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87)

아무래도 똑같은 타이밍에

돈을 넣으려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친 것 같다.

평소 모금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건 기적적인 타이밍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으음...내 500엔은...

모금 소녀 : 우와아아아앗!?

            크, 큰일이다, 다들 주워주세요!

오사무 : 아, 괜찮아요.

         여기 찾았으니까요.

모금 소녀 : 아앗, 날아간다!

            죄송합니다, 다들 도와주세요!

오사무 : 그러니까 그렇게까지.........에?

내 500엔 동전을 줍고 고개를 든 순간...

역앞이, 엄청나게 쉬르한(초현실적인) 광경으로 뒤덮인다.

오사무 : 뭐야...이건?

눈앞에서 춤추는, 수십장의 지폐.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봐도,

최근의 나는 별로 본적이 없는 지폐.

오사무 : 마...만엔짜리!?

모금 소녀 : 앗, 언니, 기다리세요!

            여러분 좀 진정하세요~!

모금 활동을 하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통행인도 갑자기 공중에 날리는 만엔짜리 지폐의 강림에,

너도나도 뛰어든다.

역앞은 겨우 10초도 안돼서,

엄청난 패닉에 빠져들었다.

모금 소녀 : 언니, 거기 언니~!

            누, 누가 경찰 좀 불러주세요~!

오사무 : 저건...

그런 와중에, 모금을 하던 아이가 가리킨 방향에는,

어딘가에서 본 듯한 뒷모습이 달려가는 것이 보여.

.........

??? : 하, 하아, 하아...미션 실패.

      빨리 여길 떠나자 사사키!

??? : 네, 아가......아.

??? : ㅇ, 왜 그래 사사...아

오사무 : .........

히메오 : .........

사사키 : .........

그 소동속, 떠나가는 뒷모습이 왠지 낯익어,

따라가 보니...

정체를 알게 되자,

이게 또 엄청나게 당황스럽다는.

오사무 : 아, 안녕하세요, 우연이네요...

히메오 : .........

그렇다고 하나, 따라온 이상,

말을 안 걸수는 없어서.

사사키 : 아, 그, 그러네요.

         이야, 오늘도 날씨 좋네.

오사무 : 정말로...

         올해는 장마가 짧으려나요?

사사키 : 아, 그런 것 같네요.

         하지만 장기 예보에 따르면, 여름에는 태풍이 많을 것 같다던가.

오사무 : 아, 그런가요.

         그럼, 가뭄 걱정은 안해도 되는 건가?

사사키 : 하지만 태풍이 지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겠죠.

오사무 : 아, 그것도 그러네요.

         한쪽이 좋으면 다른쪽이 안 좋은...

사사키 : 어차피,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거죠.

오사무 : 그것도 그러네요, 아하하...

사사키 : 아하하하핫.

히메오 : 뭘 날씨 얘기로 그렇게 떠들고들 있어?

오사무 : 사와시마씨가 아무말도 안 하길래...

사사키 : 아가씨가 반응이 없으시길래...

히메오 : 뭐야! 전부 내 탓이라고 하는 거야!?

오사무 : .........

사사키 : .........

나와 사사키씨는 [그치만 사실인 걸?] [그렇죠?]라는

아이 콘택트를(선그라스 너머로) 했지만,

일단 비밀로 해뒀다.

히메오 : 그래서, 무슨 일이야?

         나도 바쁘니 짧게 부탁해.

오사무 : 아뇨, 실은 말이죠...

히메오 : 잘못 안거야..

오사무 : ...아직 얘기 안 시작했는데요.

히메오 : ...그래서, 뭐야?

오사무 : 방금 역앞에서 이걸 주웠기에 전해주려고.

히메오 : 잘못 안거야.

...그럴 줄 알았다.

오사무 : 죄송합니다, 다 주울 수가 없어서.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건, 2장의 만엔 지폐.

눈앞을 날아다니기에 우연히 잡을 수 있었던,

종이눈의 일부.

히메오 : 난 모른다고 했지?

오사무 : 그건, 이미 기부했기 때문인가요?

히메오 : .........

오사무 : 역시, 당신이었군요.

모금함에 돈을 넣으려고 했을 때,

부딪친 상대의 옷이 살짝 눈에 들어왔었다.

그때의 이미지가, 내 기억을 환기시켰기에,

그녀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로.

오사무 : 왜 도망가죠?

         아무 잘못도 안 했잖아요?

잘못은 커녕, 엄청난 선행이다.

역앞에서 날아다니던 지폐다발은, 어름 잡아도 100장 이상.

그걸 전부 모금함에 넣다니,

어떤 의미로 제정신이 아니다.

...아니 정상이라면 은행에 넣지.

오사무 : 뭐, 패닉에 빠져서 급히 도망쳤지만...

         다시 한번 가보는 게.

히메오 : 시끄러워.

         도대체 언제까지 이상한 착각을 할 생각이야?

오사무 : 착각, 인가요?

그럴 리는 없는데...

분명, 작은 소리였지만,

[아앗!]이라는 그녀의 비명도 들었으니.

히메오 : 착각도 엄청난.

         아주 천문학적으로 말이지.

오사무 : 흑이냐 백이냐의 착각에서 양의 많음은 별로 관계없는 듯한...

히메오 : 되게 쪼잔하게 말많네 당신!

오사무 : 죄송합니다...

방금 그거, 미토코짱한테 혼나는 기분이었다...

히메오 : 애당초, 당신 우리집안에 대해서 알고 있지?

         그렇다면 내가 이런 자선 사업에 전혀 흥미가 없을 거라는 것도.

오사무 : 으음~...

최근, 왠지 이 사람에 대한 의혹이 심해지고 있다.

정말로 사와시마의 딸인가?

아니, 그건 진짜겠지만,

정말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와시마]의 사람인 걸까?

미토코짱에 대한 친절은,

어떻게 봐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의로 보이고,

사사키씨도, 때때로 꽤 괜찮은 사람이고.

그리고 저 눈빛...

잠시 방심하면, 금새 냉정함이 사라져,

온화한 표정이 되고 마니.

이상하다, 어떻게 봐도 이상하다...

히메오 : 대체 말야, 당신이야말로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오사무 : 네? 저요?

히메오 : 겨우 4~5년 사이에,

         그 카마타 상사에서 대체 무슨짓을 한 거야 당신은?

오사무 : 그, 그건...

그 부정 사건의 일...

거기까지 조사했던 건가. 역시 사와시마.

오사무 : 그, 그때는, 제가 할 수밖에 없었어요...

...왜 내 이력 같은 쓸데없는 걸 조사했는지는

지금 생각 않기로 하고.

히메오 : 그렇다고 해도...

         그 규모의 프로젝트를 당신 혼자서 했다니...

오사무 :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누구도 희생시킬 수는 없었어요.

대단하군...

대체 어디까지 조사한 걸까?

오사무 : 그리고, 제가 한 거는, 단순한 뒷정리였으니까요.

         뭐랄까, 책임지는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히메오 : ...그렇게 생각해?

오사무 : 생각하고 뭐고, 사실이니까요.

히메오 : .........뭐야 이 바보?

오사무 : ㅎ, 확실히 바보지만요...

         그걸로 조금이라도 전 직장에 공헌을 했으니까요.

         그러니 상관없습니다.

히메오 : .........

오사무 : 저기...죄송한데요.

         이 돈, 사와시마 씨 게 아니지요?

히메오 : 에? ㅇ, 어...그래.

오사무 : 모금하는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히메오 : 그래.

내가 불러 세웠지만,

오늘은 먼저 철수할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아픈곳을 찔렸다.

오래된 상처는 서서히 아파오는구나.

그리고, 다음 면접 시간이 다가온다.

분명, 전철로 두 정거장이니...

히메오 : ...미치하마 상사?

오사무 : 에? 아, 이거 말인가요...

내 옆구리에 낀 서류 봉투에 적힌 로고를,

무슨 이유에선지 사와시마씨는 뚫어져라 바라본다.

히메오 : 거기...지원해?

오사무 : 그런 건 당신하고 아무...

         죄송합니다, 잠시 감정적으로 됐습니다.

         네, 지원했어요. 이제 면접이라서.

히메오 : 그만두는 게 좋을 걸?

오사무 : 그런...

         되는지 안 되는지는,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 아닌가요...

히메오 : .........

오사무 : 아, 죄송합니다, 또...

         실례하겠습니다.

(다다다)

왠지 오늘은 감정이 자주 흐트러지네...

처음에는, 그 사와시마 씨랑,

훈훈한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정신차려야,

.........

사사키 : 아가씨, 괜찮을까요?

         미치하마 상사라면, 분명.

히메오 : .........

사사키 : 아가씨?

.........

(똑똑)

오사무 : 누구신가요?

         영감님?

??? : 아, 아~, 그래 맞아.

      잠시 실례 좀 하겠네 소주인?

오사무 : ...쿠마자키 씨?

??? : ㅇ, 오우, 잘 있었나 리스토라. 들어간다?

오사무 : ......야스나가 군?

??? : ㅇ, 오우 리스토라...앗 아니다, 전에거랑 똑같잖아.

      으음~, 으음~...

오사무 : .........하아.

         들어오세요, 카야 씨.

(드르륵)

카야 : 알고 있었으면 빨리 들여보내 달라고.

       이 모습으로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수치 플레이가 취향이야?

오사무 : 그러니까 저는 그 차림으로 있으라는 말은 한번도...

카야 : 좋으면서.

       눈은 반짝거리면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니 알 수 있다고.

오사무 : 거짓말하지 마세...

         죄송합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옆에 들리게 하고 싶지 않으니.

오늘은 쿠마자키씨의 방에서 마시는 것 같으니,

아마 괜찮을 것 같지만.

카야 : 카나페 만들어왔어.

       그리고 얼음하고 스카치하고 와인하고 맥주.

       이 방에 냉장고 없지?

오사무 : 그런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고 있는 건,

         미토코짱외에는 당신 뿐이에요.

쿠마자키 씨 방은,

PC관계 제품만으로 차단기가 아슬아슬한 상태인 것 같지만.

카야 : 그럼, 건배할까?

       오사무 군, 와인이랑 맥주, 어떤거로 할래?

오사무 : 아아아~ 책상다리 하지 마세요...

         앞으로 구부리지 마세요...

카야 :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질 않네.

       선을 넘을 때까진 계속 이러려나?

그렇게 노골적으로 도발하지 마세요...

.........

(띠링~)

카야 : 그래, 어땠어 오늘은?

오사무 : 아뇨...하나는 틀렸어요.

         다른 하나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여기도 아마.

면접때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 전에 봤던 회사의 충격이 컸던 건가.

카야 : 그래...

카야씨는, 언제나처럼 결과만을 확인하고는,

더이상 흥미가 없다는 듯이 자기패를 들여다본다.

오사무 : 그것 뿐인가요?

카야 : 으으응(아니), 똥광 뽑았어.

       비사광 리치.

오사무 :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말이죠...

자세히 물어와도 좌절할 뿐이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으면 나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나 할까.

애당초 묻고 싶은 게 없었다면,

뭐하러 밤중에 남자방에 왔는지, 이 사람은.

...물론, 어떤 선택지를 철저하게 배제한 상황에서의 얘기지만.

카야 : 오사무 군에 대해선 별로 걱정 안 하니까.

       그냥 흥미가 있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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