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79 (73/94)

 PART-79

  "뭐예요? 친동생도 아니잖습니까?"

  "아, 그게요...... 같은 집에서 자취해서 잘 아는 사이거든요. 어차피 

보증인만 되면 되는거니까 제가 보증을 서겠습니다 경찰 아저씨."

  파출소에서 연신 담당 경찰관에게 고개를 숙이며 지영이 일을 해결하고 

있는 동안 민형은 욹그락  뎃으락 뚱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고개를 돌리

고 있었다. 민형은 지금은 헤어지고 없는 김선민이라는 남자를 생각하며 

끓는 속을 잠재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서 처음 보는 남자랑 술을 마셨다 이거지...... 후우......"

  용납할 수 없어. 용납이 안돼!!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아는 사람도 아

니고! 처음보는 사람이랑! 그것도 남자랑!! 콜라도 아니고 술을 마실 수 

있냔 말이야!! 민형은 지영의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자기 모르게 외간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열이 뻗쳤다.

  "그럼 여기에 지장 찍으시고 먼저 시비를 건 녀석들은 저 녀석들 이니까

보내드리는 겁니다. 보호자도 있으니까 믿고 보내 드리겠습니다. 괜찮겠

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경찰 아저씨."

  다행스러운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는 지영에 뒤에서 못마땅한 표정의 

삐끼들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에이씨! 먼저 시비 건 사람은 저 사람 이라니까요!"

  "맞아요! 우린 피해자 라니까요!"

  건들거리며 이렇게 외치는 삐끼들을 향해 경찰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시끄러 이 자식들아! 너희들 벌써 몇번째야! 확 집어 넣어 버린다!"

  "......"

  경찰의 이야기를 듣자니 녀석들은 꽤 이 근방에서 유명한 녀석들인 모

양이었다. 민형은 데리고 왔던 경찰관 한명이 지영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

서는 민형을 향해 쓴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거 젊은 사람이 성질 좀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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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출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면서 민형은 연신 화가 난 채였다. 지영

은 앞장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민형의 뒤를 따르며 자

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후회했다. 사실은 화가 날 사람은 바로 나인데...

...! 라고 생각해 보았자 이제 와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

다. 지영은 불안한 마음으로 민형의 뒤를 따르며 숨을 죽였다.

  "......"

  민형은 민형대로 꽤 화가 나 있었다. 분명 집을 나와 지영을 찾아 다닐 

때만해도 지영을 만나면 해명하고 잘 풀어갈 심산이었다. 하지만 거리에서

지영과 김선민이라는 남자를 본 후 기분이 싹 가셔버렸다. 시시하게 길거

리에서 만난 남자랑 술이나 마시고 있었다니 민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풀리지 않아 우뚝 멈춰섰다. 반사적으로 뒤 따라 오던 지영도 멈춰섰고 민

형이 뒤를 돌아보았다. 민형은 굳은 얼굴로 지영에게 먼저 한마디 했다.

  "삐져서 뛰어 나가길래 어디갔나 했더니 결국 술집이예요?"

  "......"

  민형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다. 지영은 한 번도 민형이 자신에

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겁이 나서 잠자코 있었

다. 민형은 답답한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민형이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말했으면 좋겠어요? 친구도 아니고. 학교 담임 이었

잖아요! 네, 제 애인입니다! 한 집에서 함께 삽니다. 그렇게 얘기 하란 말

입니까?!"

  그,그런게 아니잖아요! 지영은 냉큼 대꾸하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나

온 대사를 꿀꺽 삼켜 버렸다. 지영이 화가 난 것은 자신을 누나라고 변명

한것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좀 화가 나긴 하지만 진정 지영

을 화가 나게 한 것은 송미라 라는 젊은 여선생의 존재였다. 그것을 민형

에게 납득시키는 것 자체가 조금 유치한 것 같아 지영은 입을 다문 것이

다. 물론 민형의 말을 들어주고 화해하려는 의사가 더 강했다. 지영이 그

런 생각으로 아무말 않고 있자 자신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

지 민형이 덧붙혀 말했다.

  "뭐, 좋아요. 여자들이 다 그렇죠 뭐. 삐져서 나간 것 까지는 좋았다 이

거예요. 그러니까 나도 찾으러 나온거고. 그런데......"

  문득 낮아지는 민형의 목소리 한순간 민형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 뜨고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술집이라니!! 그것도 처음 보는 남자랑!! 지영씨 그 정도 밖에 안돼

요!?"

  "......!"

  엄청 큰 목소리. 그것은 지영을 놀라게 했고 민형이 내뱉은 말은 지영에

게 상처를 주었다. 그정도 밖에 안되다니. 마치 싸구려 여자 취급하는 민

형의 말. 지영은 민형의 심한 말에 그만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지영이 변

명도 하기 전에 성난 민형은 계속해서 지영을 윽박질렀다.

  "전에 지훈형이 왜 그렇게 지영씨를 구속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애! 아

무하거나 헤헤 거리며 술을 마실 정도니 걱정이 되지 않겠어요!? 나는 안

그래요! 적어도 나는 처음 보는 여자를 따라가는 그런 짓은 안해요!"

  엄청 심한 말. 지영은 자기도 모르게 두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저렇

게...... 저렇게 말할 수가...... 그래도 남은 화해할 생각으로 화가나는 

것도 접어두고 잠자코 있었는데...... 저렇게 싸구려 여자 취급을 하다니

...... 지영은 무엇보다 민형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엄청난 허무함을 느끼고 큰 실망에 빠졌다. 지영이 아무말 안고 주루룩 눈

물을 흘리자 민형은 자신이 좀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잠깐이나마 말을 멈추

었다. 하지만 민형의 얼굴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은 채였다. 오히려 눈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마음에 안든다는 얼굴로 가혹하게 인상을 찡

그리고 있었다.

  "울면 뭐가 해결되요? 울지 말아요! 뭐 잘했다고 울어요!? 진짜 짜증나

는 사람은 바로 나예요 나!!"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하소연 하듯이 외치는 민형. 하지만 지

영은 더 이상 민형에게 아무런 할말도 없었다. 변명할것도 없고 하고 싶지

도 않았다. 지영은 그대로 두주먹을 꽉 쥔채 눈물을 참기 위해 욱욱 거리

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휴......"

  민형이 짜증나고 답답한 얼굴로 돌리며 크게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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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씨팔!!"

  민형은 방문을 주먹을 크게 후려치며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뿌렸다. 짜

증나고 성질나서 더는 못해 먹겠다! 민형은 속도 상하고 자신의 행동에 회

의도 느껴 머리속에 터질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지영은 방에 틀어 박혀

아직도 울고 있는 듯 했다.

  "질질 짜서 뭐 어쩌겠다고!! 에이!!"

  민형의 진심은 지영과 화해하는 것이었다. 조금 심하게 말하기 했지만 

그것도 다 지영을 독점하고 싶은 투정에 속할 뿐이었다. 지영을 좋아하는 

마음이 강해서 말도 험하게 나온것이고 자신이 좀 심하게 말한다 해도 지

영은 자신의 마음을 아니 받아 줄 것이라 생각했던 터였다. 하지만 정작 

지영은 단단히 마음이 상한 모양이고 그런 모습을 보니 민형의 속은 두배

로상해 버렸던 것이다. 민형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방에 털썩 주저 앉았

다.

  "크으......"

  기분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호흡을 가다 듬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지영

의 크게 마음 상한 얼굴이 떠올라 민형을 못 견디게 만들었다.

  "엄마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민형은 애꿎은 배게만 열심히 패대기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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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영은 이불에 얼굴을 묻고 큰 소리로 소리내어 울었다. 지금까지 많은

슬픈일이 있고 괴로운 일이 있었지만 오늘 민형에게 들은 말만큼 지영을 

서럽게 만든 일은 드물었다. 누구보다도 민형씨를 좋아하고 그를 따르는

데 당사자인 민형은 지영 자신을 마구 몰아 붙히고 조금의 이해도 해주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여자로서의 지영의 입장을 조금도 생각

해 주지 않는 가혹한 말로 그녀를 몰아 붙혔다. 오빠에게 어떤 욕을 들은

것 보다도 민형의 냉혹한 한마디가 훨씬 더 지영의 가슴을 찢었다.

  "흑흑...... 흐흐흑"

  얼굴은 묻은 이불이 축축하게 젖고 눈이 빨갛게 충혈될 정도가 됐는데도

지영의 울음을 그칠줄 몰랐다. 지영은 자신이 한 모든 행동이 너무나 후회

스러웠다. 애초에 힘든 연애라는 지혜의 말도 떠올랐다. 모든 것을 노력해

서 열심히 해보려고 하던 지영의 마음은 아픔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흐으윽...... 으흐흐흑......."

  연신 이불에 고개를 파묻은채 지영은 울고 또 울었다. 이 밤이 다 가도

록 눈물을 흘려도 그녀의 눈물샘은 마르지 않을 듯 했다.

........................................................ . . .  .  .

  '요 녀석이 들어 왔나?'

  샤워를 마친 송미라는 쇼파에 앉아 민형의 집 전화 번호를 돌렸다. 한

참동안 기다려도 민형이 돌아오지 않아 일단 집으로 돌아온 그녀였다. 돌

아와 곧장 전화를 걸었는데도 받지 않고 해서 일단 샤워를 끝맞치고 다시

걸어보는 참이었다.

  - 뚜우우우우우

  - 뚜우우우우우

  "......"

  몇초동안 신호음이 울리고 저쪽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 딸칵

  "!"

  

  << 여보세요? >>

  왠지 모르게 잔뜩 날카로워진 민형의 목소리. 송미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민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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