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87)

콕, 콕

오사무 : .........어라?

뒤를 돌아보니, 등뒤를 콕콕 찌르는 감촉.

그렇다는 건 역시 현관에...

오사무 : 역시 없다...

(부스럭)

??? : ...시비?

오사무 : 아...

손에 든 꽃다발이 밑으로 축 내려지자,

내 시야에,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사무 : 아, 죄, 죄송합니다!

         밑에쪽이 보이질 않아서...

여자애 : 게다가 시비라는 걸 당당하게?

오사무 : 에? 아!

         겨, 결코 그런 의도로한 발언이 아니라...

난감하다...

저 아래쪽에 있는 작고 예쁜 얼굴은,

아마도 원래 조금 치켜 올라간 것으로 보이는 눈을,

얼굴의 근육을 이용해 더욱 치켜 뜬다.

다시말해 이유는 모르지만 화내고 있는?

여자애 : 확실히 반의 다른애들과 비교해도 좀 작다고는 생각한다고?

         그래도 메이지 시대 때의 이 나이대 평균 신장과 비교해보면,

         아주 조금 작은 것 뿐이니까 말야?

오사무 : ...그런가요?

여자애 : 그것보다도 비상식적인 건 그쪽이야.

         도대체 키가 몇이야?

오사무 : 에? 아 그게...

         작년 건강 검진에선 189센티였나...

여자애 : 백팔십......구!?

오사무 : ㄴ, 네......죄송합니다...?

여자애 : 189빼기...으음...사, 45센티나 커?

오사무 : ...144센티인가요?

여자애 : 나, 남의 일을 파고들려고 하지마!

오사무 :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그런 간단한 일차방정식을 제시한다면.

여자애 : ...그게 아니다.

         그래서, 누구시죠?

오사마 : 에...

여자애 : 우리집에 무슨 일이신가요?

         신문이라면 안 됐지만 안 봐요.

오사무 : 아, 아니라구요.

         신문의 권유 같은 뻔번한 태도는

         태어나서 한 번도 취한 적이 없으니까요.

애당초, 권유의 경품에 꽃다발을 줄만한

풍류적인 판매점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여자애 : 그럼...?

오사무 : 그, 그게, 저는...방금전에도 말했지만,

         요시무라라고 합니다.

여자애 : 그래서?

오사무 : 시, 실은 그게...

         ㅇ, 여기의 집주인이신 히노사카 호노카씨와

         3개월 정도 전부터 만남을 가져오고 있어서...

여자애 : 마마...랑?

오사무 : 따님?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 분명 전신으로 머리를 굴리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야, 나보다 조금 연상이라고는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큰...아니 작지만...이 아니라...

이런 나이대의 아이가 있으리라고는...

여자애 : 3개월 전...삼개월...전?

오사무 : 오, 오늘은 꼭, 그,

         해야할 말이...

여자애 : 읏...!

하지만...

이미 움직인 내 진심은 멈추지 않는다.

작지만 큰 따님이 있는 것이

어떻다는 건가.

그런 거, 우리의 마음 앞에서는 자잘한 문제다.

...어쨌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금방 용기가 수그러들 정도로,

기가 약한 인간이니까, 나는.

오사무 : 그, 그런 이유로, 그...호노카씨는!

여자애 : 잠깐...볼래?

오사무 : 에...?

[집에 계신가요?]라고 말하려는데,

소녀의 좀전까지와는 다른, 감정을 죽인 목소리에

제지당하고 말았다.

여자애 : 저기...허리 좀 굽혀줄래?

오사무 : 예...?

여자애 : 이리로, 얼굴 좀 내밀어봐.

오사무 : ㅇ, 어째서...?

여자애 : 아무튼...

오사무 : ㄴ, 네...

그 말에 따라 여자애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자,

의식하지 않아도 신경쓰이는 게 있다.

조금 치켜올라간 눈을 내린 그 표정...

확실히 그녀는 호노카씨의 얼굴과 닮았다.

아, 정말로, 이 아이는 그 사람이...

(짝!)

(툭 - 꽃다발 떨어지는 소리)

오사무 : 에...?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봄날의 일.

무슨 이유에선지 장미도 흩날린, 맑은 날의 일.

여자애 : 이 기둥서방!

         마마를...마마를 돌려줘!

오사무 : 에...........................?

요시무라 오사무. 28세 8개월의 어느 봄날.

그것이 나와 그녀...히노사카 미토코와의 첫 만남이자...

나와 그 사람...히노사카 호노카와의, 끝이었다.

◆ 제1화 : 45센티미터의 우정

(쿵쿵)

젊은남자 : 주인 언니, 주인 언니~!

           (원문은 "오오야짱"입니다, 우리 말로 뭐라 표현해야할지 잘 몰라 의역했습니다)

(쿵쿵)

미토코 : 열려 있어.

(철컥)

젊은남자 : 주인 언니, 주인 언니!

           빈 방인 4호실에 남자가 죽어 있어!

           주로 사회적 의미로.

미토코 : 아~.........그래.

젊은남자 : 알고 있어? 저 시체.

미토코 : 아냐고 물어보면...자세히는 모른다고밖에는.

젊은남자 : 그럼 처리해버릴까?

           통째로 옮기는 건 힘드니까 일단 분리해서...

미토코 : 미안한데...조금만 더 죽은 상태로 놔둬.

         나도 한 일이 있으니까.

젊은남자 : ? 흐음~ 경영자라는 건 힘들구만.

미토코짱에게.

아직 어린 당신을 두고 가는 건 괴로워요.

용서받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하지만 언젠가 당신도 알아줄 날이 올거라 믿어요.

그날을 믿고, 마마는 힘낼게.

이를 악물고 살아갈거야.

(이후, 잠시 자기 정당화의 변명 같은 말이 이어진다)

마마가 그 사람을 만난 건 3개월 전 정도...

눈이 내리는 날에 훌쩍 가게에 나타났지.

잠시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단지 그것만으로,

곧바로 [아, 이 사람이다]라고 느낌이 팍 왔어.

두 사람이 만난 건 운명이었어.

(이후, 잠시 상대방 자랑이 이어진다)

언젠가 미토코짱에게도 소개시켜주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안돼.

그 사람, 아주 큰 조직의 젊은 리더로,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지만,

그 때문에 동업계의 타회사로 헤드헌팅당할 것 같은 상황이야.

그래서 회사 사람들과 상담해서 잠시 모습을 감추기로 했어.

그런 힘든 일을 혼자서만 지게 할 수는 없어...

미토코짱이라면 알아주겠지?

잠시후에 진정되면 연락할게요.

그때까지 테라스하우스 히노사카를 잘 부탁해요.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마마로부터.

(팔랑)

오사무 : 나에 대해선...한 마디도 안 적혀있어.

만난 시기라든가 장소라든가,

확실히 내 케이스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여기에 적혀있는 [그]는,

명백히 내가 아니다.

아니 그것보다, 나와 만나서 친절하게 상담해주고,

그렇게 상냥하게 대해줬던 것과 동시에,

이렇게 애태우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되고.

그건 즉...

혼자서 완전 딴 방향으로 달아올랐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슬픈 짝사랑남이 된다는 소리로.

오사무 : 죽고 싶다..죽어 버리고 싶다...

         대지진과 함께 종유(鐘乳) 동굴이 무너져 내려,

         일족 전체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

         (요코미조세이지가 쓴 "야츠하카무라"라는 소설에 나오는 대사라는군요)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내 마음을 인정하는 내용은 한 마디도 없이,

아니 그것보다, 그녀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까지 단순한 대화 상대였다는 사실이 무겁게 짓눌러온다.

요 수개월로 겨우 잊혀졌던 [자신 불필요론]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오사무 : 역시 난 그때...

         그 눈내리는 역앞에서 얼어 죽는게 나았어...

         으, 으으, 흐흑...

운명이라는 건 편리한 말로...

사람의 인생은 그런 걸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모든 건 자신의 선택한 결과라고.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운명을 끝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이 세상에는 잔뜩 있는 이유로.

그럴 때 자꾸 생각이 나서..

아, 지금 이때, 나보다도 불행한 사람따윈

세상에 아무도 없는게 아닐까, 하는.

오사무 : .........아

[마마를...마마를 돌려줘!]

오사무 : .........

나보다도, 불행한...

있다.

아주 가까이에.

그것도 단연 톱으로.

오사무 : 나는...

그런데 잠깐 감정을 폭발시킨 후...

그녀는 나를 배려해 이렇게 쉬게 해줘서.

오사무 : 나는...바보다.

뒤로 벌렁 누우니, 나무로 된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을 느끼게해주는 얼룩은, 어렸을 때 봤다면,

거기에 스며있는 악령의 정체를 상상해 벌벌 떨었을지도 모른다.

얇아보이는 회반죽의 벽도 약해 보이고,

창문의 나무틀은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을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이런 건물에, 세입자와 함께 남겨져버린 그 여자애...

히노사카 미토코짱의 괴로움은 얼마나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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