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87)

오사무 : 환자한테 걱정받을 이유는 없어요.

히메오 : 그러네, 나, 걸리적거리기만 하지...

오사무 : 아뇨, 전혀.

히메오 : 으으응(아니야), 이제야 알았어...

         난 다른 사람들에게 걸리적거리기만 한다는 존재라는 걸.

오사무 : 히메오 씨...

히메오 : 오사무씨를, 자기 멋대로만 부리고,

         자기 멋대로 좋아하게 돼서,

         그 결과, 가장 소중한 토코짱을 상처입히고 말았다고.

오사무 : 그렇지 않아요.

         거기에는 나와도 관련 있으니까요.

히메오 : 이번엔 아버지까지 토코짱을 상처입혀...

         내가 여기 없었어야 했어.

         그냥 계속 유학이나 했으면...

오사무 : 히메오 씨...

몸의 문제가 아니군 이건...

줄곧 변함없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미토코짱의,

인생 최대의 위기.

그런 소중한 때에, 그동안 변함없이 생각해왔던

[내가 도와주겠어]의 계획이 상대에게 거절당해,

그리고 가족에게 배신당해.

지금의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제어력을 잃고 있다.

반대로 그게, 몸상태로 나타나게 됐는지도 모른다.

오사무 : 우선은 감기부터 나아요.

         그럼 남에게 걸리적거릴 틈도 없을 정도로

         부려먹을 테니까요.

이건 농담도 뭣도 아닌,

다음달부터 그녀의 수명을 줄일 정도로 일하게 해야 한다.

실은 오늘 임원 회의의 연기로

가장 괴로워지는 건 내가 아니다.

오사무 : 그러니까 지금은 푹 쉬어요.

         중요한 일은 다 낫고나서 얘기해요.

히메오 : 오사무...씨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말가지의 재(再)스케줄안(案)을

머리속으로 짠다.

만약 히메오씨의 감기가 오래가면...

낫는다고 해도 지금의 정신 상태로는...

오사무 : 걱정마요, 걱정마...

히메오 : ...응

오사무 : 될 수 있으면 뭔가 좀 먹어요.

         그럼 다녀올게요.

히메오 : 다녀...와요.

.........

안된다...

어떤 케이스를 예상해 스케줄을 짜 봐도,

내 육체적 부담과 그녀의 정신적 부담이

너무 크게 된다.

내가 봐도 참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

게다가 극히 사적인 동기를 은폐하면서,

회사 입장에서의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까지.

...확실히 나는, 히라키 부부장님의 말대로,

[독 아니면 약밖에 될 수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뭐, 그건 그렇다치고.

카야 : 내가?

       히메사마의 간병을?

       왜?

오사무 : 아뇨, 그러니까요,

         최근에 사이가 좋은 것 같아서요...

오늘은 나고야 출장으로 자고 올 거라는...

카야 : 출장 같은 거 연기하면 되잖아.

       자기 애인이 열나서 쓰러져 있는데 뭐하는 거야.

오사무 : 오늘만은 그럴 수가 없어요...

오늘과 내일 이틀로,

이번 작전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 말 그대로.

카야 : 남자는 밖에 7인의 적이 있으니

       임신한 아내는 내버려둔다는 건가요.

오사무 : 그런 상황에 놓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일 뻔했던 사람과는,

2년간 그런 상황을 맞이하지 못했고.

카야 : [임신]을 [결혼기념일]로 바꿔보면?

오사무 : 어어어어어어어떻게 그걸!?

최근 사이가 좋아진 건,

히메오씨뿐만이 아니었던 건가!?

카야 : 1주년부터 까먹으면,

       정이 떨어질만도 하지~

       오사무군만 동정할 수 없게 됐다고.

예전보다 사교성을 훨씬 높인 카야씨는,

내 오래된 상처를 후벼파는 정보에 훤해졌다.

오사무 : 지, 지금은

         그런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따질 때가 아니라,

         더 긴급한 현안이 눈앞에 있어서 말이죠...

카야 : 그~러~니~까~!

       히메사마가 고열로 쓰러졌는데,

       아~무도 간병할 사람이 없다는 소리~?

오사무 : 그, 그렇긴 한데요,

         그렇게 큰소리로 탓할 것까지야...

카야 : 아 불쌍해, 히메사마~

       추운방에서 배고픔에 떨고, 열은 펄펄 나,

       폐렴으로 발전해 오사무군이 돌아올 때 쯤에는 이미 늦은 거네~

오사무 :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간병을 부탁하는 거잖아요!

히메오 : 콜록, 콜록...하, 하아, 하아아...

히메오 : ...추워

히메오 : 콜록, 콜록.........어라?

         방금...현관에서...

히메오 : 아...

히메오 : 오, 오사무ㅆ...

분타로 : 실례합니당~

히메오 : 에...?

요시노리 : 과연...분명히 누워있군.

분타로 : 이렇게 더럽게 큰집에 혼자라...

         진짜 도움을 구해도 아무도 안 올것 같네.

히메오 : 당신들...어째서 여길?

요시노리 : 어째서...몰라?

분타로 : 자자, 고열로 누워있잖아.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요시노리 : 뭐, 그 덕분에 우린,

           아주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만.

히메오 : 편하게...라니?

분타로 : 혼자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네, 히메사마.

         이러면 저항은 꿈도 못 꾸겠군.

요시노리 : 게다가 이쪽은 성인 남성 둘...

           처음부터 승부는 정해졌구만.

히메오 : 저항이라니...?

         승부...라니!?

분타로 : 저기, 괜찮지?

         진짜 우리 맘대로 해도 되는 거지?

??? : 처음부터 그러라고 했잖아?

히메오 : 에...에...!?

요시노리 : .........(꿀꺽)

           독해, 너.

??? :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빨리 하기나 해요.

      아님, 혹시 쫄았어?

히메오 : 아, 아, 아...

분타로 : 아하하, 무서워라, 무서워...

         너만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군.........주인 언니.

히메오 : 토코짱~~~!?

미토코 : .........

요시노리 : 그럼...

분타로 : 가만히 좀 계셔줘야겠어...히메사마~

히메오 : 어, 어째서...토코짱, 어째서!?

히메오 : 꺄아아아아아아앗!?

.........

......

...

분타로 : ...가자고 쿠마짱.

요시노리 : 오우, 맡겨둬, 하치.

분타로&요시노리 : 엣호, 엣호...

(역시 만화 "얏타맨"에 나오는 구호라는군요)

히메오 : .........어?

히메오 : .........라?

히메오 : 어라...?

히메오 : 여긴...에?

미토코 : 추우면 저기 스토브 쫴.

히메오 : 에...

미토코 : 걱정마, 저거, 우리집에 있는 유일한 신제품이니까.

         작년에 메이커에서 옛날거를 5만에 사들인다고 해서,

         그때 바꿔 산거야...

히메오 : 토코...짱?

미토코 : ...테이블 위, 좀 치워줘.

히메오 : 여긴...나...?

미토코 : 그리고, 거깄는 받침대 좀 놔.

히메오 : 에...아...

미토코 : 죽은...먹을 수 있어?

.........

히메오 : 후우~, 후우우우우~

미토코 : .........

히메오 : 하으...

미토코 : .........

히메오 : 흐윽!

         아, 아흐...후우~, 후우우우우우우!

미토코 : ...물

히메오 : 고, 고마어...

         꿀꺽, 꿀꺽...후우

미토코 : .........

히메오 : 하음...

         꿀꺽, 꿀꺽...

미토코 : .........

히메오 : .........맛있다

미토코 : 그래

히메오 : 윽...(움찔!?)

미토코 : .........

히메오 : ...(안절부절)

미토코 : ...다 먹었어?

히메오 : 아, 아뇨!

         더 먹겠습니다!

미토코 : 그래...

히메오 : 후우우우우...푸우우우우우~!

미토코 : 아뜨거!?

히메오 : 미, 미안해 미안해!

         그쪽으로 튀었다~!

미토코 : 으으...

히메오 : 저, 정말로 미안해 토코짱!

         ㄴ, 나, 엄청난 실수를~!

미토코 : 됐으니까 먹어...

히메오 : 그치만, 그치만...

         토코짱이 화상을...

미토코 : 이 정도로 흔적이 남을 리가 없잖아.

         그냥 닦으면 돼.

히메오 : 저, 정말로?

         실명한다든가, 하반신 불구라든가,

         백혈병에 걸리거나 하지 않아?

미토코 : ...드라마 좀 골라서 보는 게 좋아.

히메오 : ...눼

미토코 : 가능한 한 지금 많이 먹어둬.

         그리고 약 먹어. 오늘은 목욕도 하지마.

히메오 : 토코짱...

미토코 : 그러니까 떠들 시간 있으면...

히메오 : 자, 잘 먹겠습니다!

.........

히메오 : 하흐, 하으...

미토코 : .........

히메오 : 꿀꺽...푸.

         ...후우~, 후우우우~

미토코 : .........

히메오 : ...(힐끗)

미토코 : ...뭐야?

히메오 : 으!?

         아, 아무것도 아냐!

미토코 : 그래...

히메오 : 후우우우우~!

         하음, 하음.........우물, 우물.

미토코 : .........

히메오 : 우물우물...꿀꺽...

미토코 : .........

히메오 : ...(힐끗, 힐끗)

미토코 : .........하아

히메오 : 어떻게...?

미토코 : 쿠마자키씨랑 야스나가군이 평소처럼 놀고 있길래,

         옆집 환자 좀 보쌈해서 데려오라고.

히메오 : 왜...다시 날 들여줬어?

         토코짱의 방에...

미토코 : 방금 말했지?

         옆집 [환자]라고.

히메오 : 응...

미토코 : 전기도, 가스도, 수도도 끊기고,

         난방도 안돼, 밥도, 물도 못 먹어.

         그런 열악한 환경에 환자가 있었다고...

히메오 : 하지만 난...

미토코 : 히메오 언니 말야...

         날 바보로 알어?

히메오 : 으!?

         미, 미안해!

         ...뭘?

미토코 : 그런 큰일을 당한 이웃을 내버려두고,

         희희낙낙거릴 정도로 히노사카가(家) 사람은 야박하지 않다고!

히메오 : 에...

미토코 : 으...미안, 소리지를 일이 아니었지.

         빨리 먹어.

히메오 : 토코...짱

미토코 : 그리고...자꾸 이쪽 보지마.

         지금은 아직, 마주보고 얘기하기 힘들어.

히메오 : 으...

미토코 : 미안...

히메오 : ...미안해

미토코 : .........

히메오 : 하흐...하음...

미토코 : .........

히메오 : 후우, 후우...으음...

미토코 : .........

히메오 : .........으

미토코 : .........

히메오 : 으으...으으...흐으으...

미토코 : 으...으...

히메오 : 으으으으으...흐윽, 으, 으윽...

미토코 : 이상한 소리...내지마...

히메오 : 으,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미토코 : 바보...

         어른이...뭐야 그게

히메오 : 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으으아아아아아아아앙~!

미토코 : 왜 내 주변 어른들은...

         애 앞에서 이렇게 서럽게들 우는 거야...

히메오 : 토코짱, 토코짱, 토코짜아아아앙!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흐윽, 으윽...으에에에에에엥~!

미토코 : 그러면...

         난 울 수 없잖아

히메오 : 미, 미안, 미안해, 정말 미아애!

         흐아아아아아아아앙~, 아~~~~!!!

.........

......

...

미토코 : .........

히메오 : .........

미토코 : ...이상

히메오 : .........

미토코 : 이걸로, 내 마음에 대해선 전부 말했어.

         정말로, 정말로...우리 둘 사이에 비밀은 아무것도 없어.

히메오 : 응...

미토코 : 납득했어?

히메오 : ...

미토코 : 말해두지만, 사과받아도 당황스럽다고?

         히메오 언니, 아무 잘못도 없으니까.

         정말로 나쁜 건 괜히 원망했던 나니까.

히메오 : 미안해...

미토코 : 내 얘기 듣고 있어?

히메오 : 내가 바보였어.

         토코짱의 말...말 그대로의 의미로만 이해하고,

         표정이나 말투 같은 거, 전혀 파악하지 못했어...

미토코 : 히메오 언니는 둔감한 게 아냐.

         단지, 내 마음이 히메오 언니의 상상을 뛰어 넘었을 뿐이야.

히메오 : 에...?

미토코 : 인간은 말야...[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은,

         설령 눈앞에 있다고 해도 전혀 보질 못한대.

히메오 : 그런, 거야?

미토코 : 그러니까 히메오 언니는 알아채지 못했어.

         날, 착한 아이라고 오해하고 있었잖아?

히메오 : 토코짱은 착한 아이야...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미토코 : 마마의 딸이라고? 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주변에 보이는 게 없어지고,

         분명...모든 걸 버릴 못된 인간이라고?

히메오 : 나도 마찬가지야...

         알게된 건 바로 얼마전이지만.

미토코 : 아~~...후련하다.

         이걸로 우리, 화해한거지?

히메오 : 괜찮겠어, 그래도?

미토코 : 그치만 나, 히메오 언니가 너무 좋은 걸.

         좋아하는 사람이 우는 거, 보고 싶지 않은 걸.

히메오 : 나도 토코짱이 우는 거 보고 싶지 않아...

미토코 : 그러니까 난 이제 안 울어.

         근데 히메오 언니는 툭하면 우니까 말이지.

히메오 : ㄴ, 내가 더 어른인데...

         내가, 원래는, 참아야...

미토코 : 그럼 상상해볼까.

         오사무군이랑 헤어지고, 집으로 끌려가,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게된 두 사람을.

히메오 : 에?

미토코 : 눈 감아~, 상상해봐~

         나고야의, 정겨운 자신의 방. 하지만 전화도 없어.

         밖에서 걸어 잠그는 문에다, 나갈 땐 항상 누군가 붙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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