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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12화 (1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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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은 새로운 코치를 만나 그라운드에 나와 있었다. 자신을 조지 웨스트라고 소개한 코치는 현재 리버풀 리저브 팀의 체력 코치로 있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리버풀 리저브 팀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피지컬 트레이닝을 이미 소화한 상태라 할 일이 없는 상태라 했다. 그래서 뒤늦게 합류한 데이빗에게 전담으로 붙게 되었다며 잘 부탁한다고 했다. 말을 하는 내내 싱글벙글 웃는 표정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인상이 좋은 사람이네.'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전담 코치라니 분명 훈련의 효율도 훨씬 좋을 거란 기대가 되었다.

[축구 뿐만이 아니라 모든 운동에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더 나은 수준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나?]

[훈련을 열심히 하는 것 아닙니까?]

코치의 질문에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이 대답하는 데이빗, 코치는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고 말을 이었다.

[그 말도 물론 맞지. 맞는 말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열심히 하는 것일까? 그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 있어?]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코치는 그런 데이빗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심리적인 한계를 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생소한 말에 멀뚱한 표정을 짓는 데이빗이었고 코치는 부연설명을 시작했다.

[봐. 보통 사람들이 자신이 열심히 했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해? 땀이 많이 나고, 다리가 아프고, 숨이 가쁘고...힘들면 '아, 나는 열심히 했구나' 하고 그만 두지? 그게 바로 함정이야.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그걸 넘어야 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정말 죽을 것 처럼 힘들때 내딛는 한발이야 말로 평상시에 백번 뛰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어. 그리고 그게 바로 열심히 하는 거야.]

뭔가 이야기가 그럴싸해졌다. 상당히 설득력있는 이야기에 데이빗의 눈빛도 진지해졌다.

[사람 몸은 참 신기해. 부러진 뼈가 나으면서 더 단단해진다는 이야기 들어봤지? 근육도 마찬가지야. 강한 운동으로 피로해진 근육은 회복되면서 좀 더 강하게, 좀 더 굵게 회복돼. 그러기 위해서는 근육에 강한 부하를 걸어서 회복될때 큰 효과가 있도록 하는게 좋겠지.]

[이런 훈련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휴식이야.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몸을 망치는 것 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어. 프로는 휴식도 훈련이야. 정말 제대로 쉬어 줘야해. 가끔 이렇게 말하면 멍청한 놈들은 쥐꼬리만큼 훈련하고 왕처럼 휴식하지. 데이빗 군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어. 그렇지?]

[네 피지컬 테스트 기록을 보니 확실히 부족한 점이 많아. 하지만 분명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야. 그리고 난 널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어. 그러니 날 믿고 훈련에 잘 따라와주길 바래. 알겠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 코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어보이고 그라운드를 가리켰다.

[일단 몸풀기로 그라운드 20바퀴만 뛰자. 골대 바깥쪽을 도는거야. 그럼 대충 한바퀴에 350~400m 정도 되지 않을까? 이 정도면 적당한 몸풀기게 되겠지? 기껏해야 7~8km 밖에 안된다고.]

해맑은 표정으로 무시무시한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헉...헉...]

[좋아. 몸은 이제 다 풀렸겠지. 조금만 쉬고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다 풀리긴 했죠. 너무 많이 풀려서 문제지만!'

코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 데이빗,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오, 앉는건 금지야. 물론 눕는 것도 말이지. 앞으로 우리 사이에 룰인데, 휴식은 서서 호흡을 가다듬는거야. 알겠지?]

싱글벙글 웃으며 친절하게 직접 데이빗을 일으켜 세워주는 코치였고 데이빗은 그 호의가 전혀 고맙지 않았다.

[자 휴식은 끝이야. 몸이 식기전에 어서어서 움직여야지.]

해맑게 웃는 코치의 얼굴이 무섭게 느껴졌다. 데이빗의 지옥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오케이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푹 쉬고 내일은 가볍게 회복 훈련을 할거야. 그리고 다음날은 오늘처럼 풀코스 뛰고 그 다음날은 다시 회복, 이해 되지?]

[...예.]

[표정이 왜그래? 이제 시작인데. 스마일 하라구 스마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도 있잖아? 앞으로 즐겨보자고.]

'...악마다. 악마가 있어. 근데 그게 내 코치였어...!'

지옥같은 훈련을 돌리면서 코치는 절대 언성 한번 높이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그리고 부드럽고도 조용한 말투로 이야기 했다. 데이빗은 오늘 온화한 표정에서 악마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도가 떨어졌군. 한 세트 추가하자.'

'저런, 힘들어? 몸을 덜 풀고 해서 그런가? 우리 몸부터 제대로 풀고 시작해볼까?'

부르르

아직도 귓가에 코치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느낌에 더운 날씨에도 몸이 떨려왔다.

[웨스트 코치, 이제 끝났습니까?]

[아 바튼 코치.]

[어떻던가요 데이빗은?]

[관심이 많으시군요. 하긴 그럴만도 합니다.]

바튼이 건네주는 음료수를 받아 한모금 들이키며 씨익 웃는 웨스트 코치.

[일단 첫날이라 평가할 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근성은 있는 것 같더군요. 테스트 기록을 참조해서 약간 상향 조정한 일정을 소화시켰는데 그럭저럭 소화해내긴 합니다. 물론 끝나고 퍼져버렸지만.]

[...대단하군요.]

말은 저렇게 해도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약간'이라는 말을 절대 써서는 안되는 인간이 바로 눈앞에 있는 웨스트 코치라고 평소에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싱글벙글 웃으며 즐거워하는 표정이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사람 같군.'

웨스트 코치, 리버풀 리저브팀에서 체력 담당 코치로 언제나 웃고 있는 표정과 신사적인 말투로 주변인들에게 좋은 평을 들었다. 처음에는.

'리버풀 제일의 사디스트(Sadist) 답달까. 능력이야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랬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특기가 선수들을 독하게 굴리는 것이고 취미는 선수들이 죽어나가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리버풀 리저브팀 선수들도 얼마전까지 웨스트 코치의 트레이닝을 소화하며 울부짖었었다. 매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본격적인 피지컬 트레이닝을 앞둔 리저브 선수들의 안색이 꺼멓게 죽어가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웨스트 코치가 무식하게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합리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선수 각자의 한계를 교묘히 넘나들게 하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단지...

'제발 사람이 힘들어 하는 걸 보며 즐거워하지 말라고...'

[어서 오세요. 어머, 오늘은 굉장히 지쳐 보이시네요.]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할 요량으로 카페에 들린 데이빗, 비틀비틀한 모양새에 종업원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오늘 훈련을 좀 해서...라즈베리 한잔 부탁드릴게요.]

[저런...훈련이 정말 힘들었나 보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힘없이 웃어보이며 주문을 마친 데이빗, 계산을 하고 근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잔잔한 음악과 시원한 실내 공기가 데이빗을 나른하게 만들고 저절로 눈이 감겨왔다.

'자면 안 되는...데...'

[주문하신 라즈베리 티 나왔습니다. 어머...?]

의자에 앉은 채로 그새 잠들어버린 데이빗이었다. 잠들어버린 데이빗을 보고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이내 살풋이 웃으며 테이블에 조용히 잔을 내려놓았다.

[이런데서 자면 감기걸려요.]

들릴리 없는 말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 가게 구석에 설치된 에어컨 앞으로 가서 온도를 조절했다.

'어차피 손님도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한다.

[분명 여기에 두었는데...아 찾았다.]

그녀가 찾은 것은 얇은 모포였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그녀는 모포를 들고 데이빗에게 돌아왔다. 여전히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데이빗, 그녀는 모포를 데이빗에게 덮어주었다.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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