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92 (86/94)

 PART-92

  "멈춰진 진리! 또 용기~! 모든 것을~ 앗아간 양심~ 인간은~ 돌아가는 룰

렛속에 멈춰버린 작은 고옹~!!"

  "실루엣~ 생각속에~ 그대안에 들어간 푸른 눈망울~"

  템버린을 두드리고 캐스터네츠를 딱딱 거리며 민형과 의연은 노래방에서

열창했다. 노래방에 들어온지 10분쯤 지났으나 벌써 광란어린 노래방의 열

기는 의연과 민형에 의해 한껏 끓어올랐다.

  "이번에도 97점? 의연이 너 노래 솜씨 죽이는데!"

  "흥,그러는 너도 만만치 않군!"

  "내가 가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 직업으로 먹고살기 위한 많은 사람

들을 위해서거든."

  서로 칭찬을 하면서도 두 사람의 사이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두 사람 다 

보기 드문 명창이라 의연의 친구인 진명쪽도 듣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하

지만 두 사람의 열혈적인 분위기는 진명으로 하여금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그때 마이크를 잡고 막 선택 단추를 누르려던 의연이 깜빡

있었다는 듯이 민형에게 휙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있잖아! 너네 누나도 부르자! "

  "엉?"

  지영씨를 부르자고? 민형은 한순간 꺼름직한 표정으로 입술을 쭈그려트

렸다. 그러고 보니 지영씨랑 노래방 같은데 온적은 한 번도 없네. 사실 지

영의 노래가 들어 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문득 민형의 머리속을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좋은 생각. 지금 지영씨를

데리고 오면 의연과 저 동생이라는 녀석의 관계를 빌미로 자신과 의연의 

사이가 오해였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의연이 녀석 저

녀석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래 그거야! 한건 해결!

  "전화할까?"

  솔깃해서 묻는 민형. 그런 민형에게 의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그래 빨리 전화해! 여기 까지 5분도 안 걸리잖아!"

  "좋아 기다려! 내가 금방 불러올게! 넷이서 광란의 밤을 보내자고!"

  "OK!"

  의연이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고 민형 역시 주먹을 불끈 쥐며

노래방 문을 열고 카운터에 공중 전화로 걸어갔다. 그래, 의연이 녀석한테

저런 숨겨둔 남자가 있었는지 의외였지만 어쨋든 좋아. 지영씨와 화해하기

위해서는 좋은 타이밍이 아닌가! 게다가 노래방은 오락의 공간! 분명히 화

기애애한 분위기로 오해는 풀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영이 노래방같은

곳을 좋아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민형은 전화기 옆에 돼지 저금통에 100원

짜리 하나를 집어 넣고 수화기를 들었다.

  - 뚜우우우

  - 뚜우우우

  몇초간의 긴장된 시간. 그리고 수화기 저편에서 지영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선생님!?"

  

  << ...... >>

  순간 등줄기를 흐르는 싸늘한 침묵. 민형은 오싹하며 억지로 웃어 보였

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저절로 미소가 흘러 나왔다. 나도 알고보면 비

굴한 녀석인지도 모르겠다......

  << 왜 그러지 동생 민형? >>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차가우면서도 냉철한 목소리. 화났다. 아니 

아주 화났다! 유지영 선생님이 저렇게 나오는 것은 드문일이지만 매우 화

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녀를 풀리게 만들 비장의 아이템을 준비해 놓았

으니까 걱정 없지!

  "선생님 여기는 근처 노래방인데요! 지금 친구랑 있거든요! 그래서 선생

님도 같이 놀자고 전화했어요! 이리 오세요!"

  << 또 그 여자애랑 같이 있는 거예요? 싫어요 동생군. 둘이 노세요. >>

  도,동생군...... 왠지 썰렁하지만 비장의 아이템이 있으니까. 민형은 한

껏 가슴을 힘을 집어 넣고 억지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지금 의연이랑 의연이 남자 친구랑 같이 있는데 저만 짝이 없단 말이예

요! 아시겠어요? 전 지금 궁상이라고요!"

  << 의연이라면 아까 그 여자애 말인가요? >>

  그럼 그렇지. 솔깃한 지영의 목소리에 민형은 씨익- 미소를 흘리며 대답

했다.

  "그려요. 지금 그 의연의란 여자애의 애인이 서울에서 면회 와서 노래방

에 와 있는 상태여요. 그러니까 궁상인 날 구하러 빨리 와요."

  << 민형씨랑 사귀는 것이 아니었나? >>

  조금은 퉁명스런 목소리. 민형은 킥킥 거리며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겠죠? 확 사귀어 버릴까?"

  << 맘대로 해요...... >>

  쳇, 빼긴. 민형은 약간 성질이 났으나 어쨋든 원인 제공이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해서 참았다. 하지만 수화기 저쪽의 지영은 확실히 처음보다 많

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민형이 재차 물었다.

  "빨리 올거예요 안 올거예요?"

  << 어느...... 노래방인데요. >>

  그럼 그렇지! 사귄지 반년이 가까워 오니까 이제 이여자 다루는 법을 좀

알겠군. 민형은 속으로 YES!!를 외치며 겉으로는 침착하게 노래방의 장소

를 설명했다.

  "학교 맞은편에 있는 25시간 노래방이예요. 정문 앞에 있으니까 찾기도 

쉬울거예요. 지금 바로 나오면 3분도 안 걸릴껄요."

  << 민형씨도 노래해요? >>

  크하하 풀렸어 풀렸어! 민형은 속으로 쾌소를 외치며 YES!!를 한 번 더 

외쳤다.

  "그럼 노래방 와서 노래하지 뭐해요? 마이크 씹어 먹을까?"

  << 난 민형씨 노래하는거 한 번도 들은 적 없는데...... >>

  "가수 뺨치는 나의 노래 솜씨를 보여줄테니 빨리와요! 지영씨가 노래

못해도 듀엣으로 다 커버해 줄 수 있다니까!"

  << 쿡...... >>

  웃었다!? 지금 웃었지!? 하아...... 인간 정민형. 진짜 많이 초라해 졌

구나. 여자가 슬쩍 웃은 것 만으로 이렇게 기뻐해야 하다니. 하지만 지금

은 체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쨋든 풀어졌으니 다행 아니겠냐! 민형은

속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제촉했다.

  "지금 올꺼죠?"

  << 알았어요. 그럼 좀 기다리세요. 옷 좀 있고...... >>

  "그냥 나와요! 슬리퍼만 신고 나와도 되니까!"

  << 어떻게 그냥 나가요. 처음 보는 남자도 있는데 >>

  "다른 남자한테 못나 보여도 된다니까."

  << 그래도 싫어요. 어쨋든 금방 갈께요. >>

  "ok."

   수화기를 끊고 민형은 흡족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좋아~ 이것으로

일단락! 이제 사이좋게 노래를 부르면서 애정을 돈독히 하는 일만 남았

군. 민형은 휘파람을 불며 다시 룸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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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넌 전화로 누나랑 연애했냐? 뭔 전화를 그렇게 하루종일 해?"

  뜨끔, 별 생각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의연의 한마디는 민형에게 엄청난

데미지 였다. 의연이 이것이 워낙 눈치가 칼이라서...... 민형은 애써 태

연하게 하하 웃으며 의연하게 흘려 넘겼다.

  "아, 누가 쓰고 있길레 잠깐 요 앞에 나갔다 왔어."

  "그랬어? 온데?"

  "온데!"

  "좋아!"

  의연과 민형이 마주보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순간 민형은 뭔가 수

상한 것을 느꼈다. 자신은 지영과 화해를 하기 위해 이 상황을 기뻐한다고

하지만...... 의연이는...... 의연이는......?

  "근데 넌 우리 누나가 온다는게 뭐가 그렇게 좋냐?"

  "뭐가 좋다니!? 친해지면 좋잖아!"

  "친해져......?"

  "그래! 빨리 너네 누나랑 친해져야 수업받지! 수업!!"

  카...... 그럼 그렇지. 노래방에서 노래부르는 순간까지도 공부밖에는 

생각하는게 없군. 민형은 그 의연의 불타는 학구열에 높은 존경과 감탄을

보냈다. 그 경의의 표시로 민형은 지영이 오기전까지 이 노래를 열창했

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너 그거 무슨 의미로 부르는거냐?"

  "무슨 의미라니. 쉬어 가자는 의미지."

  "......"

  불쾌한 듯이 묻는 의연에게 민형이 실쭉한 얼굴로 대답했고 의연은 이

마에 핏발을 세웠다. 하지만 지가 어쩔껴. 증거가 없는데 증거. 왠지 가장

연하인 진명은 그런 민형와 의연을 잘 논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으며 쳐다

만 보고 있었다.

  - 똑똑

  그때 누군가가 입구에 문을 두드렸고 민형이 휙- 고개를 돌렸다.

  "실례해요?"

  그녀는 바로 지영. 예쁘게 윈피스를 차려입고 헤어 밴드까지 하고 나온

보기만 해도 껴안아 주고 싶은 귀여운 모습이었다. 민형이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어서오세요 선......!!"

  헙, 한순간 엄청나게 긴장하는 지영. 그리고 민형이 얼굴이 시커매 져서

푸하아아 숨을 내쉬며 식은땀이 맺힌채 입을 열었다.

  "선수 교대야 누나......"

  에고, 돌겠군 정말...... 민형은 등줄기에 싸아- 맺힌 식은땀을 느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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