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96 (90/94)

 PART-96

  "잘봤어요 민형군. 웨이브 쪽은 까다로운데 힘껏 해봐."

  "고맙습니다."

  격려하며 콘티를 넘겨주는 김선민을 흘끔 쳐다보며 가볍게 인사를 한 민

형이 서류철에 챙긴 원고를 옆구리에 끼고 지영을 흘끔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 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 지영이 눈치 빠르게 싱긋 웃으며 선민

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저 그럼 우린 이만 가봐야 되겠네요. 약속이 있거든요."

  "아,그러세요? 그럼 일어 나시죠. 저도 들어가 봐야 하니까."

  "네."

  한꺼번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3사람. 지영이 괜찮다는 데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이 차값을 내어준 선민이 커피  을 나서다 말고 민형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으며 친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 소질있어. 웨이브에서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해. 원래

잡지용 원고는 쉽게 통과되지 않으니까."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격려하는 건가? 아직 민형은 이 김선민 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

지 못하는데다 예전에 지영과의 관계도 있고해서 그가 하는 말이 백이면 

백 다 진실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내보내는 진실한 표정은 만점짜

리였다. 민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서 일하고 게신다니 언젠가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인사차례로 건넨 민형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선민.

  "우리 언젠가 또 만나자고."

  선민이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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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7시경. 이곳은 지혜의 원룸 오피스텔. 보통때 이곳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지만 민형과 지영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지혜는 일찍 집에

들어와 민형과 지영을 맞이했다.

  "어머어머, 60페이지 콘티로 가자고 했다고? 마음에 드는가 보네?"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있었던 일을 민형에게서 전해들은 지혜가 용하다는 듯이 손

뼉을 쳤고 민형이 쑥쓰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단 콘티 분량이 

늘었다는 것은 희망적인 이야기다. 지면을 더 할애해 줄 가치가 있다는 이

야기인 것이다. 지혜가 신통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 그림으로는 조금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어쨋든 열심히 해봐 민형씨.

혹시 안되더라도 실망하지는 말고."

  "실망안해요! 경험이지요 뭐."

  

  끝까지 만약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는 지혜에게 민형이 걱정말라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혜는 민형이 기대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민

형도 그런 지혜의 씀씀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매우 고마웠다.

  - 딩동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지훈씨?"

  "나야!"

  문밖에서 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자리에서 일어난 지혜가 현관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반가운 표정의 지훈

이 포장피자를 들고 허겁지겁 신발을 벗었다.

  "지영아! 왔구나?"

  "아,오빠. 안녕하셨어요~"

  피자를 식탁위에 던져놓고 냉큼 지영의 앞자리에 앉는 지훈. 그가 반가

운 얼굴로 하하 웃었다.

  "야,잘왔다 잘왔어. 저녁 먹었냐? 피자 사왔는데."

  "아니 안 먹었어 형."

  웃는 지영대신 대답한 것은 민형. 그 뚱한 표정의 민형에게 역시 뚱한 

표정으로 지훈이 고개를 돌렸고 두 사람의 뚱- 한 눈이 마주쳤다.

  "아, 너도 왔구나. 하긴 세트라는 걸 깜빡했군."

  "기왕이면 지영씨의 반만큼이라도 반가워 해주면 안돼? 형이 잘해야 지영

씨가 대접받는 법이야."

  "닥쳐......! 지영이한테 조금이라도 불쾌한 짓을 하면 죽여버릴테니

까!"

  

  "......"

  할말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민형. 그런 민형과 지훈의 옆으로 걸오

온 지혜가 팔짱을 끼고 한심하다는 듯이 웃었다.

  "동생사랑 국가사랑 끔찍하게도 실천한다니까. 지훈씨 민형씨한테 자꾸

까불지마. 지영이가 구박받으면 어쩔래?"

  "그,그럴리가 없어......!"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떠는 지훈. 지영이 

쓴 웃음을 지으며 삐죽 식은땀을 흘렸다. 오빠...... 농담이잖아......

  "근데 배고파 죽겠다. 지혜씨 지훈형이 사온거 뭐예요?"

  "아, 피자예요."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만지작 거리며 식탁위로 쭈욱 목을 빼는 민

형. 지혜가 식탁으로 다가가 피자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불고

기 라지 피자. 민형이 반가운 얼굴로 손을 마주잡았다.

  "이야~ 불고기 피자. 그런데 한판밖에 없어? 두판 사오지."

  "지영이는 한판만으로 충분해......"

  침을 꿀꺽 삼키는 민형을 얄미운 얼굴로 바라보며 지훈이 눈을 내리깔

꼬 쏘아 보았다. 하지만 민형은 그런 지훈에게 보라는 듯이 피자 판을 

열고 피자 한 조각을 냉큼 집어들었다.

  "야,이거 너무 적어. 나 혼자 다 먹어도 모자라겠는데......?"

  "......!"

  지훈을 스윽 쳐다보며 눈웃음 치는 민형. 지훈이 주먹을 불끈 쥐고 몸

을 부르르 떨었다. 

  "지혜씨는 안먹어요?"

  피자를 씹으며 묻는 민형. 지혜가 대답했다.

  "아, 난 피자는 됐어요. 살쪄요."

  "지금도 충분히 잘 빠졌는데 뭘."

  실실 웃으며 혼자서 와구와구 피자를 집어 먹는 민형. 갑자기 지훈이 충

혈된 눈으로 피자를 붙잡은 민형의 손을 덥썩 움켜 잡았다. 지훈이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애처롭게 중얼 거렸다.

  "너...... 너무 빨라...... 천천히 먹어."

  "됐어! 난 원래 이 속도야!"

  "......!"

  울컥, 지훈의 손을 뿌리치며 더욱 먹는 속도를 빨리하는 민형. 지훈은 

참다못하고 얼른 피자 한쪽을 집어들어 지영에게 넘겨주었다.

  "지영아 너 안먹어?"

  "아,예예......"

  쓴웃음 짓는 지영. 그리고 지영이 피자를 넘겨받자 민형의 두눈이 그쪽

으로 쏠렸다. 민형이 씨익- 웃으며 가증스러운 표정으로 지영에게 말했

다.

  "그거 큰데. 맛있게 생겼는데 내가 먹으면 안될까?"

  "아,네 민형씨 먹어요 자."

  "......!?"

  의도적인 민형의 행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영이 얼른 쥐고 있던 피자를

민형에 입에 내밀었고 지훈의 분노 폭발 지훈이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며 

민형의 멱살을 잡았다.

  "이자식 정말!"

  "어라......?"

  피자를 입에 물고 씨익- 눈을 올려뜨는 민형. 민형이 말했다.

  "이거 왜이래 형? 지영씨가 나 먹으래잖아......?"

  "너,너,너는 다른거 먹으면 되잖아! 왜 내가 먹으라고 준걸 뺐어 먹는

거야 이 나쁜놈아......!"

  

  "아하 그래? 그런데 어떡하지 내가 그게 먹고 싶은데 어쩌라고?"

  "이,이 이 자식이......!"

  욹그락 붉으락 한 지훈에게 실실 웃으며 중얼거리는 민형. 지영이 상관

하지 않아야 겠다는 얼굴로 살짝 뒤로 물러났고 보다못한 지혜가 지훈의 

머리를 후려쳤다.

  "어휴 그만해 정말 애도 아니고!"

  "......!?"

  갑작스럽게 머리를 얻어 맞은 지훈이 번쩍 고개를 들었고 무서운 표정의

지혜가 가슴앞으로 팔짱을 끼고 이렇게 말했다.

  "민형씨가 장난하는거 몰라? 그렇게 동생이 좋으면 동생하고 살아."

  "아,아니 나는 그게 아니라......"

  싸늘한 얼굴의 지혜. 그러 지혜 앞에서 꼼짝 못하는 지훈을 보며 민형이

피자를 입에 문채 킥킥 거렸다. 

  "이제 지영씨는 지훈형 동생이 아니라 내 애인이라는 걸 아셔야지."

  야금야금 피자를 씹어 먹으며 결정타를 날리는 민형. 지훈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바닥에 쿵 주먹을 내리 꽂았고 지혜가 못말리겠다는 듯이 한숨

을 내쉬었다.

  "겨우 피자 한조각 가지고......."

  지영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억지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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