임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제길, 카윗은 요즘 잘하더니 오늘 왜이러는거야? 아우렐리우 저녀석은 원래 수비수잖아. 왜 윙에서 삽질을 하고 있는거냐고. 이봐 티티, 니가 만약 감독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거야?]
제임스의 질문에 티티가 글쎄, 라고 중얼거리고는 곰곰이 생각해보는 모습이다.
[글쎄, 나라면 포메이션을 바꾸겠어. 카윗을 공격수로 올리고 제라드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린 다음 아우렐리오와 메이렐레스를 바꾸고 루카스와 같이 중앙을 맡도록 하지 않을까 싶어.]
솔직히 오늘 아우렐리우는 좀 끔찍한 플레이를 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라고 덧붙였다. 그때 또다시 리버풀의 위기상황이 닥쳤고-테베즈가 실바의 패스를 받아 슈팅을 날렸고 레이나가 선방했다-제임스는 '우어어' 하는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풀썩 주저 앉았다.
[젠장, 심장 떨어질뻔 했네.]
티티도 놀랐는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결국 제임스가 사온 맥주에 손을 뻗었다. 아예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TV를 켜고 나니 도저히 갈증이나서 참을수가 없었다.
'제길, 경기가 너무 힘들어...!'
데이빗은 최전방에서 내려와 공을 이어 받았다. 그리고 경기 내내 자신을 죽어라 쫓아 다니는 데 용이 뒤에서 거세게 밀어 오는 것을 느꼈다.
[큭...!]
거친 플레이로 손꼽히는 선수 답게 마크가 참 짜증난다고 데이빗은 느꼈다.
'캡틴이 공격에 신경을 제대로 못쓰니까 정말 힘들어...!'
아무리 드리블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이런 위치에서 상대의 밀집된 수비를 뚫고 올라가기란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그래서 상대의 수비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이드 쪽으로 전개시켜보았지만 오늘 리버풀의 양 윙어의 컨디션은 좋지 못했다. 카윗은 컨디션이 안좋다기보다는 상대의 레프트 윙어인 벨라미가 날아다니는 바람에 수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아우렐리우는 오늘 정말 좋지 못했다.
윙이 막히니 어쩔수 없이 최전방의 수아레즈에게 한번에 찔러주는 패스를 시도했지만 조금전 수아레즈가 마무리에 실패하며 동점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그런 패스를 또 구사할 수 없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으나 상대 수비수들이 호구가 아닌 이상 같은 패턴만으로는 공략하기 힘들었다.
'근데 이자식이 아까부터 짜증나게...!'
다양한 마크맨을 겪어보았지만 데 용만큼 짜증나는 수비는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더 짜증이 나는 것일수도 있었다. 어쨌든 데 용은 집요하게 데이빗을 물고 늘어졌고 은근슬쩍 발을 밟는 다던가, 옆구리를 친다던가 하는 플레이를 일삼았다.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심판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절묘하게 치고 빠지는(?) 플레이였기에 심판에게 어필하기도 뭣했다.
'어쩔수 없나.'
무리하게 드리블을 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한 데이빗은 결국 다시 한번 왼쪽 사이드의 아우렐리우에게 패스를 했다. 카윗은 수비에 깊숙히 가담했던 상태라 아직 전선에 합류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데이빗은 중앙에서 왼쪽 사이드로 비스듬하게, 대각선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아우렐리우에게 패스를 요구했다.
[파비오!]
손을 들며 왼쪽 사이드로 움직이는 데이빗, 아우렐리우는 그에 맞춰 패스를 시도했다.
'길어...! 제길!'
데이빗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상대 오른쪽 풀백 웨인 브릿지가 먼저 공간을 막아버리는 것을 보았다. 브릿지는 노련하게 공이 그대로 골라인을 통과하도록 몸으로 데이빗을 막아섰고 데이빗이 어떻게 해서든 공을 빼내 보려고 안간힘을 다해보았지만 결국 공을 살리는 데 실패했다.
[저 새끼는 도대체 무슨 패스를 저따위로 하는 거야?]
쥐고 있던 빈 맥주캔이 사정없이 우그러졌다. 어쨌거나 제임스도 리버풀의 팬이었고 그래서 심한 욕설은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티티도 한숨을 내쉬며 방금 플레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게, 아 진짜 아우렐리우 오늘 영 아니네.]
만약 패스가 연결되었다면 상대 수비수인 웨인 브릿지와 1:1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번 시즌 데이빗이 합류하고 그가 가장 좋은 장면을 만들어 냈던 상황이 상대 풀백과의 1:1을 제압하고 직접 골을 노리거나 그로 인해 파생된 공간으로 패스를 하여 동료의 득점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특히 오른발을 주로 쓰는(왼발도 잘쓰지만 어쨌든 주력발은 오른발이었다) 데이빗은 왼쪽 측면에서의 돌파를 더 선호하는 편이었기에 방금 장면은 더욱 아쉬웠다.
[아 진짜 저녀석좀 어떻게 해봐! 저녀석이 지금 기회를 계속 망치고 있잖아!]
[아니, 나보고 어떻게 해보라고 해도 말야...]
뭘 어떻게 해보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티티가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제임스는 우그러진 맥주 캔을 놓고 세번째 캔을 개봉했다.
[너 전반도 안되서 사온 거 다먹을 것 같은데. 좀 천천히 먹어.]
[뭐 어때. 하프 타임에 나가서 사오면 되는걸 가지고. 이런 멋대가리 없는 경기를 보면서 술을 안마실 수 있겠어?]
제임스라면 경기가 잘풀리면 기분좋다고 마실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알아서 하라고. 그나저나 벌써 전반 40분이 넘었잖아. 동점은 만들고 후반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젠장, 지금같아서는 절대 불가능할 걸. 한골 더 먹히지나 않으면 다행...]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던 제임스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다비드 실바의 창조적인 패스가 벨라미에게 연결되었다. 벨라미는 수비수를 한명 달고 있는 상태에서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고 레이나 골키퍼가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보았지만 미치지 못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추가골이 터져나왔다. 제임스는 입을 벌린채 그대로 굳어버렸고 티티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
[젠장, 제임스 너 입좀 다물고 봐. 말이 씨가 된다고 진짜 어떻게 이렇게 되냐?]
티티의 타박에 제임스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한다.
[저기 이봐 티티, 솔직히 이건 내 잘못은 아니잖아. 이건 그러니까 수비가 얼간이 같았...]
[알았으니까 좀 닥치고 봐. 아니면 차라리 응원이나 해.]
데이빗이 인정한 제임스 조련사(?) 답게 궁시렁거리는 제임스를 조용히 시키는데 성공한 티티였다.
============================ 작품 후기 ============================
사족 1.
내일은 아마 연재를 하기 힘들것 같습니다. 오전에 병원+은행업무를 보고 오후에 손님이 올 예정이라서요.
사족 2.
조아라에 재밌는 소설 좀 추천해주세요. 제 선작 목록은
나귀족, 메모라이즈, 사열님 작품들, 패배로부터 모든것을 배울수 있다, 불꽃처럼, 같은꿈을꾸다 시리즈, 발롱도르, 5툴 플레이어, (비뢰도)명경지수, 악마의 계약, (type moon)플레이어 메이커, (워크래프트)알터랙 왕국 연대기, (워크래프트)아제로스 연대기 등입니다. 딱히 장르를 가리거나 하는 거 없습니다. BL쪽만 아니면요.ㅎㅎ
사족 3.
방금 전 오탈자 검사를 안한 버전으로 잘못 올리는 바람에 부랴부랴 내리고 다시 올립니다.(근데 검사해도 꼭 나오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