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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38화 (38/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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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의 효과는 굉장했다. 제라드는 말수가 많은 선수는 아니었다. 과묵하고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다른 리저브 선수들의 접근을 막지도 않았다. 오히려 캡틴과 대화를 나눈 선수들이 '보기보다 존나 친절해!'라고 감동하기도 할 정도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어제 캡틴이 나한테 뒷 공간으로 파고 들어가는 움직임이 괜찮은 것 같다고 그러더라.]

파체코도 상당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잉글랜드에서, 아니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 중 한명으로부터 칭찬을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너야 원래 좋았어. 캡틴이 말하기 전부터 말이야.]

그러면서도 부럽다는 듯 입맛을 쩝 다시는 데이빗이다. 키득거리며 데이빗의 어깨를 툭툭 쳐준 파체코는 생각났다는 듯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너한테는 별말이 없었냐?]

[아 몰라. 나도 말을 걸고 싶은데 그때마다 다른 녀석들이 독차지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뭐 한마디 붙여볼라 치면 어디로 가버리거나 훈련이 시작된다거나 하니까 기회가 없네.]

입이 댓발은 나온 데이빗을 보며 파체코가 실소를 터뜨린다. 마치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애같은 표정이 웃겼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오늘 시합은 같이 뛸 수 있잖아. 기대된다. 캡틴이 우리에게 패스를 해준다니 말이야.]

[당연하지. 오늘 나 선발에서 빠졌으면 감독 테러해버렸을지도 몰라.]

파체코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하는 데이빗이었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있었다. 데이빗은 파체코와 패스를 주고 받으며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아차. 미안.]

[어디에 차는 거야?]

실수로 파체코가 패스를 엉뚱한 곳으로 날려버렸고 데이빗은 혀를 차며 공을 줏으러 달렸다. 공교롭게도 파체코의 미스볼은 제라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음?]

제라드는 자신에게 굴러오는 공을 가볍게 트래핑하고 고개를 들어 방향을 확인했다. 본적이 있는 얼굴, 그리고 기억에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제라드는 멈춰둔 채 엉거주춤 서있는 데이빗을 응시했다.

[아 캡틴, 몸 푸는데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공 좀 주시겠어요?]

상당히 버벅거리는 모습으로 말을 붙여오는 데이빗의 모습이 피식 웃음을 흘리는 제라드였다.

'그러고보니 처음 봤을때도 뭔가 좀 저랬던거 같기도 하고.'

제라드는 공을 차주는 대신 툭툭 몰고 나오며 데이빗에게 다가갔다. 데이빗은 제라드가 가까이 오자 바짝 긴장한 모양새였다.

[뭘 그렇게 얼어있어? 뭐 죽을 죄라도 진거야?]

[아 아닙니다. 그게 저어...]

저런 시선, 모른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자신이 어린 시절, 리버풀의 우상들을 바라보던 시선이다. 선수가 된 이후로는 매일 같이 저런 시선을 받고 있으니 모를리 없었다. 기분이 나쁠리 없었지만 이미 프로 선수인 이상 동경하는 것만으로는 곤란했다.

[그렇게 얼어서야 경기 제대로 뛰겠어? 미리 말해두지만 그렇게 얼 빠져 있어서는 내 패스에 절대 못따라갈거야.]

그러면서 공을 툭 차올려 손에 들고는 데이빗의 가슴에 슬쩍 갖다 댄다. 데이빗은 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예전 보다는 늘었겠지? 기대하고 있을게.]

그 말을 남기고는 손을 한번 흔들며 뒤돌아서는 제라드, 데이빗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대하고 있을게. 기대하고 있을게. 기대한다고 했어. 나한테 기대한다고 했다고!'

[어이 데이빗, 무슨 일이야? 캡틴이 뭐라고 했어?]

못박힌 듯 가만히 서있는 데이빗이 이상했는지 파체코가 다가와 말을 걸어보지만 데이빗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하핫. 하하하하!]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데이빗, 파체코는 흠칫 하며 한발 물러섰다.

[어이, 곧 시합 시작이라고. 너 괜찮은 거야?]

좀 걱정이 된다는 듯 파체코가 물어오자 그제서야 데이빗의 고개가 돌아갔다.

[괜찮냐고? 물론이지! 아마 오늘은 최고의 날이 될거야.]

경기를 알리는 휘슬소리와 함께 리버풀 리저브와 뉴캐슬 리저브 간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리버풀 리저브 팀의 홈 구장인 할리웰 존스 스타디움은 평소보다 관객이 많이 들어섰다. 잘나가는 리버풀 리저브였기에 관객이 조금 늘어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리버풀의 심장 스티븐 제라드의 리저브 경기 출전 소식에 그를 보기 위한 팬들의 움직임이 컸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중들 앞에서 경기를 치르게 된 선수들은 당연히 불타오를 수 밖에 없었고 원래부터 한 수 위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뉴캐슬 리저브를 상대로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캡틴 제라드의 힘은 대단하네요.]

벤치에서도 평소와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켜보았다. 관중 동원과 선수들의 동기부여 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라드가 미친 영향은 아주 컸다. 맥마흔 감독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경기 초반이지만 이정도 경기력이라면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통할 것 같은데요. 압박, 커버, 콜 플레이 모두가 완벽에 가깝습니다.]

[그게 캡틴 제라드의 존재감 덕분이기도 하지. 사실 스티비 저 친구 지금 별로 지시하고 있지는 않잖아. 다들 알아서 집중하고 있는거지. 어떻게 보면 베니테즈 감독이 와서 참관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좋은 것 같기도 해.]

그들의 말마따나 경기 초반 리버풀 리저브의 경기력은 완벽에 가까웠다. 공격진의 강력한 포어체킹과 미드필더들의 기동력, 그에 맞춰 연동하는 수비라인의 움직임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나저나 데이빗은 정말 많이 늘었네요. 이제는 확실히 팀 전술을 이해하고 움직이는 모습이랄까요.]

[벌써 치매인가? 저 친구 저정도로 움직인지는 꽤 됐잖아. 예전에야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려다 보니 움직임이 딱딱하고 비효율적이었지만 이제는 몸이 상황을 기억하는 거지. 사실 공격수의 수비가담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리 리버풀의 전술에는 크게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야. 저 정도의 포어체킹이라면 충분하지.]

[대신 윙어들이 죽어나가지만요.]

[디르크에게 영광있으라.]

농담따먹기하며 경기를 지켜볼 정도로 상황은 안정적이었다. 어느새 반코트 게임이 되버린 경기양상이었고 상대는 전원수비에 가까운 포진으로 잔뜩 웅크렸다.

[경기 시작 5분만에 전원수비라, 딱히 지시할 내용은 없으십니까?]

[지시할게 있겠나? 이런 상황 한두번 겪어 본 것도 아니고 알아서 잘 할거야. 거기에 오늘은 밀집 수비를 끌어내는데 최고의 인재가 있지 않나?]

그러면서 지켜보라는 듯 고개를 으쓱하는 맥마흔 감독, 코치는 감독의 시선을 따라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에어리어 밖에서 공을 잡은 제라드가 특유의 슈팅 모션을 가져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콰앙-

언제들어도 호쾌한 소리가 터져나왔고 제라드의 발에서 떠난 공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상대 수비를 피해 때린 슛이다 보니 코스가 조금 약했고 골키퍼가 펀칭해내는데 성공했다.

[세컨볼 잡아!]

[빨리 걷어 내! 빨리!]

에어리어 내에 모인 양 팀 선수들간 공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몸싸움이 펼쳐졌다. 아무래도 수적 우위에 있던 뉴캐슬 선수들이 공을 차지하기 쉬웠고 헤딩으로 클리어해내는데 성공한 뉴캐슬, 하지만 클리어 된 공은 다시 리버풀 측으로 넘어갔다.

[패스해!]

에어리어 정면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진 위치에서 패스를 요구하는 제라드, 곧 그에게 패스가 도착했고 다시 골문을 보며 슈팅을 때리려는 듯한 제라드의 모습에 움찔한 수비진들이 몸을 날려왔고 제라드의 눈빛이 번뜩였다.

파앙-

한번 공을 접고 왼쪽 사이드로 크게 전개하는 제라드, 자신의 움직임으로 인해 수비진이 약간 오른쪽으로 쏠렸기에 왼쪽 사이드에 공간이 난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공간을 선점하며 손을 든 것은 검은 머리칼의 선수, 데이빗이었다.

'한번 해봐라.'

데이빗은 제라드의 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 했다. 눈 앞에 부랴부랴 자신을 마크하기 위해 달려드는 상대 수비가 보였다. 저렇게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는 수비수만큼 요리하기 쉬운 것도 없다. 데이빗은 가슴으로 받아 살짝 띄운 공을 머리로 다시 한번 앞으로 띄우고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자신의 실책을 알아 챈 수비수는 황급히 방향을 바꾸려 했으나 이미 역동작에 걸려버렸기에 딜레이가 생길수 밖에 없었다. 그 잠깐의 딜레이는 데이빗을 상대하며 치명적이었다.

한 명을 제치고 에어리어로 진입한 데이빗은 뒤이어 자신을 마크하기 위해 나타난 상대 수비를 달고 골라인 쪽으로 질주했다. 데이빗이 선택한 것은 속도전, 이미 가속이 끝난 자신의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하고자 했다. 상대가 한발 뒤쳐진 사이 어깨를 집어 넣으며 앞 공간을 선점하고는 방향을 골대쪽으로 틀기 시작했다. 데이빗을 마크하기 위해 붙은 수비수는 어떻게든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 몸싸움을 걸어보려 했으나 이미 어깨로 공간을 내준 상황, 거기에 페널티 에어리어 안이었기에 거칠게 끊을 수도 없었다.

골라인을 타고 쇄도해 들어오는 데이빗, 수비수들은 에어리어 내의 리버풀 선수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움직였다. 라인에 붙어 들어오는 상황이었기에 직접슈팅은 어려운 상황, 골키퍼도 이미 혹시 모를 슈팅에 대비하여 적절히 각을 만들어 포진한 상태였다. 정석에 가까운 움직임, 하지만 이미 뉴캐슬 수비진은 그들이 모르는 구멍을 노출한 상태였다.

파앙-

데이빗의 패스가 조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향한다 싶었다. 그리 빠른 속도의 패스도 아니었고 어중간한 높이의 밖으로 흘러나가는 공, 뉴캐슬 수비진의 얼굴에 순간 의아함이 맴돌았다. 여기까지 와서 굳이 밖으로 공을 돌리다니, 저녀석 뭐하는 놈이지?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에어리어 내의 마크를 위해 수비 라인이 무너진 사실을 간과했고 에어리어 밖에서 오히려 더 위협적인 한 선수가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을 향해 힘차게 슈팅 모션을 가져가는 선수를 보고 나서야 기겁을 하며 몸을 움직이는 수비수들, 하지만 이미 제라드는 완벽히 슈팅을 가져가는데 성공했고 다시한번 폭력적인 굉음이 터져나왔다.

콰앙-

몇몇 팬들이 그의 슛을 두고 '맞고 뒈져라 슛' 이라고 표현할 만큼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가는 슈팅, 좀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슈팅 코스가 훤하게 뚫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완벽한 노마크에 코스마저 확보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제라드에게는 거의 골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제라드의 슈팅은 멋지게 골문을 흔드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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