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64
"......"
지영의 브레지어를 억지로 뜯어 벗긴 지혜가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지영은 곧바로 자신의 브레지어를 지혜의 손에서 확 낚아채며
얼굴이 빨개져서 외쳤다.
"무슨 짓이야! 지혜 바보!"
지영이 화난 듯 이렇게 외치며 지혜에게서 등을 돌리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지영은 이불속에서 얼른 얼른 브레지어를 입으며 마음속으로 두근두
근 생각에 잠겼다. 지혜는 정말 가슴만 보고 했나 안했나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때 이불 밖에서 지혜의 손이 이불속으로 쑥 들어와 지영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지영이 미처 피하기도 전에 지혜가 무지막지한 힘으
로 지영의 머리를 이불속에서 확 빼내었다. 지영이 비명을 질렀다.
"아퍼......!"
"시끄러 기집애야."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인상을 찡그리는 지영의 얼굴에 꿀밤을 먹이며 지
혜가 정할 할 수 없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지영이 머리카락을 붙잡은채로
긴장한 얼굴로 지혜를 빤히 쳐다보았다. 왠지 가슴 언저리가 쿡쿡 저려 오
는 것만 같았다. 그때 지헤가 지영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너 어쩔려고 그래."
"뭘......"
지영은 시치미를 뚝 때고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지혜는 지영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민형씨는 아직 고등학생이야. 연하의 남자랑 사귀면 사귀는 만큼의 책
임을 져야지. 그렇게 자신을 함부로 해서 어쩌겠다는 거니?"
"대답안해."
왠지 민형씨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라서 지영은 볼을 부풀린 채 휙 고
를 돌렸다. 지혜는 정말 골치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지영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자신쪽으로 확 끌어 당겼다. 지영이 기겁을 하며 비명
을 질렀다.
"아파! 놔!"
"잘들어 이것아! 피임은 했니?"
지혜가 정말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지영도 조금 기가 죽
어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다. 지혜는 여전히 한심하다는 얼굴로 다시 되물
었다.
"괜찮은거야?"
"이번달 월경은 있었어......"
지영이 포기한 듯이 순순히 대답했다. 어차피 지혜는 모든 것을 꽤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영이 순순히 대답하자 지혜가 백을 가져와 안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콘돔 세트였다.
"설마 설마 했지만 설마가 사람잡을 것 같아서 사온거다. 민형씨가 일일
이 신경써 줄 것 같지도 않고, 앞으로는 네가 약국에서 사."
"...... 고마워."
지영이 지혜가 내민 상자각을 집어 들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지혜는 가
슴 앞으로 팔짱을 낀채 왠지 괘씸한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에 조금의 실수라도 있어 임신했다고 생각해봐. 단순히 너도 걱정
이지만 아직 고등학생 밖에 안된 민형씨의 일생이 흔들리는 일이야. 너도
진정으로 민형씨를 좋아한다면 24살답게 처신해야지."
"......"
지영은 왠지 어머니에게 꾸중듣는 딸의 입장같이 느껴져 아무 대꾸도 하
지 않았다. 이래라 저래라 해도 지혜는 좋은 친구다. 이런 걱정을 해주는
여자는 지영의 주위에는 지혜밖에 없는 것이다. 지혜가 못마땅한 얼굴로 다
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떻게 일이 이렇게 돌아갈수도 있다니......"
지혜가 자포자기 한 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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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은 지훈과 함께 방에 누워 있었다. 지훈과 특벽히 할말도 없고 또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에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잠이 오
지 않았다. 아무래도 민형에게 지훈이라는 존재는 거북하기만한 존재였
다.
"야, 민형아."
"?"
그때 어둠속에서 지훈이 말을 걸어왔다. 민형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지훈
은 아직 민형이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게속 말을 이어갔
다.
"너 말이야. 만화가 해서 성공할 자신있냐."
"......왜요?"
자신에 대해 묻는 것을 씹어 버릴 수는 없어서 민형이 샐쭉하게 대답했
다. 지훈이 후우 한숨을 쉬며 두팔로 머리를 받쳤다.
"너 복싱 해볼래? 넌 맷집하고 펀치력이 죽이니까 금방 늘거다."
"난 얼굴에 상처 나는거 싫어해요."
"그런말 한다고 믿어줄 것 같냐?"
"정말이예요. 그리고 사실 난 폭력보다 섬세한 예술가가 체질에 맞는 타
잎이라고요."
"정말이냐? 난 거짓말 장이한테 내동생 못줘."
"농담이예요. 나 쌈 좋아해요."
"......"
왠지 의미없는 농어가 몇마디 오고 갔고 지훈은 기분이 좋은지 쿡쿡 소
리내어 웃었다. 민형은 지훈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어 잠자코
지훈의 다음 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훈이 말했다.
"너 내동생 책임질 수 있냐."
"!"
왠지 뜨끔한 질문. 민형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예요 형?"
"네 동생 먹여 살릴 수 있냐고 묻는거야."
"결혼하란 말이예요?"
"뭐야? 그럼 안할 생각이었단 말이야? 이 자식이......!"
"케,켁...... 아,알았어요. 이것좀 놔줘요."
누운 자세에서 지훈이 민형의 목을 졸랐고 민형이 켁켁 대며 고개를 흔
들었다. 민형이 죽는 시늉을 해대자 재미가 없어졌는지 지훈이 민형의 목
을 붙잡았던 자신을 손을 놓고 자시 팔배게를 하고 누웠다. 지훈이 감개
무량한 듯 혼자말로 중얼 거렸다.
"지영인 진짜 괜찮은 여자다. 내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요즘 어
딜 가서도 지영이 같은애 찾기 힘들어. 어쩌다 너같은 깡패 자식한테 걸려
버렸는지 모르지만 말이야...... 난 지금도 아깝다."
"뭐가 아까워요. 근친상간이라도 해보고 싶은거요?"
"자식이 말을 해도 꼭......"
"크크......"
어느세 거북함이 허물어지고 둘은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한 친구처럼 이
런저런 농담을 주고 받았다. 물론 두 사람의 주제는 지영과 민형의 관계에
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훈이 무언가 하고 싶은말을 하지 못하고 말을 돌
리는 것을 알아챘는지 민형이 대뜸 이렇게 말을 꺼냈다.
"지영씬 내가 맡을테니까 형은 이제 손 털어요. 이젠 내꺼라고요 내
꺼."
민형이 히죽 웃으면서 한마디 했고 지훈은 민형의 목을 팔로 감아 조이
며 안심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 넌 멋진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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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유택천의 패거리는 고수부지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것은 단순히
중영실고의 학생들만이 아니라 유택천과 동맹을 맺고 있는 여러 학교의 모
임이기도 했다. 아직 꺼지지 안은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어두운 밤 고수
부지를 온통 시끄럽게 달구어 놓고 있었다.
"와줘서 고맙다.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골치아픈 녀석 한
명을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야."
유택천은 자신의 오토바이에 앉아 앞에 모인 여서 패거리들에게 긴장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중영 실고 패거리와 신천지 고교. 석강 공고까지
모두 세학교. 이들은 모두 유택천과 의형제를 맺고 있는 각각의 보스가 지
휘하고 있으며 세학교를 모두 합친 패거리의 수는 130명이 넘었다.
"만약에 만약까지 대비해야 하는 위험한 놈이 우리학교에 전학왔다. 그
놈을 이곳으로 유인해서 묵살내는 것이 이번 우리의 목표다."
오타바이 위에서 패거리들을 둘러보는 유택천의 눈에는 치욕스러움과 복
수에 눈이 먼 시뻘건 인이 번쩍이고 있었다.