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87)

카야 : 성실하시네~

오사무 : ㄴ, 네...그래서 말인데요...

대, 대하기 힘들다...

별로 놀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는데,

전신에서 뿜어져나오는 느긋한 분위기가, 뭐랄까...

오사무 : 하나같이 전부, 클레임이에요.

         주문한 제품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전화가 12건이나.

카야 : 우와, 죽인다.

내가 보여준 12장의 전화 연락 메모를 받아들더니,

아마기씨는, 한장 한장 넘겨보더니, 불빛에 비춰본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오사무 : 일단, 상대의 연락처도 전부 적어뒀는데요,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카야 : 으음~, 일단 사장님 자리에 놓아둬.

       아마 낮에는 나오실 것 같으니까.

오사무 : 낮에라니...하지만,

         30분 이내로 연락드리겠다고 대답했는데요.

카야 : 걱정마 걱정마, 이제와서 뭐...

오사무 : 이, 이제와서...?

카야 : 아, 으음.........일단 신경쓰지 않는 방향으로.

오사무 : 이, 일단...?

뭐지...

이, 등뒤를 타고 올라오는, 미묘한 위화감은...?

미토코 : 고마워요 히메오 언니.

         덕분에 지각 면했어요~.

         ...눈, 붓지 않았으려나?

히메오 : 돌덩이 같아~

미토코 : 에엣!?

히메오 : 거-짓-말. 엄청 섹시해.

         여자의 눈물은 최종 병기니까,

         지금이라면 누구든 넘어가게 만들걸?

미토코 : 아니, 저기...진짜로 괜찮아?

히메오 : 괜찮아. 아무도 모를 정도로 가라앉았으니까.

미토코 : 그런가...그럼 됐어.

         고마워 히메오 언니. 좀 후련해졌어.

         그럼 갔다올게~!

히메오 : 아, 잠깐만, 토코짱.

미토코 : 응?

히메오 : 그...다시 한번 생각해볼래?

         아까 했던 말.

미토코 : 에...?

히메오 : 지금이 토코짱에게 있어 힘든 시기니까,

         냉정하게 생각하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지?

미토코 : 히메오, 언니.

히메오 :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나,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

미토코 : .........

히메오 : 응?

미토코 : ...고마워.

         그렇게까지 날 생각해줘서.

히메오 : 토코짱...그럼!

미토코 : 정말로, 고마워.

         하지만 말야...지금은 그럴수는 없어.

히메오 : 에...?

미토코 : 쬐~끔, 피곤한 물건을 떠맡아서 말야.

         쉽게 털어버릴 수가 없어.

히메오 : 에?

미토코 : 미안해, 정말로 미안...

         아, 이러면 안되는데, 그 물건의 말버릇이 옮았네.

히메오 : 에에?

미토코 : 아하하...그럼, 히메오 언니.

         오늘저녁에 우리집에 놀러와~.

         맛있는 식사 해줄테니까!

히메오 : 아! 저기 잠깐, 토코짱~!?

(딩-동-댕-동...)

.........

사사키 : 아가씨...

히메오 : .........

사사키 : 아가씨, 이제...

히메오 : 사사키

사사키 : ㄴ, 네?

히메오 : 아까 그 남자..뭐라고 했지?

사사키 : 요시무라 오사무...말씀이십니까?

히메오 : 조사해봐.

         출생, 경력, 가족 구성부터 여성 편력까지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벗겨내.

사사키 : 그 남자를...?

히메오 : 아무래도...전략을 잘못 짠거 같아.

사사키 : ㄴ, 네?

히메오 : 진짜 키 퍼슨(key person)이,

         실은 불과 한달전에 온 녀석이라니...

         좀, 의외네?

사사키 : .........

히메오 : 제법인데...

         기후현 출신 주제에...!

오사무 : 하아아아아아아~...

카야 : 고생했어~

오사무 : ㄴ, 네...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기에는

정신적 피로가 좀 심하다.

사무실의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다.

보통 회사원이라면, 한창 야근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간대.

하지만 출근 첫날의 초보 중도채용 사원에게 있어선,

오늘은, 여러 가지 의미로 지쳐버렸다.

카야 : 고생했네~, 신입 씨.

       혹시, 버티기가 특기?

오사무 : 하, 하하...아뇨 전혀.

지쳤다지쳤다...

아침, 출근 시간전까지 12건이었던 크레임 전화는,

최종적으로는 41건까지 늘었다.

참고로 한번 걸려왔던 곳으로부터의 재촉 전화는 뺀 숫자.

하지만 이쪽은 오늘 막 채용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일단 내용과 연락처를 듣고 메모를 남기고,

그 이후로는 계속해서 사과.

이 작은 회사에, 생각보다도 많은 거래처가

있다는 걸 안 것은, 어떤 의미로는 좋은 일일수도 있지만,

그걸 상회할 정도의 이 암운(暗雲)은 대체 뭘까.

대체 오늘, 사장은 물론이고 눈앞에 있는 아마기 씨 이외의 사원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책상은 적어도 4~5개 되니까,

다른 사원도 있을텐데.

카야 : 자 그럼...사장님도 오실 기색이 안 보이니,

       이제 그만할까.

오사무 : 아, 네...

어느샌가 자신의 책상에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던 아마기씨가,

위로하듯이 말한다.

...아니, 이 사람의 말투는 하루종일 이런 분위기였지만.

좋게 말하면 치유계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가능성도 버릴 수 없다.

카야 : 아...맞다.

오사무 : ㄴ, 네, 무슨일인가요?

카야 : 환영회.

오사무 : 네?

카야 : 항상 가는 선술집인데, 괜찮아?

       회 같은 게 맛있는데.

오사무 : 죄송합니다, 주어나 술어나 목적어를

         상황에 맞춰 보충해주실 수 없으신가요?

카야 : 신입사원 환영회. 8시 반 개시.

       선술집 [토메조우]에서. 아, 오늘.

오사무 : 에...?

카야 : 참석자는...오늘 출근자와 동일.

       인데, 예정은?

오사무 : 내 예정?

카야 : 내 예정.

오사무 : 아마기 씨, 랑?

카야 : 아마기 씨, 랑.

오사무 : 에? 그, 그렇지만...

카야 : 사줄게?

       회사 회식비가 좀 남아있으니.

오사무 : 윽...!

단 둘이서 회사의 환영회라고 하는,

좀 쓸쓸한 회식은 제쳐두고라도.

마지막의 [사줄게]라는 한마디는,

꽤 강한 임팩트를 내 위장에 가져다줬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말의 회식비, 아직 받아내지 못했다.

아니 아마도, 그건 영원히 받아내지 못하겠지.

그렇지만...

혹시 미토코짱은,

내 첫 출근의 고생담이나 실패담이나 우는 소리를 들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고대하며 기다리는 옆에서.

(그럼, 그렇게 하지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그냥 가겠습니다) ===

오사무 : 아뇨, 오늘은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모처럼 말씀해주셨는데 죄송합니다...

한끼 사주는 건 너무나 고맙지만...

분명, 전화 한통만 하면 용서해 주겠지만...

그래도, 아마 그때 나올 비아냥거림 한두마디는,

분명 내 속을 후벼팔 것이라는 건 쉽게 상상이 간다.

카야 : 아, 혹시 부인이 기다리나?

       눈치없이 굴었나?

오사무 : 부, 부인이라뇨 말도 안되는!

         대체 얼마나 나이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카야 : .........

오사무 : 아...

카야 : 으음, 그건 다시 말해...

오사무 : 잊어주세요...

.........

오사무 : ...아

테라스하우스 히노사카로 이어진 직선길 앞.

즉, 내 목적지에, 자그맣게 보이는 그림자.

??? : ...아

그림자도 이쪽을 알아본듯,

살짝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걷던 발걸음을,

아주 조금, 서두른다.

........

오사무 : ...다녀왔습니다.

미토코 : 어서와.

         첫 출근 고생했어.

오사무 : 뭐해, 여기서?

미토코 : 음~, 바람쐬어.

오사무 : 아직은 좀 춥다고.

5월 중순의, 게다가 밤.

저녁도 아닌 시간. 낮에도 별로 덥지 않은 시기.

미토코 : 달이 아주...

오사무 : 빨갛네.

늦게 뜨기 시작한 보름달은,

대기 가스에 둘러싸여 불그스름했다.

미토코 : 거참 쪼잔하네, 리스토라 씨.

         그러면 평생 아무하고도 결혼 못한다?

오사무 : 기왕 말나온김에 한 마디 더하면,

         나는 리스토라가 아니라니까.

미토코 : 그런 부분이 쪼잔하다고 하는 거야.

         자꾸 같은말 중얼거리지마.

오사무 : 미안.

그런 나를 능가하는, 잔소리 대마왕인 소녀에게,

더이상 무리하게 반론하지 않았다.

미토코 : 그렇게 금방 사과하는 버릇도 고쳐야지.

오사무 : ...신경쓰겠습니다.

미토코 : 응.

이 일련의 대화로, 나는 이해한다.

집주인님께서는, 오늘 아침의 노여움을 풀어주셨다는 것을.

그건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황송한 은혜로.

미토코 : 뭐, 나도 말이 좀 심했어. 미안.

         리스토라 씨라면 조만간 좋은 사람 만날거야.

         ...겉모습만은 멀쩡하니까.

오사무 : 됐어.

         난 이제 결혼할 생각은 없으니.

[겉모습만은]에 쪼잔하게 반론하고 싶었지만.

미토코 : 그런...

         마마한테 심하게 차였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하는 건 일러.

반론하지 말자, 반론하지 말자...

오사무 : 아니, 뭐, 그것도 있지만, 그쪽은 단순한 계기 같은 걸로.

         이번일로 깨달았다고나 할까...

미토코 : 뭐를?

오사무 :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던 거야, 나는.

         힘든지, 슬픈지, 아니면 기쁜지, 즐거운지...

따라서, 자연스럽게 맞춰줄 수밖에 없다.

상대가 화나지 않았어도, 일단 사과해야 한다.

오늘날까지 누구에게 지적받은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지...고치지 못했던 것 뿐이다.

오사무 : 이런 나니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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