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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쾅 하고 거칠게 문을 닫고 들어온 남자는 리버풀FC의 수장, 라파 베니테즈 감독이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씩씩대며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치는 모습이 단단히 화가난 모습이었다.
[거지 같은 구단주 자식들! 그저 돈! 돈밖에 모르지!]
[진정하시죠 감독.]
[하.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는 작자들 아닙니까?]
함께 들어온 코치가 진정시키려 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애초에 샘 코치도 적잖이 열받아 있는 건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어쩌겠습니까. 솔직히 기대도 안했습니다. 그 작자들이 돈 보따리를 풀리가 없죠.]
그러면서 올 여름에 그나마 돈을 써준게 기적에 가깝겠죠-라고 덧붙였다.
[기대 안한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어떤지 그 작자들도 눈이 있으면 알거 아닙니까? 주전 선수들의 절반이 지금 드러 누운 상황입니다. 애초에 얇은 선수층이 지금은 눈뜨고 볼수도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도 영입을 안해주겠다니 참 미쳐버릴 노릇 아닙니까!?]
늘 한결 같은 말, 구단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말. 베니테즈로서는 열받을만 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조금은 거친 목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베니테즈는 조금은 흥분을 가라앉힌 목소리로 방문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타 구단으로부터 온 영입 제안서입니다.]
대충 감독이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있는 직원이었기에 자신이 가져온 소식이 환영받지 못할 거란 사실을 눈치채고는 서류를 건네 준 뒤 후다닥 문 밖으로 도망쳤다.
[하, 영입제안서라...]
화낼 힘도 없다는 듯 베니테즈는 서류를 거칠게 훝어 보았다. 그리고는 빠르게 펜을 꺼내 후다닥 결제하기 시작했다. 베니테즈의 일처리를 지켜보던 샘 코치가 가볍게 중얼거렸다.
[빠르군요. 아예 '거절'이라고 파인 도장을 하나 장만하는게 낫겠습니다.]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네요. 하지만 우리 구단주님들 께서는 돈나간다고 허용 안해 줄겁니다.]
해가 바뀌고 2010년이 되었지만 데이빗의 생활은 바뀐 것이 없었다. 좋지 못한 퍼스트 팀 사정으로 한번 쯤은 콜업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없었고 계속 리저브 팀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팀 동료 중에서는 이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데이빗이 뚱한 얼굴로 빨대를 문채 볼울 부풀렸다. 누가봐도 나 골났어요-하는 표정이었고 앞에 앉아 있던 에리카는 픽 웃으며 손가락으로 데이빗의 볼을 찔렀다.
[그랬어요? 우리 데이빗 화났어요?]
[애 취급하지마. 그렇잖아. 그 얼간이는 뭘 잘했다고 매번 퍼스트 팀에 올라가느냔 말이야. 올라가서 잘하면 말도 안해. 맨날 벤치에서 시간만 때우거나 간간히 출전하면 삽질만 하다가 나온단 말이야.]
그러면서 내가 올라갔으면-이라고 덧붙이는 모습이 꽤 불만이 쌓인 모습이었다.
[그건 그래. 그렇지 않아도 포럼에서는 너를 올려보는게 낫지 않겠냐는 말이 많더라. 파체코 선수도 그렇고.]
[다니엘은 어제 콜업되서 올라갔어. 그 친구라도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같이 올려주지'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부러움반 아쉬움반 섞인 모습이었다. 에리카는 픽 웃으며 '차라리 임대를 보내주는 것도 나을텐데'라고 중얼거렸다.
[아, 그 임대 얘기 말인데, 제안은 왔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거절했대.]
[왜? 아, 나는 네가 임대가지 않았으면 좋긴 한데 어떻게 보면 기회일 수도 있잖아.]
[제안이 온 곳이 에버튼이었다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라이벌 팀에 보낼수는 없다나.]
데이빗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살짝 표정을 찡그리는 에리카였다.
[엑. 걔네는 어떻게 우리한테 임대를 요청했대? 보내 줄거라 생각한거야? 데이빗 너 다른 팀은 몰라도 맨유랑 에버튼에는 절대 가면 안된다?]
[안간다니까. 구단에서 보내면 모르겠지만 나도 갈 생각 없어.]
그 말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잘했어요-라며 머리를 토닥여 주는 에리카, 데이빗은 애취급하지 말라며 또 툴툴거린다.
[요즘 들어 점점 날 애취급하는 것 같아.]
[요즘 들어 네가 점점 애 같아 지니까 그렇지. 우리 귀여운 데이빗.]
에리카의 말에 뚱한 표정으로 빨대를 휘적거리는 데이빗이다. 그러면서 '남자한테 귀엽다는 게 뭐야' 라고 중얼거린다.
[이만 나가자. 영화 시간 거의 다됐어.]
불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이빗, 곧 에리카가 혀를 내밀며 팔짱을 껴오자 그만 헤헤거리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말이다.
삐걱이는 퍼스트 팀에 비해 리저브 리그를 씹어먹고 있는 리버풀의 리저브 팀이었지만 모든 부분이 다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퍼스트 팀 감독 베니테즈의 이해할 수 없는 콜업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수를 올리고 내리는 지 알 수가 없었기에 선수들의 불만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막말로 퍼스트 팀에서 열심히 삽을 들고 있는 선수나 리저브에서 자신보다 못한 활약을 보이는데 콜업되는 선수보다 자신이 못할게 뭐냐는 거다. 스포츠 선수라는 특성상 활약할 수 있는 시기가 짧기에 하루 빨리 결과를 내야하는 리저브 선수들이다. 이만하면 불러주겠지 하는 마음이 드는 상황에서 퍼스트 팀에서 불러줄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지치고 화가 나는 건 당연했다.
이로 인해 콜업을 받지 못한 선수들과 받은 선수들 간의 불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었다. 콜업 받지 못한 선수들은 딱히 실적을 낸 것도 없으면서 운좋게(혹은 감독에게 잘보여서) 올라가는 것이 눈꼴시다는 것이었고 콜업된 선수들은 지들이 못해서 못올라 간 걸 왜 공연히 질투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럴거면 차라리 임대를 보내주던가. 젠장.]
시합을 마치고 샤워실에서 한 선수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에 찌푸린 표정이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들었어? 우리 위대하신 라파(베니테즈)가 타 구단들로부터 온 임대, 이적 요청을 죄다 거절하셨다더라.]
[귀가 있으면 다 들었겠지. 빌어먹을 노릇이야. 선수가 없어서 보낼수가 없다고 그러던데 그럼 좀 올려주던가. 쓰지도 않을 거면서 왜 다 거절하냐고.]
동조하는 목소리들, 다들 현 상황에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크리스티안이 부러워질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 친구 임대보낼때부터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존나 잘된 일인 것 같아.]
[그러게. 어떤 분은 골도 더럽게 못넣는데도 철밥통에 콜업도 꼬박꼬박 시켜주시는데 말이야.]
[야, 야.]
다분히 누군가를 의식하고 말하는 태도, 그 모습에 한명이 눈짓을 하며 조용히 시킨다. 이야기의 당사자가 샤워실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그 누군가를 험담했던 이는 침을 뱉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분위기 진짜 아름다워. 정말 신년을 맞아 유혈사태가 한번 일어날 것 같아.]
샤워를 마치고 휴게실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데이빗과 파체코, 데이빗은 파체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저 치가 처신을 좀 잘했으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겠지. 제이나 켈리 같은 친구들을 보면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하지만 시기하지는 않잖아. 그리고 납득이 가는 콜업이었고.]
그렇게 말하며 덧붙이듯 자업자득이지-라고 중얼거리며 음료수로 손을 뻗는 데이빗이었다. 그러더니 파체코에게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물었다.
[너도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한번 올라갔다 왔잖아. 퍼스트 팀은 좀 어때?]
[뭐가 어때. 20분도 못뛰고 내려왔는데. 그리고 바로 내려왔잖아.]
[아 그거야 알지만, 퍼스트 팀 분위기라던가 뭐 그런거 있잖아. 감상이라던가. 에이 암튼 뭐라도 좋으니 말해보라고.]
데이빗의 재촉에 피식 웃으며 입맛을 다시는 파체코, 음료수로 목을 한번 축이더니 입을 열었다.
[뭐...분위기는 머리에 총이 맞는다고 해도 좋다고 말을 못하겠네.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에 성적은 안나오지, 누구는 이적시켜달랬다가 거절당해서 라커룸 분위기를 개판쳐놓지, 뭐...그정도랄까?]
심각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파체코, 데이빗의 표정도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다.
[제이가 얘기해준 거랑 비슷하네. 퍼스트 팀 사정이 정말 그렇게 안좋았구나.]
[뭐, 캡틴에 부캡틴이 모두 부상으로 나가떨어져 있으니까. 팀 분위기를 추스릴 만한 사람도 없고 해서 더 그런것 같더라고. 그리고 선수 기용에 대해서도 불만들이 다들 좀 있어. 아 뭐 좋은점을 물어봐 차라리. 뭐 안좋은 점은 셀수가 없네.]
그 말에 데이빗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은 점도 있었단 말이야?' 라고 물었고 파체코는 픽 웃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 얼마나 깔끔해?]
그 말을 마치고 낄낄거리는 파체코, 데이빗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허-하는 탄식을 흘리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아무리 퍼스트 팀이 좆같아도 천국같은 리저브보다는 낫지 않을까?]
[개똥밭에서 굴러도 퍼스트 팀이 낫다더라 고 누군가 말했지.]
[누가 그런 소릴했어?]
[알게 뭐야.]
시간이 흘러 09-10 시즌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리버풀 리저브는 중간 중간 삐걱이는 부분도 있었으나 무난히 승점을 쌓으며 리그 우승을 향해 달려갔다. 반면 퍼스트 팀은 여전히 불안한 행보를 보이며 리그 중위권~중상위권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토레스나 제라드와 같은 핵심 플레이어들이 건재할 경우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으나 두 선수의 잦은 부상과 다른 주전 선수들의 이탈이 잦았기에 경기력이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리저브에서 몇몇 선수들이 꾸준히(혹은 간간히) 콜업되고 내려오길 반복했다. 스테판 다비, 다미앙 플레시스, 나빌 엘 자르, 제이 스피어링, 마틴 켈리, 다니엘 파체코 등이 퍼스트 팀과 리저브를 오가며 활약한 면면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들 중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은 선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시즌 초 중반에 비해 베니테즈 감독의 콜업 빈도가 늘어나고 다양한 선수들을 올리기 시작했기에(스쿼드가 워낙 심하게 무너진 탓이 컸다) 리저브 선수들의 불만이 전보다 사그러 들고 동기부여가 새롭게 이루어 질수 있었다.
데이빗은 왜 자신을 올리지 않느냐는 듯 무력시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2010년 4월 중순 무렵까지 25경기에 출장하여 27골을 기록하는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사실 이쯤 되면 한번쯤은 기회를 줄 법도 한데 이상하리만치 그에게 기회가 오질 않았다.
1월에서 3월까지는 데이빗도 이제나 저제나 언제 불러주려나 하고 기다렸으나 4월이 되고 시즌이 끝나가자 내년을 기약해야겠다고 마음을 거의 접은 상태였다. 화나고 아쉬운 마음도 컷으나 내년에도 자신을 올리지 않고 무시할 수는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고 한 경기 한 경기 집중하고 있었다.
[......]
여느때 처럼 경기가 없는 날 훈련을 위해 트레이닝 센터를 찾은 데이빗, 이곳에 있어서는 안될 후광이 번쩍번뻑한 인물을 발견하고 눈을 비벼보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그대로 서 있는 인물, 180 중반의 큰 키에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살짝 찡그린 표정과 주름, 리버풀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축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리 없는 인물, 바로 리버풀의 캡틴 스티븐 제라드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인사도 안하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생각에(그래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고 데이빗은 생각했다) 황급히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데이빗, 제라드는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짧게 맞 인사를 건네고는 돌아섰다. 데이빗은 구석에 있는 파체코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소리죽여 말을 걸었다.
[야...이게 뭔일이냐? 캡틴이 왜 여기 와있어?]
[뭐라는거야. 이 무식한 친구같으니. 캡틴이 지난달에 부상당한 거 알지?]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 파체코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데이빗의 이마에 춉을 날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평소보다도 부상 기간이 좀 긴편이었잖아. 그러니까 리저브에서 감각을 끌어 올린 다음에 올린다는 거지. 지난번에 얘기 못들었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랬던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데이빗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을 떨쳐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요는 이 자리에 캡틴이 있고 우리하고 같이 경기를 치른다는 거 아냐?]
[그렇지. 뭐 어차피 한 두경기만 뛰고 캡틴은 올라가겠지만 말이야.]
한 경기든 두 경기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 리버풀 내 청백전에서 상대로 만난 이후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같은 팀에서 뛸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리버풀에 입단하며 제라드와 호흡을 맞춘다는 상상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리라. 매일같이 그런 미래를 꿈꿨고 제-토 라인보다도 더 매력적이고 파괴력있는 콤비가 될 수 있기를 바래왔다.
[갑자기 불타오르는데 다니엘?]
씩 웃는 데이빗의 모습에 파체코도 마주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찬가지야. 혹시 알아? 우리가 존나게 잘하면 캡틴이 올라가서 강력 추천해 줄지? 리저브에 다니엘하고 데이빗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둘 다 존나 괜찮은 녀석들이라고 말이야. 물론 다니엘이 아주 끝내주는데 혼자만 올리면 불쌍하니 데이빗도 좀 끼워서 올려주라고 말하겠지.]
[정신병원이 망하지 않는 이유를 알겠어. 오늘 꼭 가보도록 해 파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