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99 (93/94)

 PART-99

  그날 저녁 지영은 오랜만에 자기 방에 이불을 깔았다. 이곳에 이사온 후

로 계속 민형의 방에서 잤기 때문에 밤에 이방에 건너온 기억이 거의 없었

다.

  "......"

  왠지 혼자서 이불을 깔고 있자니 측은한 기분도 들고 민형의 부모님들에

대한 불안도 밀려와 지영은 바보처럼 눈물이 나왔다.

  '난 정말......'

  지영은 주루룩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이부자리를 다듬었다. 오

늘밤은 여름이지만 매우 추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  .  .  .

  "어쩌면 좋죠."

  나란히 이부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중에 희연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들 민형은 덥다면서 마루로 이불을 가지고 나갔고 지금 이방에는 희연

과 성욱부부 두명 뿐이었다. 남편은 잠자코 누워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하

더니 이내 이렇게 대답했다.

  "어쩌긴. 이제 돌이킬 수 있나 어디. 다행이 좋은 아가씨 같아서 다행

이라고 생각하는거지 뭐......"

  "뭐가 좋은 아가씨예요 당신은? 6살이나 많다는데."

  "당신도 나보다 2살 많치않아."

  "2살이랑 6살 차이는 큰거라구요."

  나이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지 좀처럼 느긋해지지 못하는 희연. 희연도 

민형과 지영의 앞에서는 매우 완고한 태도를 보였지만 가능하면 자신의 아

들을 이해하고 싶은 쪽이었다. 남편의 말대로 지영이라는 아가씨는 조신하

고 씀씀이도 헤퍼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족관계와 용납하기 힘든 많은

나이는 외동 아들을 둔 어머니의 불안을 쉽게 해소시키지는 못했다.

  "저희들끼리 잘 알아서 하는걸 보면 나이는 그다지 관계 없는 거라고. 

봐, 민형이랑 잘 살고 있잖아."

  "당신은 아버지로서의 자각이 있으십니까?"

  희연이 비꼬는 말투로 묻자 성욱이 대답했다.

  "물론 없지요."

  퍽- 소리와 함께 희연이 돌아 누웠고 성욱이 코를 움켜 잡으며 신음소리

를 냈다. 희연은 옆으로 돌아 누운채 아직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

었다.

  "난 민형이를 너무 빨리 결혼시키고 싶지 않아요."

  "부모 마음은 그런거지. 하지만 우리도 제법 빨리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았잖소."

  "그래도 우리는 공인된 사이였어요. 동거부터 시작하다니 하옇튼 요즘 

애들은......"

  생활능력이 좋은건지 되바라진건지...... 한숨을 쉬는 희연의 뒷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성욱이 빙긋이 웃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조금 걱정되는 관계라고 해서 민형에게 사랑하는 여자

를 버리라고 말할 정도로 성욱 부부는 비정하지 못했다. 희연이 문득 성욱

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그 여자 정말 이상하죠? 어떻게 고등학생이 좋아졌을까요?"

  

  "글세, 아마도 내 아들이 너무 잘났기 때문이 아닐까."

  "얼굴만."

  "그래, 얼굴만. 하하."

  소리가 맞아 하하 웃는 두 사람. 잠시후 푸우- 풀이 죽어 한숨을 쉬며

희연이 천장을 보고 누웠다. 그녀가 하염없이 허무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말대로 좋은 아가씨인 것 같기는 해요. 민형이 성적도 올랐고 이

곳에 와서 싸움했다는 말도 들어본적 없어요. 솔직히 약이 올라요. 엄마인

내가 18년동안 보살피면서 고치지 못했던 점들을 그 아가씨가 반년만에 다

고쳐 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예요......"

  "당신은 좋은 엄마야."

  다정한 눈길로 희연의 어깨를 감싸는 성욱. 희연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

다.

  "당신은 나쁜 아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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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잔뜩 긴장하여 마루에 모인 민형과 지영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형이 정말 의외라는 얼굴로 입을 크게 벌리고 말했다.

  "네? 지금 돌아가신다고요?"

  "!"

  민형에 못지 않게 놀란 것은 지영이었다. 민형의 부모님은 민형에게 아

무런 토도 달지 않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서

울에 올라가는데 특별한 조건이 달리거나 한 것도 아니고 민형을 데리고 

가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지영이 계속 이집에 사는 것

을 불가 시킨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한집에 사는 남녀가 눈이 맞았다는데 우리가 막을 권리는 없으

니까. 조금 걱정되지만 내 아들이니까 잘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조금은 험악한 표정으로 이렇게 입을 여는 희연. 민형은 그만 감격해서 

눈물을 글썽 거렸다.

  "어,엄마......"

  "단!"

  "!?"

  순간 번쩍 고개를 들며 희번덕 거리는 눈을 빛내는 희연. 민형이 움찔해

서 침을 꿀꺽 삼키가 희연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내가 아직 할머니가 되기엔 젊다는 것을 알지?"

  "아,알고 말고요....... 하하......"

  그런 부끄러운 말씀을~ 민형는 잔뜩 긴장해서 하하 웃었고 지영도 손으

로 두 볼을 가리며 빨개진 얼굴로 추스렸다. 희연이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후 그녀는 잔뜩 긴장해 앉아 있는 지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지영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지영이라고 했지. 아가씨."

  "아,예, 어머님."

  민망해서 고개를 돌지 못하는 지영. 희연은 그런 지영의 손을 붙잡고 자

상하게 웃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민형이가 이곳에 혼자 떨어져서 사고라도 치면 어쩔까 항상 걱정했는데

의외로 조용하더라구...... 모두 아가씨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

  "아,아니예요 어머님. 저는 단지......"

  "아무말 말아요."

  지영의 손을 잡은 희연의 손 끝에 힘이 들어가고 희연이 조금은 쓸쓸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앞으로도 민형이를 잘 부탁해요. 우리는 그렇게 꽉막힌 아줌마 아저씨

가 아니니까."

  그말을 듣는 순간 지영은 그만 눈물이 왈칵 눈앞을 가렸다. 어쩌면 이런

분들이......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을 민형의 부모님에게

서 한꺼번에 받는 느낌이 들어 지영은 그만 어깨를 들썩 거리며 눈물을 흘

리기 시작했다. 민형도 너무나 예상외의 결과가 나와서 그런지 멍하니 서

서 그런 지영과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희연이 손가락으로 지영

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대신 지킬 건 지키면서 사귀어 줘요. 뭐 어련히 잘 알아서 하리라 믿

지만."

  "어,어머님 저는......"

  "됐어요."

  울음을 삼키며 입을 열려는 지영을 가로막으며 잡았던 손을 놓는 희연.

그녀가 가지고 온 가방을 들고 성욱과 함께 대청마루 밑에 신발을 신었

다. 그녀가 성욱과 함께 일어나며 뒤를 돌아 보았다. 그 모습이 왠지 모

르게 섭섭하게 느껴져 민형은 가슴이 찡했다. 심한 불효를 하는 느낌. 지

금까지 부모님께 효도라고 이름붙힐만한 짓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번은

왠지 대단히 마음이 아팠다.

  "그럼 우린 간다. 돈 떨어지면 연락해라."

  평상시와 다름 없는 희연의 목소리. 그리고 두 사람은 잠자코 서 있

는 지영과 민형을 놔두고 대문을 나서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어머니 저희가 터미널 까지......!"

  한순간 그런 지영의 손을 붙잡는 민형. 지영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민형이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민형은 그런 지영을 뒤로 하

고 골목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자신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한쪽 눈에 눈

물을 맺었다.

  "정말 못 말리는 분들이시라니까......"

  민형이 찡한 얼굴을 추스리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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