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약간의 틈...
나도 히메오씨도 일 때문에 늦어진 밤에,
[자고 있었다]라는 변명처럼, 눈을 붉히고 있던.
그런 미토코짱은, 평생 보고 싶지 않다.
히메오씨가 정말로 그녀를 구해줄 거라면,
지금이라면 난 주저않고 눈앞에 있는 손을 잡겠다.
히메오 : ...나를,
토코짱에게 있어서 첫번째라고 인정하는 거야?
오사무 : 언니니까 당연하잖아요?
진짜로 손을 잡으면 분명 이소리저소리 들을 테니,
실제로는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만.
히메오 : 그건, 패배선언?
오사무 : 하지만 기분 좋은 패배예요.
히메오 : 내가 토코짱을 거두겠다고 해도?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해도 허락할 거야?
오사무 : 지금이라면 믿을 수 있어요.
히메오 : 당신...
오사무 : 당신이 미토코짱의 혈연이라면,
그건 저도 바라는 바예요.
한지붕 아래에 살고, 같이 일을 하면서
요 한달로 알게된 것이 있다.
세상물정 모르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리도 무모함도 야비한 모습도 보이지만.
그 행위는 분명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 숨겨져 있고,
서투르고, 직선적이고, 어떤 때라도 진심이라는 것을.
오사무 : 저나 아파트의 모든 이들은,
낮의 미토코짱에게밖에 도움을 줄 수 없어요.
하지만 히메오 씨라면 언제든지 곁에 있어줄 수 있어요.
같이 등 닦아주기라든가, 자기 전의 수다라든가...
호노카씨의 포지션을 그대로 메워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오사무 : 그러니까 얘기하세요.
당신이 미토코짱의 친언니라는 것을!
히메오 : .........
오사무 : 확실히 처음엔 여러 가지 힘들겠지만...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언니]라고 불러줄 테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언니는 "오네짱", 평소에 미토코는 "히메오상"이라고 부르죠)
미토코짱이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확실한 인연의 끈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오사무 : 저도 같이 설득하겠어요.
뭣하면, 아파트에서 호노카씨를 기다리는 역할은
저 혼자한테 맡겨도 좋아요.
낮의, 기특하고 활기차고 배려심있는 미토코짱 뿐만 아니라,
밤의, 고집스럽고 어른에게 투정부리는 미토코짱까지도
전부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오사무 : 그러니까 히메오씨는,
미토코짱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하세요.
히메오 : 아...
덤으로...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미토코짱을 너무나 좋아하는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눈앞의 이 사람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히메오 : .........
오사무 : .........
내 강렬한 시선을 피하듯,
히메오씨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손을 바라보더니.
히메오 : ...아퍼.
오사무 : 에...?
히메오 : 그렇게 세게...잡지마.
오사무 : 아앗, 어느새!?
고개숙인 시선의 앞에 있는,
자신의 손에 겹쳐져 있는 내 손을 보고 고통스럽게 말한다.
오사무 : ㅈ, 죄송합니다,
분명 안 그러려고 했는데...어느샌가.
히메오 : 안 그러려고 그랬다는 건,
사실은 내 손을 잡고 싶었다는 소리?
무의식적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오사무 : 에? 아, 아뇨, 그건, 그게...
히메오 : .........
오사무 : 으음...그러니까요, 그게...
히메오 : .........
오사무 : ...그런 게 아닐까하는.
이 무슨 일인가...
나는 히메오씨의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해,
진짜로 잡았던 것 같다.
히메오 : .........풋
오사무 : 아...
히메오 : 아, 아하, 아하하하하핫,
흐흐, 후후훗...아하하하하하하핫
오사무 : 아, 아뇨, 그러니까 그...사과했잖아요.
히메오 : 흐흐...흐흐흣...
당신 꽤나, 뭐랄까, 그...아하하
오사무 :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요!
그렇게까지 비웃으면
남자로서 창피하다고나 할까,
역시나 목소리가 갈라진다고나 할까.
히메오 : 아냐아냐, 그게 아니야...아하하하...
오사무 : 그럼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가요?
저를 그렇게까지 바보 취급해서 좋은가요?
히메오 : 아니야, 바보 취급하는 게 아냐.
단지...옛날의 나도 그런 식으로 진지했구나 해서...
오사무 : 옛날의..라뇨?
히메오 : 도대체 말야, 토코짱이 내 동생이라니,
그런 지방 방송국의 오후 멜로 드라마 같은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오사무 : .........네?
히메오 : 그때는 나도 어린애였어.
겨우 한장의 사진으로 그렇게까지 망상을 하다니.
오사무 : .........눼에!?
제9화 : 모르는 건 맨정신인 사람뿐
(철컥)
히메오 :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일찍왔네.
오사무 : .........
히메오 : ? 좋은 아침이에요.
오사무 : .........
히메오 : 저기, 왜 인사 안 해?
그런 건 사회인 실격이라고 설교했던 게 누구더라?
오사무 : .........
히메오 : 그렇게 어젯밤 속았던 게 창피했어?
...오사무 씨
오사무 : 이럴 때만 이름 부르지 마세요!
히메오 : 뭐 어때.
아직 아무도 안 왔다고.
얼마전까지
[토코짱 앞 이외에는 내 이름 부르지마]
라고 쏘아붙였으면서...
아니, 그것보다 그런 엄청난 네타로 나를 놀리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었는데...
오사무 : 아무튼, 당분간 저한테 말걸지 마세요.
지금은 멀쩡하게 대화할 자신이 없다.
히메오씨가 나를 볼 때마다,
히죽히죽거리며 승리의 웃음을 날리는 이미지가 떠올라,
너무 창피한 나머지 밤에 잠도 못잘 것 같다.
히메오 : ...왠지 눈이 좀 빨게 보이는데?
오사무 : 어젯밤 잠을 안자서.
[잠을 못잘것]같진 않았다.
히메오 : 그렇지? 창피했지?
인생에 있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얘기가
단순히 얼빠진 착각이었으니까 말이지.
오사무 : 그러니까!
옛날에 호노카씨가 사와시마 준페이씨의
도우미 역할을 했던 건 사실이었다.
미토코짱이 태어났을 때,
호노카씨의 남편이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호노카씨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건,
미토코짱이 태어나기 반년전이었기에,
계산이 안맞을 이유따윈 전혀 없어 보여서.
덧붙여 말하면,
히메오 씨 어머니의 사진에 대한 거부감은 엄청나서,
아이는 물론 자신의 사진조차 한장도 남겨놓지 않았다든가.
히메오 : 우리 아버지도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사진을 남겨놨다니까.
하지만 뭐, 찍어두고 싶은 기분은 알겠으니까.
그 사진은 호노카씨와 미토코짱이 퇴원했을 때,
그때까지의 친분으로, 사와시마가(家)의 운전수를 마중보내,
아파트까지 데려왔을 때 찍은 사진이라는 것 같아서.
오사무 :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죠...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속아서 진지하게 떠든
내 쓰라린 언동이 사라질 리는 없어.
히메오 : 나도 착각이라는 걸 알게됐을 땐,
3일동안 가족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
사실 가출 같은 것도 진지하게 생각했었으니.
히메오씨는 이미 추억이 되었으니 괜찮지만,
어젯밤의 생생한 기억이 남아있는 나는,
웃으며 말하기에는 얼굴이 너무 화끈거린다.
히메오 : 아~, 후련해.
오사무씨한테도 나랑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해서.
오사무 : 그거 악취미예요, 히메오 씨..
저쪽이 [오사무 씨]라고 대놓고 부른다면,
내가 [히메오 씨]를 주저할 이유는 없다.
아니 그것보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성질이 나서,
그녀를 존대할 수 없을 것 같기에.
히메오 : 그런데, 정말 간단히 믿어 버리네?
당신, 호노카씨를 좋아했던 거 아냐?
오사무 : 제발 그만...
하긴, 이전의 나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하지만 이 아파트에 와서
가치관의 여러 부분이 허물어졌으니.
히메오 : 뭐, 하지만 미안해.
조금 말야...시험해보고 싶었어.
오사무 : 뭐를 말인가요?
히메오 : 당신이 얼마나 진지하게
토코짱을 생각하고 있는지.
오사무 : 이제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히메오 : 음, 진짜야.
설마 토코짱을 놓아주리라는 각오까지 할줄이야...
가정 법원의 판사가 타다스케였다면 내가 졌을거야.
오사무 : 아뇨, 애당초 잡아당기질 않았으니까요, 판관님!
나는 떨어뜨린 세푼 다 감사히 받을 위인이고.
(과거 에도시대에 실존했던 [오오오카 타다스케]란 인물의 얘기입니다.
현명한 판단을 잘했던 관료라고 전해집니다.
우리가 솔로몬왕의 판결로 흔히 아는, 아이에 관련된 일화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떨어뜨린 세푼은 역시 타다스케란 인물과 관련된 일화로,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당시의 화폐단위이던 3량을 주워서
주인을 찾아 전해줬더니, "난 내품에서 떠난 돈은 내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함께 받지 않자, "원래 내것이 아닌지라 나도 가질수 없다"라고 주운 사람이 말해
다투게 되자, 타다스케를 찾아가 해결을 구했다는 얘기로,
오오오카 타다스케는 자신의 주머니에 1량을 꺼내 4량을 만든다음,
원래 주인에게 2량, 주운 사람에게 2량을 주었답니다.
그리고 원래 주인은 3량을 가져야 하는데 2량, 주운 사람은 그냥 가졌더라면 3량인데 2량,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1량, 다들 1량씩 손해봤으니 이걸로 공평하다, 라고 했더니
다들 군말없이 받아들였다는, 그런 얘깁니다. 세 사람이 1량씩 손해라고 해서
[三方一兩損]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회자되는 얘기라고 하는군요)
히메오 : 저기, 오사무 씨.
오사무 : 뭔가요, 히메오 씨!
지금까지 서로 으르렁거린적은 몇번이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보다 그녀쪽이 언성을 높였었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짓궂은 미소를 보게 되면,
아무래도 그 반응에 익숙지 않은 내쪽이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게 되고만다.
히메오 : 안 진다고?
오사무 : 에...
히메오 : 당신이 토코짱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거,
사실 꽤 기뻐.
오사무 : 에에?
히메오 : 하지만 말야...나 역시,
토코짱에 있어서는 질 생각이 없어.
오사무 : 히메오...씨?
히메오 : 따라서 선전포고.
앞으로도 정정당당하게 토코짱을 놓고 다투자고.
오사무 : 지금까지도 정정당당하게 해왔는데요...
히메오 : 일부러 동일한 조건에서 싸우기 위해,
당신을 이 회사로 끌어들인 거라고?
진짜 공명정대하지 않아?
오사무 : 그러면 어째서 자신의 직속 부하로 삼았나요?
처음에는
나를 골탕먹일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였는데요.
히메오 : 음~...뭐, 아무렴 어때?
결과가 올라잇이니까.
오사무 : 하아...뭐, 됐어요.
그럼 그 선전포고, 받아들이겠습니다.
히메오 : 응, 이걸로 오케이.
우선은 토코짱의 가정 교사 승부네.
오사무 : 지지 않는다구요.
미토코짱은 반드시 제가 행복하게 만들 거예요!
히메오 : .........
오사무 : ..?
히메오 : .........
오사무 : 히메오 씨?
히메오 : 에? ㅇ, 아, 왜?
오사무 : 왜 그러나요?
갑자기 아무말없이.
히메오 : ...왜 그럴까?
오사무 : 아뇨, 제가 물어봤는데요...
히메오 : 그렇, 지.
오사무 : 하아...됐어요.
청소나 할까요.
히메오 : ㅇ, 응...
결국 마지막순간만은 흐지부지인 채로,
우리들의 조례는 끝을 맞이했다.
뒤에 남은 건, 변치않는 내 수치심.
출발점으로 돌아온, 미토코짱의 친권 다툼.
...약간은 인상적이었던, 히메오씨의 미소.
그리고 세 사람의 시간만이 아닌,
두 사람만 있을 때도 이름으로 부르는 룰.
히메오 : 뭐지...?
히메오 : 조금, 따끔했어.
.........
아사미 : 자, 이게 과거 5년간의 슈우센대 부속고의 입시 문제.
미토코 : ㄱ, 고마워요 선생님.
근데, 저기 말야..
아사미 : 과거 문제라고 해도, 일반 입시에 나온 것밖에 없으니까.
특별 시험은 이것보다 훨씬 어려울거야.
미토코 : 응, 알고 있어.
그래서 말야...
아사미 : 특별 시험의 과거 문제도 찾고 있는데,
언제쯤에나 손에 넣게 될지 알 수가 없어, 미안해.
미토코 : 그런걸로 사과할 필요없어.
선생님이 특별히 신경써주는 거니까.
하지만 조금...
아사미 : 그래, 공부는 잘 돼?
여름 방학 끝나고 친 실력 테스트 성적은 꽤 좋아졌지만,
아직 장학생의 길은 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