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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신한 베게의 감촉을 즐기며 데이빗은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오전 8시도 되지 않은 시각, 데이빗은 '평소 버릇이 무섭네.' 라고 중얼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으음.]
자신이 움직이는 기척에 에리카가 몸을 살짝 뒤척이는 모습, 데이빗은 웃으며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었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단 좀 씻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벽에 걸려 있는 가운을 챙겨 샤워실로 들어 갔다.
[정말 좋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방과 연결된 테라스로 나와 시원한 아침 공기를 느끼며 데이빗은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만끽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바다는 아침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하더니,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
데이빗이 에리카와 여행을 준비하며 장소로 정한 곳은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였다. 도시의 어느 곳으로 사진기를 돌려도 멋진 그림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관광지로 유명한 이곳은 아일랜드의 유명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만약 지상 낙원을 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오라' 고 말했을 정도이다.
데이빗은 테라스에 비치 된 선베드에 몸을 기대며 느긋하게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 도시도 아직은 조용했다.
[이렇게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은 처음인 것 같네.]
생각해보니 살면서 휴가, 여행이란 단어만큼 자신과 관련이 없는 것도 찾기가 힘들었다. 참 각박하게도 살았네 라고 중얼거린 데이빗,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여행을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여유로운 마음, 기분 좋은 바람에 데이빗은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비틀즈 만큼이나 그가 좋아하는 에릭 클랩튼의 Wonderful tonight을 흥얼거렸다.
[밝은 아침에 Wonderful tonight을 부르는 거야?]
뒤에서 자신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을 붙여오는 이, 데이빗은 노래를 멈추고 살짝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목에 팔을 감은채 에리카가 선베드 위로 그를 내려바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어 났네? 좀 더 잘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에 '놀러와서 잠만 자다 갈 수는 없잖아.'라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데이빗처럼 테라스 밖으로 보이는 경치를 보며 감탄했다.
[정말 아름다워. 어젯밤에 보던 것과는 또 다른 게 있네.]
[맞아, 보고만 있어도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어.]
살짝 바람이 불어와 어깨 어림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흩뜨렸다. 에리카는 데이빗의 목에 감고 있던 손을 풀어 살짝 머리를 정리했다. 데이빗은 머리를 만지는 그녀의 모습이, 살짝 드러나는 하얀 목선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데이빗은 자신의 가슴이 시키는 대로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정말 짐승이라니까.]
살짝 얼굴을 붉히며 데이빗의 가슴을 치는 에리카, 데이빗은 '내가 뭘?' 이라며 딴청을 피웠다.
[아침도 못 먹었잖아. 정말.]
[그러고보니 배고프네.]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배를 살짝 문지르는 데이빗, 에리카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배고픈 것도 몰랐단 말야? 아아, 정말 남자는 슬퍼.]
킥하고 웃으며 데이빗의 뺨에 살짝 키스를 하고 떨어진다. 그리고 샤워실로 들어가며 '오늘은 혼자 할거야! 들어오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씻고 옷을 대충 차려 입자 어느새 시간이 10시가 훌쩍 넘어갔다. 데이빗은 나가서 주변을 좀 구경하다가 뭐라도 먹는게 좋겠다며 에리카와 함께 호텔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리카가 책자에서 유명한 카페가 있는것을 봤다며 가보자고 했고 데이빗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경사가 있는 길을 걷다보니카페로 갈 수 있는 성벽 아래로 뚫린 구멍이 보였다. 구멍을 통해 성 밖으로 나가자 넓은 바다와 함께 조금 아래쪽에 보이는 카페가 보였다.
[멋있다. 여기가 부자(Buza) 카페라고 하던데 부자가 구멍이라는 뜻이래. 왜 그런가 했더니 구멍을 통해서 올수 있어서 그런가 보네.]
마음에 들었는지 신나서 데이빗의 팔을 잡아 끄는 에리카, 그리고 바다가 잘 보이는 가장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기에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음, 나는 음료만 마시면 될 것 같아. 여기서 조금만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먹으러 나가면 어떨까 싶어.]
[나는 샌드위치 하나 먹고 싶어.]
[그럼 나는 오렌지 주스, 너는 샌드위치랑?]
[사과 주스.]
손님이 많지 않았기에 주문한 음료와 샌드위치는 금방 나왔고 둘은 바다 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바다 바람이 너무 강했던 것.
[우와, 여기 바람 진짜 장난 아니네.]
음료수 컵과 함께 나온 홀더에 잔을 끼우며 에리카가 중얼거렸다. 데이빗도 샌드위치가 바람에 날릴뻔 해서 기겁을 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때 오면 여기 좀 춥겠다. 오전에도 이렇게 바람이 심한데 저녁이면 아마 얼어 죽을거야.]
[그 전에 이것좀 어떻게 해봐. 홀더에 끼워도 잔이 흔들려.]
잔이 날아갈까 안절부절한 모습을 보이는 에리카, 데이빗이라고 딱히 방법이 없었기에 '그냥 빨리 마시고 잔을 치우자' 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사람이 없는 이유가 오전이라 그런게 아니고 우리처럼 바람때문에 일찍 나온거 아냐?]
투덜거리는 에리카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리는 데이빗이다.
[근데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먼저 왔었는데 계속 있던데? 적응이 되면 괜찮으려나?]
[몰라. 경치는 정말 예뻤는데 바람때문에 맘 편히 앉아 있질 못하겠더라. 그냥 거리를 좀 구경하다가 점심 먹으러 가자.]
시간이 점심때로 향해가자 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을 구경하고 플라차대로로 향한 둘, 에리카는 거리가 정말 예쁘다며 감탄사를 연발했고 그렇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맛집으로 소문난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에리카는 시푸드 리조또(Seafood Risotto)를 주문했고 데이빗은 같은 것을 주문하면서 그릴드 쉬림프(Grilled Shrimp)를 추가로 주문했다.
[하-잘 먹었다. 맛있었어.]
[정말 그래, 근데 리조또가 좀 맵지 않았어?]
[그런가? 난 잘 모르겠던데.]
디저트로 주문한 크림 카라멜을 먹으며 나른하게 포만감을 즐기는 둘, 데이빗은 관광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고 느꼈다.
[먹고 호텔로 돌아갈래?]
데이빗의 말에 에리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벌써 가서 뭐하게. 이렇게 멋진 곳에 놀러 왔으면 충분히 즐겨야지. 호텔은 저녁때 돌아가도 되잖아.]
'...아 물론 그렇겠지.'
살짝 한숨이 새어 나오려는것을 참고는 애써 웃어 보였다. 시계를 확인하니 1시 정도, 저녁때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겨우 두 시간 정도 돌아다녔을 뿐인데 앞으로 최소 다섯시간은 더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데이빗은 이 레스토랑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조금 더 쉬려는 데이빗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디저트를 먹고 나서 곧바로 나오게 되었다. 에리카는 '새뮤얼 씨와 제임스 씨 선물이라도 하나 사가는 게 어때?' 라고 권했고 그때부터 데이빗은 지옥을 맛 보았다. 조그만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거리 이곳저곳을 지치지 않고 돌아다니는 에리카의 모습에 완전히 두손을 들고만 데이빗이었다.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그러네. 괜찮아 보여.'
'저쪽도 가보자.'
'...그래.'
'우와 이것좀 봐!'
'......'
맞장구도 쳐주지 못할 만큼 데이빗은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에리카는 얼굴 가득 '나 피곤해요' 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데이빗을 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많이 피곤해? 미안, 내가 너무 기분을 낸 것 같아.]
[아니야.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조금 쉬는게 어떨까?]
[그래, 그렇게 하자.]
미안한 표정으로 쇼핑을 마무리 지으며(사실 두 친구에게 줄 선물은 예전에 이미 샀다) 근처 노점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은 둘, 데이빗은 살겠다는 듯 다리를 쭉 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네가 그렇게 힘이 좋은 줄 몰랐어.]
[이 정도는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걸. 나는 다른 여자들에 비하면 정말 쇼핑 짧게 하는 편인데.]
혀를 내밀며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밉게 느껴지진 않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데이빗이 힘들어 하는 모습에 약간 미안해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근데 축구 선수면서 체력이 왜 이렇게 약해? 몇 시간 걷지도 않았는데.]
[차라리 훈련을 하는 게 덜 힘든 것 같아.]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두 손을 들어 마치 항복하는 병사 같은 포즈를 취하는 데이빗이었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쇼핑하는 걸 힘들어 한다더라고. 잘 몰랐는데 오늘 보니까 확실히 알겠네.]
[그래? 왜 그렇대?]
[이유는 잘 모르겠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겨서. 어디서 봤는지 기억도 잘 안나고.]
[여자들은 대단하네...]
[난 남자들이 신기한데. 운동할때는 막 몇시간이고 뛰어다니면서 왜 쇼핑할때는 힘들어 하는 걸까?]
한 동안 휴식을 취한 데이빗과 에리카는 천천히 거리를 거닐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대화를 하며 데이트 그 자체를 즐겼다. 딱히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즐겁다는 사실에 굳이 특별한 무언가를 하려고 매달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데이빗과 에리카는 바다와 맞닿은 성벽 위에서 노을을 감상했다.
[정말 예쁘다. 보석 같아.]
에리카의 탄성이 터져나왔고 데이빗도 황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경관에 빠져들었다. 성벽에 맞 닿아 있는바다, 늘어서 있는 붉은 지붕들, 그리고 고풍스러운 성벽 모두가 붉은 노을 빛으로 물드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뭔가 이런 분위기에서는 로맨틱한 한마디를 해야 할것 같은데.]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만지며 중얼거리는 데이빗의 모습에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린 에리카였다.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은채 '그럼 한번 해봐.' 라고 말했고 데이빗은 '괜한 얘기를 한 것 같다며 뺨을 긁적였다.
[멍청이 데이빗.]
쿡 웃으며 데이빗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에리카, 데이빗은 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귓가에서 그녀의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해 데이빗, 너와 함께 있어서 정말 행복해.]
노을 빛에 물든 그녀의 얼굴은 정말 아름다워보였다. 부끄러워하며 '여자가 먼저 말하게 하다니, 정말 최저야!' 라며 귀엽게 앙탈을 부리는 모습, 데이빗은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속삭였다.
[나도 사랑해 에리카.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의 언어를 나눈 둘, 부끄러운 듯 에리카가 살며시 눈을 내리 깔았고 데이빗은 붉게 빛나는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 포근하고 달콤한 시간, 두 연인은 황금빛 성벽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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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커플들이 쇼핑때문에 싸우다 남자가 빡쳐서 7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던데...도대체 얼마나 빡쳤으면ㄷㄷ
선작, 추천, 댓글, 쿠폰 모두 감사합니다. 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